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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페 버스정류장] 연재를 시작하며 
 
경북 상주군 함창읍 함창버스터미널 맞은편에 있는 “카페 버스정류장” 이야기가 <일다>에 연재됩니다.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이 까페의 문을 연 박계해 선생님은 “학교를 떠나 산골로 들어간 한 여자의 귀촌일기” <빈집에 깃들다>의 저자입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 

▲ 다양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머무는 <까페 버스정류장>의 주인 박계해 선생님. © 일다

운명이었다. 버스차창 밖으로 스쳐 지나간 이 집에 반해버린 것, 창에 붙어있는 ‘세놓음’이라는 글자에 이끌려 목적지도 아닌 낯선 동네에 내린 것, 집안을 구경하며 가슴이 두근거리기 시작한 것, 주인을 만나 계약을 하기까지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은.
 
무려 6년 동안 세가 나가지 않은 애물단지여서 집 안팎이 곰팡이와 먼지로 뒤덮이긴 했어도, 재미있고 독특한 구조를 가진 집이었다. 여기 저기 둘러보는 동안 머릿속으로 카페가 차려지고 있었다. 바닥이 아예 보이지 않을 만큼 때가 찌든 이층 마룻바닥은 샌드페이퍼로 문지르고, 창틀과 계단은 초콜릿 색 페인트를 칠해야지, 이불장은 미닫이문을 빼내고 두 사람이 들어가는 밀실로 만들면 재밌겠다....... 

사실, 이 집을 만나기 서너 달 전부터 나는, 벼랑 끝에 선 듯 서늘한 심정으로 눈을 뜨곤 했다. 기어이 아침은 오고야 말았구나, 하고, 죽음을 앞둔 줄리엣의 대사를 읊조리면서. ‘단순 노동, 00명 구함’이라고 쓰인 전단지의 전화번호를 저장하거나, 벼룩시장의 구인구직란을 샅샅이 훑어보기도 하고, 취업정보 사이트를 검색해 보느라 날밤을 새기도 했다. 그래서 얻은 소득이라면 이제는 나이제한에 걸려 일자리를 얻기도 어렵다는 사실뿐이었다.
 
그럼에도 남들의 눈에 비친 나는, 세상에 걱정이라곤 없는 낙천주의자였다. 나는 지금 거지니까 누구든 나 만나려면 밥값이 있어야 돼, 라고 낄낄대며 팔랑거리고 다녔으니까. 그러나 사실은 ‘뭘 해서 먹고 살지?’ 하는 생각으로 가득할 때 이 집을 만난 것이다.
 
함창 버스정류장에 내려 오른쪽으로 고개만 돌리면 보이는 위치여서 카페 이름을 버스정류장으로 하겠다'고 했을 때 딸 나라가, "엄마, 그럼 카페 간판도 버스정류장처럼 동그란 입간판으로 하지?" 하며 연습장에 버스정류장 간판을 쓱쓱 그려보였다. 멋진 생각이었다.
 
우리는 버스정류장의 이미지에서 연상되는 것들을 적어보았다. 기다림, 그리움, 사랑, 만남, 이별, 재회, 쓸쓸함, 여행, 뒷모습, 추억, 연인, 가족, 도착, 출발, 아쉬움, 안타까움, 차를 놓치다, 숨 가쁨, 반가움, 약속, 가락국수, 자판기커피, 정류장다방, 연착, 첫차, 막차, 차표, 잃어버린 가방, 포옹, 빠이빠이....... 그리고 저마다 자신만의 경험에서 떠오르는 단어나 문장이 있으리라. 그런 의미에서 나는 ‘열한 살’이라고 적었다.
 
그 때 국민학교 4학년이던 나는 막 싹트기 시작한 어떤 감정의 정체를 알지도 못한 채 인근 도시로 전학을 가야했다. 내가 탄 버스가 시동을 거는데 차창 밖으로 숨이 차게 달려오는 그가 보였다. 버스는 그를 잠시 기다려 주었고 차창 밖에서 그는 하얗게 질린 얼굴로 나를 바라보며 뭐라고 입술을 달싹였다. 나는 창문을 열었고 그는 포장도 하지 않은 노트 한 권을 건넸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무너져 내리던 그의 눈동자는 영원히 잊을 수 없는 하나의 영상으로 남았다. 노트는 초록빛 바탕에 드레스를 입은 서양인형이 그려져 있는 예쁜 일기장이었다. 뒤표지에는 ‘밤 아홉시에 라디오에서 고향의 봄노래가 흘러나오면 나를 생각해 줘’라고 적혀있었다.
 
열한 살이라고 적은 아래에 ‘일기장’이라고도 적고 ‘먼지바람’이라고도 적었다. 버스가 출발하자 나는 뒤를 돌아보았고 그의 모습은 점점 작아지더니 먼지바람에 가려 어느새 보이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아마도 나는 이 카페가 버스정류장 곁에 있다는 것을 핑계대어 내가 누군가에게 태초의 순수함을 간직한 사랑의 대상이었음을 언제나 기억하고 싶은 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나의 카페는,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을 간직한 열한 살의 나를 기념하여 오전 열한 시에서 오후 열한 시까지 문을 열기로 했다. 2011년 11월 30일, 차창 밖으로 처음 이 집을 만난 날로부터 3개월 만이었다. 

                                 ▲  2011년 11월 30일 문을 연 까페 버스정류장.

박계해/ 여성 저널리스트들의 독립미디어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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