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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몸이 불쌍하다는 산부인과 의사 

 

 

여성의 몸과 산부인과 병원은 많은 연관을 갖고 있다. 어렸을 땐 출산과 관련한 것만 떠올렸지만, 이제 많은 ‘여성질환’이라 불리는 질병들을 산부인과에서 진료한다는 걸 알게 됐고 어떤 병원들은 성교육도 실시하는 걸 봤다. 특히 요즘은 산부인과들이 보다 많은 고객을 유치하기 위해서 십대들에게 손을 뻗치고 있다.

 

어떤 면에선 긍정적이다. 예전엔 순결 이데올로기와 낙태 시술 같은 이유로 산부인과 병원에 대한 이미지 자체가 안 좋아서 혼전의 여성은 산부인과에 대해 무지하거나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어릴 때부터 몸의 생리나 건강에 신경을 쓰고 몸에 이상증세가 나타났을 때 즉시 진찰을 받는 자세를 갖는 것은 개인적으로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허나 현재 관련업계라고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종사하면서, 그리고 ‘여성’으로서, 산부인과에서 과히 여성들의 몸을 한 인격체의 그것으로 존중하지는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불쾌한 산부인과 경험이 있는 여성이라면 동의할 것이다.


의사가 위압적으로 나오거나,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거나, 혹은 환자의 말을 제대로 들어주지 않거나, 몸을 함부로 대하는 느낌을 주는 경우는 비단 산부인과만의 문제는 아니다. 그리고 병원환경이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부인병’이나 출산 등을 다루는 산부인과에선 과도한 제왕절개술에서 볼 수 있듯이 위험한 시술을 아무렇지 않게 다반사로 하며, 과학적인 최근 연구들도 돈 되지 않으면 빠르게 받아들이지 않은 채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임신뿐 아니라 많은 부인과 질환에서 ‘성관계’ 유무와의 관련성을 이유로 의사가 환자와 임산부들을 불쾌하게 만드는 언사를 하는 경우들도 있다.

 

최근에 한 산부인과 의사와 만나서 개인적으로 이야기를 나눌 일이 생겼다. 남자 의사였는데, 대화를 시작할 땐 어쩌면 이 사람이 나보다 내 몸에 대해 더 잘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해당 분야에 궁금한 점들을 묻고 싶었다. 다짜고짜 그런 질문을 하는 건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에, “힘드시죠? 산부인과 일이요.” 이렇게 운을 뗐다.

 

그랬더니 이 의사가 자기 하는 일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늘어놓으면서 결론적으로 “여자들 몸은 참 불쌍하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여자 몸이 불쌍하다니, 뭐라고 설명하나 들어봤더니, 그는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몸에 대해서 정말 가엾게 바라보고 있었다. 산부인과 의사가 여성의 몸을 불쌍하게 여기다니, 게다가 그 말을 여성인 내 앞에서 하는 것을 보며 불쾌감이 느껴졌다.

 

여성이 임신, 출산을 하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서, 남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근력이 약하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서, 성폭력 위협을 받기 때문에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해서, 내가 그 의사보다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지만 한 번도 그렇기 때문에 여성의 몸이 불쌍하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하물며 산부인과 의사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은 충격적이었다.

 

그의 말이 나에게 불쾌하게 다가왔던 이유를 생각해보니, 가장 근접한 설명은 그가 남자인 자신보다 여자를 신체적으로 비하하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월경을 하고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는 사람의 몸을, 그런 기능을 하지 않는 사람의 몸보다 낮게 평가하고 있다는 점이 나를 기분 나쁘게 만든 것이다. 여성의 몸을 불쌍하다고 생각하는 의사가 병원을 찾는 여성들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어떻게 대할까.

 

사실은 현대의학이 인간을 기계처럼 바라보고 있다는 지적은 상당 부분 일리가 있다. 그런데 산부인과 쪽은 더욱 심각한 것 같다. 문제가 있으면 기계식으로 뜯어 고칠 뿐 아니라, 인간의 생리 자체를 질환이나 장애로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임신과 출산의 기능을 하는 몸에 대해 불쌍하다고 평가하는 그런 태도를 의료인이 갖고 있다는 것이 이를 보여주는 사례가 아닌가 한다.

▣ 최지현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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