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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한 ‘시간강사’의 자살이 고발한 비정규교수의 현실② 
 
1000일 미사가 있고 며칠 후, 나는 다시 <대학강사 교원지위 회복과 대학교육 정상화 투쟁본부(이하 ‘투본’)> 농성장을 찾았다. 마침 월례회의가 진행 중이었다. 회의에 참석한 대여섯 명이 2인용 텐트에 몸을 웅크리고 무릎을 맞댄 채 일정을 논의하고 있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을 소개받았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학부모회, 서울대 대학생 사람연대 등 단체도 있고 개인자격 참가자도 있다. 이들은 현재 교육과학기술부를 비롯한 교육기관과 여러 대학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날도 1인 시위 장소와 일정을 점검하고 있었다.
 
‘학습권’을 지키기 위해 농성장을 찾는 학생들
 

▲투본 농성장 앞에서 진행된 대학생사람연대 간담회© '투본' 제공

참가자 중에는 학생이 많았다. 100여명이 참석한 지난 미사에도 학생들이 반수를 이루었다. 왜 학생들이 시간강사 문제에 관심을 갖는 걸까. 1인 시위 하는 국민대 홍선미 학생을 만난 적이 있다. ‘교원지위 회복, 대학생 학습권 보장’이라 새겨진 피켓을 들고 그녀는 대학 정문 앞에 서 있었다.
 
“처음에 학교 들어와서, 대학에 왜 왔지? 라는 고민을 많이 했어요. 대학 수업도 기대했던 것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더라고요. 지금 대학은 단지 취업하는 데 필요한 스펙을 쌓는 또 하나의 교육기관이라 느껴져요.”
 
홍선미 학생의 말에 고려대를 자퇴한 김예슬씨가 떠오른다.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에서 ‘큰 배움도 큰 물음도 없는 대학大學 없는 대학에서 나는 누구인지, 왜 사는지, 무엇이 진리인지 물을 수 없다’는 대학에 일침을 던지며 떠나는 이도 있다. 그리고 대학 안에서 교육을 변화시키려 애쓰는 이들도 있다.
 
“고민을 계속하다가 작년 11월에 김동애, 김영곤 선생님 간담회를 우연히 참석했는데 제가 가졌던 의문에 답을 얻게 되더라고요. 학교에서 그냥 취업하는 방법이나 현실과 동떨어진 이론들을 가르치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그런 걸 가르쳐 줬으면 좋겠어요. 선생님들이 교원지위를 가지고 있어야 가르치고 싶은 걸 가르칠 수 있잖아요. 학교에서 1인 시위 계속하고, 관심 있는 주변 친구들에게 이 문제를 알리려고요.”
 
교원 지위 관련 법안 ‘3년 째 국회 표류 중’
 
교원 지위 회복과 대학생의 학습권, 이 둘의 관계를 김영곤 씨는 강조한다.
 
“강사의 교원 지위가 없어진 지난 30년 동안, 학교 내 수업에서 다양한 의견을 듣는 게 불가능해졌어요. 학생들은 자기 자신의 문제나 사회 문제를 헤쳐 나가는 교육을 받지 못하는 거예요. 옳은 말 하는 강사들이 다 불이익을 받아버리니 입을 다물고 있는 거죠.”
 
자신의 고용을 유지하기조차 급급한 강사들이 소신 있게 강의를 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학교 측의 압력이 아닐지라도 임용과 다음 학기 강의 계약을 염두에 두며 자기검열을 하는 실정이다.
 
“교원 지위 회복이 첫 단추예요.”
 
김동애씨는 교원 지위 회복이 처우개선과 인간적 대우, 최소한의 권리를 얻기 위한 방안일뿐더러, 피가 고이듯 동맥경화에 걸린 교육을 여는 하나의 단추가 될 것이라 말한다. 그러나 3년 째 교원지위 관련 법안은 국회를 떠돌고 있다. 지난 17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상정도 못한 채 폐기됐고 18대 국회에서도 다를 바 없는 처지에 놓여있다.
 
‘우수강사’ 선정 되도 정규직 전환 안돼
  

▲1000일이 넘게 농성을 계속해 온 텐트 ©투본 제공

강사 신분을 보장하는 내용의 고등교육법 개정안이 난항을 겪는데 비해, 얼마 전 사회통합위원회(이하 ‘사통위’)는 주 9시간 이상, 5년 연속 강의한 강사에게 전업강의 교수로 교원지위를 부여하는 내용을 발표했다. 사통위의 발표를 희망적으로 보는지 김동애씨에게 물었다.
 
