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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구직의 세계로 투신한 지 n년 

 

※ 2014년 <일다>는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편집자 주]

 

 

내 자소서 = 판타스틱 개소리 특급

 

최종 제출하기, 클릭. 지원 마감 시간을 몇 분 안 남기고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내던지듯 쓴 이력서가 제출됐다. 다시 훑어보니 손발이 오그라들어 펴지지가 않는다. 말도 안 되는 과장과 헛소리. 명색은 자기소개서(이하 ‘자소서’)지만 어딜 봐도 나라는 사람이 없다. 이것은 마치 개소리의 향연. 판타스틱 개소리 특급. 왈왈. 내 기꺼이 사용자의 착실한 ‘을’이 되어 개처럼 부려지리라 마음먹었다지만, 이런 걸 생각했던 건 아닌데.

 

구직의 세계로 투신한 지 꼬박 n년. 셀 수 없는 자소서를 썼으니 이젠 눈 감고도 일필휘지할 것 같지만, 쓰고 또 써도 어렵기만 한 건 왜일까. 세상에서 가장 익숙해지지 않는 일 중 하나로 이 자소서 쓰기는 상위권에 들 것 같다. 겸손을 가장한 채 최대한의 자기 자랑을 늘어놓아야 하는 모순된 글쓰기. 암묵적으로 합의된 이 뻔뻔한 자기 전시의 문법이 도통 성미에 맞지 않는다.

 

도저히 이 일이 손에 익지 않는 데에는 매번 구직자들의 상상을 뛰어넘는 자소서 문항이 한 몫 한다. ‘살면서 경험한 극한의 상황’을 묻는 건, 이젠 무난한 수준이다. 시장 현황 파악과 타개 전략 및 개선안을 쓰라는 항목에 이르면, 이게 지금 사람을 뽑자는 건지 아이디어를 뽑아 먹자는 건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진심으로 우리나라 기업 인사팀들의 날로 발전하는 창조력에 침을 뱉고 싶다. 최초로 탈(脫)스펙을 주창한 이를 만난다면 내 너의 멱살을 살포시 쥐고, 더도 말고 딱 세 번만 흔들어 주리.

 

최근 탈스펙 타령하는 풍조에, ‘스펙 쌓기’에 총력을 다하던 우리 순진한 취업준비생(이하 ‘취준생’)들은 닭 쫓던 개가 되었다. 도전과 극복, 갈등 해결과 열정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질문들 앞에, 이렇게 무난하게 살아와서 정말 죄송하다고 무릎 꿇고 빌어야 될 것 같다. 고작 반오십 생애, 없는 ‘굴곡’이라도 쥐어짜야 하는 지경이다. 하도 경험 경험들 하니, 빈약한 경험을 메꾸고 싶은 취준생들을 위해 히말라야 등반 인증만을 위한 대행사도 있단다. 자소서에 쓸 만한 그럴듯한 ‘스토리’가 없으니 돈을 주고 사서라도 만들어 보자는 건데, 지독한 농담이다 싶지만 실제 상황이다.

 

형편이 이러한데 대기업 15년차 인사팀장님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신다. ‘자신의 경험을 진솔하게, 항목과 연결 지어 쓰시면 됩니다.’ 그 말씀, 정말 믿어도 되겠니. 아니야. 그만 하자. 이렇게 배배 꼬여서야 누가 나를 뽑겠나. 자중, 또 자중.
 

               ▲  대학교 졸업식 날 친구들이 걸어 준 축하 플랭카드. 이 때부터 예견된 백수의 길.   © 모조 
  

장래 희망은 ‘꼰대’

 

길지도 짧지도 않았던 전 직장에서의 막내 생활이 내게 남긴 것은, 누구보다 먼저 수저를 깔고, 인원수에 맞추어 물을 따르고, 타지 않게 고기를 굽고, 빈 술잔을 채울 것. 윗분들의 질척한 농담에도 당황하지 않고 혼신을 다해 리액션할 것. 가끔은 ‘룸’에 들어가서 입은 웃고 있지만 눈은 웃지 않는 ‘언니’와 어색하게 짠, 을 하는 일이 생기더라도 안면 근육을 관리할 것.

