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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주목을 받게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례
[젠더와 건강]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연구교수 인터뷰(상)
2012년 상반기에만 매출 92조 2700억 원에 영업이익 12조 5500억 원의 실적을 올린 ‘글로벌 스탠더드’ 기업에서 사람이 죽어나가고 있다.
먼지 하나 없다는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일했던 노동자들이 연이어 백혈병, 재생 불량성 빈혈, 뇌종양, 유방암, 난소암, 흑색종 등의 병으로 사망했거나 투병 중이다. 공황장애와 정신분열증, 우울증 등으로 자살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살아남은 사람들 중에서도 불임, 유산, 자녀에게서의 기형 등이 나타났다. 하지만 삼성은 이들의 직업병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 발뺌하고 있다.
반도체 산재인정 투쟁에 새 국면 제시한 여성연구자들
지난 달 18일에 처음으로 이들의 직업병 문제가 국회에서 다뤄졌다. 그러나 증인으로 출석한 삼성전자 최우수 부사장은 ‘반도체 노동자들의 병은 직업병이 아니며, 따라서 산재가 아니다’라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했다. 그는 “삼성의 노력이 아픈 분들에게 덜 전달된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삼성은 계속 작업환경과 발병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고 주장하지만 관련 학계에서는 매우 관심을 가지고 이 사태를 주목하고 있다. 올 여름 <직업환경보건저널>(IJOEH: International Journal of Occupational and Environmental Health)이라는 직업병·산업보건과 환경오염 문제를 다루는 저명한 국제학술지에 삼성전자 백혈병 사례가 특집으로 다뤄졌다.
▲ 7월 저명한 국제학술지 <직업환경보건저널>에 삼성전자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사례가 특집으로 다뤄졌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유미씨 사진을 표지에 싣고, 이례적으로 사설을 통해서도 삼성의 백혈병 문제를 심도있게 다루었다.
이 학술지는 표지에 삼성 반도체공장에 다니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故 황유미씨의 사진을 싣고, 이례적으로 학술지의 서문 격인 사설(editorial)에서 ‘전자산업 노동자들의 암 위험을 이해하기 위한 영웅적 투쟁: 삼성의 사례’라는 제목으로 삼성의 백혈병 문제를 심도 있게 다루었다.
여기에 실린 ‘한국 반도체공장 노동자의 백혈병과 비호지킨 림프종(Leukemia and non-Hodgkin lymphoma in semiconductor industry workers in Korea)’이라는 제목의 논문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노동환경과 직업병의 연관성을 규명하는 단초를 제공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삼성 반도체노동자 백혈병 산재인정 투쟁에 새로운 국면을 제시한 이 논문의 저자는 김인아 연세대 보건대학원 교수, 김현주 단국대 의대 교수, 임신예 경희의료원 교수, 공유정옥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연구원 등 4명의 여성연구자들이다. 논문의 제 1저자인 김인아 선생님과 만나 삼성 백혈병 문제를 비롯한 여성과 건강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반도체 공장에 간 건강한 젊은이들은 왜 사망했는가
<삼성이 버린 또 하나의 가족>이라는 책의 뒷부분에는 삼성전자·반도체 피해자 115명을 죽이거나 괴롭히고 있는 질병의 목록이 쭉 적혀있다. 여기서 가장 많이 눈에 들어오는 병명은 ‘백혈병’이다. 그리고 흑색종, 상세불명암, 재생 불량성 빈혈, 피부암, 베게너육아종증, 악성 림프종, 루게릭병, 뇌종양 등의 질병과 우울증, 공황장애, 정신분열 등의 병도 보인다. 이들이 이런 병에 걸리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글쎄요. 원인을 가지고 얘기를 하자면 사실 모르죠. 정보도 없고, 과거의 일이고. 다만 저희가 궁금하게 생각했던 것은 이 질병들은 다 희귀질환인데, 희귀질환이 (이상하게) 많은 거예요. 그리고 암이 생기기에는 너무 젊은 사람들인 거죠. 이십 대에 이렇게 큰 병에 걸리는 일들이 생기고, 같은 라인에서 한 조로 근무하던 두 사람이 똑같은 병에 걸려버리니…. 물론 이게 우연일 수도 있지만 우연이라 하고 넘어가기에는 좀 그렇잖아요? 정말 만약에라도 문제가 있다면 해결해야 되는 거니까요.”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병에 걸려 사망한 사람은 여성이 남성보다 많았다. 공장일은 성별에 따라 오퍼레이터, 엔지니어로 분리되어 있다.
