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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는 통조림이 아니라 인격체에요
반다의 질병 관통기③

 

 

※ 2015년 <하늘을 나는 교실> 가을 학기에 “질병과 함께 춤을! -잘 아프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몇 가지 것들” 수업을 개설한 반다(조한진희)님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편집자 주

 

각종 정기검진으로 병원을 방문해야 하는 시기가 되면 나는 ‘병원순례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곤 한다. 여러 과를 돌아 다녀야 해서 그렇기도 하고, 종교인이 경건한 마음으로 성지를 순례를 가듯 건강해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품고 병원을 가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또 하나, 순례자처럼 마음을 비우고 수행하는 마음으로 가지 않으면 불쾌감이나 마음의 생채기를 안고 오기 쉽기 때문이다.

 

명의의 진료? 당혹스럽고 불쾌했던 병원 시스템

 

몇 년 전 현기증이 심해지면서 아랫배에 묵직한 느낌이 생기기 시작했다. 병원에 예약을 하고 몇 달을 기다린 끝에 손꼽히는 명의라는 의사에게 진료 받는 날이 왔다. 한국 최대 종합병원답게 복잡한 그곳에서 수납을 하고 간 첫 번째 곳은 ‘예진실’이었다. 간호사는 나의 증세를 받아 적었고, 자세한 건 진료 시간에 의사와 얘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아래층 ‘초음파센터’에 가서 검사를 먼저하고 진료실로 이동하라고 했다. 할 때마다 언제나 싫은 자궁초음파 검사를 하고 담당의 진료실로 갔다.

 

머리가 하얀 의사는 무뚝뚝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보고 있었다. 간호사가 의사선생님이 초음파 검사 결과를 받았는데, 직접 다시 검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다시 진료실 의자에 누웠다. 눕자마자 아무런 안내도 없이 다시 시작되는 자궁 초음파 검사. 잠시 뒤 따끔거리는 불쾌한 느낌이 들었다. 간호사는 내게 움직이면 진료에 방해가 된다며 주의를 줬다.

 

의사는 내게 손을 들어 보라고 하더니 내 손을 내 아랫배에 대며 “이런 게 있으니 혈색이 그 모양이야”라고 말했다. 검사가 끝나고 옷을 입고 의사 앞에 앉자, 의사는 차트에 뭔가를 적으며 근종이 있으니 수술을 해야 한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간호사에게 MRI 검사를 예약하라고 지시했다. 간호사는 내게 진료가 끝났다며 설명간호사실에 가서 결과를 들으라고 했다.

 

설명간호사실 간호사는 수술 날짜를 예약해야 한다고 했다. 나는 오른쪽 아랫배의 묵직한 느낌이 근종 때문인지 물었다. 간호사는 그건 자신도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자궁경부암 검사도 했다고 말했다. 내가 그 검사를 한다는 안내를 받은 적이 없다고 하자, 진료실에서 두 번째 초음파 검사를 했을 때 담당의가 직접 했다고 답했다.

 

간호사는 또 MRI 검사 비용이 100만 원 정도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MRI 검사가 왜 필요한지 물었다. 간호사는 그건 의사선생님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의사와 병원시스템은 시종일관 무례했다. 나는 시종일관 당혹스럽고, 불쾌하고, 어이가 없었다. 의사의 반말과 태도가 황당했음은 물론이다. 의사는 차트를 보며 간호사하고만 말을 했다. 마치 나는 그 자리에 없는 것처럼. 의사에게 내 증세를 말하거나 질문할 기회가 전혀 없었다. 나의 증세에 대해 구체적인 설명을 듣고 싶었지만, 간호사는 내 질문에 대해 대부분 잘 모르겠다고 답했다.

 

자궁 초음파 검사를 할 때, 한마디 안내도 없이 차가운 스틱과 함께 시작되는 무례함은 이미 경험한 적이 있어서 새로울 것은 없었다. 하지만 환자에게 어떤 안내나 동의 절차 없이 자궁경부암 검사를 한 것. 그리고 무려 검사비가 100만원 가까이 하는 MRI를 찍으라고 하면서, 그 이유가 의사가 해야 한다고 해서라니! 이 병원 시스템과 의사는 내 병원 경험 중 손꼽히는 최악이었다. 나는 그 병원 문을 들어서서 수납을 한 이후부터 컨베이터 벨트 위 통조림이 된 기분이었다.

 

그 무력감과 불쾌감이 뒤엉긴 기분. 그런데 더 화가 나는 건 내가 단 한 마디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순한 양처럼 듣고만 있었다는 것이다. 여러 차례 질문을 했으나 묵살 됐던 경험 때문인지, 언젠가부터 의사들 앞에 가면 주눅이 들고 복도에 가득 기다리는 환자들을 위해 빨리 일어서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병원에 갈 때마다 생각한다. 의사에게 궁금한 건 꼭 묻고, 불쾌한 일이 생겼을 때 애써 불쾌감을 감추지 말자고.

 

‘멀리서 왔으니 주사나 한 대 맞고 가시라’

 

그날도 그랬다. 위에 언급한 담당의사의 무례한 태도와 더불어 여러 이유가 겹쳐서 초음파와 MRI 검사 결과지를 들고 다른 종합병원의 산부인과를 방문했던 날. 이번 담당의는 “어차피 당장 수술을 할 수도 없는데, 멀리까지 왔으니 주사나 한 대 맞고 가시라”고 경쾌하게 말했다. 나는 어떤 주사고 왜 맞는지 물었다.

