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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노래방도우미 폭행,감금한 자의 ‘취업’ 걱정하는 재판부
 

※ 필자 '숨'님은 반성매매인권행동 [이룸]의 활동가입니다. ―편집자 주

지난 11월 4일 서울동부지법은 평소 알고 지내던 노래방도우미 여성에게 성매매를 강요하고 이를 거부하자 폭행해 기절시킨 후 밤새 차에 태워 끌고 다닌 혐의(상해·감금)로 기소된 최 모씨에게 벌금 700만원을 선고했다.

 
최씨는 도망치는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폭행하여 바닥에 넘어뜨린 후, 머리채를 잡은 상태로 건물 계단으로 던져 피해자를 실신시킨 것으로 밝혀졌다.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수위의 폭행이었다. 재판부 또한 “피해자가 중대한 상해를 입었고 피고인을 엄벌에 처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인정했다.
 
그러나 “초범이며, 순간적으로 흥분해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질렀고, 감금은 추가 범행을 위한 게 아니라 사태 수습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을 들어 벌금형에 그쳤다.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는 경우, 취업에 있어 심대한 불이익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참작했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왜 가해자를 두둔하는 것일까
 
성범죄는 신고율이 낮고 기소율은 더더욱 낮기 때문에, 지속적인 범행을 한 가해자라도 ‘초범’이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폭력이라는 범죄의 중대성에 비추어볼 때 ‘초범’이라는 사실이 양형에 어느 정도까지 영향을 미쳐야 하는지 의문이 든다.
 
무엇보다 성폭력 사건에 대한 판결을 할 때, 피해자의 피해 정도를 살피고 인권과 사회정의를 구현한다는 가치를 지키는 것보다 가해자의 취업에 더 무게를 두는 것은 불합리한 일이다.
 
어처구니없는 판결을 접하며 1년 전 사건이 떠올랐다. 2011년 성폭행을 당한 한 여성이 노래방도우미였다는 이유로, 재판과정에서 판사가 가해자를 두둔한 일이다. 피해여성은 억울함과 수치심을 이기지 못하고 진상 규명을 요구하는 유서를 남긴 채 삶을 마감하고 말았다.
 
성폭력은 아는 사이에서 더 많이 발생한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알고 있었다는 이유로 ‘그렇고 그런 관계에서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거나, 여성의 행실이 부도덕하고 ‘문란’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이른바 성폭력 사건에서만 유독 등장하는 ‘피해자 유발론’이다.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의 경우에는 이러한 낙인이 더욱 심하다. 설사 성적 서비스에 대한 거래를 목적으로 형성된 관계일지라도, 언제 어느 때나 구매자의 욕구에 맞출 수는 없다. 상대방이 성관계를 거부한다고 해서 폭력을 휘두른다면, 여성의 직업과 상관없이 성폭력일 뿐이다. 피해자가 성 산업 종사자라 하더라도, 성폭력을 포함한 모든 종류의 폭력은 서비스 안에 포함된 내용이 아니라 폭력일 뿐이다.
 
성폭력 피해자가 성적으로 ‘문란’한 지 ‘순결’한 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누구의 기준인가. 피해자의 사생활이 어떠한가에 따라 성폭력 범죄의 형량이 바뀔 수 있다는 것은, 누구의 이익을 대변하는가 따져볼 필요가 있다.
 
작년과 올해 두 사건에서 가해자를 두둔하고 가해자의 처지와 피해자와의 합의 사실을 참작해 준 재판부의 판단에는, 노래방도우미인 피해자에 대한 편견과 낙인이 작동했다고 볼 수 있다. 이처럼 재판부는 결코 가치중립적이지 않고, 양형에도 사회의 남성중심적인 시각이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범죄자 처벌에 대한 결정, 공정하게 하라
 
사실상 우리 법원의 ‘양형 기준’이란 지금까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수많은 성범죄를 포함하여 민,형사 사건에서 일관된 판결을 찾아보기 어렵다. 물론 좋은 판례들이 있지만, 담당 판사의 ‘성인지 감수성’ 수준에 따라 판결이 어떻게 나올지 여부는 재판의 시작부터 크게 갈린다.
 
