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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생산의 정치] 연대의 정치가 필요하다

 

한국의 ‘낙태죄’ 폐지 운동은 연대를 통해 재생산권 운동의 패러다임을 전환하고, 재생산 정치를 확장한 사례이다. 사실 ‘낙태죄’를 폐지하고자 하는 운동은 여러 방향으로 펼쳐질 수 있다. 예컨대 장애나 질병이 있다고 진단된 태아를 출산하지 않을 권리를 주장하며 ‘낙태죄’ 폐지를 요구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반면 한국의 ‘낙태죄’가 장애인에 대한 차별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짚어내고, 임신중지를 죄로 규정하는 사회가 어떻게 장애인의 재생산권을 침해하는지를 규명하고자 한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이하 모낙폐)은 ‘낙태죄’ 폐지운동이 ‘모두’를 위한 행동이 될 수 있도록 애써온 연대 단위이다.

 

모낙폐 이전에도 ‘낙태죄’의 문제를 인식하고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은 물론 있었다. 2010년 결성된 ‘임신·출산결정권을위한네트워크’(이하 임출넷)도 ‘낙태죄’를 사회적 이슈로 제기한 연대체다. 여기에는 여성단체뿐 아니라 여러 시민사회단체, 노동조합, 진보정당 등이 참여했다. 임출넷이 만들어진 시기는 프로라이프 의사회가 임신중지 시술을 한 병원을 고발하면서 ‘처벌 정국’이 형성된 때이기도 하다. 임출넷은 여성이 임신중지를 원하는 여러 상황이 있음을 강조하며, 임신중지를 하는 당사자에 대한 처벌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임출넷의 활동에도 불구하고, 당시 ‘낙태죄’에 대한 논의는 대체로 모자보건법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도입해 합법적인 인공임신중절 시술을 받을 수 있는 허용 범위를 넓히자는 정도의 제안에 머물렀다. 이는 ‘낙태죄’의 존치를 인정할 뿐 아니라, 사회적 규범에 부합하는 특정한 사유에 한해 국가가 임신중지를 허용해줄 것을 요청하는 것에 머무르며, 다양한 위치성을 가진 당사자들의 다양한 경험을 담아내는 데까지 나아가지 못했다는 한계가 있다.

 

 
2017년 9월 28일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발족 퍼포먼스 및 기자회견 모습. 참가자들의 발언 내용은 다음 링크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https://stoprape.or.kr/702  ©한국성폭력상담소

 

그러나, 몇 년 후 상황은 달라졌다. 폴란드의 ‘검은 시위’를 비롯하여 세계적으로 임신중지 비범죄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불붙었고, 한국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나와 ‘낙태죄’ 완전 폐지를 외치면서 사회적 여론도 변화했다.

 

특히 2017년 발족한 모낙폐를 중심으로, ‘낙태죄’ 폐지 운동은 재생산 정치를 좀 더 급진적인 방향으로 확장시켰다. 그 힘은 무엇보다 함께 모인 이들의 이야기를 궁금해했다는 점에서 출발했을 것이다. 모낙폐 발족 기자회견에서는 장애여성, HIV 감염인, 논바이너리 트랜스젠더의 발언이 이어졌다. 그동안 익숙하게 접해왔던 경험담이 임신중지 이야기의 전부가 아님을 알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이의 말로 이어졌고, 각기 다른 말들은 붉은 끈으로 연결되었다.

 

다양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공통된 사건을 겪더라도 그 경험이 똑같지 않으리라는 건 당연한 일이다. 공통의 정체성을 공유하는 집단 안에서조차 각자는 다른 경험을 한다. 모낙폐가 펼쳐온 운동은 우리가 같은 ‘여성’이라거나, 우리가 임신중지를 겪었기 때문에 같은 고통을 갖고 있으리라 단정하지 않았다. 그랬기에 이 운동은 더욱 급진적이고 포괄적일 수 있었다. 100명의 사람에게서 100가지의 이야기가 나오기를 기다렸기에, 이 시기의 한국 ‘낙태죄’ 폐지 운동은 ‘내 몸은 나의 것’이라는 구호 이상의 정치를 가능하게 했다. 제각기 다른 이야기를 붉은 끈으로 잇고자 했던 ‘낙태죄’ 폐지 운동은 ‘재생산 정치’가 차별받는 이들을 잇는 하나의 이음줄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겠다. (김보영 :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 SHARE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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