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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엇 페이지의 커밍아웃 다룬 언론보도의 문제점

트랜스젠더에 대한 오해와 편견 부추기는 기사들

 

2008년 영화 <주노>(Juno, 제이슨 라이트만 감독)로 아카데미상 후보에 올랐으며 이후에도 영화 <엑스맨> 시리즈, 넷플릭스 드라마 시리즈 <엄블렐러 아카데미> 등에 출연했고, 다큐멘터리 영화 <물속에 무언가 있다>를 연출하며 감독으로도 데뷔한 엘리엇 페이지가 “나는 트렌스젠더”라고 밝혔다.


엘리엇 페이지가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트랜스젠더 임을 커밍아웃하고 함께 트랜스 혐오에 맞서자는 메시지를 전했다. (출처: 엘리엇 페이지 인스타그램)


지난 2일 자신의 SNS를 통해 자신은 트렌스젠더이며, 앞으로 자신의 인칭대명사를 그(He)/그들(They)로 써 달라고 알리는 것과 동시에 엘리엇 페이지라는 이름도 공개했다.


엘리엇은 사람들에게 이 이야기를 전할 수 있어 더할 나위 없이 기쁘다고 하면서, 이렇게 자신의 여정을 공개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모두에게 주어지지 않는 행운이라는 걸 알고 있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자신을 찾은 여정이 기쁘지만, 트랜스젠더가 놓인 열악한 현실을 알려야 하는 슬픔과 두려움에 대해서도 고백했다.


트랜스젠더를 향한 혐오 범죄가 만연하며 2020년에만 적어도 40명의 트랜스젠더가 혐오 범죄로 죽임을 당했고 대부분이 비백인이라는 점을 언급하면서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 ‘농담’과 폭력이 무섭다고 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더 이상 그런 공격에 침묵하지 않겠다며, 침묵에 맞서는 일에 함께해달라고 덧붙였다.


자긍심과 두려움을 진솔하게 담아내면서 트랜스젠더 커뮤니티가 마주하고 있는 차별과 혐오 문제를 지적하며 함께 그에 맞서자고 제안하는 강력한 메시지가 담긴 커밍아웃이었다.


미국 사회에서 많은 반대 여론에도 불구하고 성범죄가 고발된 보수 성향의 판사 브렛 캐버너를 대법관으로 지명하고,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과격한 행보에 동조하며 인종차별 문제를 내버려두는 트럼프 정부가 지속적으로 ‘트랜스젠더 차별적인 정책’을 추진하며 ‘반(反)트랜스’적인 사회를 만들고 있기에 더 용기 있는 발언이기도 했다.


그런데 엘리엇 페이지의 이런 메시지가 한국엔 얼마나 전달되었을까? 엘리엇의 커밍아웃을 다룬 국내 언론은 트랜스젠더 관련 보도에 있어 문제점을 여실히 드러냈다.


‘성전환자’ 보다 트렌스젠더라는 표현이 더 적합


4일 기준 빅카인즈를 통한 검색 결과, ‘엘리엇 페이지’에 대한 뉴스는 총 50여건. 많은 보도에서 제목에 ‘성전환’이나 ‘남자가 됐다’ 등의 표현을 쓰는 걸 확인할 수 있다.


