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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특별기획] 내성천 트러스트 ‘우리가 강이 되어주자’ (4)
[우리나라 자연하천의 전형으로 평가받고 있는 내성천을 대상으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을 통한 습지 복원사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내성천 트러스트’는 내성천 주변 본래 강의 땅이었던 사유지를 확보하여 다시 강의 품으로 되돌려주기 위한 내셔널트러스트운동으로, 시민 한 사람이 1평씩의 땅을 사기 위한 금액을 기부하는 것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일다>는 내성천트러스트의 취지에 깊이 공감하며 내성천을 지키기 위한 특별기획을 진행합니다. 네 번째 글은 내성천 순례를 다녀온 여성노동자글쓰기모임의 김명희님이 보내주셨습니다.-편집자 주]
강물에 몸을 맡기고 걸어 본 적 있나요?
여름 방학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을 때 아주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시간 있으면 함께 여행 가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여행가는 일은 얼마나 설레고 기분 좋은 일인가, 나는 당장 함께 가겠다고 했다. 이틀 먹을 쌀과 간식거리 옥수수를 삶아 가방에 짊어지고 일행을 만나러 가는 날까지 줄곧 들뜬 마음이었다.
여성노동자 글쓰기 회원과 가족 합해서 10명이 함께 찾아간 곳은 경북 영주시 이산면. 봉화에서 발원해 낙동강으로 흘러든다는 내성천 물줄기를 따라 걷기로 했다.
촬영: 김명희
촬영: 신진희
흐르는 모래가 깨끗한 물을 만들고
이산서원 앞 정자에서 오늘 길잡이를 해주실 지율 스님을 만났다. 수박과 순흥 떡집 인절미로 요기를 한 다음 내성천으로 들어섰다. 시원하다. 강바닥은 순전히 모래바탕이다. 접어 올린 바지가 젖을까 걱정했는데 깊은 곳도 허벅지를 넘지는 않았다.
가만히 물을 바라보고 있으면 물색과 여울로 깊이를 가늠할 수 있다. 물살이 편안하고 조용히 흐르는 곳을 골라 디디며 물줄기를 따라 내려간다. 흐르는 물에 되비치는 여름햇살이 눈부시다.
언제 강물을 따라 걸은 적이 있던가? 물살에 몸을 맡긴 적이 있던가? 강물을 온전히 내 몸으로 느낀다. 발 딛고 선 그 강물은 차를 타고 휙 스쳐 지나가는 길에서 보았거나 강 옆으로 난 길을 따라 걸어가면서 구경했던 강이 아니다. 그 물이 아니다. 강물이 내 다리를 핥고 지나간다. 가만히 서 있으면 발밑에서 모래가 허물어지면서 발바닥을 간질인다.
흘러가는 모래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구멍이 있어 미생물이 살며 유기물을 분해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내성천 물은 참 깨끗하다. 깨끗한 물을 먹으려면 자연스럽게 흐르는 강을 그냥 두면 되는 것이다. 목숨 붙어있는 것 치고 깨끗한 물을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생명이 있을까?
강가 모래톱에는 새 발자국이 있고, 졸졸 흐르는 작은 물줄기가 차갑게 느껴지는 곳도 있다. 지하수가 올라오는 곳이라고 한다. 스님은 모래를 퍼내 작은 옹달샘을 만들고 맑은 물이 차올랐을 때 손으로 물을 떠 목을 축였다. 마른 것처럼 보이는 모래톱에도 물이 잠자고 있다. 어마어마한 물탱크인 셈이다. 예전에는 다 이렇게 흐르는 강물을 떠먹고 살았을 것이다.
물가에 버드나무들이 푸르다. 나무그늘은 한낮 뜨거운 햇살에 그늘을 드리워 물고기를 쉬게 하고 흙을 그러안은 촘촘한 뿌리들은 장마에 불어 허물어지려는 강둑을 지켜주었다고 한다.
여남은 살 되었을 때던가? 천둥번개와 함께 비가 세차게 퍼붓던 여름날 저녁, 아버지가 지게에 멍석을 짊어지고 논으로 달려가셨다. 논둑이 터질까봐 걱정이 되어서 그런 것이다. 나는 그런 밤이면 아버지가 집으로 오실 때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여기 아름드리 버드나무들도 천둥 번개가 치는 수많은 여름 밤, 물이 넘실거리는 둑을 잘 지탱해 주었겠지.
두월교 밑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만났다. 등을 대고 누워 떠내려갔다가 돌아오곤 한다. 어른들은 그물을 던져 물고기를 잡는다. 모래를 옴푹 파고 만든 샘에 잡은 고기를 넣어 놓았다. 모래무지가 제법 커다랗다. 고향에 놀러왔다는 남자 어른 몇몇이 강둑에서 화덕에 양은솥을 걸고 불을 땐다. 고향에 오려고 기다리던 밤들은 얼마나 가슴 설레었을까? 지치고 힘들 때 이렇게 돌아올 고향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다행인가. 솥 안에 끓고 있는 그이들의 행복이 부럽다.
