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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성폭력 사건의 핵심은 동의 과정이다 
 
※ 필자 너울 님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의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최근 지겹도록 논란과 기사 거리를 만들고 있는 연예인 성폭행 사건에서 논점이 ‘꽃뱀일까? 아닐까?’ 라는 점으로 옮겨가는 듯 보여 우려된다.
 
한국 사회에서 성폭력 피해를 고소하는 여성의 경우 ‘꽃뱀’으로 몰리는 경우는 너무도 흔하다. 꽃뱀이라는 이미지가 한번 덧씌워지면 그 이미지가 너무도 강렬하여 사건의 본질을 감추어버리고 새로운 이미지로 덧칠해 버리는 강력한 위력을 발휘한다.
 
특히 가해자가 ‘무혐의’ ‘증거부족’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게 된다거나, 여성들이 고소 과정에서 합의를 본다거나 도중에 고소를 취하하게 되면, ‘꽃뱀’이라는 혐의는 대중들에게 확신으로 변해버린다.
 
‘꽃뱀’ 이야기로 성폭력 사건이 회자되어지면 간과하게 되는 점이 생긴다. ‘성관계가 동의  하에 이뤄졌느냐, 아니냐.’ 성폭력 사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동의 과정이다.
 
험난한 성폭력 고소, 진술의 과정
 
언론에 성폭력 사건이 보도되면 가십거리로 쉽게 얘기하게 될지 모르지만, 실제로 피해자가 거치게 될 성폭력 고소 과정은 험난하고 매우 지난하다.
 
피해자가 19세 미만 혹은 장애인이거나, 성폭력 피해가 특수강간(두 명 이상의 가해자, 혹은 흉기나 야간 침입)의 형태거나, 혹은 친족관계에서 발생한 경우가 아니라면, 성폭력 사건은 친고죄에 해당했다. (성폭력 친고죄는 2013년 6월부터 전면 폐지된다.)
 
친고죄(親告罪)는 어떤 사건에 의해 발생된 피해자 또는 법적 효력을 가진 고소권자가 직접 고소해야만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범죄를 뜻한다. 때문에 성폭력 피해자는 자신이 겪은 사건에 대해 고소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을 하게 된다. 고소를 하던지, 혹은 고소를 하지 않던지 간에 분명한 것은 어느 선택이든 매우 힘겨운 과제가 피해자의 몫으로 남겨진다는 사실이다.
 
고소할 건지 말 건지에 대한 판단은 피해자가 하지만, 이를 지원하는 상담원의 입장에서는 두 가지 경우에 각각 예상되는 상황과 정보를 전달하게 된다. 성폭력을 사건화하고 그 과정을 겪는 것은 심리적으로 그리고 물리적으로도 많은 어려움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므로 쉽게 법적 대응을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고소 과정은 경찰서에 가서 고소장을 제출하고 ‘진술’하는 과정으로 시작이 된다. 강간의 경우 대부분 단 둘이 있는 사적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범죄이기에, 강간의 증거를 찾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준강간(여성이 심신 상실이나 저항불능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이용하여 간음하는 행위)의 경우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강간 사건은 ‘진술’이 유일한 증거가 될 때가 많아, 강간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진술의 일관성’에 의지하게 된다. ‘진술’이라는 것은 자신의 경험에 대한 본인의 기억을 바탕으로 말하는 것이기에, 가해자와 피해자의 진술이 일치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런데 이 진술의 과정에서 피해자는 심리적으로 위축되거나 성폭력 후유증에 따른 혼란으로 일관된 진술을 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술의 일관성 혹은 신빙성 없음’으로 판단을 받게 되면 ‘성폭력 사건이 없었음’으로 귀결이 되고, 피해자는 자동 ‘꽃뱀’으로 오인 받게 되기 쉽다.
 
피해자는 끊임없이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한다. 지지받는 공간에서도 꺼내어 말하기 어려운 기억을, 의심을 받으며 경찰에게, 검사에게 반복해서 말해야 하는 것이다.
 
보호할 가치가 있는 피해자인가, 아닌가?
 
성폭력 범죄를 판단하는 데 있어서, 유감스럽게도 피해자가 ‘보호할 가치가 있는 여성인가 아닌가’ 여부를 우리 사회에서는 여전히 중요한 문제로 바라보고 있다. 예전에 ‘정조에 관한 범죄’로 성폭력을 바라보았던 사회적 시선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피해자가 그 남자와 전에도 성관계를 했는가? 여성의 직업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중요한 문제로 제기된다.
 
부부 사이에 발생하는 강간죄는 아직도 제대로 성립되지 않으며, 성판매 여성들은 법적으로 보호받기 어려워진다. 뿐만 아니라 피해자가 술에 많이 취해 있었거나 야한 옷을 입었다면 사회적으로 쉽게 ‘피해자가 아니’라고 매도당하는 경우가 많다.
 
성폭력 사건 대응을 지원하다보면, 가해자 측의 합의 요구가 집요하게 이루어진다. 가해자의 가족을 통해서, 때로 형사를 통해서도 합의를 요구받는다. 피해자가 고소 과정에서 심리적 괴로움으로 인해 합의를 받아들이게 되면, 처음부터 돈이 목적이었다는 식으로 가해자들은 피해자에게 비난을 가하기 일쑤다.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법원에 ‘피해보상금’을 공탁함으로써, 자신은 합의를 위해 피해자에게 보상을 하려고 최선을 다했다며 법원에 선처를 호소하는데, 이는 감형 사유로 받아들여진다.
 
범죄 피해자는 민형사상 심리적, 정신적, 물질적 손해에 대해 보상을 받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에 대해 금전적 보상을 요구하게 되면, 그 사건의 본질과 상관없이 ‘돈’이 목적이었다고 쉽게 이야기된다.
 
물론, 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하여 성폭력 고소를 하겠다고 협박을 하는 ’꽃뱀‘이라 불리는 여성이 존재할 수 있다. 그러나 자신의 피해를 증명해나가면서, 또 자신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는 피해자임을 증명하면서, 1년 내지 2년 동안의 고소 과정을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다. 한국 사회에서처럼 성폭력에 대한 편견이 공고한 사회에서 자신이 피해자임을 드러내고, 그것이 가족과 지인들에게 알려지는 것 자체가 힘든 과정이다.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사건이 사전에 공모된 ‘꽃뱀’ 사건인지 아닌지는 법원에서 판단할 문제이고, 그것은 다른 범죄인 것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무혐의이거나, 증거가 불충분하거나, 합의를 요구한 것과는 상관없는 문제이다. 성폭행 사건의 핵심은 ‘성관계가 동의 하에 이뤄졌느냐, 아니냐’ 라는 문제이다. 너무나 쉽게 그 본질이 흐려지는 우리 사회의 여론이 안타깝다. (너울)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만화 <두 여자와 두 냥이의 귀촌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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