빅카인즈에서 ‘엘리엇 페이지’로 검색했을 때 나오는 기사들 중.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홀릭 대표는 “‘성전환’이나 ‘성전환자’의 경우,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한국에 들어왔을 때 그것의 번역어로 쓰였고 여전히 법률 용어에서도 쓰이고 있긴 하지만 현재 트랜스젠더의 정체성을 이야기하는 단어로는 쓰이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성전환자라는 말로 인해, 모든 트랜스젠더가 의료적 수술을 받는다는 오해가 발생하고 트랜스젠더에 대한 편견을 만들어 내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영어를 쓰는 서구권에서도 트랜스젠더라는 용어의 의미는 조금씩 변화되고 또 확장되고 있다. 책 <트랜스젠더의 역사>(제이·루인 옮김, 이매진)를 쓴 수잔 스트라이커는 트랜스젠더라는 단어가 사용된 지 오래되지 않은 탓에 “지금도 그 의미가 구성되고 있다”고 설명한다. 미국에서도 게이, 트랜스젠더, 드랙퀸의 용어가 혼재되어 사용되던 때가 있었고 트랜스젠더, 트랜스베스타잇(transvestite)의 의미가 잘 구분되지 않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엘리엇처럼, 트랜스젠더로서 자신의 이야기를 밝히고 나눈 많은 사람들 덕분에 지금은 조금 더 명료하게 의미가 정리되고 있다.


학교에서 성소수자 인권교육을 하거나 성소수자 학생을 대할 때의 가이드라인이 담긴 <[띵동, 샘]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인권교육을 위한 교사모임 샘, 청소년 성소수자 위기지원센터 띵동 제작, 2018)에서는 트랜스젠더(transgender)를 주로 신체적으로 드러나는 성별(염색체, 호르몬, 성기관 등)과 본인이 인식하는 성별(남성, 여성 혹은 다른 무엇)이 다르다고 느끼거나, 불일치하거나, 불편하다고 느끼는 사람이라고 설명한다.


수잔 스트라이커는 트랜스젠더를 “태어날 때 지정 받은 젠더를 떠나는 사람, 그 젠더를 규정하고 억제하기 위해 자기들의 문화가 구성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사람”이라고 설명하며, “트렌스젠더의 개념을 가장 잘 특징짓는 것은 특정한 목적지나 이행 방식이라기보다는 선택하지 않은 출발 지점에서 떨어져 나와 사회가 부여한 경계를 가로지르는 운동”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현재 트랜스젠더는 성별 이분법에 저항하며 ‘여성’과 ‘남성’이라는 경계를 흐트러뜨리는 젠더퀴어(genderqueer), 논바이너리(non-binary)를 포함하는 개념으로도 쓰이고 있다.


그러니까 엘리엇 페이지가 ‘나는 트랜스젠더이며 인칭대명사 그(He)/그들(They)를 쓴다’고 한 말은 ‘난 남자다’라는 선언도 아니고, ‘성전환을 하겠다’ 혹은 ‘성전환을 했다’는 의미도 아니다. ‘성전환수술을 했다’는 내용의 기사는 명백한 오보다.


트랜스젠더 관련 보도에서 하지 말아야 할 것들


커밍아웃과 관련한 보도를 하면서 용어의 의미조차 정확하게 확인하지 않은 채 기사를 쓴다는 건 무책임한 일이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다.


엘리엇의 이전 이름을 여전히 쓰거나 ‘그녀’ 혹은 ‘여배우였던’을 강조하는 기사, ‘발칵’, ‘충격’ 등의 단어를 배치함으로써 이 커밍아웃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씌우고자 한 기사도 있다. 심지어 “청순미 넘치는 여배우 ‘이제 전 남자예요’”라는 충격적인 제목도 발견할 수 있다. 또한 기사와 함께 나가는 사진을 굳이 원피스, 드레스 차림의 엘리엇으로 선정한 곳도 있다.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 중 (https://journalist.or.kr/news/section4.html?p_num=7)


국내에 별도의 트랜스젠더 관련 보도 가이드라인이 있는 건 아니지만, 한국기자협회 인권보도준칙에서도 성적소수자 인권을 언급하고 있다. 또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때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발표한 <성소수자에게 평등한 올림픽 보도 및 중계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 라인>도 있다. 앞서 언급한 <[띵동, 샘] 학교에서 무지개길 찾기>처럼 교육용으로 만들어진 자료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 LGBT 미디어 모니터링 단체인 GLAAD가 엘리엇의 커밍아웃을 축하하는 것과 동시에 제공한 트랜스젠더 관련 보도 관련 지침은 국내에서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 성별정체성(자신이 어떤 젠더인지)와 성적지향(어떤 젠더에 끌리는지)을 혼동해서 쓰지 말 것 

