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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에게는 엄마를 낳아줄 딸이 필요하다’
주말에 엄마가 다녀갔다(‘어머니가 다녀가셨다’는 표현보다는 감정적으로 이게 더 정확하다). 오늘 아침, 엄마는 혼자 고속버스를 탔다. 결혼한 이후 처음, 아마도 태어나서 처음일 것이다, 그런 장거리 여행은.
학교와 직장문제로 내가 집을 떠난 이후 부모님이 나에게 늘 그래왔듯이, 나 역시 그녀가 탈 좌석을 살피고 버스가 떠날 때까지 손 흔들며 서있었다. 그녀는 버스 안에서, 계속 들어가라고 손사래 쳤다. 엄마와 외할머니의 모습이 겹쳐진다. 왠지 눈물이 난다.
지난 토요일, 엄마는 외가 친척결혼식을 핑계로 서울에 왔고, 엄마 이모 나 셋이서 ‘놀았다’. 서울에 있는 이모 ‘별장’에서. 어머니와 딸의 관계를 그린 영화 "애자"의 한 장면
엄마는 극장티켓 하나도 끊을 줄 몰라 영화 볼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장시간 버스를 타는 것도 꽤 긴장을 요하는 나이가 되었다. 아이를 낳아서 기르고 세상에 보내고 다 키워놓은 뒤, 평범한 엄마가 깨닫게 된 것은 그런 것들이다. (아빠는 다른가. 아빠는 엄마의 활동영역을 제한하고 자신에게만 전적으로 의존하게 했다. 하지만 그런 엄마 없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 세상에서 가장 약하고 어리고 의존적인 남자다).
최악의 경우에는 내 아이가 낳은 아이를 키우고 돌보면서 여생을 마쳐야 할 수도 있다. 나는 그게 여자의 일생 최악의 시나리오라고 생각한다.
어렸을 때 엄마 친구모임에 따라가서 혼자 놀다가, ‘나이가 들어도 마음은 늙지 않는구나’ 라는 사실을 알았다. 사십이 되고 오십이 되어도, 엄마는 누군가에게 어린 딸이고, 수다 떠는 친구이고, 소녀처럼 호기심이 많은 ‘여자’다. 나도 그렇겠구나 하고, 뭔가 어렴풋하게 희망적인 느낌을 가졌던 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커서 자라니, 부모와 아이 역할이 바뀌었다. 이제 내가 엄마를 세상으로 다시 꺼내주어야 할 차례인 것이다. 그리고 뭔가 항상 세상에 화가 나 있는 아빠와 세상을 화해시켜야 할 것 같다. 어르고 달래서.
어렸을 때 읽었던 <여자의 일생>이 생각난다. 아주 오래 전이지만, 책을 덮었을 때의 그 느낌이 아직도 몸 어딘가에 아프게 남아있다. 그리스도의 손에 박힌 못 자국처럼, 오래되었지만 생생하게.
최근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와 윌리엄 포크너의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를 읽었다. 과연 엄마는 죽어서나 자기 이름을 찾을 수 있고, 죽어서나 자신의 존재를 드러낼 수 있는 존재인가. 꼭 그런 것만은, 그렇지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아베 피에르 신부는 <단순한 기쁨>에서, 우리는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 태어났다’고 했다. 나 아닌 누군가를 나보다 더 사랑할 수 있다는 것, 물리적으로 독립된 개체이지만 서로가 서로의 일부이기에 늘 함께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사랑으로 묶여있고 세상과도 그것을 나눌 수 있다는 것. 그런 사랑을 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최고로 의미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한다.
엄마는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사랑했다는 뜻이다. 그녀가 베푼 사랑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희생이 아닌 기쁨과 행복으로 그녀의 삶을 기억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가 세상이나 사람들에 대해 가지고 있는 사랑, 또 내가 받은 사랑을 엄마에게 그대로 전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가 나에게 준 사랑이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도록.
지금까지는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좋은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좋은 딸’이 되기 위해 갖춰야 할 것이 많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첫째로 운전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다.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나고 싶어졌다. (서은주)
[독자기고] 부모교육이 반공교육?/박은진 평택에서 사라져가는 것/유가현 소외를 낳는 정책이미지/김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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