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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김수진의 ‘Over the rainbow’ 인터뷰칼럼 (18)
‘인터뷰칼럼’이라는 독특한 형식으로 동성애자 여성의 기록을 담은 ‘Over the rainbow’ 코너를 통해, 필자 박김수진님이 가족, 친구, 동료,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며 레즈비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줄 것입니다. 이 칼럼은 격주로 연재됩니다. -편집자 주
<인터뷰 칼럼>의 열여덟 번째 주인공 '제이'님을 소개합니다. 지금까지 만났던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은 저와 오랜 시간동안 인연을 맺어왔던 분들이랍니다. 이에 반해 제이님과 저는 이제야 막 관계를 만들어 가고 있는, 그래서 다소간은 어색한 관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이님은 <인터뷰 칼럼>을 통해서 소개해드린 저의 파트너와 절친 사이랍니다. 파트너의 친구로 처음 인사를 나누었고, 아주 가끔 만날 기회가 있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인터뷰를 부탁드리는 것이 어렵고, 부탁하는 마음이 무거웠는데, 정말 흔쾌하게 청을 들어주셨습니다.
마냥 편안하기만 한 관계가 아닌데도 굳이 제이님을 인터뷰 하고 싶었던 이유는 제이님의 활동들에 관해 궁금한 것들이 많아서였답니다. 제이님은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10대 거리이동 상담 활동을 하고 있고, 고등학교에서는 상담교사로 일을 하고 있거든요. 지난 9월 4일, 제이님과 저는 서울 상수동 모처에서 만났습니다. 먼저,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렸습니다.
<스톤월 항쟁>에 관한 영화로 시작된 10대 상담활동
"서른 네 살의 여자입니다. 상담공부를 했고, 현재 고등학교에서 상담교사로 일하고 있어요.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 상담활동을 하고 있고요. 2007년에 <스톤월 항쟁>에 관한 영화를 봤는데, 마음속에서 '나도 뭔가 할 일을 찾아야 하는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러던 중에 아는 친구가 센터에서 10대 상담 사업을 하는데 사람을 구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주더라고요. 같이 해보자는 제안을 받고, 뭔가 나도 기여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불타올라서 2008년에 자원 활동을 시작했어요. 개인사정으로 2009년엔 활동을 지속하지 못했고, 올해에는 인턴 형식으로 약간의 인건비를 받으면서 다시 활동하고 있어요.”
지금까지의 경우, 인터뷰이들이 자신을 레즈비언으로 정체화하고 있는지, 양성애자라고 정체화하고 있는지, 특별히 무엇이다라고 정체화하지 않았는지 등에 관한 정보를 미리 가지고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왜 레즈비언인가요?"라는 질문을 먼저 하고, 인터뷰를 시작할 수 있었는데요, 제이님의 경우, 정체화 문제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고 계신지에 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먼저 정체성에 관해 포괄적인 이야기를 나누는 것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제이님, 정체성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해 볼까요?"
"저는 사람들에게 보통 '양성애자'다 라고 말하는 편이에요. 남자를 사귀어 본 적은 없지만, 남자를 사랑하는 것에 막혀 있지 않거든요. 하지만, 남자를 사귀는 경험을 선택하려고 애쓴 적도 없고, 그러니 그냥 레즈비언이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기도 하고 그래요. 굳이 표현을 해야 한다면, '레즈비언이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는 양성애자' 정도로 말할 수 있겠네요."
제이님의 경우, 스스로의 정체성 문제로 크게 힘들다거나 깊이 고민을 했거나 한 경험이 없었다고 합니다. 동성인 누군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것이 제이님에게는 매우 자연스러운 감정이었고, 스스로를 '레즈비언이라고 표현해도 큰 무리가 없는 양성애자'라고 표현할 수 있기까지의 과정도 순탄한 편이었다고 합니다. 제이님은 자신의 정체성을 하나로만 답하지 않는다고 하네요.
