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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연습] 세월호 침몰 사고, 그 이후를 지켜보며 
 

<철학하는 일상>의 저자 이경신님의 ‘죽음연습’. 의료화된 사회에서 '좋은 죽음'이 가능한지 탐색 중이며, 잘 늙고 잘 죽는 것에 대한 생각을 나눕니다. 일다www.ildaro.com

 

세월호가 침몰한 지 한 달이란 시간이 흘렀다. 선체 1차 수색 작업이 완료되었다지만 아직도 생사를 알 수 없는 이가 20명이다.

 

기적을 바라는 노란 리본

 

“제일 견디기 힘든 건 아직 그 애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이야. 털끝만한 가능성일지라도 떨쳐버릴 수 없는 게 사실이지. 그래서 방황하게 되고, 단념하기로 마음먹기도 어려워지는 거야.”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문학동네, 2008)

 

지난 4월 16일 아침,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되었다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이 전해졌다. 그 날 이후 한동안, 잠에서 깨면 뉴스를 들춰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했다. 생존자 구조 소식이 있을까 해서였다. 하루하루 실종자 수가 줄어드는 대신 사망자 수는 늘어났다. 그렇게 사람들의 기대와 희망은 나날이 줄어들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생존자 소식이 없는 가운데 한 대학동아리에서 노란 리본 달기 캠페인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 캠페인은 인터넷 커뮤니티, SNS를 통해 급속히 번져 나갔다.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라는 마음이 노란 리본으로 물결쳤다.

 

나는 노란 리본 캠페인에 동참하지 않았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일주일째인데 무사 귀환이 가능할까?’ 냉소적으로 반응했다. 참담한 사건 앞에서 현실 감각을 상실한 채 지푸라기라도 잡듯 생존의 불확실성을 희망으로 끌어안으며 현실을 부정하는 집단적인 죽음 거부 움직임이 부질없어 보였다. 이즈음 나는 희망과 분노를 넘어 실망감과 절망에서 오는 우울에 붙잡힌 채 기운이 빠졌다. 지독히도 무기력해졌다.

 

기적을 바라고 희망하는 노란 리본을 비웃기라도 하듯 현실은 잔혹했다. 첫 날 174명이 구조되었다는 소식을 끝으로 그 숫자는 더 이상 바뀌지 않았다. 사람들의 애타는 바램과 달리 생존자의 수는 멈췄다. 실수가 있었다면서 뒤늦게 생존자 수는 172명으로 오히려 줄어들기까지 했다. 생존자 수만이 아니라 승선 인원조차 수차례 오락가락했다. 세월호에 오른 사람이 정확히 476명이 맞기는 한 건가? 그렇게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희망 없이 기다린다는 것

 

“기다림은 정말 어렵다. 희망 없이 어떻게 기다릴 수 있을까? 어떻게 자신을 지키면서 희망을 버리지 않을 수 있을까? 최악의 순간에 대비하며 희망을 지켜낼 수 있을까?”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 4월 마지막 날, 검은 옷을 갖춰 입고 안산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 이경신 
 

4월 29일부터 부패한 시신이 수습되기 시작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 학부모는 인터뷰에서 시신이라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시신조차 찾지 못할까봐 두려운 마음을 내비쳤다. 어느덧 전국 곳곳은 희생자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고, 실종자 가족에게는 무사 귀환을 기원하는 플랫카드와 노란 리본의 물결로 뒤덮혔다.

 

나는 4월 마지막 날, 무기력을 떨쳐내기 위해 검은 옷을 갖춰 입고 안산 정부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분향소에 다다르자 세월호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고 실종자의 무사 귀환을 바란다는 플랫카드가 끝도 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입구에서 자원봉사자들이 노란 리본을 차례차례 건넸다. 아주 잠깐 주저했지만, 나는 노란 리본을 받아 옷에 달았다. 분향소에 들어가려면 줄을 서서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분향소를 들어서는 순간, 국화 속에 파묻힌 영정 사진들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어찌 이토록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죽을 수가 있단 말인가? 그들의 죽음이 억울해서 슬픔보다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분노가 속으로 눈물을 말렸을까?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달고 있던 노란 리본을 떼서 분향소를 나오는 길에 벽에 매달아 놓고 나왔다. 노란 리본이 더는 실종자의 무사 귀환에 대한 희망을 담긴 어렵겠지만, 세월호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에게 애도를 표하며 실종된 사람들이 시신으로나마 가족의 품안으로 되돌아오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의 표현일 수 있겠다 싶었다. 나도 마침내 노란 리본 달기에 마음을 열 수 있었다. 노란 리본의 의미도 변하고 있었다.

