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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www.ildaro.com 레인보우 도, 국경을 넘다(7)
 
 
[구한말 멕시코로 이주한 한인 4세이자, 미국 이주자인 레인보우 도(Rainbow Doe)가 말하는 ‘이주와 여성 그리고 국경’에 관한 이야기가 연재되고 있습니다. 분단된 한국사회에서 ‘국경’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고 시야를 넓혀줄 계기가 될 것입니다.]
 
내게 맞는 꼬리표를 찾을 수 없었던 미국 학창시절
 
내 부모님과 우리 가족은 미국-멕시코 국경을 사이에 두고 글자 그대로 갈라졌다. 어머니와 이혼 후 아버지는 교회 성가대에 그야말로 흡수되어 버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아버지는 신부의 입맛에 맞게 걸러진 성경 속 예수로 나를 대체했다. 아버지와 나의 관계는 껍데기만 남았고, 아버지는 내 감정에 대해 들으려 하지 않았다. 내게 있어 교회란, 언제나 아버지의 사랑을 빼앗아간 존재였다. 그래서 어렸을 땐 만화로 된 성경조차도 가까이 두는 것을 싫어했다. 성장해 가는 동안에도 교회와 성경은 내 눈에 보이는 유일한 악마였다.
 
그 다음으로 내가 맞닥뜨린 악마는 교육 제도였다. 국경을 건넌 후 영어를 처음으로 배우게 된 미국 학교에서, 나는 교육 제도가 규정한 흰색, 검정색, 갈색, 노란색, 빨간색의 고정된 카테고리를 벗어나 나만의 길을 뚫는 법을 터득했다.
 
학창 시절, 나는 나 자신에게 딱 맞는 꼬리표를 절대 찾을 수 없었다. 그게 어려운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내면을 향한 오랜 여정에서, 나는 인간에게 꼬리표를 붙인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며 그 이유는 꼬리표가 인간의 창작품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마찬가지로 국경, 카테고리, 인종, 계급 또한 전체를 분열시키고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들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발명품들 덕분에 이득을 얻는 집단은 <오즈의 마법사>에서 그려지듯 커튼 뒤에 숨어있는 난쟁이들이다. 양복을 빼입고 있는 이 난쟁이들은 서커스 텐트 속의 가짜 주술사들처럼 거짓된 힘으로부터 이득을 얻는다. 그리고 어두운 그림자만 좇는 자기중심적인 자손들을 대대로 번식시킨다.
 
국경, 계급 등 지금껏 구축되어온 구획들은 우리의 내면을 분리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여러 조직화된 종교는 사람들에게서 영성을 훔친 다음, 사람들이 자신의 영혼에 대해 이해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이렇게 영혼을 잃은 사람들을 이끌어줄 안내자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종교 관련 인사들은 그 과정에서 생기는 콩고물을 먹고 산다. 하지만 언제나 신과의 진정한 접속은 결국 우리 내면에서 이루어져왔다. 매개체는 필요치 않다.
 
종교와의 충돌, 그리고 인간의 또다른 창작품인 가부장적 사회구조는 나로 하여금 다른 길을 찾도록 만들었다.
 
할아버지의 유산, 오아하카 원주민의 문화
 

▲ 오아하카는 멕시코 남부에 있는 가장 주변화된 주(州) 중 하나이지만, 지구와의 관계를 지켜나가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멕시코 오아하카(Oaxaca)에서 자란 친할아버지는 나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씨앗을 심어주었다. 오아하카는 화산암과 강과 과수 나무들로 그득한 비옥한 땅이다.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일생을 보내셨고, 평생 동안 어린 시절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셨다. 그런 할아버지를 보며 나는 인생이 곧 꼬리표라는 믿음은 말도 안 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우리가 쿠에르나바카라고 부른 공간은 할아버지가 자식들과 손주들에게 물려준, ‘땅과 조화를 이루며 사는 인생’이라는 이름의 유산이었다.
 
2004년부터 나는 오아하카에서 믹스텍어(Mixtec)를 배우기 시작했다. 믹스텍어는 멕시코 원주민 언어 중 하나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내가 경험한 오아하카에 대해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는 일이 많았다. 어느 날 할아버지는 나에게 믹스텍 언어(멕시코 오아하카, 게레로, 푸에블라에 사는 현지인들이 현재에도 사용하는 언어)로 뭔가 말해보라고 시켰다. 내가 그렇게 하자, 놀랍게도 내 말을 알아들으셨다!
 