 

이야, 왕년의 여성주의자 다 죽었네. 가장 기쁘면서도 서글펐던 것은 그 ‘다 죽은 여성주의자’가, 나 때로는 대견했다는 것. 그렇게 찬찬히 어른이 된다는 것이 기꺼웠다. 나의 판단에 나는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었고, 가급적이면 하루 빨리 어른이 되고 싶었다. 칼처럼 품었던 여성주의는 무기도, 방어구도 되지 못했다. 도리어 죄의식이 송곳처럼 나를 찔러댔을 뿐. 매 순간 혼자서만 갈등하고 타협하는 고단함을 벗고 싶었다.

 

어제던가, 읽었던 한 웹툰의 독백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장래희망 란에 쓰기에는 부끄러울 수도 있겠지만 (…) 최선을 다해 꼰대가 되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 그의 표현을 따르자면 그때 나의 소망은 꼰대가 되는 것이었다. 딱히 마음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여성주의가 밥 먹여 주는 것도 아닌데.

 

이를테면 드라마 <밀회>의 ‘혜원’이 되고 싶었다는 이야기. ‘선재’를 만난 후 모든 것을 감히 내던진 혜원이 아니라, 철저한 ‘을’의 태도로 무장했던 혜원이. 세 명의 갑 사이를 오가며, 능숙하게 각자의 비위를 맞추던 그녀가 나에게는 교본과도 같이 우러러 보였다. 기왕지사 을이 되려면 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을이라면 역시 슈퍼 을 아니겠어요. 진짜 오혜원이라면 너 드라마 헛봤다며 나를 ‘무섭게’ 혼내 줄 일이겠지만.

 

그리고 나는 일을 그만뒀다. 그놈의 죄의식 때문은 아니었고, 순전히 정규직이 되고 싶다는 타산적인 이유로. 그리고 말 그대로, 지옥 같은 구직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네 단어

 

일전에 여섯 개의 단어로 쓸 수 있는 가장 슬픈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팝니다: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For Sale: Baby shoes. Never worn)’ 나는 네 단어로 시작하는 가장 슬픈 문구를 알고 있다.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우리 ‘잠재적 고객’들의 상심을 달래주고자 애쓴 흔적이 역력한, 길고 긴 위로의 말이 그 뒤로 이어지게 마련이지만, 아이고 의미 없다. ‘넌 참 좋은 사람인데…’ 마치 이별 통보를 앞둔 연인의 뻔한 레퍼토리 같은 그 문구는, 질리도록 보아도 면역이 생기지 않는다. 내가 진짜 좋은 사람인 거 같으면 네가 잘도 헤어지자고 하겠다! 내 역량이 진짜 뛰어나면 너희가 나를 안 뽑고 배겼을까 봐! 여봐요들, 우리 차라리 솔직해져요. 듣자 하니 요즘에는 불합격 통보 문구도 마케팅의 일부라고 하던데, 그래서 내가 감성 마케팅을 ‘싫어하나봉가.’

 

반복되는 탈락, 불합격, 심지어 ‘서류 광탈(광속 탈락의 줄임말, 빛의 속도로 탈락한다는 의미로, 1차 서류 심사에서부터 떨어지는 것을 가리킴)’을 무수히 겪으며, 나의 멘탈은 너덜너덜, 그야말로 걸레짝이 되었다. 걸레는 쓸모라도 있지, 구멍 숭숭 난 내 정신머리는 대체 어디에다 써먹나?

 

자존감이 합격과 불합격 여부에 따라 오르락내리락 하는 롤러코스터 같은 시간을 견디다 못한 나는, 일단 뭐라도 일을 시작해야 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잡히는 대로 이력서를 썼다. 그리고 덜컥,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열정노동’이라 부르는 일
 

▲  엄마는 딸의 '입신양명'을 빌며 침대 머리맡에 '부적'을 붙여두었다. 2차 과제는 성혼.    © 모조 
 

흔히들 ‘열정노동’이라 부르는 그런 일이었다. 업계의 사정이야 빤하고, 투여하는 노동에 상응하는 금액을 받을 수 있으리란 기대는 애초에 접었다. 일상이 된 야근이며 주말 출근이야 어딜 가도 비슷하니까, 딱히 억울하진 않았다. 업무는 흥미로웠고, 쉽게 만나기 힘든 좋은 동료들을 만났으며, 근무 환경의 악조건을 상쇄하는 보람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나를 괴롭혔던 것은 업무량이나 근무 조건보다는 노동자를 대하는 업계의 태도였다.

