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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사는 삶 
<20대 여성 ‘일’을 논하다> 핸드메이드 소품가게 주인

 

 

20대 여성들이 직접 쓰는 노동 이야기를 연재합니다. 경험을 토대로 ‘일’의 조건과 의미, 가치를 둘러싼 청년여성들의 노동 담론을 만들어가는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습니다. <일다> www.ildaro.com  

 

▲  나는 바느질 작업실 겸 핸드메이드 소품 편집샵 주인이다.   © 윤슬기 
 

25살, 가게를 시작한지도 어느덧 4년째다. 22살에 대학을 다니면서 시작한 가게였는데 이제는 대학을 졸업하고 완전한 직업이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은 바느질 작업실 겸 핸드메이드 소품 편집샵 주인이다. 처음에 가게를 시작했을 때는 ‘아직은 학생이니까’라는 핑계거리가 있었지만 이제는 독립을 해서 아직 대학생인 동생 몫의 생활비까지 감당하며 약간의 부담감을 가지고 가게를 꾸려가고 있다. 다행히도 가게는 아직까지 망하지 않고 잘 유지되고 있다. 더불어 우리집 살림도.

 

‘어린 여자’ 사장을 대하는 손님들의 태도

 

지금만큼은 아니지만 처음 가게를 시작할 때도 부담감은 있었다. “인생은 한 방이니까 그냥 시작했다.”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했지만 결코 어린 나이에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나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20대 초반의 어린 여자가 전주 한옥마을에 바느질 공방을 차리니 집에 돈이 많아서 하나보다 하고 제멋대로 낙인을 찍었다. 심지어 어떤 이들은 처음 보는 나에게 직접적으로 질문을 하기도 했다.

 

“집에 돈이 많은가 봐요?”

“이런 거 하면 한 달에 얼마나 벌어요? 그냥 취미로 하는 거죠?”

 

참으로 무례한 사람들이다. 당시엔 내가 어린 여자이기에 무시를 해서 그런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금 생각해보면 건방진 태도로 손님들을 대했다. 그들에게 얕보이지 않으려고.

 

한 번은 그런 일이 있었다. 들어와서 구경을 하다가 다짜고짜 반말을 하는 손님들은 종종 있었다. 그런데 그 날은 어떤 아주머니가 들어오시더니, 정말 들어오자마자 팔찌를 가리키며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이건 얼마나 해?” 라고 했다. 반말과 무례한 질문들에 대한 스트레스가 쌓일 만큼 쌓여있던 나는 똑같이 반말로 “아니. 그건 우리 이모가 만든 건데?”라고 대꾸했다.
 

▲  나는 화병에 걸리지 않기 위해, 액자를 만들어 가게에 놓았다.  © 윤슬기 
 

생각해보면 대학에 들어간 후 아르바이트를 할 때에도 그런 적이 많았다. 서비스직을 하는 젊은, 혹은 어린 여성을 대하는 태도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무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르바이트생일 때는 내가 화를 내면 가게에 피해가 갈까 봐 참았지만 욕을 먹어도 내가 먹고, 피해를 봐도 내가 피해를 보면 되는 상황이 되니 참지 않고 말을 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손님에게 똑같이 반말을 하는 대처는 극단적이었고 썩 좋지 않은 방식이었다. 다시는 그런 짓은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지만 어쨌든 다른 방식으로라도 자신의 불쾌함에 대해서 표현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손님은 ‘왕’이 아니고 나와 동등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맞반말 사건이 있은 후에도 다혈질인 나를 자극하는 반말하는 손님들이 몇 차례 방문했고, 난 분노에 차서 액자를 만들어 가게에 놓았다. ‘초면에 반말금지, 반말하면 귓방맹이’라고. 농담처럼 보이지만 화를 내지 않고 서로 웃으면서, 하지만 지켜야 할 것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짚어주고 싶어서였다. 때로는 아닌 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화병에 걸리지 않는다.

 

상거래만이 아닌 정서적 교류가 쌓이다

 

장사를 하다 보면 무례한 사람들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요즘 가게에 오는 손님 중에는 나를 무시하고 함부로 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생각해보면 내가 한두 살 더 먹었다고 해서 덜 무시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몇 년간 꾸준히 하다 보니 내가 하는 일에 쌓인 노력과 시간을 보아주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는 것 같다.

 

고등학교 때부터 프리마켓에 참가해서 내가 만든 인형들을 판매했으니 그때부터를 장사 경력으로 친다면 난 9년차 장사꾼이다. 9년 동안 나를 대하는 사람들의 태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내가 사람들을 대하는 태도에는 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고등학교 때에는 그저 취미로 하는 것이었기에 마음에 들지 않는 손님에게는 ‘살려면 사고, 말려면 말고’ 하는 식의 태도로 대응했었고, 가게를 연 후에는 ‘내가 사장이니 내 마음으로 할 거야’ 하는 건방진 태도로 사람들을 대했었다.

 

그런데 몇 년간 가게를 운영하면서 보니 내가 나를 높인다고 내가 높아지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을 진심으로 높여줄 때 나도 같이 높여진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한껏 쳐들고 있던 콧대를 내려놓고 보니 어느 순간부터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도대체 내가 뭐라고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주고 내가 만든 것들을 좋아해주는 걸까. 그런 사람들이 있기에 내가 좋아하는 일을 계속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부터는 더 많은 손님들을 진심으로 대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나를 진심으로 대해주는 손님들도 늘어났고,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관계가 아닌 정서적 교류를 할 수 있는 소중한 관계들이 늘어났다. 또 나를 진심으로 존중해주는 이들이 늘어나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좀 더 확신을 가지고 즐겁게 이야기 할 수 있게 됐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다는 것
 

▲  가격을 깎는 손님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 윤슬기 
 

하지만 지금도 가격을 깎는 손님은 별로 유쾌하지 않다. 내가 아무리 큰돈을 벌 욕심이 없다지만 열심히 일을 했으면 그에 대한 정당한 임금은 받아야 할 것이 아닌가. 남이 하는 노동의 가치는 낮게 여기면서 자신이 하는 노동의 가치는 높게 평가해주길 바라는 건 참 우스운 일이다.

 

그래서 또 할 말은 해야겠기에 글씨를 써서 액자로 만들었다. 난 무리하게 깎는 사람에게는 절대로 안 깎아준다.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은 옛말일 뿐이다. 난 예쁜 놈에게만 떡을 더 준다.

 

몇 년간, 가게를 하면서 큰 액수의 사기를 당하기도 하고, 이런 저런 말들에 상처를 입기도 하면서 어린 나이에 가게를 시작한 것이 후회된 적도 많았지만 만약 열지 않았으면 더 많이 후회했을 것 같다. 어차피 한 번 사는 인생,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해야 죽을 때 후회가 없을 것 같다. 가게가 쫄딱 망하지 않는 한 앞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며 살 생각이다.

 

어릴 때부터 엄마에게 귀에 박히도록 들은 말이 있다. “얼마를 버느냐 보다 어떻게 쓰느냐가 중요하다.” 저 말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면 나처럼 좋아하는 일을 하며 먹고 사는 삶에 뛰어드는 것도 해볼 만한 일인 것 같다. 물론! 좋아하는 마음 외에도 충분한 준비와 노력이 꼭 필요하다는 것은 명심하시고. ▣ 윤슬기 www.ildaro.com 
 

<여성주의 저널 일다> http://www.ildaro.com <영문 사이트> http://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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