그때 나는 할아버지가 그간 숨겨왔던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되었다. 할아버지의 혈통 중 일부는 믹스텍이었던 것이다. 우리 가족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사실이었다.
 
이렇듯 나와 오아하카와의 인연은 우연이 아니었다. 선조들에게서 “몸이란 말의 성전”이라고 배웠기 때문에, 그리고 말을 공경하는 것이 곧 삶을 공경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배웠기 때문에, 나는 오아하카로 돌아가리라고 나 자신과 약속했고 그 약속을 지켰다.
 
미국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마치면서, 그간 내 연구를 위한 여행에서 만난 여러 공동체에서 얻은 지식을 공유하기 위해 오아하카에 갔다.
 
첫째로 나는 내 논문을 제본해서 믹스텍 친척에게 주었다. 옹기장이 가족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그들 제품의 카탈로그도 전달했다. 그들이 겪는 납 관련 문제에 대해 내가 쓴 기사와 소논문들도 전달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1980년대에 산타 마리아 욜로테펙(Santa Maria Yolotepec, 산타마리아 산의 심장 부분)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한 내 믹스텍 친구 이타 비코의 할머니의 삶을 기리는 의식을 올렸다.
 
믹스테카 알타의 한 마을인 오아하카 주 산타 마리아 욜로테펙은 18세기에 한 신부가 지옥으로 만들어 버린 곳으로,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버린 마을이다.
 
이 마을 노인들은 깃털 달린 뱀신인 퀘트살코아틀이 산에 살았다고 말한다. 이 곳에 살던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혹은 규칙적으로 올리는 의식에서 퀘트살코아틀의 영혼과 대화하는 방식으로 신에게 경의를 표하곤 했다.

  
▲ 산타 마리아 욜로테펙 산맥     ⓒ 레인보우 도 

스페인 침략과 주술사 여성에 대한 ‘마녀 화형’
 
그러나 스페인이 멕시코를 침략하고 그들의 복음을 전도하면서 질병과 기아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을 노예로 부리기 시작하자, 사람들은 서로에게서, 그리고 자신들의 뿌리에 등을 돌렸다. 살해당하지 않거나 노예가 되지 않은 주술사들은 몸을 숨겼다. 많은 귀족들이 자신들의 지위를 보호하기 위해 스페인과 결탁하고는, 자신들 스스로 새로운 노예주와 우두머리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 엘리트 앞잡이들은 유럽 가부장적인 신세계 질서가 멕시코와 여타 미대륙에서 보편화되는데 일조했다.
 
퀘트찰토틀은 산을 떠났다. 사람들이 더 이상 자신을 경외하지도 않고 서로의 삶을 존중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체계적인 빈곤이 뒤따랐다.
 
지역민들은 기생충처럼 사람을 노예로 만들어 먹고 살며 가능한 많은 자원을 약탈하고 강간까지 자행하는 교회의 권력 남용에 반기를 들었다. 이곳 저곳에서 저항의 움직임이 일었다. 하지만 이들의 힘은 부패한 교회와 무시무시한 지도자들과 맞서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그래서 저항은 도리어 더욱 심한 탄압으로 이어졌다.
 
이 역사적 과정을 되돌아보며, 나는 해당 지역의 진정한 영성에 기반을 두지 않은 저항은 순식간에 그릇된 쪽으로 방향을 틀어버린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욜로테펙은 주술사 여성을 화형에 처할 정도로 마을의 영성이 황폐해지는 데에 이르렀다. 예전에 주술사들은 나후알(멕시코 전통에 따르면 나후알은 종종 동물의 영혼으로 표현되는 신과 주술사의 중간 자아이다)을 통해 식물, 꿈, 테마스칼(Sweat Lodge, 북미 원주민들의 정화의식의 장소로, 오두막 가운데에 불에 달군 돌을 쌓아놓고 땀을 흘리며 기도를 올린다)을 이용해 치유를 행하곤 했었다. 그런데 이러한 주술사 여성 중 하나였던 피에다드 지메네즈 아벤다뇨와 산파 한 명이 1980년대에 마을 사람들에 의해 산 채로 화형을 당했다.
 
