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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자야, 귀촌을 이야기하다 
 
겨울 해는 짧다. 오후 서너 시가 지나면 햇살이 도마뱀 꼬리처럼 뭉텅뭉텅 잘려나간다. 그에 따라 마당에 그늘이 번져가고, 그 순서와 속도에 맞추어 사물들이 식어가는 것을 관찰하는 일은 늘 흥미롭다.
 
마지막까지 해가 비치는 곳에 빨랫줄을 걸어놓은 것은, 아마도 이 집을 손수 짓고 삼십 년 넘게 살다 간 전 주인의 솜씨이자 지혜이리라. 그에 감탄하며, 나는 아직 해가 남아 있는 동안 빨래를 걷거나 건조대 위에 놓인 귤껍질 따위를 안으로 들인다. 바싹 마른 것들이 풍기는 냄새는 왠지 모르게 비슷하다. 아궁이에서 타 들어가는 나무 향처럼, 맵싸하면서도 은은하게 달콤하다.
 
구들방 두 개, 뭘 더 바래?
 
잠시든 오래든, 시골집에 머물려는 사람 중 온돌방에 환상을 갖지 않는 이가 과연 있을까. 더욱이 계절이 겨울이라면, 누구라도 뜨끈뜨끈한 아랫목에 배를 깔고 엎드려 군고구마 먹는 상상을 하게 되지 않을까.
 
내가 처음 이 집을 보러 온 건 6월이었지만, 나 또한 그런 환상과 상상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그리하여 대문을 열어젖혔을 때 정면으로 아궁이가 보이는 것에 속으로 박수를 치며 환호했다. 시골집들이 많이 개조되어 요즘은 아궁이 없는 곳도 적지 않다기에 혹시나 했었는데. 본채와 떨어진 대문 옆 사랑방까지 치면 아궁이 불을 피울 수 있는 방이 두 개나 되니 오죽 좋았겠는가.
 
이사하고 나서 며칠인가 지났을 때, 나와 K는 두 개의 아궁이가 정말 제 역할을 다하는지 궁금하여 불을 한 번 때 보기로 했다. 우리는 먼저 읍에 나가 큼지막한 양은솥을 하나 사서 본채 아궁이 위에 걸었다. 마침 아는 분이 갓 수확한 옥수수를 꽤 많이 보내주신 것은, 우연치고는 타이밍이 좋았다.
 
내가 옥수수를 손질하여 솥에 넣고 물을 붓는 사이, K는 헛간을 뒤져 남아 있던 장작 몇 토막을 아궁이에 넣고 신문지를 불쏘시개 삼아 불을 붙였다. 하필 때가 장마철이라 대기가 눅눅했지만, 그래도 한 번 불길이 잡히고 나니 아궁이 안이 금세 환해졌다. 그때 삭정이가 화드득 하고 타들어 가는 소리는 얼마나 감칠맛이 났던가. 또 매캐한 연기와 함께 온 마당에 퍼져가는 냄새는 얼마나 구수하고 향긋했던가.
 
마침내 물이 끓기 시작하고, 그에 따라 뚜껑이 달그락거리며 쉭쉭 하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물방울들이 바깥으로 튀어 오르는 것을, 나는 경이로운 시선으로 오래도록 지켜보았다. 꽤 여러 달 불을 안 피운 탓인지 방은 아주 약하게 미지근해지는 정도로 그쳤으나, 어찌됐건 옥수수는 노랗게 잘 익었고 무엇보다 구들이 잘 보존돼 있다는 것에 우리 둘은 대만족이었다.
 
반면 사랑방 구들은 상태가 안 좋았는지, 돌출부 없이 벽 하단에 덩그마니 뚫려 있는 작은 아궁이에 불을 때기가 무섭게 방바닥이 주저앉고 말았다. 다행히 우리는 동네 분의 도움을 받아 돌을 새로 괴고 그 위를 시멘트로 덮는 공사를 무사히 치렀다. 내친 김에 도배까지 새로 하니, 방이 비록 좁기는 해도 두세 명의 손님을 재우기에 손색없을 만큼 그럴싸해졌다.
 
그런데 당장 묵을 손님이 없어서였을까. 아니면 전에 살던 사람이 심어놓은 고추가 너무 많아서였을까. 여름이 가고 가을이 오도록 그 사랑방을 차지한 것은 사람이 아닌 붉은 고추들이었다. 비가 오거나 습한 날에 고추를 말릴 장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해 빻은 고춧가루를 지금껏 먹고 있는 걸 보면, 그때 뜨끈한 방구들을 제공한 대가가 이보다 더 쏠쏠할 수 있을까 싶다.
 