한 마을이 사라지면
▲ 버드나무 군락이 아름다운 구담습지. 4대강 사업으로 훼손되어 볼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지율
두월교에서 내성천 옆길로 올라섰다. 우리가 걸어온 물길이 굽이굽이 흘러가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금강마을로 갔다. 400여년 역사를 간직한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회관 앞에 분꽃과 봉숭아꽃이 화사하게 피었다. 밭에는 참깨 꼬투리가 한창 여물고 있다. 이 마을은 내성천 허리를 가로지르는 영주댐이 들어서면 물에 잠겨 올해까지 농사를 짓고 모두 떠나야 한다고 한다. 한 마을이 사라지면 그 마을의 역사와 함께 그 마을 사람들이 일궈온 문화와 거기 깃들여 살던 온갖 목숨들도 물에 잠겨 사라지고 말 것이다.
마을회관에 나왔던 어르신이 시원한 얼음물을 내 주셔서 나누어 마셨다. 조상대대로 살던 집, 논과 밭을 등지고 이 어르신들은 어디로 가야 할까? 외지에 살다가도 나이가 들면 고향을 찾거늘, 평생 이 땅에서 농사지어 사람들의 밥상을 차려주느라 애쓴 이 나이든 어르신들을 내모는 건 누구인가.
금강마을을 지나 흐르던 내성천은 영주댐 공사장에서 물길을 돌린다. 공사장을 둘러보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모래, 살점이 떨어져 나간 것처럼 허옇게 속살을 드러낸 산자락아래 시멘트로 만든 댐이 보인다. 영주댐은 2014년 말 완공할 계획이었는데 공사 기간을 앞당겨 2012년에 공사를 끝낼 거라고 한다.
이 댐이 완공되어 물이 들어차면 마을을 이루어 살던 500여 세대의 집이 물에 잠기고 흐르는 물을 따라 구르던 모래는 물속에 가라앉아 버릴 것이다. 흐름이 멈춘 모래벌이 목말라 허덕이면 거기 깃들여 살던 수달은 어떻게 될까, 물 마시러 오던 고라니도 발길을 돌리겠지.
댐을 허무는 나라가 늘어간다는데 이 아름다운 모래 강에 우리는 누구를 위해 댐을 쌓는가?
우리 아이들이 맑은 강과 함께 자랄 수 있기를
함께 간 5살 해밀이는 강물을 무서워하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모래성을 쌓고 우렁 껍질을 주워서 논다. 문득 큰아이 어렸을 때 일이 생각난다. 일 다니느라 아이를 돌볼 수 없어 논산 친정아버지에게 아이를 맡겼다. 다섯 살 되던 해 어린이집에 보낸다고 서울로 데려갔는데 아버지가 이르기를 "인해는 모래를 좋아해. 늘 모래를 가지고 놀았어. 베란다에서라도 모래를 좀 가지고 놀게 해 줬으면 좋겠구나. 애들이 노는 데는 모래가 있어야 돼." 하셨다.
맑은 강물에 미역을 감으며 자란 아이들, 모래무지 비늘의 미끈거리는 느낌을 간직한 아이들, 강가 버드나무 그늘에서 땀을 식히고 매미 울음소리를 들은 아이들, 그 맑은 강물을 먹으며 자란 아이들은 세상을 살아가며 어렵고 힘든 일이 닥쳐왔을 때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리고 따뜻한 마음을 잃지 않고 세상에 온기를 불어 넣어 줄 것이다.
우리 아이들, 그 아이들의 아이들까지 내성천 물줄기를 따라 걸으며 이 강물에 몸을 맡길 수 있기를 바란다. 모래를 밟으며 걷다가 힘이 들면 커다란 그늘을 드리운 버드나무 밑에서 시원한 수박을 잘라 먹고, 낮잠도 한 숨 잘 수 있기를, 강가에 핀 박주가리 꽃과 여우콩 꽃에게서 힘을 얻기를 바란다. 오늘 내가 그러했듯이.
회룡포로 갔다. 모래톱이 마을을 둘러싸고 넓게 펼쳐져 있다. 몇 해 전 이곳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으로 ‘지정되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도 댐을 쌓아 물길을 막다니. 낮은 다리를 건넌다. 강둑에 올라서니 배롱나무가 한창 꽃을 피웠다. 제비나비가 부산스레 날고 물잠자리도 짝을 찾는지 바삐 날아다닌다. 저만치 아래서는 왜가리가 목을 빼고 서 있다. 모두 강의 식구들이다.
회룡포에서 강물과 헤어졌다. 영주 예천을 지날 때까지 강물이, 강물 따라 흐르던 모래알이, 강가의 버드나무가, 물끄러미 서 있던 백로와 배롱나무와 박주가리 꽃이 나를 따라온다.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앞으로도 줄곧 따라다닐 것 같다. (김명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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