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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공백의 발견> 구직활동 중인 50세 여성 P님  


경력단절이라는 꼬리표는 왜 여성에게만 붙을까? 여성들은 왜 노동시장으로부터 단절을 겪게 된 것일까? 출산과 양육만이 경력단절의 이유일까?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팀에서 여성들의 공백(경력 단절)의 문제와 현실을 알아내기 위해 ‘일하는 여성’들과 만나, 여성노동의 핵심적인 문제들을 짚어보는 인터뷰를 일다와 공동 연재합니다. www.ildaro.com

“공사현장의 여성노동자, 너무 좋아 보여요” 
 
서울 대학로의 오래된 찻집에서 만난 P님. 올해 50세인 그녀는 5년간 몸담았던 생애 첫 일터를 최근 아쉽게 그만두고서, 지금은 각종 취업교육을 들으며 활발히 구직활동을 하는 중이다.
 
결혼하기 전에 무슨 일을 했는지 첫 질문을 하자, P님은 망설이며 ‘뚜렷하게 일을 했다고 얘기하기가 어렵다’고 답했다. 아는 분 회사에서 2~3년간 일했다고 하는데, 왜 노동 경험으로 이야기하기를 주저하는 것일까?
 
“일을 하고 싶었죠. 근데 뭔가를 하고 싶기는 한데 그때는 참 일자리가 지금과 달랐던 것 같아요. 기회도 없고, 노력할 수 있는 여지도 없었던 것 같고. 여기 오는 길에 공사 현장을 봤는데, 여자분이 두 분이나 있는 거예요. 신선한 충격이었어요. 얼굴을 유심히 봤는데 너무 예쁜 거예요. 예쁘게 생겨서가 아니라, 자신만의 뭔가를 하고 있다는 게. 그게 너무 좋아 보였어요. 그 일하는 사람들 보면서 나도 저런 일을 할 수 있었을 텐데, 그때는 감히 생각 못했던 어떤 것이었는데…. 저도 그렇게 현장에서 활동적으로 일하는 게 맞거든요.”
 
‘사회생활’을 했다고 말하기가 부끄럽다는 일의 경험. 적성에 맞지 않았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일하고 싶은 마음은 있어도, 그 일을 오래 지속하지는 못했다. 흐지부지 경력이 단절된 후 1,2년 정도 뒤에 결혼을 했다. 꽤 긴 시간 전업주부로 살면서 P님은 어떤 마음이었을까.
 
“다른 사람들은 살림에 재미가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저는 힘들더라고요. 전업주부가 뻔하잖아요. 나를 위한 건 없고, 애들 보내고 나면 허무하고 늘어지죠. 무능할 수도 있는데 그렇다고 뭔가 하겠다는 용기는 안 나고, 그렇게 좌절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아침에 남편 출근할 때 보면 그 시간에 차 타고 나가는 여자들이 너무 부러운 거예요.”
 
“돈보다 애정이 먼저”였던 직장, 생활협동조합
 
아이들이 커가고 세월이 지나면서 취미활동이나 조금씩 관심 가진 것이 있는지 여쭤보았다. 마침 이사 간 지역이 민우회 생활협동조합이 활발하게 활동하던 곳이었다고 한다. 지인을 통해 식재료 강사 교육을 듣고 안전한 먹거리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점점 민우회에서 네트워크를 쌓아가며 관심 영역이 넓어졌다. “놀러 다니기”라고 표현했지만, 생각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과 사회적인 역할을 한다는 보람이 컸다.
 
“취미생활은 없었어요. 특기도 놀러 다니기! (웃음) 친구들과 같이 근교에 놀러 가고 하다 보니까 좋은 마음은 아주 잠깐. 다니다 보면 그게 다가 아니고, 그때는 뭔지 몰랐는데 성취감을 가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욕구가 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한 10년 동안 언저리에서 관심을 가지고 계속 민우회 근처를 맴돌았던 것 같아요 생협에 나가서 생산지를 둘러보고 교육받고, 한 달에 한두 번 모여 회의하는 경험을 해본 거죠. 뭔가 사회적인 이슈, 문제 의식이 비슷한 사람들이 모이는 게 좋았어요. 남편이 그렇게 반대하고 스트레스를 주는 데도 열심히 계속했던 이유가 이거였구나 생각해요.”
 
