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노인에게 건강권을, 아이들에게 학습권을!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미래센터
공정여행과 공정무역을 통해 한국과 베트남을 잇는 사회적 기업 ‘아맙’(A-MAP)이 베트남 곳곳에서 지역공동체를 위해 활동하고 있는 사회적 기업과 모임을 소개합니다. ▣ 일다 www.ildaro.com
▮ 미래공동체 발전과 건강교육 센터 (미래센터)
(Tuong Lai Centre For Health Education And Community Deverlopment)
미래센터는 거리의 아이들, 농어촌 및 소수민족 학생, 노인 등을 대상으로 강좌를 열고 다양한 지원 사업을 벌이는 사회적 기업이다. 1998년부터 비정부기구, 비영리단체로 활동해온 미래센터는 ‘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CSIP)에서 2009년 대표적 사회적 기업으로 선정되어 창립 자본을 지원받았다. 2011년 8월 베트남 과학기술청의 정식 인가를 받아 전문적으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길 위의 선생님, 사회적 기업인이 되다
“저를 선생님이라 부르지 말아주세요.”
<아맙>의 직원 호아가 그에게 “타이”(Thay, 선생님)라는 존칭을 쓰며 인사를 건네자, 그가 손사래를 치며 그저 자신을 “안 하이”(Anh Hai, ‘안’은 손위 남성을 부르는 일반적인 호칭이고, ‘하이’는 그의 이름이다)라고 불러달라 한다.
▲ 길 위의 선생님, 쩐 민 하이(미래센터 창립자) ©아맙
베트남 전국을 다니며 노인과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많은 강의를 해온 저명한 강사인 그는 처음부터 그렇게 자신을 낮추었다. 수년간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오다 ‘사회적기업인’이라는 새로운 길을 걷고 있는 안 하이. 연대하고 나누는 미래를 향해 길을 열고 있는 그의 이야기를 <아맙>에서 들어보았다.
구수정(아맙 베트남 본부장. 이하 ‘수정’): 얼마 전에도 하노이에 강의가 있어 출장을 다녀오셨다고 들었습니다. 주로 지방 농촌을 돌며 강의한다고 알고 있고요. 바쁜 와중에도 <아맙>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쩐 민 하이(미래센터 창립자이며 센터장. 이하 ‘하이’): 수정씨도 막 하노이 출장을 다녀오는 길이라 들었어요. 한 달 전에 인터뷰 요청을 받았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었네요. <아맙>에서 진행하고 있는 공정여행, 공정무역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역으로 제가 인터뷰를 하고 싶을 정도에요. (웃음)
수정: 2009년에 ‘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CSIP)로부터 올해의 사회적기업인으로 선정되어 익히 이름은 알고 있었어요. 오랜 기간 비영리단체에서 활동해오신 것 같은데요, <미래센터>를 창립하기까지 어떠한 삶을 살아오셨는지 들려주세요.
하이: 저는 베트남 중부의 다낭에서 태어났는데, 베트남전쟁이 끝난 후 가족이 남부의 빈즈엉성에 있는 신경제 구역으로 이주를 하게 되었어요. 전쟁 당시 아버지가 미군에 복무했던 이력이 문제가 되었지요. 어려서부터 농촌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초.중.고등학교를 다녔습니다. 대학에 가고 싶었지만 형편이 어려워 포기했어요. 그후 호치민시로 거처를 옮겨 까오탕 직업훈련학교에서 기계에 대해 배웠어요. 그리고 화교가 운영하는 한 수리점에서 일하게 되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기계 만지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다고 느꼈지요.
그때 우연히 길 위의 아이들을 돕는 스위스의 한 자선단체 ‘땅 위의 사람’(Terre des Hommes)에서 직원을 뽑는다는 구인 광고를 보고 응시하게 되었죠. 당시 15대 1의 막강한 경쟁률을 뚫고 합격을 했어요! (웃음) 그 단체에서 5년간 일했는데, 만나는 아이들이 마치 어린 시절의 나처럼 느껴졌고 그들을 돕는 것이 제 과거를 치유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그 과정 속에서 저는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뒤늦게 호치민시 개방대학교에서 공공관계학을 전공하게 되었습니다. 2000년에는 장학금을 받아 필리핀에서 공공관계학을 더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기도 했고요. 그 후 10여 년간 거리의 아이들, 가난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해왔습니다.
수정: 사회적 기업과는 어떤 인연이 있었나요? 오랫동안 비정부기구에서 활동을 해오다 사회적기업으로 눈을 돌린 이유는 무엇인가요?
하이: 비정부기구에서 일했기 때문에 관련 정보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지요. 인터넷을 통해 ‘베트남 사회적기업 지원센터’(CSIP)가 사회적기업인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를 공모한다는 소식을 알게 되었어요. 2009년에 CSIP가 7명의 사회적기업인을 선정하여 지원했는데, 남부에서는 제가 유일했죠.
