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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이여, 생각을 바꿔 아이 낳아라? (일다-이신혜)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면서 우연히 접하게 된 광고 하나. 공익광고협의회에서 만든 출산장려 캠페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좋았던 공익광고의 크리에이티브는 오간 데 없고, 일방적이고 무의미한 메시지만 난무하더군요.
 

공익광고협의회에서 제작한 출산장려 캠페인 CF 한 장면

“아이보다는 생활의 안정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이젠 엄마가 되고 싶습니다.”

“사교육비가 힘들어 동생 없는 외로움을 더해주었습니다.
동생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아이는 당신과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대책이 없다는 말 외엔 할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한다고 출산이 장려될까요? 광고를 보고서 당장 작업(?) 들어가야겠다고 생각하게 될까요? 요컨대 이번 출산장려 캠페인 광고는, “생활의 안정”이나 “사교육비”라는 현실적 문제는 제시하면서, 그에 따른 해답은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광고를 본 순간, 수년 전 개인적인 출산경험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습니다.
 
당시 모 대행사에 근무하고 있던 저는 아이를 낳고 출근하자마자 날벼락 같은 통보를 받았습니다. 제가 취급하는 아이템이 갑자기 비중 없고 보잘 것 없는 아이템으로 바뀌어버렸다는 겁니다. 게다가 제가 총괄하던 업무는, 제 아래서 일하던 남자대리가 꿰차고 있었습니다. 기혼여성들이 출산 후 겪게 된다는, 말로만 듣던 황당한 사건이 제게도 일어났던 거였지요.
 
대행사의 성격상, 비중 없는 아이템이란 ‘매출’과 직결되는 일이고, 이는 ‘실적 저조’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지요. 결과는 뻔한 것이었습니다. 한동안의 맘 고생과 그보다 더한 좌절의 쓴맛을 보며, 시련의 세월을 모질게 견뎌냈습니다. 지금은 그때의 악몽을 극복하고 이렇게 어엿하게 다른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지만, 그때의 참담했던 기억은 아마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짐작조차 못할 겁니다.
 
이 사회에서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또 임신을 했다는 이유로, 직장에서 험하게 생존하고 있는 여성들이 얼마나 많은 차별을 감내하고 또 강요 받고 있는지요.
 
그런데 이번 출산장려 공익광고 캠페인을 보면, 마치 요즘 출산율 저조현상이 오로지 여성 본인의 사고방식과 선택의 문제라는 듯이 보여집니다. “이기적인(?)” 여성들을 향해 ‘어서 생각을 바꾸어서 아이를 낳으라’고 캠페인을 하는 것인데, 어디 현실이 그런가요?

출산율 저조의 원인으로 꼽히는 것은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기혼여성들의 출산기피 현상과, 높아가는 남녀의 평균 결혼연령 때문입니다.
 
가정과 일을 양립하기엔, 현실이 생각보다 훨씬 더 처절하다는 것을 이미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대한민국 여성들. 현실이 이러할 진데 누군들 결혼을 빨리 하고 싶어할 것이며, 또 결혼한들 아이를 낳는 것에 대해 흔쾌히 결단을 내릴 수 있을까요?
 
임신하는 순간부터 회사에 눈치가 보이고, 또 얼굴에 철판 까는 심정으로 아이를 낳은들 누가 맡아 키워주며, 어렵게 누군가에게 양육을 맡긴들 그 비용 또한 어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이래도 출산과 양육이 개인적인, 특히 여성들이 생각을 바꿔야 할 문제로 치부되어야 할까요?
 
언젠가 신문기사에서 출산과 관련한 프랑스의 정책이 소개되었는데, 요점인즉슨 “출산과 육아는 나라가 책임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공익광고 캠페인의 메시지처럼, 아이가 ‘나라의 미래고 국력’이라면, 출산과 육아에 대한 본격적인 정책지원이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둘째 낳고 셋째 나으면, 수당 주고 보육비 보조해 주는 수준이 아닌, 여성인력의 경력이 단절되지 않도록 보육과 양육을 책임져 줄 현실적 지원이 절실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개인, 혹은 가정의 ‘이기주의’ 발로인 것처럼 취급해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수년 전 직장에서 받았던 불이익으로 인해, 맘이 또 울컥했나 봅니다. 적어도 공익광고라면, 캠페인의 주요 대상이 되는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는 이번 졸작광고를 대폭 수정하던가, 그만 내보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신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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