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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www.ildaro.com 논평: 10대들의 대학입시 거부선언
▲ 201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있던 11월 10일 청계광장. '대학입시거부선언'이 진행되었다. ©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모임
11월 10일 2012학년 대학수학능력시험 날. 보통 같으면 시험을 볼 나이의 십대 열여덟 명이 “대학입시거부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그저 대학을 안 가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학입시” 자체를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이들과 함께 올해 10월, 대학 간의 서열 체제와 입시 위주의 경쟁교육을 비판하며 서울대학을 자퇴한 공현 씨를 필두로 서른 명의 20대들이 ‘대학거부’ 선언에 동참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고 강고한 ‘학력주의’를 생각해본다면, 이 선언은 놀라운 사건이다.
“10분 더 공부하면 마누라가 바뀐다.” “삼십 분 더 공부하면 내 남편의 직업이 바뀐다.” “대학 가서 미팅할래, 공장가서 미싱할래?”
교실에 붙여진 이 황당한 급훈들은 학력 중심으로 짜여진 우리 사회의 면모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세상에는 한 줄로 나열된 ‘수준’이라는 것이 있고, 한 사람의 삶의 ‘수준’이 어느 대학을 가느냐로 결정된다. ‘수준’에 미달된 이들에 대해서는 사회적 무시와 차별이 뒤따른다.
그러니 보다 높은 ‘수준’에 위치하기 위한 경쟁은 갈수록 살벌해진다. 경쟁에서 튕겨져나간 이들이 재진입하는 것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만큼 어렵다. 애초에 경쟁에 편입될 기회조차 박탈당한 사회적 소수자들은 투명인간처럼 취급당한다.
대학졸업자와 중·고교졸업자의 임금 격차가 50대에 이르면 월 230만원까지 벌어진다는 사실은 고용노동부의 통계 자료를 살피지 않더라도 우리 이미 다 알고 있는 일이다.
입시철이면 연례행사처럼 만나는 수험생의 자살 소식, 해마다 증가하는 십대들의 자살률이 학력 차별의 폐해를 호소하는 가장 절절한 증거일 것이다.
그렇기에 ‘대학입시 거부’ 선언은 “획일적인 경쟁에서 밀려난 누군가는 불행해져야만 하고, 그래서 모두가 불안과 불행을 안고 살아야만 하는 이 사회”를 더 이상 그대로 놔둘 수는 없지 않겠냐는 통렬한 외침이다.
▲ 광주지역 대학입시거부자 이나래 씨가 수능시험일, 광주광역시교육청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다. © 대학입시거부로 세상을 바꾸는 투명가방끈 모임.
어떤 이들은 대학입시/대학거부 선언에 대해 ‘경쟁이 두렵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이 약하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학과 입시를 거부한 이들이 말하는 것은 “점점 가혹하게 자신을 채찍질해도 우리의 삶의 조건은 나아지지 않는다”는 경쟁적인 현실에 대한 근본적 깨달음이다. 이들의 선언은 “더 이상 불안하고 불행한 삶을 살지 않겠다”는 ‘행복선언’인 것이다.
대입/대학 거부 선언을 통해 이들이 말하고자 하는 건 학력 차별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또 다른 한 축은 진짜 배움의 기쁨을 되찾고 싶다는 열망이다.
대학입시/대학거부자들은 선언문을 통해 분명히 말한다. “우리는 대학을 거부한 것이지 배움을 포기한 것은 아닙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배우고, 서로를 도우며 즐겁게 공부하고 성장하는 것. 대학을 포함해 다양한 삶의 길을 선택할 수 있고, 대학 밖에서도 배움의 길을 찾는 것. 이러한 열망이야말로 교육이 가장 순수하게 목표로 해야 하는 상태가 아닐까.
‘일단 그래도 대학은 가고 보라’는 말 앞에, ‘더 이상 교육에 사회에 문제가 있다고 혀만 차지 말고, 지금부터 같이 바꿔나가야 한다’고 외친 이들의 용기에 박수를 보낸다. 경쟁에서 진 사람을 돌아보는 마음, 다른 사람들이 가지 않은 길을 향해 가는 이들의 마음이 어찌 ‘약한 마음’이라 할 수 있을까.
‘대학거부자’들이 선언문을 통해 지적하고 있는 대로, 대학 진학률이 80%가 훌쩍 넘는 고학력 사회에서, 대학을 다니지 않는 20대가 겪게 되는 차별은 너무나 많다.
“아르바이트 하나를 구하려고 해도 학력을 묻고, 주변의 사람들은 출신 대학과 학번을 따져 묻습니다. 남자라면 대학을 이유로 군대를 좀 미뤄보거나 고민해볼 새도 없이 열아홉, 스무 살에 바로 군대에 끌려가야 하는 처지에 놓이기도 합니다.”
이들은 더 어려운 싸움을 택했다. 이제 기성세대들이 이들의 선언에 화답할 차례다. ‘너희들이 얼마나 하나 보자’ 하는 시선을 거두고, ‘그래도 대학은 가야 할 텐데’ 라는 걱정도 버리자. 그보다는 ‘세상엔 실패란 없다. 도전과 배움만이 있을 뿐이다’라 말하며 젊은 세대에게 용기를 주는 것은 어떨까. www.ildaro.com
※ [일다 논평]을 함께 만드는 사람들 - 박희정(편집장) 조이여울(기자) 정안나(편집위원) 서영미(독자위원) 박김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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