"현재의 상태에서는 레즈비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겠죠. 가끔 사람들이 '레즈비언인가?'라고 물으면, '네'라고 답해요. 하지만, '정확히 너의 성정체성은 무엇이냐?'물으면 '양성애자다'라고 답해요. 세상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레즈비언', '게이', '바이' 등의 분류와 명칭을 기준으로 답해야 한다면 그렇다는 거죠."
제이님도 [인터뷰 칼럼]의 열세 번째 주인공이었던 고리님의 답변과 매우 유사한 답변을 주셨어요. 고리님도 이런 답을 주셨죠.
"어떤 사람을 만나든 양성애자의 정체성을 가지고 만나는 건 아니에요. 나는 양성 모두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매력을 느끼기 때문에 스스로 양성애자라고 생각할 뿐이에요. 동성과 교제를 하는 동안 특별히 '나는 이성을 좋아하기도 하는 사람이다'라는 생각 자체를 하지 않아요. 억지로 생각을 하지 않는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정체성, 개념 문제를 대단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개념적으로' 생각하고 말해야 할 때 필요한 부분이라는 생각도 있어요."
거리에서 만난 10대 여성이반들
제이님은 현재 10대 여성이반을 대상으로 하는 거리이동 상담 활동을 하고 있답니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에서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늘푸른여성지원센터>에서 기금을 지원 받아 햇수로 4년째 서울 신촌 공원에서 거리이동 상담을 하고 있습니다. 제이님으로부터 거리이동 상담에 관해 조금 더 자세하게 들어 봤습니다.
"센터에서 2007년부터 시작한 사업인데,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운영하고 있어요. 서울 신촌 공원에서 10대 여성이반을 직접 만나면서 상담을 하는 활동이죠. 듣기에 2007년 활동이 굉장히 활발했다고 하더라고요. 요새는 공원에 10대들이 많이 모일 때도 있고, 적게 모일 때도 있고 그래요. 서울, 경기 지역에 사는 10대 여성이반들에게 신촌 공원은 만남의 장소와도 같은 곳이에요. 주말이 되면 많은 친구들이 모여 들죠. 그 곳에 가서 친구들의 고민도 듣고, 성교육도 하고, 급하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돕기도 하고 하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제이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동안 2004년에 제가 써 놓았던 글이 하나 떠올랐어요. 칼럼 중간에 넣기에는 다소 긴 글인데, 그래도 일부라도 꼭 소개를 해드리고 싶네요.
몇 명의 10대 여성들에게 말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매우 조심스러운 일이었지만, <한국여성성적소수자인권운동모임 끼리끼리>라고 크게 인쇄되어 있는 명함과 학생증을 동시에 내밀면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부탁을 받은 10대 여성들 중 다섯 명 정도의 사람들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박통 : 여기에 모인 사람들이 다~레즈비언인가요?
♀ 10대 레즈비언들 : 네. 모두 레즈비언이에요. 팬픽하는 애들이 있기도 해요.
♀ 박통 : 여기에서 술 먹고 그러면, 좀 위험하지 않아요?
♀ 10대 레즈비언들 : 이젠 큰 싸움만 일어나지 않으면, 신촌 경찰서 경찰들도 아무 말 안 해요. 자기들로 지겨운가 봐요.
♀박통 : 뽀뽀도 많이 하네요~용감하다.
♀ 10대 레즈비언들 : 언니도 해봐요. 별거 아니에요.
♀ 박통 : 매일 여기에 와서 놀아요?
♀ 10대 레즈비언들 :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학교랑 집에 묶여 있어야 하니까. 주로 토요일에 나와서 일요일까지 놀다가 들어가요. 매일매일 토요일만 기다리고 있어요. 엄마는 싫어하지만.
♀ 박통 : 집을 나온 사람들도 많다고 하던데요? 그럼, 어디에서 자나요?