비정부기구나 비영리단체는 외부 지원에 의존하는 한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면서도 이윤을 창출하는 사회적기업에 끌렸지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일방적으로 또는 일회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이 아닌, 그들과 함께 ‘지속가능한 공생’의 길을 찾고 싶었어요.
의료보험 없는 노인들, 장시간 일하는 아이들
▲ 노인을 위한 건강관리 강의. 참여자들이 의사와 대화를 주고 받는다.
수정: <미래센터>에서는 노인들을 위한 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어요. 현재 베트남의 노인 복지 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도 궁금합니다.
하이: 베트남 인구가 9천만 명에 육박하는데 그중 10%가 고령 인구입니다. 앞으로 베트남도 점차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겠지요. 이에 대비할 필요가 있어요. 현재 노인들의 80퍼센트가 의료보험이 없습니다. 노인인데다 정기적인 수입조차 없는 그들의 의료 검진비, 치료비 부담은 다른 연령대에 비해 훨씬 클 수밖에 없어요. <미래센터>는 기업들의 지원을 받아 노인들에게 의료보험증을 발급해주는 사업을 하고 있어요. 한 번 발급받은 의료보험증은 12개월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노인들을 대상으로 건강 관리에 관한 강의를 열고 있어요. 의사를 초대해 노인들에게 건강 상식과 각종 질병의 예방이나 치료에 대한 정보를 주기도 합니다. 노인들이 자신의 삶을 건강하게 지켜갈 수 있도록 올바른 습관을 익히고 스스로 건강 관리를 해나가는 데 도움이 되고자 하는 것이죠.
수정: 초등학교 교사들을 대상으로는 유엔아동권리협약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지요? 현재 베트남의 아동권 실태는 어떻다고 보시나요?
하이: 아동권과 관련해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아동노동과 학습권 문제가 가장 심각합니다. 아동노동 문제는 농촌과 도시가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이는데, 농촌에서는 보통 수확기나 농번기에 아이들이 잠시 학업을 중단하고 농장에 나가 일을 하거나 가족을 돕는 경우가 많지요. 하지만 도시는 아이들이 학업을 완전히 포기하고 공장 등에서 일을 해요. 최근에는 돈을 벌러 농촌에서 도시로 흘러드는 아이들이 많지요.
주로 영세 공장을 비롯한 소규모 작업장에서 아동노동을 사용하는데 빈떤, 떤빈, 떤푸 등 호치민시 외곽에 그런 공장들이 많습니다. 아동을 고용해 저렴한 임금을 지급하면서 하루 12시간 이상 일을 시켜요. 대부분 갈 곳 없는 아이들이 공장에 머물며 일을 하기 때문에 잔업, 야근, 특근 등 그들의 요구가 쉽게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아동노동을 사용하는 공장주는 물론 부모, 교사들이 아동권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합니다. 어른들에게는 아이들의 학습권을 보장해줘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인식이 우선되어야만 합니다.
베트남 중부나 서부 고원지대가 남부의 메콩델타 지역보다 더 가난하지만 그곳의 아이들이 학교를 더 많이 다니고 있어요. 결국 경제적인 이유보다 의식의 문제가 더 크다고 할 수 있죠. 저는 현재 룸투리드(Room To Read)라는 비영리단체와 함께 메콩델타 지역에서 도서관 건립, 도서 기증, 독서 교실 등 아이들의 교육 환경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고 있어요.
▲ 초등학교 교사들을 위한 유엔아동권리협약 강의. 학생들과 함께할 수 있는 레크레이션 프로그램 전수 중.
성공한 사람들의 매뉴얼 대신 세상과 부대끼길
수정: 최근 베트남 젊은이들을 대상으로 한 ‘소프트 스킬’, 처세술 강의가 유행입니다. <미래센터>에서는 주로 거리의 아이들, 농촌의 학생, 소수민족 대학생들을 찾아가 강의를 하고 있는데, 내용 면에서 다른 곳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하이: 말씀하신 것처럼 요즘 베트남에는 자기소개, 대화의 기술, 시간 활용, 팀워크, 리더십 등에 대한 ‘소프트 스킬’ 강의가 참 많습니다. 하지만 저는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소프트 스킬’ 강의는 자기 계발과 성공을 위해 이렇게 살아라, 저렇게 살아라 등과 같은 조언과 충고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의 의미를 깨닫고 그 실천을 고민하는 내용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요.
저는 학생들에게 기계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소프트 스킬’을 가르치지 않아요. 오히려 그들이 관심 갖는 대화의 기술이나 팀워크, 리더십이 ‘도대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최근에는 ‘소프트 스킬’ 강의 관련 광고가 곳곳에 넘쳐나 학생들이 이러한 기술만 익히고 스펙만 쌓으면 만능이라는 환상을 갖기도 해요. 어른들이 그들의 불안한 심리를 이용해 강의를 열고 돈을 버는 것이지요.
