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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허한 말이 판치는 시대, 반짝이는 기록
르포집 <여성, 목소리들> 펴낸 안미선 작가와 만나다 

 

 

<일다>(www.ildaro.com)에 2012년 6월부터 연재되고 있는 ‘기록되지 않은 노동’ 기사에 주목하는 독자들이 많다. 주류 노동 담론에서 이야기되지 않았던 여성노동 문제를 드러낼 뿐만 아니라, 이러한 문제들이 여성들의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당사자의 목소리를 통해 섬세하게 밝히고 있어 호평을 받고 있다.

 

이 소중한 노동 기록을 써 나가고 있는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은 2003년 격월간지 <삶이보이는 창>에서 마련한 ‘여성노동자 글쓰기 교실’의 1기 수강생들로부터 시작이 되었다. 이 모임은 현장에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주체가 되어 다양한 형태의 기록을 꾸준히 만들어왔으며, 협업을 통해 구성원들의 역량을 강화하며 함께 성장해오고 있다.
 

▲ 르포집 <여성, 목소리들>을 펴낸 안미선 작가.   © 박희정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의 일원으로 함께 기록해오면서 동시에 <일다>에 “모퉁이에서 책읽기”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 안미선 작가가 르포집 <여성, 목소리들>(오월의 봄)을 펴냈다.

 

이 책은 섹슈얼리티, 가족, 노동이라는 범주로 구분해 각각의 장에서 주목해야 할 여성 이슈를 다루고 있다. 언뜻 익숙한 이야기의 변주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각 주제 안에서 여성들이 살아가는 ‘삶의 질감’을 살려내고 있는 작가의 힘이 인상적이다. 또 이 세 영역이 어떻게 엮여서 여성들의 삶에서 작동되고 있는지를 매우 입체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안미선 씨는 여성단체에서 활동했으며, 여성의 삶에 대한 기록을 계속해오고 있다. 2009년에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에세이와 비정규직, 비공식 영역에서 일하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은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철수와 영희)를 출간했다.

 

또 송전탑을 반대하는 밀양 주민들의 이야기 <밀양을 살다>, 철거민의 이야기 <여기 사람이 있다>, 청계천 사람들의 이야기 <마지막 공간>의 공동 저자이며, 기지촌 성매매 여성의 자전에세이 <아메리카 타운 왕언니, 죽기 오분 전까지 악을 쓰다>의 공동 기록자이기도 하다.

 

-<여성, 목소리들>을 구상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여성 인권과 관련된 르포를 써보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격월간지 <삶이 보이는 창>에서 받았다. 노동 사안뿐 아니라 여성 인권에 대해 전반적으로 아우르는 기록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3년 간 연재를 했던 게 계기가 되어 원고들이 모이게 되었다. <일다>에 게재한 글도 몇 편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들이 잘 담긴 스케치면서 동시에 논리적인 촘촘함도 추구한 것 같다. 한 사안을 다양한 측면에서 조명하고, 거기에 구체적인 근거가 될 수 있는 자료를 많이 제시해주고 있는 게 인상적이다. 여러 면에서 균형을 잡으려고 노력한 것 같다.

 

“책을 다 쓰고 나서 그렇게 생각했다. ‘균형을 잡았구나.’ 쓰면서도 균형을 잡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다. 지금은 여성 사안이 담론으로서나 캠페인의 문구로서, 혹은 법적 제도로서 마치 해결이 되고 충분히 언급된 것처럼 여겨지지만, 여전히 변하지 않고 고통과 모멸을 참아야 되는 삶이 있다. 그런데 그 삶을 마치 다 안다고 생각하고 식상하다 여기기 때문에, 제도와 법과 괴리된 일상을 여성들은 여전히 감내해야 된다.

 

이 책이 대한민국 여성의 모든 걸 다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몇 가지를 다뤘다. 하나는 여성들이 여전히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느끼는 소외, 또 하나는 노동법 밖의 여성노동자들을 주목하는 것이었다. 거의 전 연령대에서 서비스 노동자가 급속도로 양산되는 상황이고, 법적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늘고 있다. 사회가 고령노동자들이나 노동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법외 인간’인 것처럼 만들고 있다.

 

‘사회적으로 잘 살게 되고 파이가 커지면 나눌 것이다.’ 그런 이야기를 1960년대부터 해왔는데 사람들은 점점 더 지갑을 움켜쥐게 되고, 나누지 못하고, 추위 속에 혼자 서 있다고 느끼게 되는 게 지금 이 시대이지 않나. 성별 임금 격차가 지속되고 있고, 여성이기 때문에 겪게 되는 차별이 여전히 있는데, 그런 부분을 다루고 싶었다.