그해 겨울은 특별했네
 

▲ 전기톱은 안 쓰고 죽은 나무만 주워 온다는 원칙 아래 동네 산에서 구해 온 땔감들.     ©자야 
 

 
찬바람이 불고 아침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면서, 우리는 본격적으로 땔나무를 구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당시엔 이 세상에서 우리 집이 제일 가난하고 추워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어느 마을, 어느 집을 둘러봐도 헛간이나 처마 밑에 장작을 산더미처럼 쌓아놓지 않은 곳을 찾기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러고도 또 어디선가 전기톱으로 둥치 굵은 나무들을 한 짐씩 해오는 걸 볼 때, 부러운 마음이 전혀 없었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여기저기서 윙윙대는 전기톱 소리를 듣노라면 귀가 아픈 것은 물론이고 그 날카로운 이빨들이 마음에 박히는 듯 사뭇 쓰라렸기에, 우리는 전기톱은 쓰지 말자고 합의를 봤다. 그리고 살아 있는 나무는, 그게 아무리 병들고 허약해 보여도 건드리지 않기로 했다.
 
내 오래된 노트에 기록된 내용이 정확하다면, 나와 K가 처음으로 땔감을 구하러 나간 것은 2009년 11월 10일이다. 저수지로 향하는 길 오른편에 낮은 산들이 이어져 있으니 거기서 죽은 나무들을 주워 올 요량이었다. 산책 삼아 늘 다니는 길인데도 두어 개의 톱과 삽과 목장갑 따위를 챙겨 담은 손수레를 밀고 가니 기분이 남다른 게, 뭐랄까. 무슨 큰일을 치르러 가는 느낌이었다고 할까.
 
그날 나는 주로 산 아래서 밑불로 쓸 솔잎과 나뭇가지를 주워 자루에 담고, K는 나보다 훨씬 높은 곳까지 올라가 조금 큰 나무들을 구해 톱으로 손질한 다음 수레에 실었다. 한 시간가량 일했을 뿐인데도 수레와 자루는 거짓말처럼 가득 찼고, 그에 한껏 고무된 우리는 마치 만선의 기쁨에 취한 선원들처럼 발걸음도 위풍당당하게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동네 분들 눈에는 둘이 낑낑대며 작은 손수레로 나무를 해다 나르는 게 무슨 애들 장난처럼 딱하고 한심해 보였는지, 수레가 좀 헐거운 것 같으면 "하이고, 그거 해다 어따 쓰게?" 하는 지청구가 여지없이 날아왔다. 반대로 바퀴가 눌릴 만큼 큼직한 나무들을 여러 개 싣고 오는 날엔 그분들도 안심이 되는지, "아따, 우리 동네 나무꾼 나셨네!"와 같은 신명나는 추임새를 넣어 주셨다.
 
그 해 겨울, 우리는(특히 K) 대체 몇 번이나 수레를 끌고 나간 것일까. 볕이 좋으면 나무하기 좋다고 나가고, 고드름이 얼고 칼바람이 불면 나무가 더 필요해서 나가고. 그렇게 부지런을 떨었어도 일주일 해서 일주일 버티는 식이라, 절절 끓는 방에서 몸을 지지는 화끈한 체험은 하지 못했다.
 
그러나 쉽게 달아오르지만 오래 있으면 피가 마르고 탁해지는 느낌이 드는 보통의 난방기구와 달리, 뼛속까지 은근하게 천천히 덥히는 구들방에서 난생 처음 겨울을 나고 있다는 특별한 사실만으로도 나는 행복했다. 나보다 백 배, 아니 이백 배 정도는 일을 더 많이 한 K는 좀 피곤하고 성가셨을지 몰라도 말이다.
 
밑불 위에 마른 놈, 그 옆에 젖은 놈
      
겨울 즐거움은 뭐니 뭐니 해도 이로리에 불을 피우는 일이라고, 야마오 산세이 님은 말했다. 이로리란 방바닥 일부를 네모나게 잘라내 그 안에 재를 깔아 불을 피우는 장치(야마오 산세이 산문 『어제를 향해 걷다』 중 인용)라고 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화덕 같은 게 아닐까 싶다.
 
이로리의 불을 보며 '지금 여기'에서 타오르는 석기 시대의 불을 연상하고, 나아가 그 시대의 단순 소박한 삶의 가치에 대해 성찰하는 그분과는 물론 차원이 다르지만, 나 역시 아궁이에 불 피우는 것을 겨울 즐거움 중에 하나로 꼽기에 주저하지 않는다.
 
