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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연속 테러, 프랑스공화국의 과제 

 

 

신년 초였던 1월 초순, 프랑스 파리와 그 근교에서 신문사와 경찰관, 유대계 식품점이 무장한 괴한들에게 습격을 당해 열 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범인은 프랑스의 이전 식민지에서 이주해온 이민 2세. 프랑스에서는 1월 11일에 대규모 추도 집회가 열렸으며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및 각국 정상들이 참여했다.

 

지금 유럽 사회에서는 이민과 이슬람 과격파에 대한 논의가 터져 나오고 있다. 그리고 이슬람권 국가와 지역에서도 ‘종교에 대한 모독’에 대한 논의가 들끓고 있다. 오랜 기간 프랑스에 거주하고 있으며, 일본에서 <그래도 살고 싶은 프랑스>, <시간이라는 선물-프랑스의 육아> 등의 책을 펴낸 문학가 다카하타 유키 씨가 이번 사태에 대해 진단해본다. [편집자 주]

 

<샤를리 엡도>를 둘러싼 패러독스들

 

프랑스의 풍자 주간지 <샤를리 엡도>(Charlie Hebdo) 습격으로 편집장을 비롯해 만평 작가들이 사망한 데에 이어, 경찰관 살해와 유대계 식품점 습격으로 이어진 이번 사건의 여파는 크다. 프랑스 사회는 엄청난 충격을 받았다.

 

사건의 배후에는 한마디로는 말할 수 없는 복잡한 배경이 있다. 또 여러 패러독스(역설)와 몰이해, 오해가 소용돌이치는 혼란한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  파리 레퓌블리끄(république, 공화국) 광장 기념비. 1월 11일 대규모 추도 집회이후.  ©Olivier Loussert  

 

희생자를 추도하는 대규모 집회에서는 프랑스공화국의 이념인 ‘자유, 평등, 박애’에 대한 시민들의 애착이 얼마나 강한지 드러났다. 그러나 동시에 소수자(특히 무슬림)을 배제하는 병세도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이 나라에 계속 살아가고 있는 사람으로서, 다면적인 현실과 현상을 공들여 지속적으로 사유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실감하고 있다.

 

내가 역설(패러독스)이라고 보는 것은 다음과 같은 상황들이다. 이 사건으로, 실제 판매 부수가 3만부에 불과하고 시대에 뒤떨어진 마이너 풍자 신문이 ‘표현의 자유’를 상징하는 심볼이 되어, 4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거리로 나서게 만들었다는 점이다.

 

<샤를리 엡도>는 전신 주간지가 창간된 1960년부터 도발적인 풍자 그림 탓에 발간 금지 처분과 명예훼손 소송을 몇 번이고 당해왔다. 정치가와 군대, 종교 등 모든 권력과 권위를 철저하게 ‘웃음거리’로 만들고, 성을 자유분방하게 묘사하며 1970년대에는 카운터컬처(counter culture. 기성 체제에 반기를 든 젊은이들의 반체제 문화)를 몸소 표방했다. 그 정수는 ‘불경’한 블랙 유머였다.

 

하지만 긴 휴간기를 거쳐 1992년 복간 후에는, 1968년 5월 혁명(대학생들이 기존의 권위주의적인 시스템에 저항하는 반체제운동으로 시작하여, 노동자와 문화인들이 동조해 동맹파업에 이르는 등 대규모 사회변혁 운동으로 이어졌다. 유럽, 미국, 일본 등에도 번져나갔으며 보수적인 사회의 구조와 통념, 그리고 교회의 영향이 약해진 계기가 되었다.)이 품었던 좌파 아나키즘은 이 매체에서 의미를 상실했다는 평을 받는다. 이 주간지는 최근 심각한 경영난에 빠져 있었다.

 

양보할 수 없는 가치 ‘표현의 자유’

 

<샤를리 엡도>에 대한 평가가 어떻든 간에, 신문의 편집장 등 저널리스트들이 살해당한 충격 속에서 사람들이 레퓌블리끄(république, 공화국) 광장에 자연스럽게 모인 것은 ‘그림(표현) 때문에 살해당하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이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인도 출신의 영국 문학가 살만 라슈디(Salman Rushdie)가 1988년 소설 <악마의 시>(The Satanic Verses)를 출간하면서 겪은 정치적 회오리와 ‘죽음의 파트와(fatwa)’를 떠올리게 했다.

 

무함마드의 생애를 다룬 이 소설은 이슬람 교리를 저촉하는 불경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이란의 정치지도자 호메이니는 작가의 처형을 명령하는 격문인 파트와(fatwa, 이슬람 교리에 저촉되는지 여부를 해석하는 권위 있는 이슬람 판결)를 내걸었고, 이로 인해 살만 라슈디는 10년 넘게 숨어 지내야했다. 또한 이 책의 일본어 판 번역자 이가라시 이치 씨가 암살을 당하는 등, 세계 각지에서 ‘모독자’에 대한 공격과 살인이 잇따랐다.

 

이번 파리 연속 테러 사건은 프랑스 사람들에게, 이러한 공격이 바로 자신들의 주변에서 일어났다는 점에서 큰 공포와 충격으로 다가왔다. 게다가 희생자 중 한 사람인 카뷰나 보란스키는 텔레비전 등을 통해 대중에게 친숙한 인기 풍자 화가였다. 

