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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의 눈동자, 그녀의 카트
<모퉁이에서 책읽기> 낸시 M.헨리 “육체의 언어학” 

 

※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쓰는 사람, <여성, 목소리들>의 저자 안미선의 연재 칼럼.

 

 

영화 <카트>(부지영 감독, 2014)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나이든 여성 청소노동자가 자신이 부당 해고를 당했다는 것을 알고 굽힌 몸을 일으켜 관리자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장면이었다. 일하면서 늘상 허리를 굽히고, 지시에 복종하느라 억울한 일을 당해도 눈을 내리깔아야 했던 그녀가 천천히 일어난다. 그리고 상대를 직시하는데, 그 눈에 담겨 있던 허망함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지에 가슴이 울컥했다.

 

이 영화는 권력을 사이에 두고 지배와 복종이 어떤 몸짓과 목소리와 눈빛으로 관철되는지, 또한 생존권을 위해 여성노동자들이 단결하여 싸울 때 무엇보다 그 몸짓과 목소리와 시선이 어떻게 바뀌는지 생생히 그려내고 있다. 낮게 웅얼거리던 대답이 단호하고 큰 목소리로 바뀐다, 움츠러들고 긴장하던 몸이 반듯이 곧추세워지며 삿대질하고 앞으로 나아간다. 시선을 회피하지 않고 상대의 눈을 정면으로 바라본다.

 

그 변화된 장면 장면이 뭉클하게 느껴지는 건 그것이 그녀들의 숨은 진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침묵을 강요당할 때 하고 싶었던 말, 자기 말이 끊길 때 잇고 싶었던 말, 외면당할 때 외치고 싶었던 요구, 자신의 생존이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고 속으로만 고함치던 진심. 그녀들은 억압당했던 진심을 드러내면서 비로소 자기 몸과 일체가 된다. 스스로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게 된다. 그때야 비로소 옆의 동료를 얼싸안고 웃을 수 있으며, 거리낌 없는 다양한 목소리로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게 된다. 

 

         ▲ 2007-2008년 홈에버, 뉴코아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바탕으로 한 영화 <카트> 
 
나는 영화를 보면서 <육체의 언어학>(낸시 M.헨리 지음, 김쾌상 옮김, 일월서각, 1990)이 생각났다. 권력이 몸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억압하고, 생존을 억누르는 권력에 어떻게 맞서야 할지 성찰한 드문 책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여성들의 각성과 변화된 행동을 촉구하기 위해 쓰인 책이므로 명료하고 그 목표가 뚜렷하다.

 

“우리의 생활과 인간관계를 결정짓는 정치적․경제적 구조 앞에 그것을 지탱시키고 있는 미시정치적 구조가 있다. 이 미시정치적 구조는 바로 우리들의 일상 생활의 내용이다. 지위가 낮은 자의 굴욕감은 이야기하는 도중에 무시당하거나 방해를 받을 때 또는 다른 사람이 나타나 자리를 피하도록 강요하거나, 자기도 모르게 겁이 나서 눈이나 머리, 어깨를 떨굴 때 가장 뼈저리고 고통스럽게 느껴진다.

 

역으로 말하면, 타인의 생활을 조정하고 부정 이익을 취하고 등쳐먹는 힘, 혹은 멀리 떨어진 농부를 폭격할 계획을 세우는 힘은 부분적으로 면전에서 타인의 주의를 분산시키거나 정보나 선호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것들에 의해 주어진다. 이것들이 우리가 사회라고 부르는 거대하게 층을 이루는 틈 사이로 마모된 것을 메꾸는 세목들이다. 무언의 통제작용을 설명해주고 무언의 권력 관계의 핵심을 간파할 수 있게 해준다.” (13p)

 

이전에 충분히 연구되지 않은 주제-몸의 정치학을 연구하면서 저자 낸시 헨리(Nancy Henley)는 계층, 인종, 성별, 연령에 따라 지배와 억압이 구체적인 행위로 어떻게 관철되는지 밝혀내었다. 인사말, 태도, 자세, 개인적인 공간, 시간, 신체 접촉, 눈의 접촉, 얼굴 표정, 감정 표현, 자기 노출의 영역에서 어떻게 권력이 드러나고 유지되며 상호 작용하는지 분석한다. 그럼으로써 희생된 자들을 비난하는 문화가 얼마나 부당한지 드러낸다.

 

이러한 지식을 가지는 것은 억압된 자들이 무의식적으로 일상적으로 느끼는 모멸감과 위축을 의식화하고 그 행동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또한 무엇보다 실재하는 정치 경제적 힘, 부당한 권력과 맞서 사람들이 구조를 바꾸어낼 수 있기를 저자는 바란다. 

