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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목전, 비정규직, 싱글, 정신 차려보니 벼랑 끝”

<르포 빈곤여성> 펴낸 저널리스트 이지마 유코 인터뷰



가난해도 서로 의지하는 사람들은 불행하지 않다


저널리스트이자 논픽션 작가인 이지마 유코 씨는 어린 시절 도쿄에서 자랐다. 대학에 다닐 때 성당을 통해 필리핀의 거리의 아이들을 지원하는 자원봉사 활동에 참가한 적이 있는데, 그 때의 경험이 지금보다 훨씬 감수성이 풍부했던 학생 시절 이지마 씨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사건’이었다.


세계의 불균형한 경제 구조에 비판적인 문제의식을 가졌던 것이 자원봉사 활동에 참여하게 된 계기였지만, 뜻밖의 시각을 배우게 되었다. 가난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깝고, 서로 의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필리핀 사람들을 통해서 빈곤에 대한 이미지가 뒤집어졌다고.


▶ <르포 빈곤여성>을 펴 낸 논픽션 작가 이지마 유코 씨. 인터뷰, 르포르타주 중심으로 잡지와 온라인 상에서 글을 발표하고 있다.  ⓒ촬영: 우이 마키코


졸업 논문을 쓰는 과정에서는 돈을 벌기 위해 일본에 온 필리핀 여성들을 찾아 인터뷰했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엔터테이너 비자로 일본에 와있던 젊은 여성. 만나기로 한 찻집에 가니 그녀 곁에는 험상궂은 남성이 앉아 있었다. 그녀들을 일본으로 불러들여 일자리를 알선하는 악명 높은 브로커였다.


“그 남자, 자리에 앉자마자 ‘난 맥주’ 그러더라고요. 무서웠어요. 하지만 인터뷰가 끝나자 ‘아가씨, 열심히 하세요’ 하고 격려해주더라고요.(웃음)”


그 후에도 이지마 유코 씨는 계속해서 사람들을 만나 생생한 목소리를 들었다. 세상에는 언론에서 다뤄지지 않는 목소리가 있었다. 대학 시절의 경험이 이지마 씨가 글 쓰는 일을 계속하게 된 원점이 되었다


여성의 빈곤은 감춰져 있을 뿐


대학을 졸업한 후, 전문지 기자와 잡지 편집 등을 거쳐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리고 노숙인들이 판매하는 잡지 <빅이슈 일본판>(bigissue-online.jp) 등에서 일을 시작했다. 이 잡지에서 릴레이 형식으로 이어지는 인터뷰 ‘나의 분기점’을 오랫동안 담당하고 있는데, 2005년 신경정신과 의사 가야마 리카 씨를 시작으로 마침내 인터뷰이 300명을 넘겼다.


※ <빅이슈>(The Big Issue)는 빈곤층을 돕기 위해 1991년 9월 영국의 존 버드와 고든 로딕이 창간한 격주간 잡지다. 잡지 발간을 통해 홈리스들을 고용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활동을 해오고 있으며, 국내에도 <빅이슈 코리아>(bigissue.kr)가 발간되고 있다.


▶ 2019년 1월 15일 발행된 <빅이슈코리아> NO. 195 “미래의 미라이” 호에는 여성 홈리스에 관한 이야기도 실렸다. ⓒ빅이슈코리아 bigissue.kr


리만 쇼크(2008년 9월, 미국 월가의 대표적인 금융회사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으로 세계 금융위기가 촉발된 사건) 직전부터 많은 수의 ‘젊은 노숙인’들이 빅이슈 판매원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은 중장년 판매인들에 비해 의사소통을 원하지 않는 등의 문제를 보였다. 빅이슈 스태프들도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고민했다고.


그렇다면 개개인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어떨까, 이렇게 시작한 것이 <르포 젊은 노숙인> 발간의 계기가 된 ‘청년 노숙인 50인 인터뷰’ 조사였다.


이지마 씨가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성장 환경이 유복하지 않았거나, 학교와 직장에서 집단 괴롭힘을 당한 경험이 있거나, 자기 긍정감이 없거나, 일을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현재 일본 젊은이들의 모습이었다.


청년 노숙인 개개인의 이야기를 듣고 기록했지만, 인터뷰한 50명 전원이 ‘남성’이었다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여성노숙인도 존재한다. 그러나 거리에 있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하기 때문에 이들을 찾아 이야기를 듣기가 쉽지 않다. ‘여성의 빈곤은 감춰져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 이지마 씨는 가난한 청년여성들을 중심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가정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집을 뛰쳐나온 사람, 국가로부터 생활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 본가에서 생활하는 싱글여성들에게도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들은 밖에서 보면 제멋대로 살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 쉽다. 하지만 그 대다수는 비정규직에 저임금 직종에서 일하며,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갖고 살아간다. 부모와 사이가 좋지 않지만, 가진 돈이 없어 부모의 집을 나오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이들은 가족으로부터 결혼이나 출산 압박을 받으며 괴로워하기도 한다.


이지마 유코 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만난 여성들의 모습이, 30대가 되어도 불안정한 노동을 이어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과도 겹쳤다. 독신여성의 3분의 1이 빈곤층인 시대. 예전에 해외까지 가서 보고 경험했던 ‘빈곤’이 실은 내 바로 옆에 있는 현실이라는 점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 빈곤의 상징인 노숙인. 그러나 성폭력과 같은 위험 때문에 여성의 빈곤은 더욱 숨겨져 있다. (출처: 픽사베이)


우리 삶이 팍팍한 건, 빈곤 때문만은 아니다


이지마 씨는 작년 4월부터 한 대학의 전임강사(사회복지학과)로 일하고 있다. 가르치는 학생 가운데에는 베트남, 중국, 네팔 등에서 온 유학생들도 있다. 늦은 밤부터 새벽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고, 잠도 자지 않고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도 적지 않다. 결코 편안한 생활이 아니지만, 밝고 적극적인 학생이 많아 수업은 언제나 활기차다.


“인터넷으로 자기 나라 방송도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시대이다 보니, 그만큼 일본의 정보를 접할 기회가 줄어들고, 일본 사회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는 유학생도 많아요. (유학은) 흔치 않은 기회인만큼 그 학생들이 언어 이상의 무언가를 얻어서 돌아가길 바랍니다.”


‘낳자, 늘리자’하며 여성의 모성 활약을 부추기는 일본. <르포 빈곤여성> 책의 띠지에는 “마흔 목전, 비정규직, 싱글, 정신 차려보니 벼랑 끝”이라는 글자가 적혀있다.


“그게 뭐가 나쁜가! 라는 일종의 안티테제(Antithese, 반정립, 反定立) 같은 의미입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벼랑 끝’이라고들 하고 자기 책임을 추궁당하니 삶의 팍팍함은 더 커질 수밖에 없죠. 여성의 빈곤이 주목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녀들의 삶이 팍팍할 수밖에 없는 사회 구조, 그 자체에도 시선이 가면 좋겠습니다.”


‘빈곤’이라는 단어만으로는 포용할 수 없는 젊은 여성들 삶의 팍팍함을 비롯해, 소리가 되지 못하고 있는 목소리 하나하나를 주워 담고 싶다는 이지마 씨. 다음 작품도 기대가 된다.


※ <일다>와 제휴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의 페미니즘 언론 <페민>(women's democratic journal)에서 제공한 기사입니다. 우메야마 미치코 기자가 작성하고 고주영님이 번역하였습니다.  페미니스트저널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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