특히 아는 사이에서 일어난 성폭력의 경우엔 가해자가 합의를 종용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피해자의 입장에서 합의는 ‘2차 피해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범죄가 사실로 인정된다면 합의를 했다는 이유가 양형에 영향을 크게 미쳐서는 안 된다. 이는 성범죄에 대한 친고죄 조항을 폐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현실이 이렇다 보니 흉악한 성폭력 사건에 공분하는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성폭력 범죄에 대한 법정 형이 높다는 것이 실질적으로 강력한 처벌을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처벌의 양형 기준은 정당한 근거를 가질 때에만 용인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재판부의 ‘성인지 감수성’이 필수적이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는 성폭력 범죄 판결에 있어서 형량을 결정하는 양형에 감경 요소와 가중 요소가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지, 부적절한 점은 없는지 살펴보고, 성폭력 범죄 양형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였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판결문에서, 양형 이유를 구체적으로 서술할 것.
2. 피해자와의 합의가 양형 감경 사유로 제시될 때, 양형에 미치는 정도에 대한 객관적인 기준을 마련할 것.
3. 친족간 성폭력이나 부부강간죄의 합의에 대한 양형의 판단은, 관계의 특수성과 합의의 과정을 반드시 고려해서 판단할 것.
 
잇따르는 노래방도우미 대상 폭력에 주목해야

 
다른 유흥업소 종사여성들도 마찬가지 상황이겠지만, 최근 들어 노래방도우미의 폭력피해와 관련한 판결이 언론 보도에서 자주 눈에 띈다.
 
올해 9월에는 4년 전 노래방도우미 여성들을 성폭행하고 달아난 범인이 검거되었고, 8월에는 1년 전 창원 노래방도우미 살해범이 감형을 받았으며, 7월에는 노래방도우미를 살해한 범인이 자살한 채로 발견되었고, 6월에는 노래방도우미를 성폭행한 소개소 업주가 구속되었다.
 
이 사건들은 지역과 이름만 다를 뿐 같은 사건이라고 착각할 정도로 유사한 패턴으로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노래방도우미의 피해와 관련한 판결 가운데 피해자에게 우호적인 판결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유흥업소에 종사하면서 성매매를 하는 여성들은, 다른 사람들에 비해 성범죄와 폭력, 갈취와 감금 등의 범죄 피해를 호소하는 일이 많다. 이렇게 많은 피해사례들에도 불구하고, 노래방도우미라는 이들의 인권침해에 대한 ‘사회적 공분’은 찾아볼 수가 없다니 이상한 일 아닌가? 강력범죄 사건의 피해자가 성산업 종사자인 경우에는 그저 ‘사고’가 되어버리기 일쑤다.
 
이번 재판부의 판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 사회는 성산업 종사여성들이 그 고통을 감수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것 아닌가 싶다. 노래방에서 여성도우미 없이 유흥을 즐기지 못하는 남성들의 문화는, 여성들로 하여금 유흥업소에 종사하기를 부추기고 유인하면서, 동시에 모든 책임을 여성들에게 전가하고 있다.
 
누가 그녀들의 생명을 위태롭게 하는가
 
이번 판결에서 가해자에 대한 법원의 양형 판결은 폭행·납치·감금을 저지른 범인의 ‘취업’이 피해자의 ‘인권’보다 중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성 산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에 대해 최소한의 법적 보호대상으로서의 ‘시민권’조차 인정하지 않은 셈이다.
 
이러한 법원의 태도는 사실상 ‘성매매’를 구매자의 당연한 권리로 여기고, 성 산업에 종사하거나 2차를 거부하는 여성에 대한 범죄가 손쉽도록 하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부채질하고 있다.
 
최근 창원에서 발생한 살인사건의 피해자는 ‘노래방도우미’라는 직업 때문에 사망보험금 청구소송에서 패하기까지 했다. 노래방도우미는 ‘생명이 위태로운 직업’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번 판결은 역설적으로 유흥업소 종사여성들의 안전할 권리가 박탈당한 현실을 보여주고 있다. 기본적인 생존의 안전망을 빼앗긴 여성들의 인권보호를 위한 대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숨/ 이룸 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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