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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TA 협상 문제가 불거지면서 농업 분야가 많은 타격을 받게 된다는 분석이 자주 나왔다. 그런데 이 분석들은 대체로 농업 자체에 대해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고 있는 듯 하다. 즉 산업화, 세계화의 추세 속에서 전근대적인 분야인 농업은 어쩔 수 없이 사장될 수밖에 없다는 식이다.

<小農-누가 지구를 지켜왔는가>(녹색평론)의 지은이 쓰노 유킨도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가령 전 세계가 공업사회로 이행하여 농업인구가 1할이 되었다고 하자. 그때 전 인류 중 9할의 노동인구를 받아들일 2차, 3차 산업의 구도는 준비되어 있는가.”

자연과 접촉하며 땅을 지킨 ‘소농’

"논: 밥 한 그릇의 시원" 최수연 작(출처)

쓰노 유킨도는 전세계적으로 아직도 많은 농민들이 소농으로, 즉 좁은 땅에서 자급자족의 규모로 농경을 하며 살아가는 현실을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소농은 전근대적이고 생산력이 떨어지는, 사장되어야 할 존재가 아니다. 오히려 소농은 토양유기물을 지속적으로 축적하여 인류생존의 기초인 땅을 지키고 있다.

농지는 생산물을 많이 얻기 위한 ‘인위자연’이다. 소농들은 매번 소모되는 지력을 보충하여 영속적으로 작물을 생산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 이들은 재배법을 집약화하여 다양한 방식을 이용한다. 벼가 주요 작물로 선택된 까닭도, 물이 있을 경우 매우 안정적인 생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논밭은 한 필지마다 개성이 있고 농지로서 질이 다르다.” 그러므로 각 땅마다 다양한 방식의 농사법을 필요로 한다. 예컨대 돗토리 사구는 바람 때문에 모래가 끊임없이 지표면을 이동하므로 보통 식물은 뿌리가 노출되어 생육할 수 없다. 불모의 땅인 셈이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 땅에 농사를 짓기 위해 애썼다. 방풍림을 조성하고, 담을 만들며, 생울타리를 쳐서 바람을 약하게 만든다. 퇴비를 넣고 경작하면 식물에 필요한 점토성분이 6%정도 늘어난다. 그리하여 사구지 풍토만의 개성이 생겨난다.

이처럼 농업은 먹고 살기 위한 일인 동시에 자연과 접촉하여 다양한 방식의 기술을 인간 스스로 개발하는 일이기도 하다. 지은이는 농업에 대한 생태주의적인 철학을 가지고 있다. “세대를 거치며 토지개량에 쏟아진 노동량에 따라” 땅은 각각 달라진다. 농민은 땅을 관리하고 작물을 재배하며 농지와 작물이 원하는 것을 잘 알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자연 사이의 관계에 대한 사유가 생겨난다.

“공들여 작물을 재배하고 가축을 기르는 행위에는 반드시 감정이입이 있다. 그래서 가축의 희로애락이 바로 가슴에 와 닿고 작물이 나타내는 표정과 자세에서 감정을 읽을 수 있다.” “짐승을 죽이고 벌레를 밟으면서도” 인간과 동물의 관계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농업 근대화’로 설 자리 잃어

그러나 “농업 근대화의 태풍” 때문에 소농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다. 지은이는 농경의 변천 역사를 살피며 농업의 자본주의적 발전은 소농을 해체하여 농지가 소수에게 집중되도록 지향한다고 지적한다. ‘상인의 눈’으로 이루어지는 대규모 경영에서는 영속성보다는 생산력이 우선이다. 어차피 단위면적상 작물의 생산능률은 제한되어 있다. 그러므로 농장규모를 확대할 수밖에 없다.

국가에서도 이를 정책으로 내세운다. 농가 수를 줄이고 대규모 농가를 육성해서 국제경쟁에 견딜 수 있는 값싼 농산물을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대농지를 확보하고 대형농기계는 운전사에게, 농약살포는 공중살포업자에게 위탁하여 노력을 절감한다.

그러나 이렇게 될 경우 실제로 농가가 취할 이익은 늘어나지 않으며, 쌀 가격이 인하될 뿐이다. 지은이는 이것이 새로운 형태의 ‘농노제’에 불과하다고 거세게 비판한다. 더군다나 한 가지 종류만을 계속 재배할 경우, 토양에서 부식이 줄어들고 제초제 과용으로 생태계가 파괴되며 저질 관개수 때문에 염류가 쌓인다. 농지생산력의 영속성이 파괴되는 것이다.

지은이가 설명하는 일본 농업의 역사는 한국과 비슷한 구석이 많다. 일본은 상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산업국가를 지향했으며, 정치도 교육도 이를 위해 재편성됐다. 그래서 자본주의적 발전의 가능성이 낮은 생업은 모두 폐기될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국가는 끊임없이 농민의 이동을 강요했다. 그 결과 농촌에서 유입된 ‘값싼 휘발유’인 노동자는 노동력을 몽땅 연소시킨 뒤 도시의 슬럼에서 불안정하게 살아가고 있다. 한편 농촌에서는 우수한 인재를 도시에 뺏기고, 도시적 삶에 대한 강한 욕망을 지닌 채 일상을 보내고 있다.

귀농, 도농 직거래운동 새로운 활로

지은이는 여러 가지 방향에서 농업의 활로를 찾는다. 자신이 직접 주말마다 밭을 일구면서 퇴직한 도시의 노인들이 직접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가 하면, 도시의 소비자와 농촌의 생산자를 직접 연결 짓는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지은이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농약오염의 심각성을 알아차린 소비자들은 유기농법과 자연농법으로 재배된 농산물을 열심히 찾고 있다. 시장을 거치지 않고 소비자와 생산자가 직접 연결된 도농 직거래 운동의 고리가 조용히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소농의 활로라고 생각한다.”

사실 한국의 상황에서 이 같은 이야기는 지나치게 긍정적인 것으로 비춰질 수도 있을 듯싶다. 현재 FTA에 대한 농민들의 반대는 생존권 보장 수준의 급박한 것이고, 풀어야 할 과제가 한두 가지가 아닐 테다. 그러나 장기적 차원에서 보았을 때, 농업을 산업적 관점으로 재단하는 대신 인간 삶의 필수불가결한 분야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더 절실한 듯싶다. [일다] 김윤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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