그렇게 열혈 회원으로서 활동하던 중 자연스럽게 활동가의 권유로 생협 매장에서 반상근직으로 일하게 되었다. P님은 생협을 ‘첫 직장’이라고 이야기했다. 공식적인 사회 경험이 처음이라 신기하고 떨렸다고 한다. 특별하고 소중한 첫 경험이기에 끝까지 잘하고 싶었다고. 첫 직장의 근로 조건은 어떠했을까?
 
“의미 있는 일이니까 보수랑 상관없이 정말 재미있게 일했어요. 만약 ‘여기는 직장이야, 돈만 벌고 가면 돼’라고 생각하면 어렵죠. 애정이 먼저잖아요. 5시간 근무라서 오전은 9시부터 2시, 오후 근무는 2시에서 7시까지였어요. 하지만 매장은 8시까지인데 누군가는 남아야 하죠. 매장 청소나 마무리도 다 같이하고, 누가 있으라고 잡는 것도 아닌데 일이 많을 때는 다들 남아서 하고, 휴일에도 자진해 나와서 같이 밥 먹고 일했지요. 특히 매니저일 때는 그냥 활동가일 때보다 늦게 퇴근하는 게 대부분이었죠. 반상근이라도 사실상 거의 종일 근무한 거예요. 생협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임금을 자진해서 삭감하기도 했어요. 좋은 사람들이랑 재미있게 일하는데, 일터가 놀이터고 놀이터가 일터였어요.”
 
5년 가까이 일하면서 생협 매장을 총괄하는 매니저 위치까지 올라섰다. 맡은 직위만큼 업무의 양과 책임감도 커졌다. 매장 관리는 생활재 조사와 발주부터 운반, 진열, 재고 정리와 판매까지 전 운영 과정을 파악하고 수행해야 하는 매우 전문적인 일이다.
 
“생협 일하면서 많이 성장한 거죠. 사람들은 매장에서 일하는 걸 보면 되게 편한 줄만 알아요. 계산하는 것만 보이니까 간단하게 생각하죠. 다른 마트 같은 데는 그냥 각자 맡은 담당만 하는 거잖아요. 자연스럽게 했던 재고 관리나 회계 이런 일들이 굉장히 전문적인 일이라는 걸 나중에 알았어요. 하나씩 배워가면서 성장했던 것 같아요.”
 
그러던 중 P님은 예상치 못하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퇴사를 고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한다. 이런 식으로 갑작스럽게 그만둘 것이라는 생각하지 못했다. P님은 퇴직 이후에, 취업지원 프로그램을 알아보고 구직 활동을 하면서 또다시 현실의 높은 벽을 실감하고 있다.
 
‘매장 총괄매니저’ 경력도 무용지물인 노동시장

 

▲ 공공기관 구직공고 게시물에도 취업 자격으로 35세, 39세 이하 연령을 제시하는 경우가 많다. ©한국여성민우회 
 
“지금까지 결혼하기 전부터 제가 해두었던 것이 뚜렷하게 없잖아요. 자격증을 따놓은 것도 아니고 막연해요. 그래도 매장에서 일하면서 매니저까지 했던 것으로 자신감이 생겼는데, 그걸로 뭘 한다는 것은 어려워요. 업무 능력은 되는데, 고용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자격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원서를 쓸 때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없어요.”
 
