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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장애여성, 숨은 그림 찾기(4) : 최규석 만화 『울기엔 좀 애매한』 

 

2011년 벽두에 잠시 길을 잃었다. 과연 나는 무얼 하고 있나, 이기심으로 똘똘 뭉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지금까지처럼 이 길을 갈 수 있을까 갑자기 자신이 없어졌다. 너무 달린 탓이다 싶어 다 내려놓았을 무렵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책이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만화였다.

 
작가 최규석은 어느 매체에도 연재하지 않고 단행본으로 이 책을 내놨다고 했다. 게다가 비싼 물감과 종이를 구입해 선화 작업을 한 뒤 일일이 수채화로 채색을 해 완성했단다. 그래서인지 여느 만화책과는 좀 달라보였다. 한 마디로 ‘만화책 같지 않은 만화책’을 선보이고 싶었다는 것이 작가의 포부였다. 만화에 대한 선입견을 불식하고 학생들이 책상 위에 당당하게 놓아둘 수 있게 하려는 전략이었다는데, 이 전략은 적어도 내 여덟 살 아들 녀석에게만큼은 통한 듯싶다.
 
“엄마, 이건 만화야? 그림책이야?” 아들 녀석은 우선 이 책의 그림에 관심을 보였다. 그리고 다음으로 제목에 주목했다.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게 도대체 무슨 뜻이냐는 것이었다. ‘애매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도통 감이 오지 않는 여덟 살 꼬마에게는 특히, 친절하지 않고 알쏭달쏭한 제목임에 틀림없었다. “애매하다는 말은 ‘잘 모르겠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다’는 뜻이다”고 설명해주고 나는 금세 만화에 빠져들었다. 그런 내 옆에 찰싹 달라붙어 책에 머리를 디밀고 온갖 참견을 하며 감상을 방해하던 녀석은 결국 내가 다 본 책을 넘겨받아 단숨에 독파했다. 같은 책을 읽고 또 읽는 아들 녀석을 보며 ‘만화책 같지 않은 만화책’의 위력을 실감했다.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

아들 녀석이 가장 재미있어 한 대목은 만화학원 교실에 있는 “악마티처”라는 낙서. 작가의 분신인 듯한 미술학원 정선생의 별명인 모양인데,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도 전인 아들 녀석이 왜 그 대목에 꽂혔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찌됐든 이 책은 ‘악마티처’ 정선생을 중심으로 한 입시미술학원 만화반생들의 ‘찌질한’ 삶을 가까이에서 조명하고 있다. 중년 아저씨의 외모로 인해 꽃미남 배우와 같은 이름을 불리길 싫어하는 ‘불가촉 루저’ 원빈, 좋은 대학에 합격하고도 입학금을 마련하지 못해 재수생이 된 은수, 예쁜 얼굴 덕에 술집에서 높은 시급을 받으며 학비를 버는 은지, 부잣집 딸로 재능이 없는데도 명문대 진학을 강요당하는 지현 등.

 
아이들은 만화가가 되겠다는 같은 꿈을 꾸면서도 미래에 대해 낙관하지도 그렇다고 절망하지도 않으면서 "별 사건도 없이 농담 따먹기"를 하며 지낸다. 그들은 '목숨 걸고 천민자본주의와 싸워왔다'고 떠드는 헌책방 주인에게 아르바이트 임금을 떼먹힐 뻔하며, 부잣집 아이의 포트폴리오를 위해 작품을 빼앗기고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않는다.
 
“인생 찌질한 게 무슨 자랑이라고 맨날 그렇게 웃고 떠든대?”
“그렇다고 울기도 좀 그렇잖아?”
“울기에는 뭔가 애매하더라고.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고...”
 
“웃거나 울거나만 있는 건 아니잖아, 화를 내는 것도 가능하지.”라는 정선생의 말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화를 내지 않는다. 작중인물인 재수생 은수의 말처럼 전쟁이 난 것도 아니고 고아가 된 것도 아니라 화를 낼 대상이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어릴 적 무수히 들었던 “너희들은 우리 어릴 때 비하면 호강이다” 하는 어른들의 말이 떠오른다. 그런 어른들 때문에 아이들은 화도 내지 못하고 울지조차 못한다.
 
자학을 웃음으로 승화시켜 현실을 견디다
 

작가는 특유의 자학개그와 위악독설을 통해 '돈도 재능'인 세상 때문에 상처받는 청소년들의 일상을 재치 있게, 그리고 예리하게 그려내었다. 작가 최규석은 곧잘 리얼리즘 작가로 일컬어지고 있지만 나는 굳이 그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렸다고 표현하고 싶지 않다. 그건 가능하지도 않으며 바람직한지도 잘 모르겠기에. 하지만 작가가 어디에나 있는 현실이어서 그리 극적일 것 없는 평범한 이야기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그리고 있음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한겨울에 보일러 기름 넣을 돈이 없는 거야. 끓인 물 페트병에 넣어서 끌어안고 자봤냐? 아침에 그 물로 샤워도 한다." "한 달 동안 초코파이만 먹어봤어요?" "참치캔 헹군 물에 라면 스프 넣고 끓여 먹어봤냐." "그거면 석 달은 먹죠" "40평 아파트에서 등교했다가 월세방으로 하교해봤어요? 인생이 자이로드롭입니다." "너 엄청 잘살았구나? 난 모태 빈곤이야. 어디서 깝쳐?"
 
작품 속 아이들은 누가 더 가난한가, 누가 더 못났나를 두고 서로 경쟁한다. 이들 세계에서 가난과 못남은 부끄럽거나 감춰야 할 일이 아니고 오히려 자랑거리처럼 보인다. 어쩌면 아이들은 스스로를 웃음의 대상으로 만들어 그러한 상황을 견디고자 하는지도 모르겠다. 돌아보면 우리 장애인들 사이에도 자학개그가 상당히 있다.
 
“흰 지팡이 든 시각장애인이 더 불쌍한가, 휠체어 탄 지체장애인이 더 불쌍한가?” “얼굴에 화상 있단 이유로 대학 나오고도 취업 한번 못해봤으니 내가 더 중증이다” "지하철에서 1,000원 받아본 적 없으면 장애에 대해 말하지 말라" "나 장애여성치고 예쁘지 않니?”
 
우리들 사이에서만 통하는 이러한 언어 속에서 우리는 장애인들이 불쌍하거나 외면당하는 존재로 취급받는 현실을 뒤집고 조롱한다. 우울하거나 절망에 지치는 대신, 치고 올라갈 힘을 얻는다는 점에서 나는 자학개그의 힘을 믿는 편이다.
 
최규석의 『울기엔 좀 애매한』은 우리사회가 관심 보이지 않았던 찌질한 엑스트라들에게 말을 하고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준 작품이라는 점에서 높이 평가할 만하다고 여겨진다. 작가는 자신의 가족을 직접 취재하여 쓰고 그린 자전적 이야기 『대한민국원주민』(2008년작)에서도 대한민국 60년을 소리 없이 그러나 건강하게 통과해온 '가난한' 보통사람들의 삶을 그린 바 있다.
 
작가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아마도 다음 작품 역시 아들 녀석과 함께 읽으며 한바탕 키득키득, 낄낄거리다 나와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사람들을 다시 돌아보게 할 것이기에. 그때까지 찌질하지만 그리 비극적이지만은 않은 인생을 견디며 지치지 않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어볼 참이다.  (백발마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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