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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농촌에서 ‘농노’ 대우받는 이주노동자
- 농축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노동자들의 현실을 말하다
이 기사는 노동건강연대에서 발행하는 계간 『노동과 건강』 2014 봄호에 실린 내용으로, 공인노무사 정해명 씨가 작성하였습니다. www.ildaro.com
벌써 다섯 번 째 노동청 조사다.
그 사이 두 명의 이주노동자들은 농장이 바뀌어 이천과 아산에서 일하고 있다. 2주전에 조사 때문에 하루를 쉬었고, 오늘도 노동부 조사 때문에 일을 못하니 이들은 이번 달에 쉬는 날이 없다. 노동부 조사 때문에 일을 못하니 오늘이 쉬는 날이라고 생각하고 조사 끝나면 하고 싶은 걸 하자고 했다.
농한기인 겨울인데도, 사장은 지난 번에 오지도 않았고 오늘도 늦는다. 마지막 달 월급도, 퇴직금도 아직까지 안 주고 있는데도 사장은 당당하다. 일하다 다쳐 손톱이 나간 노동자가 일하지 못한 동안의 휴업 보상을 요구했는데, 사장의 머릿속엔 건강보험이 아닌 일반 수가로 처리되어 꽤나 나온 병원비만 뱅뱅 돈다. 산재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농업의 경우, 산재 사고가 발생하면 근로기준법 상 사업주인 농장주에게 보상 책임이 있다는 말을 사장은 이해하지 못한다.
근로감독관은 ‘시간 외 근로’를 했다는 입증 자료가 없으니 인정하기 어렵다는 말만 반복한다. 외국인노동자 본인이 직접 작성한 수첩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나마 농장이 바뀌어 본인이 가고 싶어하던 돼지농장이랑 미나리 농장에 간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 지, 두 노동자들에게 미안하다.
농촌 이주노동자들의 현실을 좀더 들여다보자. 지난 해 이주노동자 인권단체들이 조사, 발간한 <고용허가제 농축산업 이주노동자 인권백서>에서 발췌, 축약하였다.
부족한 농축산업 일손을 채우는 외국인노동자
▲ 농축산업 분야의 외국인노동자 수는 2012년 12월 현재 1만6천484명이며, 그중 여성이 30%를 차지한다. © 이주노동자 농촌노동백서
농축산업에 외국인노동자가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2003년 산업연수제를 통해서다. 1990년 666만 명이던 농업 인구가 2004년 342만 명으로 줄었고, 전체 농가 중 60세 이상의 농장주가 전체의 60%를 넘었다. 이러한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농업 부분에도 산업연수제를 도입하여 2003년 7월 923명의 외국인이 외국인농업연수생의 신분으로 들어왔다.
산업연수제의 여러 폐해(노동자가 아닌 연수생의 신분으로 노동관계법 적용에서 배제하여, 임금 강제적립, 감금노동, 사업장 변경 금지 등의 전근대적인 악습들이 발생하였고 이로 인하여 ‘노예연수제’라는 비판이 일었다)로 인해, 2004년 8월부터 고용허가제가 시행되면서 농축산업에도 외국인 ‘노동자’들이 들어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고 있다.
농축산업 분야의 외국인노동자 수는 매년 빠르게 증가하여 2006년 892명에서 2012년 12월 현재 1만6천484명으로(여성 비율 30%) 늘어났다. 2013년 도입쿼터는 전년도 4천5백 명에서 6천명으로 늘어났고, 농축산업 노동력 부족으로 인해 앞으로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의 인권 실태는 매우 열악하다. 농축산업의 경우 농장주를 제외한 노동자 2-3명이 안팎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으며, 공단이나 도시에 위치한 제조업과는 달리 농촌에 위치하여 다른 농장과 거리가 있고 농장주와 함께 고립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이러한 조건에서 신분증 압류, 강제근로, 폭언 및 폭행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만연해 있는 상황이다.
‘신분증 압류’ 다반사, 운신의 폭 좁아져
한국에 도착해서 3일간의 교육을 마치고 사업장에 도착하면, 농장주들이 여권과 신분증을 압수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등록증이나 통장을 만들기 위해 필요하다는 이유를 대며 여권을 압류하고 이를 돌려주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 농장주들은 사업장의 이탈이나 도주를 막기 위한 안전판을 확보하기 위해서라지만 이는 실정법 위반이다.
