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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처벌보다 모멸이 두려웠을 것이다
[내가 만난 세상, 사람] 함정수사로 죽은 성판매여성을 애도하며 

 

※ 너울 님은 <꽃을 던지고 싶다: 아동 성폭력 피해자로 산다는 것> 수기를 쓴 저자입니다.

 

 

티켓다방에서 일하게 된 지혜 이야기

 

전화벨이 울린다. 전화기에 뜬 이름에 고마운 마음이 먼저다.

 

걱정하고 있었는데, 전화를 한 것을 보니 잘 지내고 있었나 보다. 지혜(가명)가 잘 지내고 있었다고 느끼는 것은, 그 아이가 항상 어려운 시기를 혼자서 넘기고 조금은 견딜만해졌을 때 전화를 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래 연락이 없으면 힘들지 않은지 염려하게 되는 아이.

 

“선생님, 저 서울 가요!”

 

전화기를 타고 밝은 젊음의 기운이 훅하고 넘어온다. 스물한 살. 예쁜 나이다. 그러나 세상을 살아가기엔 서투른 나이다. 그래도 작은 일에 기뻐할 수 있는 그런 젊음의 기운에 나도 기분이 좋아진다. 지혜와 만난다. 나는 그 아이에게 어떤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지혜를 알게 된 건 2년이 채 되지 않았다. 함께 추억을 쌓기엔 부족한 시간이다. 그러나 그 아이는 사람 마음을 무장해제 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서, 우리가 만들어간 시간보다 더 가깝게 느껴지는 관계를 맺고 있다.

 

작년에 나의 수기집이 세상에 나오고 참으로 많은 메일을 받게 되었다. 얼굴도, 이름도, 나이도 모르는 사람들이 내게 말을 건네 왔다. 나도 당신과 같다고, 혹은 나도 살고 싶다고.

 

지혜는 그 사연 중 하나였다. 유독 이 아이와 무수한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었던 건, 아마 지혜도 나도 서로 위로가 필요했기 때문이었을 거다. 나에게 지혜는 내 20대의 서투른 삶에 대한 투영이었고, 지혜의 표현대로라면 10년 후 자신이 꿈꾸는 모습이 나이기에 우리는 또 다른 자아였을 지도 모르겠다.

 

지혜는 어릴 적 엄마가 떠나고 아빠도 어디론가 떠나 큰아버지 집에서 성장했다. 외동딸. 어리광도 많이 부려보지 못했을 나이에 ‘부모의 부재’는 결코 견디기 쉬운 일은 아니었을 거다. 뒹구는 낙엽만 봐도 웃음이 터진다는 시기, 중학교 3학년 때 지혜의 방으로 사촌오빠가 들어왔다. 그 후 지혜는 큰아버지 집을 나왔다. 어디에도 자신을 보호해 줄 사람이 없었는 지혜는 그렇게 가출소녀가 되었다.

 

어린 지혜가 살아가기에 세상은 겨울처럼 혹독했고, 서러움은 더욱 컸다. 갈 곳을 찾아 헤매던 지혜가 몸을 뉘일 수 있었던 곳은, 직업소개소 소개로 알게 된 티켓다방이었다. 열일곱 살. 그렇게 성판매 여성으로 살게 된 지혜는 이제 20대가 되었다. 티켓다방은 지혜처럼 오갈 데 없는 아이들이 많이 모이는 곳이기 때문에, 성매매업소 중에서도 힘들고 열악한 곳으로 꼽힌다.

 

우리가 만나기로 약속한 날, 햇살 같은 지혜가 보인다. 커피숍 창으로 비친 지혜의 모습은 여느 20대와 다르지 않다.

 

“밥은 먹었니?”

내가 건넨 말에 지혜는 경쾌하게 웃음을 던진다. 지혜가 웃는 이유를 몰라 어리둥절해하자,

“선생님은 항상 ‘밥 먹었니?’ 아니면 ‘밥 먹어!’라고 밥 이야기 먼저 하세요. 선생님은 밥이 젤 중요한 사람 같아요” 라고 말한다.

생각해 보니 우리가 처음 전화 통화를 한 날도, 그리고 처음 만난 날도, 내가 건넨 첫마디가 “밥 먹었어요?”였던 것 같다.

“미안, 내가 조금 촌스럽지?”

 

나는 돈이 없어 배를 곯는 서글픔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진짜 밥이 제일 중요한 사람인 지도 모른다.

 

가장 취약한 사람을 이용한 가장 손쉬운 단속

 

지난 주 11월 25일, 경남 통영에서 경찰의 함정 수사로 인해 한 20대 성판매 여성이 목숨을 잃은 소식이 들려왔다. 티켓다방 합동단속을 벌이던 경찰관이 성매수 남성으로 속여 여성을 모텔로 불러냈고, 상대가 경찰임을 알게 된 성판매 여성은 모텔 6층에서 뛰어내려 사망했다.

 

▲ 12월 1일, 현장 검증이 진행된 통영 모텔 앞. 반성매매 운동가들이 경찰의 함정단속에 항의하며 피켓 시위를 벌였다.  © 변정희

 

이 소식을 듣고 나는 지혜가 많이 걱정되었다. 당연히 우리의 대화는 나의 걱정으로 번져간다. 단속을 당하지는 않니, 아픈 곳은 없니, 일하기 어렵지 않니…. 어차피 해결도, 대안도 되지 못하는 나의 말들은 허공에 뿌려진다.