 

여성들의 삶을 단순한 사례나 딱딱한 통계로 환원하지 않으면서 여성들의 겪는 삶의 느낌을 보여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동시에 이것이 전체 사회 시스템의 문제와 어떻게 연관이 되고, 또 어떻게 해결되어야 하는가도 다루고 싶었다. 여성들의 목소리에서 내가 받았던 느낌까지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 부분도 문학적으로 살려내면서, 한편으론 사람들에게 이 문제가 어떻게 자신들과 연결된 보편적인 문제인지를 짚어주는 것까지, 두 가지를 같이 가려고 했다.”
 

▲  안미선 르포집 <여성, 목소리들>(오월의 봄. 2014) 
 

-국문과를 나왔고 소설을 쓰다가 르포도 시작하게 된 것으로 아는데, 특별한 계기가 있나? 르포 작업의 어떤 점에 매력을 느끼게 되었는지.

 

“구체적으로 살아있는 사람들을 만나서 현장의 이야기를 듣는 게 좋았다. 세상과 직접 부대끼고 살아가는 현실을 보면서, 사람들이 세상을 어떻게 해석하고, 자신을 어떻게 해석하고, 어떻게 상황이 바뀌는지가 흥미롭게 다가왔다고 할까.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배우는 점도 많았다.

 

한편으로 우리 사회에서 꼭 목소리를 내야 될 사람들을 기록하는 일이 시민으로서의 의무처럼 다가온 것도 있었다. 내가 글재주가 그렇게 좋거나 능력이 많다고 생각되지는 않지만 이 부분에서 내가 할 역할이 있다면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처음 썼던 르포는 무엇이었나?

 

“르포집 <마지막 공간>(삶창, 2004)에 수록된 작품인데, 청계천에서 오토바이로 퀵 서비스하는 분 이야기다. 그 다음 르포는 <여기 사람이 있다>(삶창, 2009)에 수록된 철거민의 이야기였다. 평생 화장품 판매를 통해서 집을 하나 가지게 되었는데 그게 사라지게 된 여성. 철거 문제를 여성노동자 관점에서도 보고 싶었다.

 

그 후로는 4대강 사업이 한창일 때 내성천이나 팔당 유기농지에 관해 기록 작업을 했다. 그 후에 여성 인권 르포 제의를 받아서 연재를 하게 된 것이다. 어떻게 보면 ‘지면’이 주어졌기에 가능했던 방향인 것 같다.”

 

-요즈음 좋은 르포 작업들이 곳곳에서 많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르포 작가로 살아가기에 좋은 환경은 아닌 것 같다.

 

“지금은 기록노동자의 권리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조합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동안 한국 사회에서 르포 작가들은 토대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각자 자기 유지를 하면서 생존해왔다. 내가 르포 작업을 계속해올 수 있었던 데에는 르포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 계속 실어준 매체가 있었다는 게 큰 역할을 했다.

 

일본의 경우 논픽션 장르가 굉장히 활발하다. 무슨 사안이 있으면 관련 르포가 많이 생산된다. 장정일 씨가 ‘문학이 너무 강한 사회는 온갖 사회적 의제와 다양한 글감을 문학이라는 대롱 속으로 탈수해버린다. 사회적 사안이 소설이 아니라 논픽션으로 쓰인다면 그 사회적 파급력은 상당할 것이다’ 라고 글로 쓴 것을 보았는데, 공감했다.

 

그런 필요성에 비해 르포에 대한 인식이나 위상 정립은 부족하고, 독자적인 개념으로 출판 시장이 아직 형성되어 있지 않다. 르포를 쓰는 사람들의 노동권이나 지위도 보장이 되어야겠지만 인식의 전환이 필요한 것 같다. 르포를 통해 세상을 깊이 있게 보려는 독자들이 늘어야 하고,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지면들도 필요하다.”

 

-말씀하신 대로 우리 사회에서는 인터뷰와 기록에 대한 이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픽션에 비해 작가의 수고가 덜 들어가는 장르처럼 오해한다든가, 기록자의 역할을 과소 평가한다는 생각이 들 때가 종종 있다.
 

▲  안미선 작가의 첫 단행본 <내 날개옷은 어디 갔지?>(장차현실 그림, 철수와 영희, 2009) 
 

“픽션을 더 가치 있게 생각하고 소설이나 시 같은 장르를 우대해온 사회적 풍토, 오래된 문학적 풍토와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미문(美文)으로서가 아니라 삶의 현장의 목소리로 이야기하면서 보여주는 데 르포라는 장르의 특징이 있다. 일상의 문제가 얼마나 큰 구조랑 연관이 되어 있는가에 대해서 통찰 혹은 자극을 줄 수 있는 데 르포의 몫이 크지 않을까.

