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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근처 겨울 산에서  
 
매서운 겨울추위가 한풀 꺽인 요즘, 다시 집주변 산을 오르내리고 있다. 눈 내린 다음날엔 나무도 길도 산도 온통 은빛으로 반짝였는데, 며칠 지나 들러보니 완연히 다른 모습이다. 남쪽 사면에 자리 잡은 삼림욕장에는 오후의 따뜻한 햇살로 벌써 봄기운이 느껴질 정도다. 입구 쪽 나무들은 이고 있던 눈을 털어내고 한결 몸이 가벼워 보인다. 길 위를 두텁게 덮고 있던 눈도 거의 자취를 감추었다. 시작부터 미끌어질까 신경을 곤두세우며 걷지 않아도 되니 몸도 마음도 부담 없다.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나간다.
 
부산스런 사람들, 말 없는 나무들
 

약수터에 물 길러 온 사람들, 함께 놀러 온 가족들, 무거운 배낭을 지고 가는 등산객들, 조심스레 걸음을 옮기는 산책나온 노인들, 산의 초입부는 사람들로 부산스럽다. 그 틈에 나도 끼었다.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며 느린 걸음으로 걸었다 멈췄다 하며 산을 올랐다. 길이 아닌 숲 바닥에는 아직도 녹지 않은 눈이 두터운 담요처럼 덮혀 있다. 때때로 작은 눈덩이가 나뭇가지에서 녹아내려 툭툭 발 아래 떨어진다. 눈이 반쯤 녹은 길을 걷고 있으면 ‘사각사각’하는 상쾌한 소리가 난다. 길이 미끄러워 잠시 멈춰 서서 가져온 지팡이를 꺼내 들었다. 질퍽거리는 진흙탕 길에 고맙게도 누군가가 낙엽을 부어놓았다.

많은 나무들이 잎을 잃고 우두커니 서 있는데 참나무, 팥배나무는 겨우내 물기를 잃고 누렇게 변한 잎들을 아직도 잔뜩 매달고 있다. 사실 겨울 산에서는, 봄을 기다리며 숨죽이고 있는 나무인지, 이미 생명을 다한 고사목인지, 낙엽 지는 나무들은 구분이 어렵다. 그래서 ‘나 살아 있소’하고 나름의 방식으로 외치고 있는 걸까? 소나무와 잣나무 같은 바늘잎 나무들이 그 와중에도 푸른 빛을 유지하고 있어 황량한 겨울 산에 생기 있는 빛깔을 안겨준다.

잎을 잃은 나무들은 언뜻 보면. 이 나무가 저 나무 같다. 가까이서 수피를 찬찬히 살펴보아야 굴참나무인지, 신갈나무인지, 졸참나무인지 분간이 된다. 그럼에도, 개성 있는 껍질을 가진 굴참나무나 아카시나무가 아닌 다음에야, 나무랑 여간 친하지 않으면 잎도 꽃도 열매도 없이 가지만 뻗고 있는 나무를 수피로만 알아보기는 쉽지 않다. 그나마 수 년째 다니는, 익숙한 동네 산이다 보니, 나무들의 자리를 눈으로 대략 익히고 있는 터라, 그들을 알아볼 수 있는 것 뿐이다.

누군가 라디오를 시끄럽게 들으며 산길을 내려간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산행하는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나 예의도 없고, 산 속 다른 생명체들에 대한 관심이나 애정도 없는 사람들을 산에서 종종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는 오직 자신의 이기적 즐거움만 중요하니 유감스러운 일이다. 그래도 오늘은 ‘야호!’를 연발해 대거나 여럿이 몰려 다니며 소란을 피우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다. 내가 겨울산을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들 중 하나가 바로 이런 불쾌한 사람들을 그나마 덜 부딪칠 수 있다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려나. 바로 그때, 바위를 ‘찌익찌익’ 긁고 있는, 지나던 이의 아이젠 소리가 신경을 곤두서게 한다.
 
