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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이야기에 더 용기있게 접근하기
펠레 포르셰드의 자전적 만화 <우리 부모님> 

 

 

▲  펠레 포르셰드의 자전적 만화 <우리 부모님> 
 

스웨덴의 만화가 펠레 포르셰드의 자전적 만화 <우리 부모님>(강미란 역, 우리나비, 2014년 12월)이 출간되었다. 요즘 한창 회자되고 있는 노인복지에 관한 만화라고 하니, 한 번쯤 읽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주제이다. 하지만 막상 이 만화를 읽어나가다 보면 그 놀라운 진실의 힘에 의해, 내가 노인 문제에 대해 짐작했던 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받게 된다.

 

스웨덴이라고 하면 복지국가 이미지를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우리나라는 이제야 노인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연일 독거노인이나 노인을 위한 무료 급식처에 대한 언론 보도가 나온다. 하지만 스웨덴이라면 이런 문제없이 뭔가 잘되어가고 있지 않을까? 라고 막연한 상상을 했었다.

 

그러나 이 만화책의 페이지를 넘길수록 드는 생각은 ‘스웨덴의 복지정책은 이 정도의 체계가 되었구나’가 아니라 ‘인간이 이런 조건에서는 이런 상황에까지 봉착할 수 있구나’라는 쪽에 더 가까워진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의 시선을 한 사회의 시스템에 대한 문제의식보다는 인간의 본질적인 질문으로 되돌려 놓는다.

 

펠레 포르셰드는 만화가이자 간호조무사로 일한 경력이 있다. 이 경력을 토대로 만화를 썼다. 하지만 작가의 말에서 밝혔듯이, 있는 그대로를 옮길 수는 없었고 다양한 화자와 시선으로 각색하여 다양성과 재미를 더했다. 그 부분에서 작가의 놀라울 정도의 연출력과 깊이를 느낄 수 있다.

 

노인의 삶, 이슈가 아닌 마음을 다루는 책

 

이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는 책에서 다루고 있는 이슈들에 관심이 쏠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라운 에피소드들이 이어졌다. 단순히 도움을 받고 있는 노인들의 입장만, 혹은 시스템에 가족을 맡긴 채 돌봄을 방임하는 가족들에 대한 비판이나, 시스템에 속한 노동자로서 간호조무사의 고충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다.

 

이 만화가 담고 있는 여덟 개의 에피소드 중에서 단연 핵심적이고 충격적인 장면은, 도움을 받고 있는 한 할머니가 스웨덴의 복지정책이 얼마나 잘되고 있는지에 대한 뉴스를 보던 중 먹는 것을 다 토해내는 장면이다.

 

펠레 포르셰드 글 그림, 강미란 역 <우리 부모님> 중. 
 

하지만 아주 주의 깊게 읽는다면, 데워놓은 지 3일된 만두를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다시 할머니에게 먹이고 있는 주인공 조무사를 볼 수 있다. 그래도 이것이 시스템의 문제, 그것을 용납하는 사회 분위기, 하루에도 몇 집씩 들러서 노인들을 보조해야 하는 조무사들의 과도한 업무를 떠올리게 하지는 않는다. 이 만화를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처음 읽었을 때의 놀라운 에피소드들에 조금은 익숙해지면서 새롭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다.

 

이 만화는 글이 많다. 그러나 지루할 새 없을 만큼 그 이야기들은 한 칸 한 칸 놀라운 진정성들을 담고 있다. 그저 칸을 따라 그림과 함께 이리저리 읽다 보면 어떤 진실에 도달해 있다.

 

조무사는 이 노인을 돌보며 다른 노인을 걱정한다. 다음 순번의 집에 전화를 걸고 시설에 연락을 취하고 다른 노인의 먹을 거리를 고민한다. 만화를 읽다 보면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있는 것처럼 화자의 생각을 따라 이동한다. 하지만 화자의 몸은 다른 곳에 있다. 대화는 이 사람과 하지만 속마음은 다른 말을 하고 있다. 행동과는 반대의 말을 하기도 하고, 이 노인을 거들고는 있지만 몸은 마음에 채 미치지 못하여 실수를 범하고 만다. 보호자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하지는 않지만 진실만을 말할 수 없는 상황의 연속이다.

 

보호자 오케와 아니카가 불편한 조무사 펠레, 그리고 그 펠레를 믿지 못하는 보호자들. 펠레는 매일 먹어야 하는 할머니의 약이 일부 사라진걸 알게 되고 보호자를 의심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할머니는 돌아가신다. 할머니의 직접적인 사인이 밝혀진 후에도 아들이 약을 빼놓았는지에 대한 진실은 저 너머에 있다. 우리는 과연 어디까지 진실을 안다고 할 수 있을까?