내세울 게 없다니? 매장 총괄매니저라는 뚜렷한 일이 있지 않은가, 아무나 쉽게 가지기 어려운 큰 경력인데 왜 내세울 게 없다고 말하는 건지 따지듯 물었다. 특히 서비스 업종이나 도매, 소매업 등에서 각광받을 만한 좋은 경력이라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님이 취업이 어렵다고 느끼는 것은, 여성들이 나름대로 노동의 경험을 쌓아가지만 그것을 경력이나 전문성으로 인정해주지 않는 노동시장의 구조와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대학에서 그 동안 나이 제한 없이 주로 아줌마 조교를 뽑아왔는데, 이번에 보수적인 총장이 들어오고 나서 ‘2012년 졸업자’로 채용 조건을 바꿨어요. 한의원에도 가 봤는데 1974년생 이하(40세)만 뽑는다는 거예요. 한의원 업무가 그렇잖아요. 주로 고객 관리, 약재 다루는 일인데 그건 젊은 사람 아니어도 잘할 수 있거든요. 같은 일인데도 젊은 사람을 선호하더라고요. 생협 그만두고 나올 때만 해도, 업무도 두루두루 경험해보았으니 잘 하는 일을 선택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잘 안 되요.”
 
경력단절 여성의 취업을 지원한다는 국가 기관에 가봐도 취업이 가능한 연령을 정해두고 있었다. 취업 지원 현장에서 이미 여성들은 ‘나이 제한’을 절감하고 위축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관련 기관을 방문했을 때 구직공고 게시판을 유심히 살펴봤더니, 취업자격란에 “~39세까지”, “~35세까지”라며 대놓고 나이 차별을 조장하는 게시물들이 즐비했다.
 
취업이 어려우니 창업을 해라?
 
“무슨 여성발전센터인가? 국비 지원 받는 곳이에요. 직업훈련을 하러 가면 지금 제 나이는 너무 많아요. 취업상담 가서 하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대부분 45세 이후로는 불가능한 것처럼 이야기해요. 자꾸 창업 쪽으로 유도를 하더라고요. 저는 창업보다는 재취업이 우선인데.”
 
40대 이상이라도 개인마다 욕구와 사정은 제 각각이다. 창업이라는 것은 일정한 자금과 경영 능력이 필요하고, 영업상의 위험 부담도 떠안아야 한다. 불황이 장기화되고 영세 자영업자들이 안정적으로 사업장을 운영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경제 상황이다. 다수의 사람들이 안정된 재취업을 원하고 있는데, ‘창업 활성화’라는 정부 정책이 과연 적절한 것일까?
 
“국비 지원받는 창업 교육을 갔어요. 세금 관리, 창업하는 방법 이런 것을 배우는 강좌였어요. 근데 다 젊은 사람들이 와서 놀랐어요. 젊은 정도가 아니라 아주 어린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그 나이 대는 직장에서 경험을 쌓아야 하는 사람들일 것 같은데, 거기 와 있는 걸 보고 위기의식을 느꼈어요. 젊어도 우리 나라 현실이 워낙 어려우니까 이해도 되기도 하고.”
 
아이들 키우고 노후를 대비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허리띠를 졸라 매며” 아끼고 살았지만, 안정적으로 노후 자금을 마련하지는 못했다. P님은 노동 경험을 통해 생각이 이전과는 많이 바뀌었다고 한다. 나이가 들어도 계속해서 경제활동을 해야 하는 현실에 맞부딪히면서, 중장년층 노동자에 대한 낮은 사회적 인식에 대해 문제 의식을 드러냈다.
 
“제가 생협 매장에서 일을 시작할 때가 45살이었어요. 그 나이 대에 매장에서 일하던 마음가짐하고 지금하고는 많이 달라요. 나이를 먹으면서 더 여유로워지는 것 있잖아요. 사람들 대하는 것도 더 자연스러워지고. 여러 가지 면에서 노련한 사람들이에요. 나이를 먹는다고 단점만 있는 게 아니라 장점도 충분히 많은데, 그런 것에 대한 인정을 안 해주는 것 같아요.”
 
P님은 그래도 하하하 호탕하게 웃으며 ‘여건이 되는 한 죽을 때까지 일하겠다’고 말했다. 집에 무료하게 있다 보면 너무 따분할 것 같단다. 아이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사는 게 꿈이라며, 소박한 희망도 내비쳤다. 계속 공부하고 배우고 싶다는 P님, 부디 나이가 들어도 더 능력을 인정받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날 수 있길 간절히 바란다. ▣ 김나현

 

※ 이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블로그(womenlink1987.tistory.com)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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