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이경신의 [죽음연습] 6. 서양 철학자와 동양 승려가 전하는 지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문학사상사, 1996)를 읽다 보면 이런 구절이 나온다. “찬장 속에는 과연 질레트 레몬 라임 향 면도용 크림과 쉬크 면도기가 들어있었다. 면도용 크림은 절반 정도 남아 있었고, 뚜껑 부근에 하얀 거품이 바싹 말라붙어 있었다. 죽음이란 그렇게 면도용 크림 절반 정도를 남기고 가는 것이다.” 그렇다. 이 소설 속의 도서관 직원 남편처럼 자신이 평소에 사용하던 물건을 쓰다 말고 남겨둔 채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우리가 맞게 될 죽음이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생전에 어머니가 듣던 가요 카세트테이프들이 떠올랐다. 상자에서 오래된 가요테이프를 하나 꺼내서 틀어보았다. ..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8)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편집자 주] 약국이나 병원에서 치유할 수 없는 고통들 암으로 죽어가고 있는 나의 의붓할머니는 네 딸을 남겨두고 세상을 떠난 남편 때문에 얻은 화병을 제대로 치유해본 적이 한 번도 없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그간 방치해두었던 할머니의 트라우마가 암으로 자란 거라고 믿고 있다. 고통에 빠진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들려온다. 암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자기 인생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 자살을 시도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