 

언론들이 다양한 현장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한국 상황에서, 르포는 현장의 목소리를 굉장히 묵직하게 담아낸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언론사에 속하지 않은 르포 작가들은 조직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나. 르포 작가는 인간을 그 자체로 이해하는 시선, 공감과 연민도 필요하면서, 사회 전체가 돌아가는 구조도 잘 알아야 되는, 상상력과 원근법이 같이 있어야 되는 자리에 놓여 있다.

 

아마 앞으로도 일상의 답답함이 증대되고 더 넓은 것을 제대로 보고 싶어하는 욕구가 사람들에게 생겨나는 상황이기 때문에, 더 많은 르포 작품들이 생산될 거라 낙관하는 편이다.”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에 대해 묻지 않을 수 없다. <일다>에 연재 중인 ‘기록되지 않은 노동’은 기존 노동 담론에서 놓치고 있는 여성노동자들이 처한 다양한 현실을 포착해내는 시선이 돋보인다.

 

“여성노동자 글쓰기모임 구성원들은 여성노동자이고,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모여서 각자 할 수 있는 만큼 기록을 하는 모임이다. 써온 글을 놓고 함께 평가를 해주면서 글을 완성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서로 역량 강화를 한다.

 

기자가 현장에 와서 기록해주길 청하거나 우리가 전문 기자가 되어서 타인을 인터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생활에서 겪는 절실한 노동 문제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 기록한다고 했을 때 어떤 글이 나올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현장 이야기를 가장 잘 아는, 그 속의 일상을 사는 사람들이 기록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 그렇게 ‘기록’을 확장하는 것이 기록되는 내용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지만, 기록하는 주체를 묻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다>에 ‘기록되지 않는 노동’ 연재를 시작하게 되었다.”

 

-지금 하고 있는 다른 기록 작업이 있다면.

 

“‘엄마로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책이 올해 공저로 나올 예정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 여성들은 여전히 전통적으로 남아 있는 어머니 상을 강요 받으면서 한편으로 새로운 모성을 강요 받고 있다. 그 속에서 어떤 고민을 하고 자기 목소리를 찾아내는가에 대해 몇 년 동안 여성학자, 사회학자와 함께 작업을 했다. 여성의 삶을 전체적으로 기록해 보자는 시도의 일환이다.

 

‘모성’은 운동의 이슈가 되기도 어렵고, 또 운동의 이슈라는 게 세상에 알려지고 나면 어느 정도 해결되었거나 드러났다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우리 나라에서 모성, 노동, 여성 인권 문제는 밑바닥까지 다 들여다보고 섬세하게 표현하지 않고는 아직 드러났다고 말하기 어렵다.”

 

-‘여성의 삶’이라는 주제에 천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나 또한 여성이고, 1990년대에는 여성들의 목소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는 과정이 있었는데 알게 모르게 그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선배들이 했던 걸 봤고, 그때 받았던 느낌들이 특별했다. 나의 경험을 설명할 수 있는 언어들이 제공되었던 거다. 그 말들을 사회에서는 빨리 잊어버리고 없었던 것처럼 하고 있지만, 나는 잊을 수 없다. 이제는 다음 세대 여성들한테 우리가 전해줘야 하는 의무 같은 것도 있지 않나 싶다.

 

여성의 현실은 변한 것 없는데 그런 활발했던 이야기들이 빨리 퇴조되어 버리고 그 자리가 여성에 대한 공격적, 혐오적인 발언으로 채워지는 게 안타깝다. 더 많은 사람들이 여성에 대한 기록에 관심을 갖고, 내 삶의 문제를 지금 내 목소리, 옆에 있는 사람의 목소리, 현장의 여성의 목소리에서 찾았으면 좋겠다. 이러한 작업을 통해 자신의 문제가 풀려가는 것도 있지만, 그 사람의 삶이 더 튼튼히 뿌리내리는 것도 있을 거라 보기 때문이다.

 

공허한 말이 판치는 시대이기 때문에 여성주의 기록이 더 많았으면 좋겠다. 나는 내 기록이 여성주의 기록이라고 생각하고, 여성주의 기록이 르포와 만났을 때 어떤 결과물이 나오는지를 실험해왔다고 생각한다. 유명한 작가 하나보다 그 뜻에 공감하고 한편씩이라도 쓸 수 있는 열 명, 백 명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이 바뀌려면, 혹은 이런 목소리가 존재한다는 걸 알게 하려면.”

 

-여성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어떤 식의 접근이 필요한지, 혹은 유의해야 하는지. 다양한 여성들을 만나고 기록해오면서 가지게 된 태도가 있나?
 