 

삶을 돌봄, 같이 ‘절망’을 겪는 것

 

리자가 돌봄 환자의 건물 옥상에 오른 후 자유로움을 느끼는 장면이 있다. 그 어떤 에피소드들보다 더 상징적인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리자는 펠레의 동료이다. 같이 식사를 하기도 하고 같이 환자의 집에 들러 함께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펠레는 그녀가 남자환자의 야한동영상 보기까지 도와줘야 하는 게 싫다.

 

펠레 포르셰드 글 그림, 강미란 역 <우리 부모님> 중. 
 

어느 날 그녀는 환자의 집 건물에 있는 옥상에 올라간다. 우발적인 일은 아니다. 언젠가는 꼭 올라가보고 싶었다. 그날 리자는 전에는 보지 못한 사다리를 발견하고 건물 지붕까지 올라가 하늘과 마주한다. 모든 것에서 해방됨을 느낀다. 하지만 잠시 후, 그녀를 구하기 위해 올라온 구조대원으로 인해 그 자유는 끝난다. 저 밑 지상에는 이미 구출장비들이 그녀를 위해 준비되어 있다.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돌본다는 것은 생명을 돌봄과는 다르다. 생명을 돌봄은 함께 희망을 만드는 것이지만, 전자의 돌봄은 ‘같이’ 절망을 겪는 것이다. 단지 우리는 간호조무사들이 생명을 돌보는 것이라 믿고 싶을 뿐이다.

 

가족, 조무사, 환자 모두는 같이 인생을 산다. 누구는 절망하고 누구는 희망하는 것이 아닌. 보호자 오케는 어머니의 죽음 이후 여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결국 그도 여행지에서 조무사 펠레와 어머니의 환영을 마주한다. 어머니는 그를 구박한다. 그가 어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이미지다. 그를 이해할 수 있는 또 하나의 작은 조각이다.

 

나이듦, 그 다양한 이야기에 다가서다

 

<우리 부모님>의 매력은 여덟 개의 에피소드가 각기 다른 시각과 화자의 입장에서 쓰여 있다는 것이다. 펠레가 화자인 경우가 많지만 다른 동료의 시각으로도 쓰여 지고 보호자의 시선으로도 쓰여 진다. 서로를 깊이 언급하는 경우는 드물어서 독자가 전체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다.

 

이 만화의 묘미는 단순히 노인복지 정책이나 간호조무사의 업무를 다룸으로써 목적지향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사회시스템이나 정책에 대한 질문은 인간의 죽음에 대한 경험, 시선, 관계 속에 녹아 있는 일부분으로 녹아 있다. 이 책이 구호를 외치는 느낌으로 남지 않는 이유이다.

 

이 책은 죽음에 대해 다룬다. 죽음을 앞둔 사람의 기억, 후회, 마지막까지 그들의 눈에 남아있는 흔적들에 대해 말한다. 화자의 위치에 가까운 조무사들을 그릴 때에도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데, 나 아닌 타자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중얼거림으로써 시스템 안에 존재하는 인간의 진짜 마음에 근접하게 해준다.

 

▲  펠레 포르셰드 글 그림, 강미란 역 <우리 부모님> 중. 
 

“장례식” 에피소드와 “블랙&화이트” 에피소드는 같은 가족을 다루지만 각각 ‘가족의 시각’과 ‘환자의 시각’을 다룬다. 확연히 다른 이야기라 처음에는 같은 가족이라고 눈치 채지 못했다.

 

아이들은 죽음을 모르기 때문에 눈으로 보고 싶어하고, 죽어가는 이들은 죽어가기 때문에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만을 기억하고 싶어한다. 아이들은 할아버지의 죽음을 눈으로 직접 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슬픔을 느끼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죽은 모습을 보려고 한다. 환자의 두 자식은 환자의 유품을 간직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아버지는 자신밖에 몰랐다며 인간적인 정조차 내비치지 않는다. 반면 할아버지는 끝까지 자신이 책임지지 못했던 두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며 죽음을 맞는다.

 

<우리 부모님>은 인간의 다양한 모습 중 하나인 나이듦의 과정을 인간적이고도 다양하게 조망하고 있다. 일상적인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는 이유로, 죽음에 직면했다는 이유만으로 객관적으로 대우받지 못하는 모습 또한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다. 다시 읽을수록 새롭게 읽히는 만화이다.

 

이 만화가 주는 미덕이 어떤 특정한 사회의 복지정책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라 나이듦에 관한 인간 본연의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다면, 독자들도 이 만화를 통해 큰 소득을 얻게 되지 않을까. 나이듦과 함께 잘 사는 법에 더 용기 있게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오승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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