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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20) 
 
희수에 대한 기억이 어떻게 진우형으로 이어졌는지는 모르겠다. 난 진우형을 잊었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오랜만에 형이 생각나다니…….’ 씁쓸한 감정이 잠시 마음을 사로잡는다.
 
졸업 즈음, 노동현장에서 문학운동을 해보겠다고 모인 사람들은 대학생들만 있었던 건 아니다. 모두 8명이었던 우리 모임에는 노동자 출신도 있었다. 그가 바로 진우형이다. 당시 그는 30대 초반으로 모임에서 가장 나이가 많아, 우리는 모두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진우형은 가난한 가정형편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했을 뿐이다. 그는 공장에서 잔뼈가 굵어, ‘아이롱 기술자’라 불리는 다림질의 전문가가 되었다. 우리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첫 시집을 출간한 직후였다. 진우형은 자신의 개인적인 삶을 보편적인 민중의 정서로 승화시킨 장편 서사시를 발표해 화제였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우리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다. 우리는 시를 잘 쓰는 그가 모임에 결합한 걸 영광스럽게 생각했지만, 나중에는 다정한 마음씨 때문에 그를 더 좋아했다.
 
지금은 사라진, 삼십여 집이 함께 사용하는 화장실이 동네 입구에 있는, 햇빛조차 잘 안 드는 진우형네 집에서 모이는 걸 우리는 좋아했다. 인정 많은 형의 어머니는 눈치 없이 드나드는 우리들을 항상 따뜻하게 맞아주셨다. 우리는 거기서 취직할 공단을 연구하거나 문예이론을 공부하곤 했다. 진우형을 통해, 노동현장의 현실을 좀 더 사실적으로 들을 수 있었던 건 정말 좋았다. 그러면서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걸 구체적으로 정해야 할 시점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공장에 취직할지, 아니면 외곽에서 지원 사업을 할지는 모두 각자 선택에 맡겨졌다.
 
당연히 난 진우형이 공장에 취직할 거라고 믿었다. 형은 당시 무슨 이유에서인지  공장을 그만 두고 잠시 쉬고 있는 상태였다. 그는 경험도 많고, 게다가 기술까지 있어, 취직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형 또한 공장에 다시 취직하겠노라고 늘 말했지만, 전혀 취직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우리는 진우형을 남겨 놓고 공장으로 갔다. 그 뒤에도 형은 공장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가 결코 공장으로 돌아가길 원치 않는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노골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막 출간한 시집을 발판으로 전업작가가 되고 싶어 했던 것 같다. 진우형 시의 감동은 노동자인 그의 정체성에서 나오는데, 노동자가 아닌 그가 감동적인 시를 쓸 수 있을지 의심스러울 뿐이었다.
 
더욱이 시를 통해 전업작가가 된다는 건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에서 시만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는 시집 한 권 출판한 걸로 자기 인생이 달라질 수 있다고 믿었던 것 같다. 아니, 다르게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그때는 그런 형이 정말 이해가 안 갔다. 그러나 그가 다시 공장으로 돌아가는 걸 왜 그토록 원하지 않았는지, 난 공장에 취직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단 몇 달을 했을 뿐인데도 도망가고 싶었던 그곳을, 형이라고 왜 그렇지 않았을까?
 
내가 공장을 나와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그리고 이혼을 한 뒤에도 진우형은 공장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그렇다고 다른 일을 한 것도 아니다. 시는 더욱 쓰지 못했다. 난 이혼을 하고 바로 대학원에 입학했다. 당시, 난 좀 많이 우울했던 것 같다. 학교와 집, 도서관을 오가며 공부만 했다. 한동안 친구들을 만나지도 않았고, 문학운동을 했던, 전남편과 함께 알던 사람들은 더더욱 만나지 않으며 지냈다.
 
그래서 진우형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잘 몰랐다. 아니,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렇게 수년이 지난 어느 날, 학교에서 돌아온 늦은 밤, 부모님은 ‘진우’라는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왔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나는 오랜만이라 형의 전화가 반가웠지만, 바로 답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난 그저 ‘뭐, 나중에 연락하지’하며, 무심하게 넘겼다.
 
그리고 꼭 일주일 만에 진우형의 부고가 전해졌다. 강에 스스로 몸을 던졌다고 했다. 그는 정말 다른 삶을 살길 원했던 것 같다. 그러나 출구가 보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형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었다. 결국, 심한 우울증으로 빠져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떠났다. 나는 형이 죽고 나서야 만사 제쳐 두고 달려갔다. 그러나 너무 늦은 뒤였다. 진우형한테 전화가 온 날, 바로 통화를 시도했더라면 어땠을까? 물론, 그의 죽음을 막을 수야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서둘러 형을 떠나보내지는 않았을 거라고 오랫동안 후회했다.
   
자기 고민에 겨워 주위 사람들을 살피지 못할 때, 곁에 있는 사람들은 비명조차 지르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었다. 진우형의 죽음은 이렇게 맥 놓고 있어서는 안 된다고, 좀 더 기운을 내 세상으로 나가야 한다는 걸 깨닫게 해주었다. 그렇게 나의 20대가 끝나고 있었다. (윤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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