“수도권 대학은 거의 한두 강좌를 주거든요. 사통위의 발표에 해당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는 얘기예요. 강사를 구하기 어려운 지방에는 있겠죠. 그런데 작년 경험으로 보면, 이번에도 강의시간이 주 9시간 이상인 강사들이 강의를 빼앗길 거라고요.”
 
오히려 시간강사들 간에 지위가 나뉘고, 고등교육법 개정 문제가 묻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한다. 김동애씨가 언급한 ‘작년 경험’이란, 비정규직 보호법안 시행 2년 후, 대학들이 2년 이상 강의를 한 시간강사들을 대량 해고한 사태를 말한다. 계약직 노동자를 2년 초과해 고용하는 경우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법률 규정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해고당한 시간강사의 수가 확인 가능한 112개 대학에서만 1219명이다.
 
그해 겨울, 강의를 잃은 강사 한 명을 만났다. H대에서 2년 동안 교양과목을 가르치던 그는 강의평가가 좋아 우수강사로 선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다음 학기 강의를 배정받지 못했다.
 
“저 같은 경우는 운이 좋았죠. 2년은 다 할 수 있었으니까요 2년도 채우지 못한 경우가 비일비재하죠. 얼굴은 뵌 적 없는데, 담당 교수님이 전화를 주셨더라고요. 우수 강사로도 선정됐는데, 더 강의를 주고 싶지만 본부 측에 알아보니까 안 된다고 하더라. 다음에 다시 한 번 기회를 드리겠다. 의례적이겠지만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발화점이 어느 순간에 오지 않을까 해요”
 
인터뷰 내내 그는 평온했다. 6개월 단위로 채용되는 시간강사에게 계약해지는 당연한 일인 듯 보였다. 게다가 젊은 강사들은 시간강사를 교수가 되기 위해 잠시 거치는 관문 정도로 여겼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작년 해고된 강사 수는 전국적으로 5천여 명에 이를 거라 추정됐지만 해고에 맞서 싸운 강사는 거의 없었다.
 
미사에도 투본 집회에도 시간강사들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회의에 참석한 투본  사람들의 평가는 희망적이다. 성균관대 송환웅 교수는 주변 강사들의 분위기를 전한다.
 
“이번에 서정민 박사가 돌아가시고 진상위원회가 생겼는데도, 이쪽(투본)으로 추모금을 보내오는 강사들이 있어요. 우리 활동을 지켜본 거죠. 이런 사람들이 우리의 백그라운드가 되는 거라 생각해요.”
 
그럼에도 나는 이 낡고 작은 텐트에서 어떻게 계속 싸워나갈 수 있는지 걱정이 됐다. 그런 내게 김동애 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한다.
 
“강사들이 이 싸움을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는 걸 서정민 선생님 유서를 통해 알 수 있었어요. 그런 강사들이 존재하니까. 지난 999일 보다 남은 999일은 좀 희망적이지 않을까요? 발화점이 어느 순간에 오지 않을까 해요.”
 
농성 텐트 위로 후드득 비가 떨어졌다. 눈과 바람과 비를 맞은 텐트이지만 아직 견고하다. 농성장 안에는 비도 새지 않고, 바람도 불지 않는다. 국회 앞에 줄지어 섰던 다른 농성장들이 모두 철거된 지금, 투본 농성장은 홀로 남아있다.
 
[김동애, 김영곤 교수 인터뷰]
대우교수로 7년 6개월, “시혜 베풀었다”는 대학에 맞선 10년

▲1000일이 넘게 농성을 계속해 온 텐트 ©'투본' 제공

‘투본’의 텐트에는 그간 세월을 짐작하게끔 온갖 취사도구와 생필품들이 갖춰져 있다. 바람과 비를 맞으려 몇 겹을 쳐놓은 비닐에 가려진 문 때문에 들어가는 것부터 쉽지 않다. 이곳에서 3년을 버틴 김동애 본부장과 김영곤씨, 이 부부의 나이는 예순이 넘는다.
 
김동애 본부장은 2001년 부당한 계약해지에 맞선 법정 투쟁을 시작으로 10년을 대학을 상대로 싸워오고 있으며, 투본 활동을 함께 하고 있는 남편 김영곤 씨는 노동운동 출신으로 현재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어떻게 싸움을 시작하셨나요?
 