해 기울 무렵, 그러니까 오후 다섯 시에서 여섯 시 사이. 두꺼운 파카를 입고 나가서 맨 먼저 하는 일은 아궁이 속에 긴 부삽을 집어넣어 전날 밤에 쌓인 재를 긁어내는 것이다. 그러고는 헛간으로 가서 잘 마른 나뭇가지들을 한 무더기 주워 온다. 아궁이 바닥에 이것들을 깔지 않으면 제아무리 큰 장작을 넣는다 한들 쉽게 불이 붙지 않아 낭패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 밑불이 실해야 크고 단단한 장작에 불이 붙고 마른 놈 곁에 있어야 젖은 놈도 타오른다는 것을, 아궁이 앞에서 되새겨본다. 

 
말하자면 이런 잔가지들이 밑불의 역할을 하는 셈인데, 그에 힘입어 마침내 크고 단단한 장작에 불이 붙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보면 오래 전에 읽은 백무산 님의 시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먼저 불이 붙은 토막은 불씨가 되고, 빨리 붙은 장작은 밑불이 되고, 늦게 붙은 놈은 마른 놈 곁에, 젖은 놈은 나중에 던져져 활활 타는 장작불(…)"이라고 써 내려간 「장작불」이란 시가 그것이다.
 
아궁이 안에서 어떻게 하나의 세계가 형성되는지, 이보다 더 생생하고 정확하게 보여주는 시가 또 있을까. 시인은 인간사회와 그 변화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장작불을 끌어들인 것이겠으나, 어쨌든 그가 노동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면 이런 글은 나오지 않았을 게 분명하다.
 
그 시에 곡조를 붙여 만든 노래를 흥얼거리며, 나 또한 밑불이 강해지길 기다렸다가 먼저 마른 놈을 던져놓고 젖은 놈은 나중에, 그리고 늦게 불붙은 놈은 다시 마른 놈 곁으로 옮겨놓길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아궁이 전체로 불길이 번지기 시작하면, 일은 거의 끝난 거나 마찬가지다.
 
혹시 불길이 약해진다면 가끔 나무들 사이에 부지깽이를 찔러 넣어 살짝 틈을 만들어 주면 된다. 이는 나무 사이에 산소를 공급해 다시 불이 힘차게 살아나도록 돕는다. 그러고 보면 아궁이 속을 나무들로 꽉 채운다고 불이 잘 붙고 오래가는 것은 결코 아님을 알 수 있다. 사이(틈)가 있어야 사이(관계)도 좋아진다는데, 이 역시 자연이나 인간에게 똑같이 적용되는 보편적인 법칙인 걸까.
 
이 계절엔 가까운 불이 좋아
 
쪼그려 앉은 내 무릎이 뜨거워지고 열기가 볼에까지 미쳐 발그스레해질 즈음. 궁둥이는 뒤로 빼고 고개는 외로 꼰 채 아궁이를 들여다보느라 굳어진 몸을 일으켜 기지개를 편다. 이때 하늘을 보면 어느 날은 별 무리가 총총히 빛나고, 어느 날은 푸르스름한 달님만 홀로 외롭다. 또 어느 날은 땅에 내려앉은 어둠보다 더 짙은 어둠이 머리 위에서 강물처럼 일렁인다.
 
어떤 경우든 좋다. 별이야 빛나건 말건, 달님이야 외롭건 말건, 어둠의 강이야 소용돌이치건 말건 우리 집 아궁이 불은 저리도 반짝반짝 타오르고 있으니. 너무 이기적인 생각일지는 몰라도 사실이 그렇다. 하늘의 일은 내가 어찌할 수 없지만, 내 방 아궁이를 빛내는 일은 내 책임이지 않은가.
 
더군다나 겨울은 그런 계절이다. 멀리 있는 별과 달보다는 가까운 불이 위로가 되는. 무심한 내가 아궁이 앞에만 있으면 가깝다가 소원해진 이들, 혹은 여전히 가까우나 뭔가 관계가 예전 같지 않은 이들이 유독 생각나는 이유도 아마 그 때문이리라. 정 마음에 걸리면 그들을 불러다 뜨끈한 구들방에 몇 밤 푹 재우면 되지 않느냐고? 뭐, 그럴 수도 있겠다. 와서 나무를 좀 해준다면야 얼마든지. 큭큭.   

자야 / 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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