▲   안미선 씨는 인터뷰를 하면서 상대방(인터뷰이)에게 완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드리고 싶다고 말한다.   © 박희정 
 

“인터뷰하기 전에 스스로에게 많이 묻는 편이다. 내가 왜 인터뷰를 하고 싶고, 나와 이 사람의 관계는 어떻게 되고, 차이점은 뭐고. 인터뷰라는 건 계층, 지역과 세대와 성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지 않나. 그래서 인터뷰를 할 때는 인터뷰이의 계층, 지역, 성 같은 요소에 대해 다 생각한다. 나와는 다른 그의 경험을 생각하고, 나는 어떤 위치에 있고. 또한 내가 싫어하는 것과 좋아하는 것에는 개인적인 부분이 있을 텐데 그게 어떤 것들인지 의식하려 애쓰는 것 같다.

 

만났을 때는 많은 질문을 하기보다는 그분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자유롭게 할 수 있게 공감하면서 듣는 편이다. 눈물이 비치거나 목소리가 떨리거나 할 때 그런 것들을 잘 기억해두었다 다시 한 번 묻기도 하고. 그분이 울 때는 같이 울 때도 있고 침묵을 기다릴 때도 있다.

 

내가 가져갔던 질문보다는 그 사람이 살면서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뭐였을까를 느끼려고 애쓰는 것 같다. 비슷한 입장을 가진 사람이 연대한다는 느낌으로 인터뷰를 하니까, 그 사람이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들어준다. 그 속에서 내가 하고 싶은 질문을 던지고 그 사람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뭘까 생각해본다. 인터뷰이가 나한테 전해줬던 가장 강했던 느낌을 중심으로 그 사람의 삶을 재구성해주는 거다.

 

나는 인터뷰 작업을 통해 인터뷰를 해주시는 분이 속에 있던 걸 표현하면서 그 감정도 드러내기 바라는 것 같다. 그 사람한테도 힘을 주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 그 사람이 ‘내 말도 중요하다, 내 말도 틀린 게 아니다’ 라는 격려를 받았으면 한다. 대부분 듣거나, 지시를 받는 입장이었을 테니까. 이런 태도에도 여러 견해가 있겠지만, 나는 최대한 청자의 입장을 유지하려 한다. 그 사람에게 완전히 집중하는 시간을 드리고 싶다.”

 

-십여 년간 기록 작업을 해오면서 ‘안미선’이라는 개인 안에서 일어난 변화가 있다면.

 

“사람들과 함께 성장하게 되는 거라고 할까. 골방에서 글만 썼다면 나의 세계라는 것이 좀 빤한 부분이 있었을 텐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서 어떤 상황을 봤을 때 좀더 다각도로 생각할 수 있게 된 같다. 그래서 뭔가 한 가지 입장이나 목소리에 매몰되지는 않게 된 것 같다. 감정적으로도 지나친 자기 연민에 빠진다거나 ‘최악이다’ 그런 생각은 안 하게 된다.

 

내가 저런 상황이었으면 저런 용기를 낼 수 있을까 싶은 상황 속에서 굉장히 놀라운 용기와 힘을 발휘해서 싸우시는 분들이 많다는 걸 봤다. 꼭 그렇게 하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물위에 쓰는 편지>라는 지율 스님의 내성천 영화에 한 여성노인이 나오는데, 파괴된 집터에서 아무도 안 도와주는데 혼자서 죽는 날까지 밭을 일구신다. 그런 힘들이 모든 사람한테 있는 것 같다. 그런 것들을 봤기 때문에 내 삶에 대해서도 힘들 때가 있지만 근본적으로 비관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글쓰기 교육도 계속 하다 보니 생각과 고민이 비슷비슷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은 죄책감을 갖거나 자책하고, 표현하지 않고, 자신의 문제로 환원해서 생각하는데 ‘사실은 이게 우리의 문제다. 이런 일을 겪는 게 나 혼자가 아니고, 내가 힘든 이야기를 어떤 식으로든 표현했을 때 많은 여성들이 손을 내밀어 줄 거다. 내가 이렇게 고립감을 느끼는 것이 내가 인터뷰했던 여성들이 느꼈던 고립감과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인터뷰와 르포 작업을 통해서 덕을 많이 봤다고 할 수 있겠다.

 

30대 초반에는 분노스럽고 억울했다. 기지촌 성매매 여성을 1년 정도 구술을 받아서 공동 기록을 해 책을 냈다. 작업하러 다닐 때는 힘들고 고통스럽고 우리 나라에 분노가 치밀었다. 나를 압도하는 경험들이어서 내가 이런 작업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런 면에서도 많이 달라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다 해내야 된다는 생각을 하지 않나. 마치 당대에서 우리가 해결해서 끝내야 될 것 같은 생각도 들고. 물론 우리는 최선을 다하지만, 기록은 기록 자체의 의미가 있고 기록 자체의 한계도 있다. 조금이라도, 꾸준히 내가 할 수 있는 데까지 다 하면 된다.”  ▣ 박희정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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