♀ 10대 레즈비언들 : 엄마가 토요일에 여기 오는 줄 알고 못 나가게 하면, 애들이 “나, 레즈비언이야! 상관하지 마!”라고 소리를 지르고 가출을 해요. 재수가 좋아서 아는 언니들 집에서 자는 애들도 있고, 이 곳 공원 화장실이나 현대백화점 화장실에 가서 먹고 자고 사는 애들도 있어요.
♀ 박통 : 고생이 많겠네요. 제가 인권운동을 하는 단체에서 일을 하는데요, 만약에 우리 단체에서 10대 레즈비언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어떤 것들을 하는 것이 좋을까요?
♀ 10대 레즈비언들 : 몰라요.
♀ 박통 : 예를 들면, 공부 모임이라거나, 10대 레즈비언 전용 업소라거나....아참, 청소년이라서 레즈비언 업소에 가는 일도 쉽지가 않잖아요.
♀ 10대 레즈비언들 : 우린, 레즈비언 업소 가는 거 싫어요. 여기가 좋아요.
♀ 박통 : 왜요? 여기는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춥잖아요.
♀ 10대 레즈비언들 : 덥고, 추운 게 나아요. 거기에는 기둥이 너무 많아요. 거기 앉아 있으면 너무 답답해요.
♀ 박통 : 기둥이요?
♀ 10대 레즈비언들 : 아까, 언니가 언니 일하는 단체에서 뭘 만들어 주었으면 좋겠냐고 물었죠?
♀ 박통 : 네. 말해주세요. 뭐든, 노력해 볼게요.
♀ 10대 레즈비언들 : 하늘에요...하늘에다가. 우리가 눈치 안보고 뛰어 놀 수 있는 공원이나 하나 만들어 주세요. 아무 간섭도 안 받을 수 있고, 기둥도 없는 공원을 하나만 만들어 주세요.
* 출처 : 레즈비언 공동체의 새로운 가능성 모색을 위한 정/기/토/론/회 자료집 "레즈비언, 그녀들의 다름과 같음의 목소리들" , <레즈비언권리연구소>, 2004년 8월 14일 토요일 오후 3시
10대 레즈비언들이 "눈치 안 보고 뛰어 놀 수 있는 공원 하나 만들어 달라"는 말을 했을 때, 눈물이 났습니다. 그 당시의 제 마음을 뭐라고 적어야 할 지 모를 정도로 마음이 아팠던 기억이 있어요. 10대들이 뛰어 놀 수 있는 그 '공원'을 만들기 위해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를 비롯한 많은 단체들에서 노력하고 있고, 그 길에 제이님이 함께하고 있었군요. 신촌 공원에서의 상담 활동, 얼마나 많은 친구들이 어떤 문제들을 가지고 찾아오고 있는지 궁금했습니다.
"한 달에 2회에서 3회 정도 신촌 공원으로 나가고 있어요. 상담 부스를 차리지 못 하는 날에도 센터 활동가들 두 세 명이 홍보 활동을 나가고 있고요. 2008년에는 상담 부스가 별도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그야말로 그냥 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나 급하게 상담을 하고는 했어요. 하지만 거리에서 나누기 어려운 내용이거나, 조금 더 편안한 대화가 필요한 경우에는 근처 카페에서 이야기를 나눴죠. 올해에는 아예 텐트를 치고, 상담 부스를 별도로 마련했어요. 온전히 상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거리상담의 특성상 한 사람당 20분에서 30분 정도로 상담을 진행하고 있어요. 처음 시작할 때는 친구들이 그냥 놀러오는 이곳에 상담 부스를 차린들 얼마나 올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찾아와서 놀랐어요. 매우 심각한 상황 속에 놓인 아이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그저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찾아오는 친구들이 많았죠. 자신들의 이야기를 편하게 말 할 수 있는 공간이 없어서, 많이들 외로워하는 것 같아요. 정체성을 밝힐 수 없다는 문제 때문에 막혀서 입을 못 열었던 경험을 한 아이들이죠."