 

          ▲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2014)의 한 장면.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투쟁을 할 때 그 원인으로 일상적으로 인격을 무시당한 고통을 드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권력이 작동되는 비인간적인 삶의 풍토를 지적하는 것이다. 지배와 피지배자의 제스처는 유사한 각본으로 작동되는데 그것은 부자가 가난한 자를 대할 때, 백인이 흑인을 대할 때, 남성이 여성을 대할 때, 연령이 높은 자가 아이를 대할 때 취하는 태도이다.

 

여성은 아이와 같은 존재로 문화적으로 각본화되며, 공격성을 드러 내지 말고 자기를 주장하지 말며, 순응하라고 사회화된다. 이러한 특징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권력의 이익을 위해 체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노동조합을 만들고 나서도 영화 속 그녀들은 빈 사무실에 하염없이 앉아 오지 않는 고용주를 기다린다. 그녀들은 대화의 상대자로 여겨지지 않기 때문에 결국 사장을 만나지 못한다. 권력은 이렇게 작동된다.

 

사적인 질문을 거리낌 없이 하는 자와, 되묻지 못하고 공손하게 대답하며 감사해야 하는 자. 느긋하게 긴장을 풀고 자기 공간을 점유하는 자와 긴장하고 대기하면서 공간을 빼앗기는 자. 바쁘다를 연발하며 인색하게 틈을 내어주는 자와, 시간이 많아 항상 기다리고 상대가 만나주기를 갈구하는 자. 스스럼없이 만지고 침입하는 자와 상대를 만지지 못하고 불편함을 바로 표현하지 못하는 자. 뚫어지게 바라보고 관찰하는 자와 시선을 피하며 의식하며 불편해하는 자. 웃지 않고 명령하는 자와 연신 웃으며 수긍하는 자.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자와 그 앞에서 자기 이야기를 하면서 울고 간청하는 자.

 

권력은 인간의 몸과 몸 사이를 그렇게 작동시키며 자신을 확립하고 유지하고 재생산한다.

 

“여성들의 옷이 몸과 몸의 윤곽을 명확하게 드러내도록 디자인되는 사회에서, 여성들이 단순히 자신의 일을 하는 동안에 추파를 받고 휘파람을 받고 꼬집히는 사회에서, 집에서 몸을 드러내는 옷을 입은 여성들을 보여주는 잡지들, 광고 게시판, 텔레비전에서 광고들을 보는 사회에서, 여성들에 대한 촉각적 정보가 자유롭게 입수될 수 있고, 공유물처럼 여성들의 몸을 접촉하기가 쉬운 사회에서, 남편들의 지위가 그 여성을 모르는 사람이 그녀들을 구분하는 제1의 정보가 되는 사회에서-이러한 사회에서 여성들이 ‘관찰 받는다’고 느끼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그들은 사실 관찰 받고 있다.” (205p)

 

          ▲  부지영 감독의 영화 <카트>(2014)의 한 장면. 

여성들은 몸의 권력의 장벽 속에서 결속의 몸짓을 배우지 않았다. 그것이 억압의 결과다. 그러나 <카트>에서는 여성노동자들이 봉쇄된 마트-들어갈 수 없는 자신의 일터 앞에서 카트를 온몸으로 함께 밀고 돌진하는 장면이 마지막에 나온다. 접근을 금지하는 물대포와 위협 속에서 그녀들은 카트를 낚아채어 절규하며 밀고 나아가는데, 줄줄이 같은 모양으로 세워져 있던 무력한 카트는 이제 전진하는 그녀 몸의 일부분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허리 굽혀 보이지 않던 그녀의 눈과 마주친 것처럼, 감정을 담고 있는 그 눈과 마주한 것처럼, 숨죽이고 있던 함성을 느끼게 한다.

 

“권력의 역사도, 편재성도, 복잡미묘한 작용도, 권력의 외관상의 불가피성도, 권력을 불변의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사실 권력의 역사는 처절한 억압의 희생자들이 그들의 권리를 찾기 위해 분연히 일어섰으며, 권력은 계속해서 무너지고, 전복되어져 왔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권력의 작용에 대한 모든 새로운 통찰은 권력을 전복할 또 하나의 새로운 길을 제공할 것이다.

 

나는 정치 조직과 사회적 관계들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을 할 수 있는 인간의 능력을 믿는 사람들 중의 하나다. 쉽게 좌절하지 말자.” -낸시 M.헨리 <육체의 언어학>(Body Politics: Power, Sex and Nonverbal Communication) 마지막 부분  안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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