 

밖을 향하던 분노가 안으로 들어오다

 

“네가 영영 돌아오지 않는다면… 난 네게 충분한 사랑을 주었을까? 널 바라보고, 네 말에 귀 기울이고, 네가 커가는 모습을 보고, 그 모습에 감탄하는 데 충분한 시간을 들였을까? 네가 원한 만큼 우리가 입을 맞추고 안아주었니? 우린 함께 실컷 웃은 걸까?”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세월호 침몰 사고가 일어난 지 한 달이 지난 지금, 아이를 잃은 학부모들은 당신의 잘못으로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며 자책감에 시달린다고 한다. 수학여행 가기 싫다는 아이를 억지로 보낸 것을 후회하거나 학교를 1년 일찍 보낸 것을 한탄한다. 또 어떤 학부모는 배타는 것이 무섭다는 아이를 수학여행에 보내 배에서 죽게 했다며 가슴을 칠지 모르겠다. 아이를 잃은 단원고 학부모만이 아니라, 아내를 잃은 남편도 자책하긴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내를 배 안에 들어가 있으라고 말한 자신을 탓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잃었을 때 비탄 과정을 밟아나가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가까운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아 현실감각이 일시적으로 마비되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거부하기도 하고, 공포감, 분노, 적의, 원한 등의 감정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물론 과거에 내가 한 행위를 후회하고, 그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도 자연스러운 비탄 과정의 일부로 본다.

 

죽음이 모두 내 탓인 것만 같다. 밖으로 향하던 분노가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비탄의 과정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죽은 아이, 죽은 아내, 죽은 엄마, 아빠가, 죽은 형제자매가 아직도 살아 있다는 상상에 빠질 수도 있다. 급기야 고독감에 시달리고 우울에 빠질 수도 있다. 만사 무기력해지고 생활의 목표를 상실할 수도 있다. 그 모든 과정을 다 거쳐갈 수도 있고 몇 단계는 건너뛸 수도 있다.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비탄을 털어낼 단계는 아니다. 죽음을 끌어안기에는 가야 할 길이 멀다. 현실을 직시하고 체념하고 받아들이기까지, 일상 속에서 다시 웃음을 되찾기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 많은 시간이 흘러가야 할 것이다.

 

밖에서 지켜보는 나 같은 사람도 일상생활의 중심을 잃을 정도로 무기력해지는데 당사자들이야 오죽하랴.

 

‘그들’의 일이 아니라 ‘우리’의 일

 

“무슨 잘못을 저질러 이런 일이 생긴 건 물론 아니다. 불행은 이유 없이 찾아온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다. 이 점에서 우리 모두는 평등하며, 너나할 것 없이 약한 존재들이다. 오늘은 행복하지만 내일이며 먼지처럼 흩어지고 마는 게 삶이다. 주변의 다른 사람들이 넘어지는 걸 보았으면서도 우리 자신은 괜찮을 거라고, 안전하다고 믿는다. 그 다음이 우리 차례인 걸 모르는 채. 그러다가 갑자기 발아래 땅이 꺼진다. 그제야 비로소 우리 역시 다칠 수 있으며 다른 이들과 마찬가지로 덧없는 존재임을 알게 된다. 우리의 삶이라고 더 값진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 수학여행길에 오른 단원고 학생들과 인솔 교사들, 신혼여행의 달콤한 꿈에 젖어 있던 젊은 부부, 함께 환갑맞이 제주여행을 떠났던 초등학교 동창생들, 제주도에서 자전거 여행한다는 꿈에 한껏 부푼 할머니들…. 이처럼 즐겁고 행복한 꿈을 꾸었던 사람들이 예상치 못한 끔찍한 사고로 한 순간에 목숨을 잃었다.