‘개인의 운’에 따라 달라지는 소수자의 삶
신촌공원에 안 나가본지도 오래 되어서 요즈음 분위기 어떤지, 제가 알고 있는 2000년대 초반의 공원의 모습에서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모여 있기만 해도 재밌나 봐요. 가끔 싸우는 친구들도 있기는 하지만. 매우 개방된 공간임에도 아이들은 공원에서 애정 표현도 자연스럽게 하고, 친구들하고 신나게 어울리고 하는 것 같아요. 그 공원 안에서 아이들은 두려움 없이 행동할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신촌 공원은 10대 친구들에게 '우리가 원하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우리의 공간'으로 자리 잡힌 것 같아요. 여전히 그 곳에 상주하고 있는 친구들도 있지만, 대체로 그곳은 '만남의 장소'로 기능하고 있어요. 일단 신촌공원에서 만나서 다른 장소로 이동을 하는 거죠. 대부분의 아이들이 이중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학교에서의 생활, 레즈비언으로서의 생활. 신촌 공원은 10대 여성 이반들의 해방구 같아요."
서울의 경우, 일부의 레즈비언에 해당하는 얘기이기는 합니다만, 70년대 레즈비언들에게는 '명동'이, 90년대 초반의 레즈비언들에게는 레즈비언 Bar '레스보스'가 일종의 '해방구' 역할을 했다면, 서울 신촌 공원은 10대 레즈비언들의 '해방구'인 셈이네요.
제이님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제가 중학교, 고등학교 학생이던 시절에 신촌공원과 같은 공간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에 그런 공간이 있었다면, 그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제가 알았다면 아마 저는 매일 그 곳에 찾아 갔을 것 같습니다. 그저, 같은 고민을 한 친구들이 있는 곳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매일 찾아가야 할 이유가 충분한 거죠. 뜬금없이 '내가 10대이던 시절에는 왜 그런 곳이 없었을까요?'라며 신세 한탄을 시작한 저에게 제이님이 이런 말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걸 생각하면 서글퍼져요. '운'이 너무 작용하는 것 같아요. 운이 좋으면 같은 상황의 친구들을 만날 기회를 가질 수 있고, 운이 나쁘면 아우팅 당하고 고생하고. 10대 이반이 어떤 분위기의 학교에 다니고 있느냐에 따라서 처지가 완전히 달라지잖아요. 동성애자들의 처지가, 상황이 이렇게 운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아, 그래서 우리가 소수자인 거구나'라는 거예요. 제도적인 장치하나 없이, 개인의 운에 따라 고생을 하느냐, 어떤 고생을 하느냐가 결정되어 버리고는 하니까요."
보수적인 상담가들의 세계에서
앞서 소개해드린 바와 같이 제이님은 고등학교 상담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오랜 시간동안 상담 공부를 해 왔고, 상담가로서의 일도 꾸준하게 해오고 있습니다. 예전부터 저는 상담계가 꽤 보수적인 동네라 들어왔답니다('보수'니' 진보'니 하는 개념들을 동성애자에 관한 문제에 연결 짓는 것이 매우 부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만). '레즈비언으로 표현해도 무리 없는 양성애자'이면서 심리상담가인 제이님이 상담계안에서 어찌 지내고 계시는지 물었습니다.
"불편한 일들이 종종 있죠. 일상적으로 커밍아웃을 하는 편인데, 언제 어디에서 다시 만날 지 알 수 없는 상담계 선생님들에게는 커밍아웃하기가 쉽지 않은 편이에요. 개인 상담을 받아도 커밍아웃 문제에 관해 끊임없이 생각하고, 갈등하고, 고민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집단 상담 안에서 커밍아웃을 하지 못 하는 경우, 남의 이야기만 잔뜩 듣고 내 이야기는 하나도 하지 못 하는 경험을 해야 하죠. 결국에는 고민 끝에 커밍아웃 하고, 그 결과가 나쁘지 않았음에도 커밍아웃 하기 전까지 항상 긴장하고, 갈등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는 것 같아요."
