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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다> 윤하의 딸을 만나러 가는 길 (41) 내 커피포트 이야기
▲ 21년을 써 온 나의 커피포트 '뽀또' ©윤하
‘뽀또’가 죽었다. 뽀또는 내 커피포트의 이름이다. 커피포트의 ‘포트’를 좀 귀엽게 발음해서 ‘뽀또’로 이름을 붙였다. 며칠 전, 드디어 이 커피포트가 망가졌다. ‘드디어’라는 표현이 적당한 것이, 뽀또는 20년 전에 구입한 구닥다리 포트였다.
내가 결혼할 때 어머니께서 신혼살림으로 장만해 준 것들 중 하나다. 이것들 가운데 이불이나 찻상은 자주 쓰지 않아도, 아직도 이따금씩 사용하고 있고, 밥그릇이나 접시 같은 그릇들은 지금도 요긴하게 매일 매일 잘 쓴다. 그러나 늘 내 곁에 있는 것으로 뽀또를 능가할 만 한 건 없다.
이혼이 결정될 무렵 전남편이 보내온 내 신혼살림을 보며,
“내 딸 인생이 망가졌는데, 이까짓 물건이 무슨 소용 있냐! 불을 싸질러도 시원치가 않다!” 하며, 발을 동동 구르시는 어머니를 위로한 사람은 도리어 나였다.
“이 물건들이 어때서요? 이건 엄마가 제게 선물한 것이기도 하잖아요. 제가 다 좋아하는 것들이에요. 제가 쓸 거니까,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했다.
이건 단순히 어머니를 위로하기 위해서 한 말은 아니었다. 이 물건들은 전남편과 생활의 흔적이기에 앞서, 어머니가 내게 준 선물이었다. 난 이후에 이것들을 정말 잘 썼다.
그러나 어머니 물건만으로도 충분한 그릇이나 이불 같은 건 쓰지 않았다. 그걸 따로 잘 보관한 사람은 어머니셨다. 그것들은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따로 살림을 날 때, 갖고 와서 지금껏 쓰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이 물건들 중 뽀또는 유학길에 프랑스까지 가지고 간 물건이었다. 이런 걸로는 뽀또가 유일했다.
딸이 젖을 끊고 우유를 먹을 때, 난 이 커피포트에 물을 끓여 아이의 분유를 탔다. 그러나 이혼 후에는 별로 쓸 일이 없었다.
찬장에 처박혀 있던 뽀또를 다시 잘 쓰게 된 것은 프랑스에서였다. 특별히 이 커피포트를 너무 좋아해서 프랑스까지 가져간 건 아니다. 다른 물건들은 갖고 갈 형편도 되지 않았지만, 자취생활을 해야 할 타국에서 뽀또만큼은 요긴할 것 같아서 챙긴 것이었는데, 그건 정말 옳은 판단이었다.
남부 프랑스에서 어학연수를 할 당시 나는 한 노부부의 집에서 그들과 부엌을 같이 쓰며 살았다. 그 때 늦은 밤, 번거롭게 부엌을 드나들지 않아도 차를 마실 수 있었던 건 뽀또 덕분이었다.
나는 1년 뒤, 다시 뽀또를 들고 프랑스 북부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서도 1년 동안은 부엌이 지하에 있는 기숙사의 4층에서 살았다. 당시, 뽀또는 아침식사를 하기 위해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 수고로움을 덜어 주었다. 차를 곁들이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위해서는 뽀또면 충분했다.
그 뒤 방 옆에 부엌이 딸린 집으로 이사를 했다. 그곳에 살면서 뽀또는 그다지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이걸 가지고 귀국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뽀또보다 더 비싸고 소중하게 생각했지만, 주변 친구들에게 주거나 기증을 하는 등 들고 오지 않은 물건들이 많았다. 그러나 이번에도 뽀또만은 또 가져왔다. 그건 유학을 떠날 때, 어머니가 챙겨주신 대수롭지 않은 스테인리스 수저를 다시 들고 온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였다. 그 사이 목숨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준 물건을, 필요 없게 되었다고 해서 마음 편하게 버릴 수가 없었다. 다른 걸 하나 빼놓더라도 이 수저는 가져가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한 것과 똑같은 마음으로, 뽀또도 가지고 돌아왔다.
예상대로 한국에서 뽀또는 크게 소용이 없었다. 물에 씻기 편하고, 전기 값보다 싼 가스 불에 물을 끓일 수 있는 주전자가 흔하니, 뽀또는 다시 뒷전이 되었다.
그러다가 지난 가을부터 핫백을 사용하게 되면서, 다시 뽀또는 실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핫백과 뽀또에 담기는 물의 양이 같았고, 물이 끓기 직전에 자동으로 멈추는 뽀또는, 내가 신경 쓰지 않아도 핫백에 가장 적당한 온도의 물을 준비해 주었다. 그래서 핫백을 사용하며 다시금 뽀또의 능력에 감동하고 있었는데, 망가지고 만 것이다.
▲ 망가졌다고 해도, 20년도 넘는 시간 동안 내 삶과 동행한 뽀또를 그냥 버릴 순 없었다. 이리저리 살펴보다 가스 불에 올릴 수 있는 주전자로 만들 수 있었다. © 윤하
드문드문 사용하기는 했지만, 꼭 21년을 썼다. 그러니 뽀또에 대해서는 ‘망가질 때가 되었다’는 표현보다 ‘망가질 때가 한참 지났다’는 표현이 적당하다는 걸 모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뽀또를 쓰레기통에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밀려왔다.
이 아쉬움의 정체는 무엇일까? 드디어 구식 커피포트를 안 써도 되는데, 이제 뽀또보다 더 세련되고 성능 좋은 새로운 포트를 장만할 기회가 왔는데, 이런 쓸쓸한 마음은 무엇 때문일까?
결혼부터 시작해, 아이의 양육과 이혼, 유학과 그 이후 지금까지 20년도 넘는 긴 세월 동안 아주 가까이에서 내 삶을 동행한 뽀또가 단순하게 물건으로만 느껴지지 않아, 쉬이 버릴 수가 없었다.
나는 뽀또를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운이 있다면 다르게 쓸 수도 있을 것 같다. 망가진 것이니까 분해를 해본들 아쉬울 것도 없겠다싶어, 연장을 이용해 뜯기 시작했다. 나사를 돌려 플라스틱 장치들을 열고, 낡은 전선들을 끊어내고, 붙어 있는 나사들을 힘주어 떼고…….
얼마간의 시간이 걸려 마무리된 뽀또는 예상한 대로 꽤 쓸 만한 주전자의 모습이었다. 게다가 가스 불에서 찻물을 끓일 때 쓰면 좋겠다.
오후에는 뽀또에 물을 데워 차를 한 잔 마셔야겠다. 이렇게 좀더 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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