인간이라 부끄럽다
 

동네사람들의 놀이터이자 휴식처인 산 아래쪽을 벗어나면 곧바로 바위돌길로 이어진다. 햇빛 속에 환한 바위들은 보송보송 말라 있어 걷기에 나쁘지 않다. 조심조심 바위 계단을 밟고 올라가다 보면, 널따랗고 평평한 바위가 햇살 아래 졸고 있다. 잠시 숨을 고르고 뒤돌아보면, 내가 살고 있는 복잡한 아파트 촌이 눈 아래 펼쳐진다. 아파트들 사이에서 삐죽이 튀어나와 있는 고층건물들, 쓰레기 소각장 굴뚝에서 하얀 뱀처럼 꿈틀꿈틀 뿜어져 나오는 연기가 유독 시선을 잡는다.

그래도 주위를 빙둘러 회색도시를 보듬어 주는 넉넉한 산들이 고맙다. 그리고 미안하다. 누구는 산을 희생하는 어머니에 비유하며, 무엇으로 되갚아야 할지에 대한 고민 없이, 무조건 인간을 위해 내어주는 후덕함만을 예찬한다. 그 꼴이 참으로 뻔뻔스럽다. 다행히도 아직 난 그 정도로 낯이 두껍지는 못하다. 언제까지 산에게, 자연에게 빼앗기만 할 것인지... 정말 인간이라서 부끄럽다.

널따란 바위를 지나면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수 년 전 처음 이 길을 걸었을 때는 소나무 사이로 구불구불 좁다란 오솔길을 살그머니 지나가야 했었다. 등산객이 많아지다 보니 여기저기 도처가 길이 되었다. 게다가 여름폭우까지 가세하니, 소나무 뿌리가 허옇게 밑둥을 드러낼 정도로 흙이 패이고 패였다. 이제 소나무들도 겨우 제 한 몸 지탱하며 아슬아슬 서 있을 뿐, 흙을 품을 힘이 없다. 이들 모두 쓰러져 누울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햇살이 창살처럼 내려꽂히는 숲 속 빈터가 덩그러니 들어설 것이다. 또, 흙은 더욱더 쏜살같이 이곳을 빠져나갈 것이다. 흙먼지가 휘날리는 가파른 비탈길, 불편하고도 위험한 길이 들어설 것이다. 그때 아마도 우리 인간은 당당히 계단을 들여놓으며 자연극복의 힘을 과시할 것이다. 그리고 아무런 불편없이 소나무는 잊게 될 것이다. 물론, 소나무와 함께 얼마나 무수한 생명체들이 사라져갔는지에 대해서는 궁금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미 만들어진 길을 따라 걷는 것만도 산은 부담스럽다. 그래서 산을 찾을 때에는 이미 주어진 길을 존중하려 애쓴다. 낯선 산을 오를 때에는 미리 등산로를 숙지해 숲 속을 헤매지 않도록 조심하고, 알고 있는 산길을 걸을 때에도 길이 아닌 곳에 길을 내지 않도록 경계한다. 준비 없이 무작정 산에 와서는 길을 잃어 마구 산 속을 헤집고 돌아다니다 온 것을 멋진 모험인양, 남들이 가지 않는 새 길을 개척한 것이 대단한 업적인양 과시하는 어리석음은 없어야겠다. 또 혼자만의 조용한 사색을 즐긴다면서 길이 아닌 숲을 정처없이 배회할 자유를 더 이상 이 시대의 인간들에게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동안 자연이 인간에게 허락해 준 길만으로 감사할 일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사색케 하는 겨울 산
 
조금 높이 올라가니, 숲 속의 눈도 그대로지만, 길 위의 눈도 그대로다. 쌓인 눈을 밟을 때마다 ‘뽁뽁’ 하는 소리가 재미나다. 산 속의 봄은 한참 더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산길을 오가는 사람 소리만 무성할 뿐, 주위 어디를 둘러보아도 새 한 마리, 작은 짐승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
 
지난 봄, 잠시 마주쳤던 그 뱀은 낙엽 수북히 덮힌 땅 속에서 편안한 잠에 빠져 있을까? 지난 가을 다람쥐들이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고 부지런히 모아둔 그 도토리들, 땅 속 깊은 곳에서 다들 무사할까? 궁금하다. 이 산에 살고 있다지만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족제비, 두더지, 소쩍새는 또 어디서 웅크리고 있을까?

