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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신의 도서관 나들이(28) 제인 제이콥스의 사색 속으로
주말 오후, 도서관 열람실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책 읽을 분위기가 아니다. 앉을 자리조차 없어 책을 검토하기도 쉽지 않았다. 바로 자리를 뜨고 싶었지만, 꼭 읽어보고 싶은 책이 있어 줄을 서서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나는 서둘러 책을 끼고 북새통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번에 내가 빌린 책은 제인 제이콥스의 <자연과 경제의 대화(전남대학출판부, 2008)>다. 이 책은 플라톤의 대화를 연상시키는데, 경제와 자연 생태에 대한 진지한 사색의 길을 흥미롭게 열어준다.
타이타닉 현실주의의 비극적 운명
▲ '모든 경제성장은 인류를 멸망의 길로 내몰기 때문에 중단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더글라스 러미스는,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고집하는 입장에 ‘타이타닉 현실주의’ 란 이름을 붙이고 비판한다.
내가 제인 제이콥스의 책을 찾게 된 것은 얼마 전 읽었던, <경제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풍요롭지 못할 것인가(녹색평론사, 2002)>라는 제목의 책 때문이다. 이 책에서 저자 더글라스 러미스는 전 지구적인 위기에 직면한 인류가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서, 경제성장이 아니라 민주적 분배에서 문제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경제 밖에서 풍요를 새롭게 고민하길 제안한다.
그에 의하면, 지속가능한 개발이건 지속불가능한 개발이건, 모든 경제성장은 인류를 멸망의 길로 내몰기 때문에 중단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제로성장’의 입장을 지지하고, ‘타이타닉 현실주의’를 비판한다.
‘타이타닉 현실주의’란 지속적인 경제성장을 고집하는 입장에 러미스가 붙여준 별명이다. 빙산이 아직 눈앞에 보이지 않으니, 타이타닉호를 계속 전속력으로 운행하는 것이 현실적이고, 타이타닉호의 엔진을 멈추라는 요구는 비현실적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타이타닉호가 끝내 빙산에 부딪쳐 비극적인 종말을 맞듯이, 경제성장의 미래 역시 이와 다르지 않다는 것이다.
경제성장의 미래도 암울하지만, 현재도 다를 바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경제발전이 가져다주는 물질적 풍요는 모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경제개발은 새로운 욕구와 필요를 만들어내며 빈곤을 가중시킨다고 본다. 예를 들어, 자가용이나 인터넷을 이용해야만 생활이 원활하도록 해놓고, 자가용이 없는 사람, 인터넷을 사용할 수 없는 사람을 새로운 빈곤층으로 몰아넣는 것.
비록 그가 지적하는 경제성장의 부정적 측면을 공감한다고 할지라도, 지속가능한 경제개발을 인정하지 않고 모든 경제개발을 지속불가능한 것으로, 타이타닉 현실주의로 몰아붙이는 러미스의 극단적인 입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당혹스럽다. 비록 당장의 성장중지가 힘들다는 이유로 그가 ‘반개발(counter-development)’를 거론하고 있지만,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반개발’과는 차이가 난다. 후자는 자유시장경제의 지속불가능한 개발에 반대하기 위한 것이다. 노르베리-호지는 파괴적이지 않은 개발이 가능하다고 믿으며, 지속가능한 개발를 통해 재앙을 극복하자고 외치고 있다.
과연 러미스의 말대로, 지속가능한 경제개발은 불가능한 것인가? 경제와 생태, 경제와 정치는 서로를 배척하는 다른 것일까? 자연생태를 지키고 민주적 분배를 위해서는 경제를 부정해야 하는 것일까? 제인 제이콥스의 사색 속에서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경제와 생태는 함께 갈 수 있다
▲ 제인 제이콥스의 책 <자연과 경제의 대화>(전남대학출판부, 2008)의 표지
제인 제이콥스는 러미스와 달리, <자연과 경제의 대화>에서 ‘경제발전은 계속되어야 하고 계속될 수 있다’고 단언한다. 그녀는 경제와 생태는 함께 갈 수 있다는 입장이다. 노르베리-호지가 나쁜 개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개발도 있다고 이해했듯이, 제이콥스 역시 나쁜 경제만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경제도 있음을 보여준다. 그녀는 경제성장을 위해 자연을 지배하고 파괴하려는 사람들과도, 자연을 지키기 위해 경제성장을 거부하려는 자들과도 거리를 둔다. ‘자유시장경제’를 지지하지도, ‘제로성장’을 지지하지도 않는 그녀를 ‘지속가능한 개발’의 지지자로 분류해도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제인 제이콥스에 의하면, 인간은 자연 질서의 한 부분이다. 인간이 두뇌와 손의 능력을 자연에서 받았듯이, 그 능력의 한계 역시도 자연으로부터 정해진다고 보았다. 인간이 자연을 이해하고 존중한다면 인간의 경제가 지속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인간경제의 의미도 자연 질서에 동참하는 데서 찾는다.