제이님에 따르면, 집단 상담을 소개하는 책들에 이런 말이 자주 등장한다고 합니다. '집단상담은 1:1 상담보다 내담자의 부담감이 훨씬 적은 상담 유형이다'라고요. 상담 공부를 하는 레즈비언들, 상담을 업으로 삼는 레즈비언들이 집단 상담에 참여해야 하는 경우들이 있을 텐데,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을지 상상할 수 있습니다. 처음 보는 사람들로 구성된 집단의 경우에는 더욱 그렇겠지요. 커밍아웃을 하자니 걸리는 부분이 너무 많고, 커밍아웃을 안 하자니 그 안에 앉아 있는 의미를 찾을 수가 없을 테고 말입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제이님으로부터 제이님이 재직 중인 고등학교에서의 상담활동에 관한 이야기들도 많이 들었습니다. 이를테면, 학교 분위기는 어떤지, 레즈비언이면서 상담교사인 위치에 관한 제이님의 생각, 학생들은 주로 어떤 내용으로 상담실을 찾는지 등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지요. 그런데, 아무래도 글로 풀기가 어려웠습니다. 제이님이 재직 중인 학교의 특성상 아무리 조심을 해서 기술을 하더라도 학교가 드러나는 문제가 있어서요. 좋은 이야기들을 많이 들었는데, 글로 풀지 못해 여러분들과 공유할 수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있기는 한데요, 그래도 이 글을 읽는 분들께서는 이 점, 충분히 이해해 주실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도움이 필요하면, 정보를 찾고, 상담가를 찾아가세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제이님께 상담을 필요로 하는 레즈비언들에게 조언 한 마디 해주십사 청했습니다.
"과거에 비해 상담가들도 많이 변했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답답한 부분이 많지만, 최소한 '동성애는 병이다'라는 식으로 접근하는 사람들보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아진 것은 분명해요. 물론, 상담가들이 더 많이 공부하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충분한 변화는 아니지만, 상담이 필요하다 판단하는 분들에게 꼭 용기를 내어야 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도움이 필요하면, 정보를 찾고, 상담가를 찾아가세요. 찾아가셔서 대화를 나누어 보니, 도저히 이 상담가와 상담이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면, 그때 다른 상담가를 또 찾아 나서는 겁니다. 나에게 맞는 상담가를 찾는 그 과정이 피곤할 수는 있지만, 그 과정 자체를 두려워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어요."
혹, 이 글을 읽는 서울 및 경인 지역 10대 여성 이반이 있다면, 그리고 주말이면 10대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는 10대 여성 이반이 있다면 주말에 서울 신촌 공원에 들러보시라 권하고 싶습니다. 거리이동 상담 부스에서 제이님도 만나보실 수 있고,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활동가들이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만들어 함께하고 있다니 마실 나가는 겸해서 둘러보셨으면 좋겠어요. 또 누가 알아요? 그 곳에서 좋은 친구들, 좋은 사람들 만나게 될 지 말입니다. 그리고 정체성 문제 등으로 고민하고 있는 레즈비언들에게도 상담이 필요하다면 조금만 더 용기를 내어 보시라 말씀드리고 싶네요. 그리고 제이님, 급작스러운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이렇게 많은 이들과 나누면 좋을 이야기들을 들려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종종 만나서 우리 사이의 어색함을 하나하나 내려놓아 보아요.
마지막으로 [인터뷰 칼럼] 구성에 약간의 변화가 있어 알려드립니다. 하반부에 오랜 시간 동거해 온 레즈비언 커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할 기획을 했었는데요,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인터뷰가 성사되지 않았답니다. 안타까운 마음이 들지만 그래도 언젠가 이분들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다시 오리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칼럼은 약 세 차례 정도 남았습니다. 두 차례에 나누어 '이성애자' 이거나 '이성애자일 지도 모를' 저의 가까운 '헤테로 친구들'을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인사 글을 남겨야겠지요. 그럼, 2주 후에 뵙겠습니다. (박김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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