▲ 비교적 최근인 1980년대에 화형을 당한 주술사 여성 피에다드 집터에 있는 길과 사비노 나무 ⓒ레인보우 도

이 범죄는 해결된 적도, 조사가 이루어진 적도 없다. 이러한 잔학 행위 때문에 그 후로도 오랫동안 피에다드 가족은 악몽 같은 삶을 살아야 했다.
 
식민주의의 잔재는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는다. 식민주의는 되풀이되기는 쉽지만 되돌리기는 어려운 파괴적인 악순환의 성격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마녀 화형은 종교 재판 시대 이래로 흔한 관습이었다. 그리고 소위 ‘신세계’라는 것으로 모습을 바꾼 종교 재판은, 미대륙 본래의 영적인 전통을 말살하기 위해 쓰인 전략이었다. 문화의 전달자이자 땅과의 연결고리인 여성은 특히 더욱 심한 공격을 당했다.
 
정착한 스페인 병사들에 의해 “새롭게 섞여 개선된 종(메스티조)”이라고 정의된 원주민 여성들은, 폭력과 체계적인 억압의 첫 번째 표적이 되었다. 따라서 멕시코 사회에서 많은 힘을 가진 미혼 주술사 여성들은 사회적인 규범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종종 공동체에서 소외나 분노의 대상이 되곤 했다. 이는 아이가 있는 미혼 여성이나 과부에게 여전히 일어나는 일이다.
 
다른 마을에서도 주술사 남성과 여성이 살해당한 역사는 있다. 하지만 피에다드의 경우와는 다르다. 피에다드의 화형은, 마녀 화형의 기원과 관련되어있는 남성들의 역사를 은닉해온 주류 역사적 측면에서 봤을 때도 매우 최근에 벌어진 일이기 때문이다.
 
식민주의 잔재, 파괴의 악순환 끊으려면

 

▲ 오른쪽에서부터 이타 비코와 그녀의 가족, 그리고 ‘물의 여성’으로 참여한 나 ⓒ레인보우 도 

 
내가 최근에 오아하카에서 한 일들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것과 깊은 관련이 있다. 피에다드의 생을 기리는 의식은 아파치 주술사 남성이 주관했다. 이 의식은 우리를 초대한 피에다드의 장손녀 이타 비코에게 매우 큰 의미였다. 의식은 적어도 100년은 더 된,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비노(목테주마 사이프러스, 키 큰 상록수의 일종) 나무가 자라는 피에다드의 오래된 집터 옆에서 치러졌다.
 
산타 마리아 욜로테펙에서 행한 의식에서는, 피에다드의 화형과 관련된 일에 대해 대화하기 위해서 땅의 영혼을 부르는 의식도 진행되었다. 이는 사슴의 영혼과 페요테 선인장을 통해 이루어졌다.
 
의식은 밤새 이어졌다. 부패한 교회와 식민주의 앞잡이들로 인해 잊혀지고 저주받은 땅의 영혼들과 산타 마리아에 살던 사람들이 예전에 맺었던 약속을 되살리기 위해, 친구들과 가족들이 모두 하나가 되어 기도했다. 진정으로 우리의 영혼에 각인된 밤이었다.
 
나는 ‘물의 여성’으로 의식에 참여했다. 진심으로 물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는, 특히 산타 마리아 산맥을 관통하는 강을 위해 기도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금까지 해온 일과 내 삶의 모든 기억이 필요했다. 그날 밤, 나의 믹스텍 할아버지가 내 안에 심어놓은 씨앗이 내가 기도를 올린 물을 마시고 되살아났다. 그리고 주술사 여성으로서의 피에다드의 힘 또한 어떤 제한에도 구속 받지 않고 자유롭게 해방되었다고 느꼈다.
 
이 이야기는 끝없이 반복되는 이야기의 또 다른 시작점일 뿐이다. 그날 밤 치유된 것은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것이기도 했다. 한 사람에게 생긴 일은 전체에게 영향을 미친다.
 
건설적인 선순환은 바로 지금 여기에서만 시작될 수 있다.
 

[레인보우 도 기고권이은정 번역]  미디어 <일다> 즐겨찾기!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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