 

창밖으로 거리에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한 무리 지나간다. 지혜의 얼굴에 부러움이 스친다. 지혜가 가장 하고 싶은 일이 ‘대학생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 부러움을 읽은 나는 지혜에게 늘 말해왔듯이 ‘성판매 여성 보호시설’에 들어가 검정고시도 보고, 조금 안전한 일을 찾아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잔소리를 시작하게 된다.

 

지혜는 전에 청소년 보호시설에 잠시 있었던 적이 있다. 다방을 여러 군데 직업소개소 타고 옮겨 다닌 던 중, 몸이 좋지 않아 갔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혜는 그곳에서 좋은 기억이 없다. 아마도 자유롭게 지내던 지혜에게 쉼터는 좀 갑갑했던 것 같다.

 

“선생님, 2천만 원 모으면 그만둘 거예요. 걱정하지 마세요!”

 

2천만 원이라는 돈은 지혜가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큰 돈인 것 같다. 2천만 원을 모으면 서울에서 방을 하나 구하고, 공부해서 대학생이 되고 싶다고 습관처럼 말한다. 나는 2천만 원이라는 돈은 큰돈이지만, 서울에서 살만한 방한 칸 구하기도 어려운 돈이라는 것쯤은 알고 있다. 하지만 지혜에게 그런 말은 꺼내지 못한다. 또 다방에서 일하면서 그 돈을 모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지만, 지혜가 그 돈을 빨리 모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는 것이 나에겐 최선일지도 모른다.

  

지혜는 남성들에게 아직은 인기가 있는 어린 나이이다. 열심히 일을 하지만 번 돈에서 방값, 밥값, 커피 값, 그리고 손님들에게 못 받은 외상값에, 지각하면 내게 되는 지각비, 월경 중에 일을 못하거나 아파서 하루 수익을 채우지 못하면 내야 하는 결근비, 또 다이어트 약값까지 제하고 나면 손에 쥘 수 있는 돈은 그리 많지 않다.

 

지혜의 요즘 고민 중 하나는 경찰 단속에 대한 두려움이다. 나와 만나서 성매매특별법에 대해 잘 알게 된 지혜는 ‘왜 여성을 보호한다는 법이 여성을 단속하는데 사용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단속에 걸리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어온다. 피해자임을 증명하는 것. 처벌 받지 않으려면 그 길밖에 없다.

 

지난 주 경찰의 함정 단속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 한 여성의 죽음이 지혜에게는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성매매를 줄이고자 한다면 알선업자와 성구매자를 단속해야 하는 일이다. 그런데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가장 열악한 위치에 있는 성판매 여성을, 성구매 남성으로 속이고 모텔 같은 현장으로 유인해 단속하는 것은 분명 잘못된 일이다. 그 여성들이 정말 두려워하는 건 단속에 걸려 처벌을 받는 것보다 ‘모멸감’이라는 걸 지혜도, 나도 알고 있다.

 

사회적 약자를 처벌하지 말고 보호하라

 

지혜와 헤어지면서 나는 결근비를 건넨다. 지혜가 언제든 힘들 때 하루라도 돈 걱정 없이 지냈으면, 그리고 나에게 연락을 해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을 전한다.

 

 

 ▲  2014년 11월 12일 <여성인권지원센터 살림>의 성폭력 추방 주간 기념행사 중에서. (부산)  © 살림
  

앞으로 지혜는 항상 그러했듯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원망하기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서 만들어 갈 것이다. 그러나 그 선택의 여지는 많지 않다. 그것은 지혜의 노력만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성판매 여성을 보호하지 않는다면, 한 여성의 죽음은 그저 안타까움으로만 남고 또다시 낙엽처럼 어디론가 사라질 것 같다.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었던 그녀의 죽음에 대해, 불법을 저질렀으니 어쩔 수 없다고 혹자는 이야기한다. 어떠한 생도 중요하지 않은 생은 없다. 지혜가 어릴 적 단 한 번도 성판매여성이 되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듯이, 많은 성판매 여성들이 자신의 희망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어떤 누구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거나 망치기 위해 살지는 않는다. 돈으로 타인의 성을 구매하는 남성들의 선택과, 성판매 여성의 삶을 선택하는 것을 같은 선상에 놓고 볼 수는 없는 일이다.

 

실패한 인생 따위는 없다. 혹자들은 쉽게 돈을 벌기 위해 ‘몸 파는 여자’라고 함부로 말하지만 사회 안전망이 부족한 우리 사회에서 성판매에 유입되지 않는 것도, 성판매를 벗어나는 것도, 오롯이 개인이 해결하기란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성매매특별법 10년. 성구매 남성보다 성판매 여성들이 더 많이 기소되고 있다는 지금, 그녀들을 사회적 약자로 바라보고 보호해야만 성매매를 줄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성판매 여성에 대한 ‘비범죄화’ 정책이 그 시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너울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영문 번역기사 사이트ildaro.blogspot.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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