 

우리는 평소 크게 위험을 못 느끼고 살아가지만 우리의 일상이라는 것이 안전하기는커녕 위태롭기만 하다는 것을 이번 세월호 침몰 사고를 통해 다시 한 번 더 절실히 깨닫게 된다. 우리도 세월호 희생자들처럼 꿈꾸며 산다. 우리도 이들처럼 언제든 어처구니없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 그들의 죽음이 우리의 죽음일 수도 있었다. 그 아이들의 죽음이 우리 자식들의 죽음일 수도 있었다. 안전망 없는 사회에서, 누구나 이토록 참혹한 사고의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것에 다들 끓어오르는 분노와 깊은 슬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세월호 사고가 수습되는 중에도 지하철 사고, 여객선 사고 등 사고는 멈추지 않고 일어났다. 안전한 곳은 없다. 더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우리를 짓누른다.

 

‘잊지 말아 달라’…마음 깊이 노란 리본을 달며

 

“오늘 아침 창밖을 보니 올들어 첫 목련이 피어 있었다. 눈물이 났다. 이렇게 봄이 다시 오는 걸까? 찬란한 햇살과 열기, 과일과 꽃들에서 풍기는 달콤한 냄새, 이런 것들을 다시 맛볼 수 있는 걸까? 난 눈물이 흐르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울고 있었다.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여전히 곁에 머무는 이 세상을 마주하고 무한한 감사를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로랑스 타르디외 <영원한 것은 없기에>

 

진도의 팽목항에는 아직도 생사를 알 수 없는 20명을 애타게 기다리는 가족들이 있다. 이들의 비탄은 시작일 뿐, 그 끝을 알 수 없다. 현실을 직시하고 현실에 체념하고 현실을 받아들여 다시 삶 속에서 웃음을 되찾으려면 적어도 시신이라도 찾아야 할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도 이 세상에 살아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으려면, 비탄의 고통을 겪어내고 인격적 성숙에 도달하려면, 적지 않은 세월을 흘러 보내야 할 것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고통보다 가장 고통스러운 것이 사랑하는 사람을 죽음으로 떠나보낸 일이라고 하지 않는가. 이 사람들이 힘든 시련을 잘 이겨낼 수 있기 위해서는 타인의 공감과 배려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것쯤은 다들 알고 있다. 전국에서 촛불을 든 사람들, 구호품을 보내고 기부금을 낸 사람들, 사고 현장으로 달려간 자원봉사자들, 합동분향소를 찾은 그 많은 사람들.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만도 190만이 넘었다고 한다. 이처럼 다들 자기 자리에서 시간과 돈, 노력과 마음을 나누고 있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딸의 장례를 치르고 실종자 가족을 위로하고 돕기 위해 다시 진도항을 찾은 어머니는 ‘잊지 말아 달라’고 당부하신다. 진도 체육관에서 노란 리본을 만들고 계시는 한 아버지는 노란 리본을 ‘더 이상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경고’로 받아들인다.

 

그렇다. 어리석고 무능하고 무책임한 지도자를 선택한 사람들, 사회가 안전망을 잃어가도록 무관심하게 방치한 사람들이 누구인지 스스로 반성하고 각성할 때다.

 

이제 노란 리본은 또 다른 의미를 품는다. 억울하고 참담한 죽음을 낳은 세월호 사고를 잊지 않기 위해서, 더는 이런 죽음이 양산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스스로에게 경고하면서 노란 리본을 달자. 그리고 지금은 너도 나도 가슴에, 거리에, 인터넷에 달고 있는 노란 리본, 그 리본을 모두 거둘 때조차 우리 마음 속에는 노란 리본을 계속해서 남겨둬야 하리라.

 

나는 절대 잊지 않기 위해 내 마음 속 깊이 노란 리본을 매단다.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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