인간의 시야를 벗어난 겨울 산의 보이지 않는 ‘속’은 내 호기심을 자극하는 수수께끼 같은 공간이다. 하지만 다른 무수한 생명체들에게는 안심하고 쉴 수 있는, 평온한 안식처임을 안다. 우리가 의식하건, 못하건, 땅 속은 생명들로 가득하다.
 
속의 풍성함에 비해, 겨울산의 거죽은 황량해 보인다. 오히려 황량한 만큼 숙연해지는 아름다움이 있다. 눈에 보이는 것이 부족하니, 보이지 않는 것을 사색케 하나 보다. 겨울산만 피해 다니던 나도 어느덧 겨울 산 예찬자가 되어 버렸다.
 
늙어가는 숲

 

채 녹지 못한 눈을 덮고 있는 바위 위를 걸을 때면 더욱 긴장하게 된다. 높이 올라갈수록 바람이 차고 거세다. 평소 즐겨 머무는 바위 위에서 한숨 돌리고 주변을 휘 둘러 보았다. 겨울 산이라서 침엽수림과 활엽수림의 모습이 분명하게 구분되어 드러난다. 우리 숲에는 늘푸른 나무는 확실히 줄어들었다. 낙엽지는 참나무들이 번성해나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숲이 나이가 드나 보다.

가까운 곳에 정상을 두고도 차가운 겨울바람에 쫓기듯 서둘러 하산 길에 나섰다. 산을 찾는 것이 꼭 정상을 밟기 위함은 아니니까. 내가 자연의 일부라는 것, 인간 이외에도 수없는 생명체와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 떠올릴 수 있는 것으로, 그것으로 충분하다.

내려가는 길에 어디선가 ‘삐잇, 삐잇’ 하는 새소리가 귀 속을 파고든다. 동고비인가? 반갑다. 좀더 내려가니, 예쁜 새가 나무에 매달려 ‘뀻뀻’하며 울고 있다. 말로만 듣던 바로 그 오색딱따구리! 머리에 빨간 무늬를 가진 숫컷이다. 지난 가을에도 참나무 위를 ‘딱딱’ 쪼고 있던 쇠딱따구리를 본 적이 있다. 딱따구리가 살아가려면 죽어가는 나무가 필요하고, 죽어가는 나무를 딱따구리가 쪼아대다 떠나가면, 나무의 본격적인 분해가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딱따구리는 나무에게 죽음의 사자인 셈이다. 확실히 우리 동네 산 아래 참나무들이 죽어가고 있나 보다. 딱따구리들이 하나 둘 늘어나고 있는 걸 보니.

하지만 나무가 죽는다고 숲이 늙는다고 애석해 할 필요는 없다. 딱따구리의 부리에 묻어온 곰팡이균이 나무를 분해하고, 이어 나무 속에는 온갖 곤충의 애벌레가 자리잡고, 버섯이 자라나고, 애벌레를 먹고 둥지를 틀기 위해 새들이 날아오고 버섯을 먹으러 짐승들이 모여들고... 숲은 이제 새로운 식구를 받아들일 것이고,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것이다. 그렇게 자연은 변화한다.

반가운 마음에 오색딱다구리를 향해 카메라 셔터를 눌러 본다. 새는 비웃듯 이 가지 저 가지로 날렵하게 자리를 옮기며 날아가 버린다. 상관 없다. 산이 이곳에 있는 이상, 우리는 또 만날테니까. 언제 또 산에 올까? (이경신) 일다 www.ildaro.com
 
*함께 읽자. 데이비드 스즈키와 웨인 그레이디 <나무와 숲의 연대기> (김영사,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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