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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나들이(23) 감자, 좋아하나요? 
 
“일에 치인 주부들은 가능한 어떤 방도를 찾아야 했다. 바로 감자가 그 방도 가운데 하나였다. 주부는 감자를 구입하거나 캐 물에 씻어 껍질을 벗겨야 했지만, 다른 식사준비보다는 손이 훨씬 덜 갔다. 감자는 주부가 냄비에 넣고 한동안 잊고 있어도 별 문제가 안 되었다.” (래리 주커먼, 감자이야기, 지호, 2001, ‘음식혁명’)
 
▲ 한창 감자 수확철인 요즘, 감자가 가장 맛있을 때이다.  © 출처: <강원감자큰잔치> 홈페이지 (
bigpotato.co.kr)   
 
감자 열 알을 삶았다. 내일 아침에는 감자 샐러드를 넣은 빵으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할 생각이다. 평소라면 밥을 고집했겠지만, 날씨가 더워 몸의 움직임도 줄어든 요즘, 식사에 변화를 줘 보기로 한 것이다.
 
삶은 감자를 으깨서 물기를 뺀 오이, 마요네즈를 넣어 만드는 감자 샐러드는 어릴 때부터 내가 좋아하는 요리지만, 유제품을 멀리해오면서 나의 감자 샐러드는 달라졌다. 마요네즈를 넣는 대신 올리브유와 잘게 다진 샐러리를 넣는다. 이렇게 간단히 만든 샐러드를 살짝 구운 빵에 올려 먹으면 아침식사로도, 간식으로도 훌륭하다.
 
그러고 보니 내 유일한, 감자샐러드의 경쟁자가 떠오른다. 대학시절 키우던 고양이 ‘깨비’. 머리부터 꼬리까지 검정과 갈색의 멋진 꼬임 무늬를 과시하던 고양이. 이 녀석은 감자 샐러드를 준비하는 순간부터 샐러드 그릇을 주시하며 기회를 노리곤 했다. 결국 깨비 차지가 된 샐러드 그릇은 설거지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반짝거렸다. 감자를 좋아하는, 특히 찐 감자를 즐기는 고양이가 있다는 걸 책에서 읽은 적이 있다. 어쩌면 깨비가 감자 좋아하는 고양이였을까? 찐 감자를 줘보지 못한 것이 뒤늦게 아쉽기만 하다.
 
사실 나는 책 속의 고양이처럼 감자요리 가운데 찐 감자를 제일로 친다. 요리법도 단순하지만 그 어떤 감자요리보다 ‘제대로’ 감자 맛을 즐길 수 있어 좋다. 또 나처럼 불 위에 냄비를 올려놓고 종종 잊어버리는 사람에게도 그다지 치명적이지 않다. 껍질이 타버린 감자도 고소하고 무척 맛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찐 감자는 내게 어머니의 미소를 추억하게 한다. 어머니는 오랜 투병으로 종종 식욕을 잃곤 하셨는데, 찐 감자만큼은 잘 드셨다. 다른 가족들이 찐 감자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내가 곁에 머물러 있을 때가 아니면 어머니가 찐 감자를 맛볼 기회는 없었을 것이다. 단 둘이 마주보고 앉아 찐 감자를 즐기던 여름나절의 기억. 어머니께서 이 세상을 떠난 지 한참의 시간이 흘러간 지금에도 난 그 기억으로 행복하다.
  
“감자껍질이 얼마나 맛있고 영양가도 높은데”
 

아주 어릴 때부터 감자를 좋아해서 평소에도 즐겨 먹는 편이었지만, 껍질까지 먹을 생각은 하지 못했다. 껍질이라면 까서 버리는 것이 당연했다. 그런 내게 ‘감자껍질도 먹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사람은 바로 미국인 친구였다.
 
기숙사 식당에서 찐 감자를 먹고 있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가 불쑥, “그 껍질,  내가 먹어도 될까?”하는 것이 아닌가. 접시에 수북하게 벗겨놓은 감자껍질을 가리키며 태연하게 말하는 통에 난 당황스러움을 미처 표현하지도 못했다. “그래”라는 내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그는 순식간에 감자껍질을 맛나게 먹어치웠다. 그리고는 빙긋이 미소 지으며, “껍질이 얼마나 맛있고 영양가도 많은데.” 했다. 아마도 그때, 나는 꽤나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그 날 이후부터 바로 감자껍질을 먹게 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요즘은 껍질째 감자조림을 하거나 감자를 찌면 껍질째 먹기도 한다. 껍질을 먹을 때마다 그 친구의 이야기가 떠오르지만, 그의 말대로 껍질이 정말로 맛있지는 않다. 어떨 때는 너무 뻣뻣해서 씹다 뱉어버리기도 한다. 그래도 ‘먹을 수 있다면 껍질까지 먹는 것이 좋은 식습관이지 않을까?’하고 그냥 생각한다. 물론 햇빛을 받아 푸른빛이 도는 감자껍질은 솔라닌이라는 독성이 있어 먹지 않는 것이 좋겠지만.
 
소박하지만 맛좋은 감자요리들
 

▲ 래리 주커먼의 책 <감자 이야기> (지호, 2001) 표지. 서구 역사 속에서 감자는 '악마의 선물' 이라는 부정스런 낙인이 찍히기도 했다. 

바로 그 시절,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는 동안, 난 매력적인 프랑스 감자요리를 알게 되었다. 그 이름은 ‘퓌레’.