▷ 엘리엇을 (본인이 말한 대로)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로 표기할 것 

▷ 엘리엇의 이전 이름을 계속해서 쓰지 말 것 

▷ 엘리엇이 원한 인칭대명사를 사용하며 ‘그녀’(She)라고 표현하지 말 것 

▷ ‘여성으로 태어난’이라는 말을 쓰지 말 것 

▷ 개인의 트랜지션, 수술 여부 등 의료 정보와 관련된 이야기를 함부로 하지 말 것 

▷ 그동안 커밍아웃하지 못했던 것에 대해 그 사람이 거짓된 삶을 살았다거나 기만적이라고 표현하지 말 것 

▷ 트랜스젠더의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해 함부로 재단하거나 비판하지 말 것.


많은 사람들이 잘못 사용하고 있는 말 중에서 ‘여성으로 태어난’이라는 표현은 ‘태어났을 때 여성으로 지정 받은’이라고 서술하는 게 더 적절하다.


성별적합수술(SRS 수술)을 표현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성전환 수술’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바꿀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진 ‘전환’이라는 말이 내포하고 있는 문제(많은 성소수자가 ‘정상인’으로 되돌아 갈 수 있게 한다는 ‘전환치료’라는 이름의 인권침해를 당하고 있다)가 있는데다가, 트랜스젠더의 의미와도 맞지 않다는 점에서 지양해야 하는 말로 꼽힌다.


소수자를 다룰 땐 더 ‘예민한’ 언론이 되기를


앞으로 언론은 트랜스젠더 혹은 성소수자를 다룰 때 어떻게 해야 할까? 홀릭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는 “여전히 이성애 중심이며 시스젠더(cisgender. 트랜스젠더와 달리, 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는 젠더 정체성이 일치한다고 느끼는 사람) 중심인 한국 사회에서 개인이 자신의 성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은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쉽지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커밍아웃하기 힘든 사회에서 커밍아웃한 인물을 다루는 일은 더 세심해야 한다. 당사자의 정체성을 존중하고, 추측하거나 단정지어서 이야기하면 안 된다”고 했다.


트랜스젠더를 향한 차별과 혐오로 인해 여대에 입학하려고 했던 예비 대학생이 트랜스 여성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했고, 군인으로 계속 남고자 했던 트랜스 여성이 강제전역을 당한 2020년의 한국 사회를 생각한다면 말이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조각보의 준우 활동가는 커밍아웃 서사를 세심히 다루는 것에서 더 나아가 “커밍아웃한 누군가에게 정체성에 ‘걸맞는’ 진정성과 진짜임을 끊임없이 재단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태도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다”고 했다.


엘리엇의 서사를 더 혼란스럽게 할 것이 아니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이후 엘리엇(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하는 언론이 되어야 한다는 주문이다.


‘정상사회’의 억압 아래 그동안 제대로 된 언어를 가지지 못했던 소수자들의 말은 때때로 변하기도 하고 새로운 말이 탄생하기도 한다. 그걸 일일이 확인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일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언론이 책임 있게 다루지 않는다면, 엘리엇 페이지는 자신의 커밍아웃과 함께 더 이상 침묵하지 말고 트랜스 혐오에 맞서자는 메시지를 던진 사람이 아니라 ‘성전환으로 남성이 된’ 사람으로만 묘사되며 소비될지 모른다.


언어는 누구에게나 중요한 표현 방식이지만, 기존의 언어로 자신을 표현할 수 없고 자신의 생각을 전달할 수 없었던 사람들에겐 더 중요할 수밖에 없다. 더 많은 언론들이 더 예민하게 소수자들의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란다.  박주연 기자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한국계 미국 이주민 '성'의 트라우마, 가족, 중독 그리고 몸에 관한 기록 『남은 인생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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