가혹한 노동 조건이나 사업주의 폭력에 반항하는 노동자를 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권을 강탈하기도 하며, 그 과정에 폭력이 동반되기도 한다. 신분증 압류는 외국인노동자가 외부와 소통하는 것을 근본적으로 차단하는 수단이 되기도 하는데, 신분증 없이 외출했다가 출입국관리소의 단속에 걸릴 경우 불법체류자로 오인되어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농축산업의 경우 외부와 고립된 사업장에서 장시간 노동과 열악한 생활 환경으로 인하여 사업장을 이탈하는 비율이 제조업에 비해 높기 때문에, 이를 막기 위한 농장주들의 신분증 압류가 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신분증 압류, 강제근로, 노동관계법 위반 등의 문제를 겪은 외국인노동자가 농장주에게 반항하거나 문제 제기를 할 경우, 농장주는 욕설을 하거나 폭행, 농기구로 위협하는 경우도 드러난다. 고립된 농장에서 외부단체나 기관에 도움을 청할 경우 농장주가 보복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다수의 농장주들이 외국인노동자에게 갖고 있는 불만은 ‘일을 열심히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농사일을 접해본 적이 없고 일이 손에 익지 않다 보니 일을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농장주에겐 자신의 이익과 연결된 부분이다 보니 외국인노동자들을 대하는 태도가 가혹해지고, 음주까지 더해지면서 폭력 사태가 일어나기도 한다.
폭력이 발생할 경우 경찰이나 노동부 고용센터에 도움을 청하기도 하지만, 일방적인 농장주의 진술만을 듣거나 ‘한국인 편들기’가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의사 소통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통역을 지원해주는 경우는 드물다.
농장주의 집, 비닐하우스 생활…성폭력 위험 크다
농장주에 비해 절대적으로 열악한 위치에 있는 여성 외국인노동자들은 성폭력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농축산업은 제조업에 비해 여성 외국인노동자 비율이 3배 가까이 높아 전체 외국인노동자 중 약 30%를 차지한다. 외국인노동자는 한국의 법제도에 어둡고 한국말이 서툴기 때문에, 그리고 소수의 인원이 농장주와 장시간 함께 지내기 때문에 그만큼 성폭력 범죄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에 놓여 있다.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의 열악한 주거 환경은, 여성노동자가 성폭력 위협에서 벗어나거나 방어하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이다. 농장주와 같은 집의 빈방을 기숙사로 제공받는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많은 농축산업의 외국인노동자들은 농장 안에 있는 비닐하우스나 낡은 컨테이너, 농장주의 빈방에서 생활하고 있다. 문이 잠기지 않는 비닐하우스 기숙사에서 생활해야 했던 여성노동자의 사례도 있었다.
이러한 기숙사들은 냉난방이 잘 되지 않고 사생활이 보호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큰 문제를 안고 있다. 농장주에 따라서는 별도의 기숙사비를 외국인노동자의 임금에서 공제하는 경우도 있는데, 비닐하우스를 기숙사로 제공하며 1인당 월 20만원이 넘는 비용을 공제한 사례도 있었다.
비닐하우스 기숙사의 경우 온수 시설이 되어있지 않아 물을 끓여서 씻어야 하며, 생활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화장실과 욕실 등의 시설도 제공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다른 농장에서 일 시키고, 농한기에는 방치해
▲ 농한기가 되면 외국인노동자 해고가 대량 이루어진다. © 이주노동자 농촌노동백서
외국인노동자는 반드시 근로계약을 체결한 농장주의 사업장에서 근로를 제공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가족이나 다른 사람의 농장에서 일을 시키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외국인력중개업자가 개입하여 마을마다 유휴 외국인노동자를 다른 마을이나 지역으로 보내 일을 시키는 경우도 있었다. 이런 경우 외국인노동자는 자신이 누구의 농장에서 일했는지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번기가 시작되는 3월이면 인력이 부족해 농촌에서는 외국인노동자를 서로 보내달라고 고용센터에 아우성치지만, 농한기가 되면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의 대량 해고가 이어진다. 시설농가나 축산업의 경우엔 겨울철에도 일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그렇지 않은 농장은 할 일이 없어 다른 농장으로 불법 파견이 되기도 하며 일거리 없이 방치되기도 한다. 이 때문에 임금이 체불되며, 심한 경우 농장주가 근로 계약을 체결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곳에서 지내다 봄에 오라며 버스터미널로 내보내기도 한다.