▲ 10월 29일은 반올림이 선포한 반도체 노동자의 날이었다. 이 날 열린 반도체 산재사망노동자들을 기리는 추모 퍼포먼스. ⓒ반올림
“전자산업공장에서 여성은 ‘오퍼레이터’라고 해서 기계를 돌리고, 반도체를 생산하는 직접생산을 주로 해요. 이일은 정밀한 작업이기 때문에 여자가 잘할 거라 생각을 하는 거죠. 반면 남자들은 주로 ‘엔지니어’라고 해서 장비를 관리하는 일을 해요. 약간 중간 관리자 정도의 느낌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어떤 일이 더 위험하다고 하긴 어려워요. 죽은 사람들 중에 젊은 여성이 많은 이유는 그들이 그런 일을 하기 때문이에요. 엔지니어 중에도 사망하시는 분들이 있어요. 간혹 기계가 고장 나면 다 뜯어내서 수리하거나 고치는 역할을 하는데 오히려 그때 화학물질 노출 수준이 더 높다고 얘기하는 문헌들도 있고요.”
생리불순, 유산은 있을 수 있는 일? 과소평가되는 여성건강
젊은 나이에 사망한 여성노동자들은 상고를 졸업하기도 전인 열아홉 살 무렵에 공장으로 왔다. 삼성은 이들을 채용하기 전에 건강 검진까지 실시해 단순한 빈혈이 있는 사람도 채용에서 탈락시켰고, 정말 건강한 여성들만 태워서 공장으로 데려갔다.
그리고는 바로 3교대 근무를 시키고, 때때로 열두 시간 이상 근무를 시키기도 했다. 그토록 건강했던 그녀들은 일을 시작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탈모가 생기거나 생리가 끊겼다.
“화학물질은 무엇이든지 간에 여성의 몸에 더 민감하게 작용하기도 하고, 대부분 생리불순이나 불임, 유산 등에도 영향을 줘요. 여성노동자들의 생리불순 문제는 그런 화학물질 때문일 수도 있고, 교대근무 자체 때문일 수도 있고, 일하는 환경이나 과로,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죠. 중요한 것은 그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건강한 젊은 여성들이 가서 이들의 몸에 어떤 이상이 나타났다면 왜 이런 증상이 나타났는지 파악해주는 ‘시스템’이 있어야 되는 거죠.”
김인아 선생님은 지금의 시스템이 여성건강의 이런 문제들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신경 쓰지는 못하는 것 같다고 했다.
“이런 시스템이 있긴 해요. 전문가들도 굉장히 많고요. 하지만 여성건강 문제에는 조금 덜 민감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왜냐하면 들어오면 다 그러니까. 다 생리불순이 생기고, 유산하고…. 제가 보기엔 여성들의 이런 건강문제들은 ‘그냥 있을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을 하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산업재해 시스템이라는 것도 워낙 중대재해 중심으로, 사고가 나거나 죽거나 하는 일들을 중심으로 설계되어 있으니까요. 이런 건강 상의 조그만 변화나 몸이 내는 소리들에 귀를 기울이는 훈련이 안 되어있는 거죠.”
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의 건강은 생명보다 생산성을 더 우선시하는 기업의 탐욕 앞에서 묵살되고 짓이겨졌다. 7월 26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삼성 백혈병·직업병 피해자 증언대회’에 참석한 故 이윤정씨의 남편 정희수씨가 전한 아내의 마지막 유언은 안타깝게도 “아이들만큼은 공부를 잘 시켜라. (대학에 가지 못해) 공장 다니는 것이 싫다”였다. (박은지 /사회건강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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