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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주 “파견노동자의 알 권리에 관한 법”
필자 박진욱씨는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산업보건학 박사과정에 있으며, 노동건강연대가 발행하는 계간 『노동과 건강』 2013 가을호에 게재된 내용입니다. www.ildaro.com
산재보험 등 노동권의 사각지대에 있는 파견노동자
“하루에 열 시간씩 과일 껍질 벗기는 일을 했습니다. 10시간의 작업이 끝날 때까지 쉬는 시간도 없었습니다. 과일이 들어있는 커다란 양동이를 나르다가 넘어져서 허리 디스크 두 개가 부러졌습니다. 고용주가 병원비 지불을 거부했을 때, 그때서야 내가 이 회사에 고용되어 일하는 게 아니라 파견업체에 고용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것 같은 이 사연은, 미국 매사추세츠 주의 파견노동자인 후안 칼데라스의 경험담이다.
파견노동자란, 파견업체에 채용되어 원청 사업자에게 노동력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실제 일하고 있는 사업장의 고용주에게 직접 고용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기업 측에서 이들의 노동력을 사용하면서도 노동권 보장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쉽다.
2012년 8월, 미국 매사추세츠 주는 칼데라스와 같은 파견노동자들을 착취와 작업장 유해 환경 등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파견노동자의 알 권리에 관한 법”(Temporary Workers Right to Know Law)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올해 1월 31일부터 시행되었다. (temporary worker는 임시직 노동자라는 뜻이지만 이 법의 내용은 파견노동자에 관한 것이다.)
파견노동자의 근무 조건과 권리를 고지하라
‘파견노동자의 알 권리에 관한 법’의 내용은 크게 다음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는 파견업체가 파견노동자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과 관련해서 기본적인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전문직이나 비서 또는 행정 보조업무에 배치된 경우엔 적용되지 않는다.)
파견노동자들은 종종 자신들이 어떤 일을 하게 될지, 몇 시간이나 일하게 될지, 임금이 얼마인지도 모른 채 일터에 파견되기도 하고, 높은 노동 강도로 장시간 노동을 하고서도 임금을 못 받기도 하고, 유해한 작업으로 인해 재해를 당하고도 산재 보상을 받지 못하기도 했다.
새로이 시행되는 법에서는 파견업체가 파견노동자에게 원청 사용자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산재보험에 가입된 회사의 이름과 연락처, 문제가 생겼을 때 연락할 수 있는 매사추세츠 주 노동부 연락처 등을 의무적으로 고지하게 했다. 또한 일에 대한 설명과 임금, 노동시간, 식사 제공 여부 등도 반드시 알리도록 하고 있다.
▲ 매사추세츠 주 노동부의 파견노동자 알 권리에 관한 포스터 중에서. 현재 영어, 스페인어, 베트남어, 중국어, 포르투갈어, 러시아어, 크메르어로 제공되고 있다. © http://www.mass.gov
두 번째는 파견업체나 원청 사용자가 파견노동자에게서 징수하는 각종 비용에 대한 규제 내용을 담고 있다. 그간 파견업체나 원청 사용자가 등록비나 알선비용, 약물검사나 신원 조회에 들어가는 비용 등을 실비 이상으로 노동자에게 전가시키는 행위를 금지했다.
출퇴근 시 차량을 제공하고 요금을 청구할 경우에도 실제 운송 비용 이상을 부과할 수 없도록 하고, 만약 이러한 금액이 노동자의 벌이를 최저임금(매사추세츠 주의 최저임금은 시간당 8달러이다.) 미만으로 만든다면 비용을 부과할 수 없도록 했다. 또 파견업체가 고용인을 원청 사용자에게 보냈으나 실제 고용이 발생하지 않은 경우, 파견업체가 교통에 소요된 비용을 변제해주어야 한다.
세 번째 부분은 파견업체의 불법 행위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견업체가 거짓 정보를 광고하거나, 노동자가 원치 않는 직무에 강제로 배치하거나, 노동자의 개인 소유물을 압수하여 돌려주지 않거나, 불법적인 일을 하는 직무에 배치할 수 없게 했다.
또 미성년자가 학교에 가야 하는 시간에 업무를 배치하여 학교에 갈 수 없게 하거나, 자격증도 없는데 특정한 자격이 필요한 업무에 배치하거나, 노동자에게 알려주지도 않고 파업 중이거나 직장 폐쇄중인 작업장에 보내는 행위 등도 금지하고 있다.
지자체가 불안정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결단한다면…
매사추세츠 주에는 10만 명에 가까운 노동자가 파견회사에 고용되어 있다. 이들의 25%는 호출(on-call)노동자이거나 일용직이다. 법이 시행되기 전 파견노동자들은 일자리에 관해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로 위험한 작업장에 파견되거나,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임금을 받거나, 높은 노동 강도로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거나, 재해를 입어도 보상받지 못하고, 파견업체가 요구하는 각종 부당한 비용을 갈취 당하곤 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2008년부터 후안 칼데라스와 같은 파견노동자들이 노동자센터, 노동조합, 지역사회, 법률단체 등과 협력하여 파견 산업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몇 년 간의 노력 끝에 노동자단체, 파견산업 대표, 주 정부 담당 기관 등을 포함하여 여러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의 논의 구조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회의를 통해 파견노동자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사용자의 부담도 최소화하는 현재의 법이 만들어졌다.
법이 시행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라, 이 법이 파견노동자를 보호하고 그간의 비인간적 처우를 개선하는데 얼마만큼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는지 아직은 정확히 알기 어렵다. 그러나 적어도 법 시행 이전보다는 파견노동자들에 대한 착취가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예상된다.
후안 칼데라스의 경험담이 우리에게 낯설지 않은 것은, 한국 노동자의 현실이 겹쳐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파견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등 비정규직을 보호하겠다는 명목으로 제정된 법들이 실상은 오히려 불안정 노동을 확산시키고 착취와 고용 불안을 유발하는데 기여하고 있는 것이 우리 현실이다. 한국지엠, 쌍용차, 현대차 그리고 삼성전자서비스 등 대기업들이 사내하청을 통해 불법 파견으로 노동자들을 착취해 온 것이 최근 큰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또한 한국도 미국과 마찬가지로 파견노동자의 여성 비중이 커지고 있으며, 이들은 불안정 노동,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고 있어 ‘근로빈곤’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매사추세츠 주에서 ‘파견노동자의 알 권리에 관한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며, 한국의 어느 지자체에서 불안정 노동자들의 고용 및 노동 조건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수 있는 강력한 조례가 제정되는 상황을 상상해본다. ▣ 박진욱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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