한국의 고용허가제 자체가 외국인노동자의 ‘사업장 변경 금지’를 원칙으로 함에 따라, 노동권을 침해하고 강제노동을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고용허가제에서는 외국인노동자가 최초 3년간 3번에 한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으며, 체류 기간이 갱신된 1년 10개월 동안 2회를 다시 변경할 수 있다.)
고용허가제 아래 외국인노동자들은 엄연히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임에도 불구하고, 농축산업과 수산업의 경우 근로기준법 상의 근로 시간, 휴게와 휴가 규정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1주 근로시간이 40시간으로 제한되지 않는다. 연장 근로를 1주 12시간으로 제한 받지 않으며, 1주일 평균 1회의 유급 휴일도, 연장 휴일 근로에 대한 50% 가산임금도 적용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대다수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의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면서도 한 달에 2회 정도의 휴일 밖에 쉬지 못하며, 이마저도 주휴수당이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유급이 아니다. 또한 최저임금이거나, 최저임금 이하의 임금을 받고 있다. 농장주들이 4대보험에 가입하지 않는 경우가 많아, 사고나 질병 등이 발생할 경우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못해 비싼 병원비를 부담해야 한다.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는 업종을 변경할 수 없어 출국 때까지 오로지 농축산업에서 일해야 하며, 다른 사업체의 이동도 농장주의 동의 없이는 원칙적으로 불가능하다. 때문에 농장주들이 사업장을 변경할 수 있게 동의해주는 대가로 외국인노동자에게 수수료를 요구하는 사례가 발생하기도 하였다.
왜 농민들은 ‘악덕 사업주’가 되었나
이처럼 농축산업 외국인노동자들은 신분증 압류를 통한 강제노동, 폭언과 폭행, 강제 파견노동 등 심각한 인권 침해에 노출되어 있다. 일부 노동자들은 농장주에 매여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농노’처럼 살아가고 있다.
고용주에 의한 심각한 인권 침해는 ‘악덕 고용주’ 개개인의 잘못이 큰 원인이긴 하다. 그러나 영세한 농축산업의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 근본적인 대책 없이, FTA와 산업구조 변화 등으로 피폐해진 농축산업의 취약한 부분을 외국인노동자로 메우려는 정부 정책과 이를 위해 마련된 고용허가제의 태생적 문제를 지나칠 수 없다.
고용허가제 안에서는 사업주의 동의 없이 원칙적으로 사업장을 변경하는 것이 불가능하고, 한국의 말과 제도를 거의 모르는 외국인노동자와 사업주 간의 불균형이 더해져 외국인노동자를 자신의 귀속물로 여기게 되는 문제가 일어나고 있다.
또한 근로기준법의 적용이 제한되어 있다 보니, 법이 합법적으로 장시간 노동을 허용해준 측면이 있다.
고용센터, 농협, 경찰…누가 이들의 권리를 대변할까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관할 행정관청인 고용센터는 고용허가제와 관련하여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데도, 담당 인력과 업무 역량 부족, 외국인노동자에 대한 의사 소통이 어렵고, 선입견이 더하여 권리 구제를 요청하는 외국인노동자에게 2차 피해를 주는 당사자가 되기도 한다.
관할 고용센터는 외국인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에 대한 관리감독 책임을 지고 있는데도 1년에 1회 점검도 인력이 부족하여 어려운 실정이다. 법 위반 사실이 발견되어도 시정 요구만 할 뿐, 강력한 제재를 하고 있지 않아 반복적인 피해가 발생하고 있다.
단적인 예로 농장주가 월 300시간이 넘는 근로시간에, 월 법정 최저임금을 지급하도록 작성한 근로계약서를 보고도 고용센터는 아무런 문제 없이 전산에 등록하고 있는 형편이다.
한편, 농축산업 이주노동자에 대한 취업 교육을 담당하는 농협은 교육뿐 아니라 고용 변동 신고, 고용허가 기간 연장 신청 등 각종 신청을 대행하고 있다. 외국인노동자 전용보험 등 이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게 되어 있으나, 외국인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기보다는 한국인 농장주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실정이다.
경찰서, 출입국관리사무소 등 정부 기관도 외국인노동자가 권리 침해를 호소해도 외국인노동자의 의견에 대한 통번역도 없이 사업주의 진술만을 듣고 일방적인 조사를 진행하는 등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 정해명-공인노무사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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