진정한 ‘소프트 스킬’은 성공한 사람들의 효율적인 매뉴얼 같은 것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세상의 부대낌 속에서 나 스스로 찾아내야 의미가 있습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항상 이 점을 강조해요.
▲ 베트남 중부 빈딘성 꾸이년시에서 대학생들 대상으로 열린 소프트 스킬 교육.
학생들의 발표와 토론으로 진행되며, 공동체를 위한 활동 프로젝트 노하우도 공유한다. © 미래센터
‘사랑마케팅’이 통하다
수정: 개인적으로는 센터가 벌이고 있는 사업 가운데 ‘사랑마케팅’이 가장 흥미로웠습니다. 구체적으로 그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궁금하고, 또 이름을 그렇게 지은 이유도 듣고 싶네요.
하이: 요즘에는 누구나 하나쯤은 휴대폰을 들고 다니고 현재 베트남에는 약 1억4천 개의 전화번호가 있어요. ‘사랑카드’를 구입하면 휴대폰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바로 지원금을 전달할 수 있어요. 인터넷을 통해 클라이언트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고, 후원금을 전하면서 응원 메시지를 함께 보낼 수도 있죠.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사랑카드 홈페이지에 올리고, 그들을 돕기 위한 방법으로 사랑카드를 소개하고 판매도 하고 있습니다.
한번은 심한 화상을 입은 아이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사랑카드 홈페이지에 그 이야기를 올렸는데 순식간에 오백만 동(약 250달러)이 모이기도 했어요. 흥미로운 것은 사랑카드를 구입하는 사람들의 상당수가 오토바이 택시기사, 대학생, 시장의 소상인들과 같은 가난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이에요.
<미래센터>가 사회적기업으로 방향을 전환하면서부터 사회적 기여와 함께 사업의 수익성도 함께 고민해야 했어요. 똑같은 지원사업을 하더라도 기업적 마인드를 결합해 진행하려고 노력했죠. ‘사랑마켓팅’은 일반적인 유통 시스템을 활용한 지원 사업인데, ‘소셜’(Social)과 ‘엔터프라이즈’(enterprise)라는 얼핏 서로 대치되어 보이는 단어가 만나 사회적기업이라는 개념을 만들어낸 것처럼, ‘사랑’과 ‘마켓팅’을 결합시켜 이름을 지어보았지요. (웃음)
수정: 앞으로 <미래센터>에 대한 전망이나 향후 계획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하이: 오랜 기간 동안 외국의 여러 NGO 단체들이 베트남의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왔습니다. 베트남의 비영리단체들도 해외 원조에 의존해 사업을 꾸려왔고요. 최근 베트남이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고 개발도상국의 반열에 오르면서 외부의 지원이 점점 중단되고 있는 상황이에요. 하지만 베트남에는 여전히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곳이 많습니다. 때문에 이제는 베트남 사람들 스스로의 힘으로 움직여야 할 때가 되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저는 <미래센터>를 베트남의 젊은이들과 함께 꾸려나가고 싶어요. 요즘 젊은이들은 급속한 경제 발전과 극심한 빈부 격차 속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젊은이들이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을 통해 자신만의 꿈과 비전을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어요. <미래센터>의 슬로건이기도 한 ‘나눔’과 ‘연대’의 공간에서 젊은이들이 마음껏 꿈을 펼치는 세상을 보고 싶습니다.
* 기록 정리: 권현우 (아맙 공정여행 팀장) 쩐 티 뚜잇 호아 (아맙 직원)
<아맙> 카페: http://cafe.daum.net/doanhnhanxahoi 연락처: 070-7554-5670 (베트남사무소)
<아맙> 후원 계좌: 신한 110-313-503660 (예금주: 김규환)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일다 트위터 twitter.com/ildaro 영문 사이트 ildaro.blogspot.kr
'국경을 넘는 사람들 > 아맙이 만난 베트남 사회적기업'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밥과 옷, 그리고 장애인의 자유를 위해 (0) | 2014.11.29 |
---|---|
베트남의 명물 ‘다람쥐 커피’를 만드는 사람들 (0) | 2014.11.16 |
‘작은 인형’에서 시작된 베트남 농촌여성들의 행진 (0) | 2014.10.20 |
세월호를 애도하며, 베트남의 ‘안전’을 묻다 (0) | 2014.09.04 |
베트남, 갈 곳이 정말 많다! ‘체험여행’의 진수 (2) | 2014.08.14 |
노동과 환경, 공동체의 가치를 담은 죽공예품 (0) | 2014.07.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