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발: 덧씌우거나 제거된 정체성의 기록 어떤 말에는 주술적 기운이 깃들어 있다. 사실보다 바람의 효용이 센 병실에서 오고가는 말들이 주로 그랬다. J언니의 수술실 밖에서, 치료차 입원한 병실에서, 어둡고 습했던 그의 지층 집에서 내가 한 거의 모든 말에도. 다른 누가 아닌, 말하는 자신이 듣고 믿고 싶은 말들. 그런 말들은 꼭 두 번씩 발화된다. 괜찮을 거야. 괜찮을 거야. 검사 결과를 전하는 J언니의 목소리가 너무 덤덤해서 내가 뭘 잘못 들은 게 아닐까 의심하면서도 나는 그렇게 두 번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걱정 좀 덜하고 살 걸…” 언니의 그 말에도 주술적 기원이 실리지 않았을까. 몽땅 다 거짓말이어서 앞으로 걱정 덜하고 살게 해주세요, 해주세요, 하는. 몇 번의 경험을 지나온 지금에야 무거운 ..
단추: 불안한 삶을 잇고 여미는 방식 ▶ 열두 가지 재밌는 집 이야기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네가 좋은 집에 살면 좋겠어 제 삶을 따뜻하고 꿋꿋하게 살아가는 여성 열두 명이 밀도 있게 들려주는 주거생애사이자, 물려받은 자산 없이는 나다움을 지키면서 살아갈 곳을 찾기 어려워 고개를 떨구는 독자들에게 조심스 www.aladin.co.kr 마을 입구에서 우리는 길을 잃었다. 긴 오르막길 끝에 겨우 평지를 만나 숨을 돌리나 했더니 부채꼴 모양으로 펼쳐진 집과 길과 계단이 산처럼 우뚝 앞을 막아섰다. 몇 개의 마을이 부챗살을 나누어 가지며 잇닿아 있는 풍경이었다. 여기가 마을들의 공동 입구는 맞는 것 같은데, 우리가 가려는 마을이 어느 쪽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 입구라고는 해도 시멘트벽에 우둘투둘 마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