자연의 질서는 분화를 통한 상호간의 ‘질적 발전’, 에너지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용을 통한 ‘양적 확장’, 자기유지를 위한 ‘자기보급’이라는 과정을 거치고, 그 과정에서 끊임없이 ‘자기 수정’을 해나가면서 만들어진다. 인간 경제도 자연과 마찬가지로 발전, 확장, 지속, 수정의 과정을 밟는다. 이 과정을 통해 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통합된다. 경제가 이와 다른 과정을 거친다면, 바람직한 경제가 될 수 없는 것으로 본다.
예를 들어, 성, 인종, 계급, 종교 등의 차이를 이유로 개개인의 창의성에 제한을 가한다면, 경제발전에 장애가 될 것이다. 또, 값비싼 농기구, 제초제와 살충제 같은 화학물질, 트럭, 광, 헛간을 지을 공사자재 등을 수입해서는 환금작물을 키워 바로 수출해 버린다면, 에너지를 빠르게 흡수하고 방출하는 사막처럼 경제를 꾸리는 것이다.
반면, 풍부한 생명체로 인해 에너지가 복합적으로 이용되어 느리게 흐르는 열대우림처럼, 다양하고 복잡한 경제활동이 넘치는 도시라면, 또 수입대체를 통해 다음 수입을 위한 지출을 준비하며 성장하는 도시라면, 자연을 통해 경제를 제대로 배우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인구밀도가 높은 거대도시의 경제확장을 높이 평가했던 제인 제이콥스의 견해는 비판적으로 검토해볼 여지가 있다.)
시행착오 거듭하며 나아가기
▲ 인간이 자연의 질서에 동참한다면, 자연을 지키는 경제발전이 계속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제인 제이콥스. © 사진 출처: whatwesee.org
자연이 그렇듯, 경제 역시도 ‘역동적 안정’을 추구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불안정하다. 경제가 불안정해지면 급격한 변화를 도모해야 하고, 자연재해와 같은 비상사태가 발생하면 적절한 대응책을 찾아야 한다. 샘이 부족해서 수로를 만들고, 견인용 동물 대신에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이 바로 급격한 변화의 사례다. 하지만 이 변화가 연쇄적으로 안정을 강화시켜주기도 하지만 불안정의 악순환에 빠져들어 체계를 붕괴시키기도 한다.
자동차가 늘어나 교통이 혼잡해진 경우를 생각해 보자. 도로가 충분하지 못해서 교통이 복잡하다는 판단에서 도로를 더 건설하게 되고, 도로가 늘어나니 사람들은 자동차를 더 구입하게 된다. 자동차가 증가함에 따라 도로는 다시 혼잡하게 되고 환경오염, 질병유발 등 다른 문제까지 더해진다. 이처럼 사태를 잘못 판단하게 되면 치명적인 결과를 유발할 수도 있다.
경제 불안정을 항상 성공적으로 극복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제인 제이콥스에 의하면, 자연의 질서란 미래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예측하지 못하면서 현재를 조직화해나가는 중에 만들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이나 인간이나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다.
그녀의 생각대로라면, 미래가 불확실한 만큼, 인간의 미래는 파국을 맞이할지, 발전을 계속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싶다. 인간이 파괴를 억제하고 불안정을 수정할 능력만큼이나 자연을 파괴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으니까. 인간이 생태적인 좋은 경제나 반생태적인 나쁜 경제를 꾸릴 수 있는 능력 둘 다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생각해 봄직하다.
다만, 확실한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면서도 인류가 종말에 이르지 않고 경제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면, 그것 역시도 자연이 준 인간의 능력에서 기인할 것이다. 그리고 그 능력은 바로 수치심, 책임감을 느낄 수 있는 윤리의식에서 찾아야 하지 않을까? 인간이 자연을 존중해 자기 능력을 사용하고, 좋은 경제, 지속가능한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윤리의식이 아닌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아무튼 자연에서 배우는 경제에 대한 제인 제이콥스의 낙관주의에 귀가 솔깃하지만, 좋은 경제가 무엇인지 알아가기 위해 우리는 앞으로도 수많은 시행착오를 해나가야 하고, 최악의 미래를 벗어날 확신도 가질 수 없다. 그래서 타이타닉의 비극적 운명에 대한 경고를 한귀로 흘리기 쉽지 않은 것이다. (이경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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