 

▲  추모 집회에서 “흘려야 할 것은 피가 아니라 잉크”라고 적은 피켓을 든, 이민계 참가자.   ©Christian Fonseca  

 

극우 내셔널리즘과 이슬람 과격파, 양 극단 속에서

 

<샤를리 엡도>지는 2006년 이후 반복하여 이슬람 예언자인 무함마드를 풍자하는 그림을 게재하면서, 이슬람 과격파로부터 협박을 받아왔다. 2011년 11월에는 사무실 방화 사건을 겪었다.

 

그러나 16세기 프랑스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인문주의 개혁자이자 풍자 소설가 라브레(Fran ois Rabelais)나 18세기 후반 계몽주의 철학자 등, 프랑스 혁명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종교 권력과의 투쟁’ 역사에 영향을 받은 <샤를리 엡도> 측은 최근 종교 세력이 다시 힘을 회복하고 있는 정세에 반발하여 “표현의 자유, 종교 비판의 자유는 양보할 수 없다”는 자세를 고집했다.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는 프랑스 대혁명 당시 인권 선언에서 ‘기본적 인권’으로 설정된 후에도, 긴 민중의 투쟁에 의해 쟁취된 귀중한 권리이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서의 이슬람은 당시의 세속화된 가톨릭교가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서 막강한 권위를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전혀 다른 맥락 속에 있다는 점을 간과한 것은 애석하게 여겨진다.

 

1999년 이후 이슬람권 국가들은 유엔이나 유럽연합 기관에 대해 종교에 대한 ‘중상모략’을 금지할 것(‘모독’ 금지의 보편화)을 촉구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무함마드를 풍자한 <샤를리 엡도>는 이슬람 ‘세속화’(secularization, 종교적 가치와 규범이 사회 제도나 개인의 규범과 동일시되는 ‘신성화’의 대립 개념. 종교의 구속에서 벗어나 사회구성원들의 합리적 가치와 규범으로 바뀌는 과정)를 거부하는 종교 세력과 과격 집단의 타깃이 된 것이다.

 

한편, 최근 프랑스에서는 이슬람 신도들이나 이민자 집단 전체를 소수 ‘이슬람 과격파’와 혼동하여 적대시하는 차별적인 내셔널리즘이 높아져 있었다. 극우 정당 국민전선(FN) 등이 세를 모으고 있으며 보수 정치가나 문화인의 ‘이슬람 혐오’ 발언이 두드러지는 가운데, <샤를리 엡도>의 풍자화는 그 흐름에 휘말릴 위험성이 있었다.

 

프랑스에 살아가고 있는 4-5백만 명의 이슬람계 사람들의 대다수는 이전 식민지 등에서 이주해온 이민자의 자손이다. 프랑스 사회의 밑바닥에서 일하는, 차별에 쉽게 노출되는 약자의 입장에 있다. 그들 대다수가 무함마드에 대한 풍자를 ‘이슬람에 대한 모욕’이라고 느낀다고 한다.

 

<샤를리 엡도> 습격 사건 이후, 학교에서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1분간의 침묵을 갖는 것에 반발한 학생도 있었다. <샤를리 엡도>가 빈번하게 그린 ‘외설적인’ 성표현도, 수치심과 성적 금기가 강한 무슬림계 사람들에게는 상징적인 폭력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민주주의란, 끈기 있고 유연한 대화이다

 

이번 사건은 이주민을 차별하는 극우 내셔널리즘과 이슬람 세속화를 우려하는 이슬람 과격파라는 양 극단 속에서, 공교롭게도 <샤를리 엡도> 풍자화가 휘말리면서 발생한 비극이다. 그 여파로 양 극단의 세력이 더욱 강화되는 양상이 될까 우려된다.

 

무엇보다 프랑스공화국의 과제로, 무슬림계 시민에 대한 사회적 배제 문제가 표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축복 받지 못한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는 이민자들의 자손이 사회에서 소외되고 있는 현상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이번 습격 사건의 범인들처럼 이슬람 과격파에 이끌려 지하디스트(이슬람 성전 의용병)가 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일 뿐이다.

 

흔히 ‘이등시민’으로 이야기되는 프랑스의 구 식민지 출신자들의 상황은 심각하다. 저소득 노동을 하거나 실업자가 되는 것 이외의 선택지가 거의 없는 젊은이들이 인생의 희망을 걸 수 있는 교육과 고용에 있어서 대대적인 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동시에 그들 역시 ‘동등한 시민’이라고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이 사회의 일부에 아직도 남아 있는, 식민지 시대로부터 이어져온 차별 의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조치 역시 필요하다.

 

이민계 어린이들이 많은 지역의 중고등학교에는 이슬람 예언자 무함마드의 풍자화에 반발하는 학생들과 ‘표현의 자유’나 ‘정교 분리’에 대해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이야기를 나눠줄 역사, 지리, 국어, 철학 교사들이 있다. 나는 이 교사들의 역할이 매우 소중하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역사와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로 이루어진 사회에서, 여성과 동성애자와 같은 소수자의 권리를 포함하여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배우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이 교사들처럼 끈기 있고 유연하게 대화를 계속해나갈 필요가 있다.  다카하타 유키. 일본언론 <페민> 제공. 고주영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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