 
“감자 껍질을 벗기는 건 가지치기나 돌 다듬기나 조각을 위한 기초작업과는 다르다. 껍질을 벗기고 나면 감자를 뜨거운 물에 넣고 은근한 불에 익힌다. 그것들은 뜨뜻한 탕 속에 들어앉아 몸이 나른하게 풀리는 것을 느끼며 군말 없이 익어갈 것이다. 이십 분 뒤 불에서 내리고 물기를 뺀다. 그것들은 푹 물러져 있을 것이다. 그것들을 으깰 것. 느닷없이, 급하게. 짐짓 화난 척하면서. (...) 튼튼한 포크로 으깬다. 욕을 퍼부으면서 으깨고 또 으깬다. 완전히 으깨지면 뜨거운 우유를 붓고 잘 저어준다. 덩어리 없이 쫀득하고 부드러운 노란 진흙이 될 때까지 세차게 저어야 한다. 지방이 과포화상태가 아닌 사람은 버터를 넣어도 괜찮다. (...) 접시에 담는다. 사람들이 맛보기를 기다린다. 소금간 하는 것을 잊지 말도록. 우유를 넣을 때 소금도 같이 넣어주어야 한다. 누가 맛을 보고 뭐라 하거든 그 낯짝에 퓌레를 퍼부어 주라. 퓌레는 그러려고 만드는 거니까.” (앙리 쿠에코, 감자일기, 열림원, 2001, '1988년 12월 25일‘)    
      
화가 앙리 쿠에코가 전해주는 퓌레 요리법을 읽다보면 절로 웃음이 난다. 그렇게 만들면 된다. 만들기가 어려운 것은 아니다. 대학식당에서 퓌레는 거의 단골메뉴였다. 퓌레를 구역질날 듯 싫어하는 친구도 있긴 했지만, 난 따뜻하고 부드럽고 고소한 퓌레가 늘 좋았다. 지금은 우유를 먹지 않으니 퓌레와의 인연도 끝이다.
 
프랑스에서 만난 또 다른 감자요리, ‘물-프리트’도 겨울의 서늘함을 멀찌감치 달아나게 해주었던, 내가 즐기던 요리였다. 프랑스 북부지방 음식인데, 버터, 샐러리, 양파와 함께 삶은 홍합을 감자튀김이랑 함께 먹는 것이다. 북부의 가난한 어촌마을 사람들이 즐겨먹었을 법하다. 우리 돈으로 5-6천 원 정도라서 가난한 유학생도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식사였다. 레스토랑에서 먹는 음식 값이 대개 2-3만원 정도였으니, 학생식당 다음으로 값도 무지 싼 편이었다. 혹시 프랑스를 여행하게 된다면, 소박한 식당에 들러 꼭 ‘퓌레’와 ‘물-프리트’를 맛보라고 적극 권하고 싶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한 감자
  

이렇게 조리법도 간단하고 맛도 좋고 영양도 많았던 감자가 16세기 서구사회에 유입되어  거의 400여 년 동안 얼마나 무시당하고 모욕당했는지!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래리 주커먼의 책 <감자 이야기>를 펼쳐들면 된다.
 
성서에 먹을거리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악마의 선물이 되고, 담배와 같은 가지과 식물이라는 이유로 존 러스킨과 같은 대단한 학자에게도 불경스런 식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부와 권력을 가진 상류층 사람에게 감자는 하층민을 나태하게 만들고 타락시키는 의심스러운 먹을거리였을 뿐이었다. 어이없는 일이지만, 키우기가 쉽다는 이유에서였다.
 
짐승에게도 줘서는 안 되는, 아니 짐승에게나 줘야 할, 또 짐승 같은 인간들에게나 줘야 할 천박한 음식으로 비하된 감자. 하지만 편견과 의심으로 가득 찬 인간들의 그릇된 잣대로 재단되기에 감자는 너무나 고마운 먹을거리다. 좁고 척박한 땅에서도 풍성한 결실을 안겨주었을 뿐만 아니라 칼슘, 비타민 A, D를 제외한 영양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어, 다른 다양한 먹을거리를 구할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기적의 양식이었다.
 
배고픔과 영양실조로 고통 받아 온 사람들을 구해내고, 끝도 없는 일에 지친 주부의 일손을 거들어주었던 것이 감자의 참 모습이었다. 우유, 버터, 치즈 등의 유제품과 어우러진 감자요리가 유럽 서민의 요리로 정착된 것, 지극히 당연해 보인다.
  
감자에 온갖 험악한 시선을 다 보내던 서구에서와 달리, 19세기 한반도를 찾은 감자는 보급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한다. 먹을 것이 풍족치 않던 지역, 특히 강원도에서 감자는 주된 식재료로 자리 잡았다. 강원도의 감자전, 옹심이, 감자떡, 생각만 해도 군침이 넘어간다. 순전히 내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프랑스의 감자 요리도 강원도의 감자요리에 비할 수는 없다고 본다.
 
감자 맛을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이 세상을 떠난 유럽 상류층 사람들이 안 됐다. 아, 물론, 나도 감자즙 만큼은 도저히 적응하기 어려운, 못 먹을 맛이라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몸속의 기생충을 내쫓고 싶다면 그 즙을 한 사발 쭉 들이키면 도움이 된단다. 기생충들도 그 맛이 끔찍해서 우리 몸을 떠나버리게 될 것 같은 맛이지만, 아무튼 회충약으로 효과가 있다고 한다.
 
지난 하지 무렵, 땅에서 감자를 캐서 맛볼 기회를 얻었다. 하지 감자의 맛이란! 그 맛을 잊지 못해, 베란다 한구석에 감자를 그득 채워놓고 여름을 나고 있다. 그때그때 간식이 되었다, 주식이 되었다, 밑반찬이 되었다 한다. 그럼, 오늘도 감자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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