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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외면하는 사회로 남을 것인가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을 수용할 수 없는 이유 
 

 

 

유가족과 교황의 만남…환호 속 터져나온 통곡

 

8월 16일 광화문에서 열린 한국천주교 시복식 미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34일째 단식 중인 ‘유민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잡았을 때, 유가족들 사이에서는 환호성과 함께 통곡이 터져 나왔다.

 

고 이은별 학생의 이모 길옥보 씨는 “내 입에서 웃음이 나와 보기는 (참사 후) 4개월 만에 처음”이라며 감격스러워했다. “내 속에 있는 걸 다 털어놓은 것 같아요. 말은 안 했지만, 다 털어놓은 것 같아. 내 눈물이 다 얘기해준 것 같아. 마음이 편해요.”

 

길옥보 씨는 교황과의 만남을 간절히 바랐던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저분은 정직하신 분이잖아요. 최소한 저희 억울함이 온 세계에 알려지겠지요. 우리가 바라는 건 이거 하나예요.”
 

▲  8월 16일 광화문 시복식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을 향해 간절히 현수막을 펼친 유족들.   © 박희정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서 위로를 받은 것은 그가 진심으로 이들의 말을 경청하고 아픔에 공감하는 자세를 보여줬기 때문이다. 15일 성모승천대축일 미사에 참석했던 고 박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혜숙 씨가 전하는 말이다.

 

“지척에 있는 대통령은 같이 있어도 같이 있는 게 아닌 것 같이 소통이 안 되고 우리를 힘들게 해서 너무 답답했어요. 그런데 지구 반대편에 계신 분이 처음 한국에 오셔서 같이 슬퍼하시고 같이 고통스러워하시니까 너무 감격스러웠죠.” 

 

프란치스코 교황이 한국에 머물렀던 4박 5일의 짧은 기간은 우리 사회의 위정자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들을 얼마나 방기하고 있는지를 철저히 일깨워주는 시간이었다. 그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민의를 대표하는 정치인으로서의 책임을 져버렸을 뿐만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의 도덕적 의무에도 무심했다.

 

여야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 무엇이 달라졌나?

 

교황이 돌아간 다음날인 19일 새누리당 이완구, 새정치민주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재합의안을 내놓았다. ‘재합의’라는 이름을 내걸었지만, 사실상 지난 합의안에서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세월호 가족대책위원회는 “여야가 합의한 내용은 가족을 두 번 세 번 죽이는 것”이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여야가 합의한 특별법안에 따르면, 진상조사위원회는 총 17명으로 구성된다. 여야가 각각 5명, 대법원과 대한변호사협회가 각각 2명씩 4명, 유가족이 3명을 추천해 구성하도록 되어 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자료 요구권과 동행 명령권 등 조사권에 해당하는 권한만 부여되었다. 진상조사위에 수사권과 기소권이 있어야 한다는 유가족들의 요구안에는 한참 못 미치는 내용이다.

 

진상조사위위원회의 조사가 미진하거나 자료 제출, 증인 출석 등이 거부될 경우 수사권을 가진 특별검사(이하 특검) 임명을 요청하게 된다. 특검은 7명으로 구성된 특검추천위원회가 추천한 2명의 후보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이 1명을 선택해 임명하도록 되어 있다. 특검추천위원회 7인은 법무부차관, 법원행정처장,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그리고 국회가 추천하는 4명으로 구성된다. 국회 추천 4인은 여야 각각 2인씩 할당되어 있다.

 

19일 재합의안의 골자는, 국회 추천 4명 중 여당의 몫인 2명을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를 거쳐 임명하겠다는 것이다. 새누리당에서는 크게 양보한 듯이 설명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야당과 유가족의 ‘동의’를 얻는다고 되어 있지만 ‘누구를 추천할 것인지’는 어디까지나 여당의 뜻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가족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진상규명 가능한’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한다
 

▲  유가족들은 우리 사회에 ‘사람을 살릴 것인가’를 묻고 있다.   © 안미선 
 

세월호 가족대책위는 19일 오전 새누리당 김무성 당대표와 가족대책위 면담에서 국회 몫의 특검추천위원을 ▲ 내곡동 특검처럼 야당이 추천하거나 ▲ 4명 모두 야당이 추천하거나 ▲ 4명 모두 진상조사위원회에서 추천하기를 바란다고 요구한 바 있다. 최소한 특검추천위원회 7명 중 4명은 정부와 여당의 입김에서 자유로운 인물이 포함되어야 그나마 신뢰할 수 있는 특검을 임명할 수 있지 않겠냐는 것이다.

 

20일로 단식 38일차를 맞은 ‘유민아빠’ 김영오씨는 400만 명의 국민이 서명한 대로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춘 “제대로 된 특별법”을 제정해줄 것을 요청했다.

 

유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가진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을 보장하는 세월호 특별법을 제정하고자 하는 것은, 참사의 진상을 밝히고 유사한 참사의 재발을 막겠다는 이유가 가장 크다. 고 박성호 학생의 어머니 정혜숙 씨는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를 보탠다.

 

“(가족을 잃은) 이 고통은 평생 짊어지고 갈 고통이에요. 이 문제가 해결이 되어도 평생 짊어지고 갈. 그 고통은 누가 덜어줄 수도 없어요. 지켜주지도 못했는데 진상규명조차도 해주지 못한다면 마음의 고통은 훨씬 더 크겠죠. 남은 평생 지옥이 될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남은 가족들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우리들이 그냥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두 이유 모두 핵심은 같다.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은 우리 사회에 ‘사람을 살릴 것인가’를 묻고 있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 그리고 새정치민주연합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박희정/ 세월호 참사 시민기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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