 

먼저 묻지 않는 이상, 아무도 임금이 얼마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적은 보수도 문제겠지만, 적어도 나에겐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받을 급여가 얼마인지도 정확히 모른 채 일해야 한다는 상황이 기꺼울 수는 없었다. ‘좋아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돈 이야기는 뒷전이 되었다. 흔한 열정노동의 태도.

 

야근과 주말 출근이 당연하게 여겨지는 분위기도 불편했다. 알고 시작한 일이고, 초과근무를 하는 것이 어쩔 수 없다고는 해도, 적어도 그걸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으면 했다. ‘불가피하게도 해야 하는 것’과 ‘당연히 해야 하는 것’은 아 다르고 어 다른 것처럼, 사소하지만 큰 차이를 갖고 있다.

 

나는 일을 하러 왔는데, 자꾸 노동이 열정이 됐다. 내가 바란 것은 근로기준법의 엄격한 준수도 아니요, 그저 노동자에 대한 기본적인 예의였을 뿐인데. 적절한 문제 제기를 고민하다가 아, 난 결국 못하겠구나, 자괴감에 빠지곤 했다. 흔히 상상하는 악독한 고용주 대신, 거기에는 결국 공히 열정을 착취당하는 나의 동료들만 있었으니까.

 

농담이 백수를 구원할거야

 

다시 백수의 삶을 산다. 팔아먹을 열정은 소진되었고, 멘탈은 또 바닥을 찍고 있다. 서류 제출 마감 때마다 머리를 뜯으며 소설을 쥐어짠다. 신입치고는 너무 먹어버린 나이와, 아직 최종 면접은 한 번 가보지도 못했다는 불안감이 목을 조른다. 이미 몇 년차로 착실하게 커리어를 쌓고 있는 친구들을 떠올리면 속이 답답해진다. 곧 통장 잔고도 밑바닥을 드러낼 것인데, 아르바이트생으로는 잘 써주지도 않는 나이가 다가오고 있다.

 

그래도 별 수 있나, 다시 몇 장의 보기 좋은 자소서를 쓸 것이고, 면접관 앞에서 은은한 미소를 유지하며 성실한 피고용인임을 어필할 것이다. 고작 1차 전형 통과에 일희(一喜)하고, 불합격 통보의 네 단어에 또 일비(一悲)하겠지. 이게 바로 회사와 밀당을 하는 나, 구직 밀당녀렷다. 농이라도 없으면 버티기 힘든 시절에, 시시껄렁한 농담이나마 지팡이 삼아 계속 걷기로 한다. 아이유의 노래 <을의 연애>를 개사한 <을의 비애>를 모든 백수들에게 바치며 글을 맺는다.  ▣ 모조 

 

<을의 비애>

 

면접 봐놓고 발표는 안 해 얼마나 바쁘시길래

인사팀 뭐해 얼마나 끌까 오늘 안에 전화 좀 해

 

자소서 패턴 비슷하지만 회사마다 조금씩 달라

그냥 쓸래도 이젠 더 이상 복사 붙이기가 안 돼

 

오 고작 서류통과에 더는 기쁘지 않은 나이

늘어질 대로 늘어져가는 구직 time

 

돈 때문이지 별 거 있겠어 동기 묻는 저의가 뭐야

기껏 면접 가면 한다는 말이 결혼은 언제 할거녜

 

귀하의 뛰어난 역량에도 불구하고 왜 날 안 뽑아

합격자 통보 받아볼 일 언제일까 짠해

 

스펙 쌓기도 역량 강화도 지긋지긋하지만 어째

끝이 보이질 않는 이 생존 게임 포기도 난 못해 그래 내가 졌어

에라이 치사한 갑놈아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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