김동애: 저 같은 경우는 대우교원이었어요. 대우교수는 교과부에 정식 전임강사로 이름을 올리고, 실제로는 전임 대우 없이 강사료를 2배만 주는 편법이에요. 92년 3월에 일 년 단위로 학교 측과 계약을 했어요. 그렇게 일 년을 하면 대부분 정규직 교수를 시켜준다는 주변 말과 다르게 대우교수로 7년 6개월을 보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강사료가 반절 줄어 나온 거예요. 학교 측에 물어보니, 당신은 이제부터 대우교수가 아니라 강사라는 거예요. 저는 그때, 강의만 하다가는 내 연구 작업을 못하니까 한 학교에서만 강의해야지 하면서 다른 대학들을 정리했단 말이에요. 그런데 갑자기 강사료만 나온 거예요. ‘적어도 사전에 나한테 이야기 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 당신네들이 잘못된 거다’ 그랬더니 학교에서는 ‘7년 6개월 동안 시혜를 베풀었다’고 하는 거예요.
 
-계약을 했던 건데, 그걸 시혜라고요?
 
김동애: 네, 그래서 소송을 했어요. 직위 해제 및 감봉 무효 소송을 했죠. 그런데 강사는 법적지위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 당했어요. 기각되고 이 사안을 노동부에 가져갔어요. 고등교육법에서 강사의 법적지위가 없다면, 근로기준법에서 강사의 지위는 어떤지 묻기 위해서요.
 
그 당시에 시간강사는 단시간 노동자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퇴직금은 못 준다고 했어요. 정규직 교수도 강의 시간으로만 본다면 일주일에 9시간 정도예요. 강사도 연구 시간과 학생 지도 시간을 고려해줘야 하는 거지요.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해 인권위에서 ‘강사는 차별 받고 있다, 제도 개선․신분 보장 해야 한다’는 권고안을 받아냈죠. 거기까지 5년이 걸렸어요.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지 않기에 교원지위회복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여기까지 온 거예요.
  

▲ 고려대학교 앞에서 1인시위를 하고 있는 김영곤씨 ©'투본' 제공

-대학 강의도 포기하시고 싸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셨을 텐데요
 
김동애: 주변에서 제가 무슨 큰 반역죄를 저지른 거처럼 굴었어요. 친구들이 다 대학에 있는 사람들이었는데 전화조차 못하고, 재판을 하는 일 년 동안에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오랫동안 강사 생활을 하면서 제가 가장 나이 먹은 선배였어요. 후배들에게 고용불안이나 부당한 처우에 대한 불만을 많이 들었죠.
 
소송을 시작할 즈음, 이제 더 이상 강의를 할 때가 아니다 라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할 만큼 했으니까 후배들을 위해서 이 문제를 고쳐야 한다. 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서 10년 동안 싸움을 해 왔죠.
 
-대학 강사의 ‘교원지위회복’ 요구와 더불어 대학생의 ‘학습권’ 보장도 주장하시던데요. 어떠한 맥락인가요?
 
김영곤: 특강 때 외대 학생이 왔는데, 뭐하고 싶냐 하니까 정규직이 되고 싶대요. 강의 끝날 즈음에 학생이 ‘사실 저는 남미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싶어요’ 하는 거예요. 젊었을 적에는 정규직을 하고 은퇴 뒤에 하고 싶은 일 하겠다는 거죠. 하지만 ‘사오정’도 그렇고 사회가 이 사람의 정신적 건강을 그때까지 내버려두지 않는다고요. 그저 꿈일 뿐이지.
 
외대 학생에게 그 꿈을 바로 실행해봐라 했어요. 남미 가는 프로젝트가 있으면 응모도 해보고, 배낭여행도 기회가 되면 가보고. 수업을 하다, 꿈이 뭐냐고 물으면 자기 꿈이 뭔지 말 못하는 학생들이 반 이상이에요 심지어 자기 취미가 뭔지 모르는 학생들도 많아요. 강사가 옳은 말을 한다고 불이익을 주면 안 되니까, 최소한의 교원지위가 필요한 거죠.
 
김동애: 몸의 윤활유가 필요하듯, 교육은 사회의 윤활유이자 동맥과 같아요. 지금은 구조적으로 동맥 경화가 되도록 만들어지고 있어요. 학생들은 스펙만 쌓고 나만 생각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시민단체, 인권단체 실무자를 보면 심하면 40살 먹은 사람이 제일 어리다고 하더라고요. 저항하고 비판하는 문화가 없으니까 그게 대학에서 안 되니까, 재생산이 안 되는 거예요. 젊은 피가 순환이 안 되는 거예요.
 
굳이 정규직이 돼서 살아야만 행복한가요? 행복의 가치를 다시 만들어 가야지요. 지식 기반 사회에서 인간의 행복은 과연 무엇인가가 교육의 주제가 되어야 하는 거예요. 인간다움이 뭔가. 나만 정규직 되는 것이 답이 아니라.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대학 안에서 많아져야 해요. 교원지위 회복이 됐을 때 그런 조건이 형성될 수 있어요. (르포 작가 _ 희정[이어진 기사 보기] ‘노예’가 된 비정규 교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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