 

의사는 수술할 수 있는 체력이 될 때까지 몇 달의 시간이 필요할 거라며(당시 빈혈 등 여러 수치가 낮아서 수술을 할 수 없는 상태였다), 그 주사를 맞으면 근종 성장을 막아줘서 좋을 거라고 했다. 나는 갑상선 암이 있는데 영향은 없는지, 그리고 꼭 맞아야 하는 주사인지 다시 조심스럽게 물었다. 의사는 아마 별 상관없을 것이라고, 맞고 싶지 않으면 안 맞아도 되지만 근종 상태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하며 얼굴을 찡그렸다.

 

나는 당시 체력이 너무 떨어진 상태라 주사가 몸에 미치는 부작용은 없는지 염려됐다. 암과 관련해서 ‘아마’ 별 상관이 없을 것이라는 의사의 말도 탐탁지 않았다. 무엇보다 ‘멀리까지 왔으니 주사나 맞고 가라’는 말에 신뢰가 느껴지지 않았다. 먼 곳까지 왔으니 오렌지 주스나 한잔 마시고 가라는 말이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의사는 모니터 화면으로 시선을 옮긴 채, 주사를 맞으면 3개월간 효과가 지속되니까 3개월 뒤에 다시 보자고 했다. 나는 더 질문하지 못했다. 결국 다시 순한 양이 되어서 주사를 맞고 집으로 돌아왔다.

 

주사를 맞은 몇 주 뒤부터 손가락 마디와 무릎 관절이 쑤시고 아팠다. 발뒤꿈치도 아팠고, 체온 조절이 안 되고, 얼굴에 열이 나기도 했다. 워낙 여러 통증을 달고 있긴 했지만 기존에 없던 새로운 종류의 통증과 증세였다. 이후 3개월 만에 다시 병원에 갔을 때 의사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내가 새롭게 겪고 있는 이 증세가 혹시 그때 맞은 주사와 관계가 있는지. 그러자 의사는 예의 그 경쾌한 말투로 골다공증 증세가 오는 것이고, 그 주사의 후유증으로 인한 거라고 설명했다.

 

나는 왜 그걸 미리 설명해 주지 않았냐고 화를 내고 싶었다. 어차피 똑같이 겪을 증세지만, 몸에 다른 질병이 오고 있는 걸까 두려워하진 않아도 되었지 않냐고 핀잔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오히려 ‘아, 네 그렇군요. 그래서 그런 거라니 차라리 다행이네요’ 라는 말을 하고 병원을 나왔다. 그런 내가 한심하고 자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지금 그 상황으로 다시 돌아간다 한들 다르게 말할 수 있을까 싶다. 당시 나는 그 의사에게 수술 날짜를 예약해 놓은 상태였으니 말이다.

 

‘여기선 내가 사람이구나’ 느낄 수 있었던 진료

 

종합병원에서 겪은 불쾌한 경험을 얘기하다보니, 생각보다 많은 지인들이 내용은 달라도 불쾌감의 정도는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많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드물지만, 불쾌함이나 긴장감이 아니라 편안하게 대화를 할 수 있는 의사를 만나기도 했다.

 

▲  갑상선 전문 병원인 일본 쿠마병원.    © 출처: 쿠마병원 홈페이지 http://www.kuma-h.or.jp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일본 쿠마 병원에서였다. 내가 갑상선 암 진단을 받은 후 수술을 하지 않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일본인 친구가 연락을 해왔다. 일본에 갑상선 전문 병원이 있다며 진료를 권했다. 나도 인터넷에서 그 병원에 관련된 글을 본 기억이 났다. 한국의 병원과는 다른 치료 가이드라인을 가지고 있고 예후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병원비는 의외로 한국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항공료와 체류비 때문에 고민이 됐다. 그래도 한국과 달리 하루에 모든 검사를 마칠 수 있다는 친구의 말에, 진료를 받기로 결정했다. 당시 내가 다니던 종합병원은 갑상선 초음파와 세침 검사 등을 위해 몇 주에 걸쳐 병원을 방문해야 했다. 그러나 쿠마 병원은 홍보 문구에 있듯, 정말 환자 중심 병원인 것인지 하루 안에 모든 검사를 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했다.

 

쿠마 병원은 넓고 낯설었지만, 헤매지 않고 검사실을 찾아다닐 수 있었다. 물론 한국어를 잘하는 일본인 친구가 통역을 하며 동행해주어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검사 접수와 함께 받은 삐삐 같은 기계와 약도가 있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나의 검사가 끝나면 삐삐를 통해 다음 방문해야할 검사 장소를 안내 받았다. 몇 층에 있는 무슨 검사실로 이동하라는 식이었다.

 

검사실에 들어가면 의사나 간호사가 어떤 과정으로 어떤 검사를 하겠다는 안내를 해줬다. 이를테면 갑상선 초음파 검사를 위해 침대에 누웠을 때, 의사는 검사를 시작하기 전에 통증이 있는 검사는 아니니 염려하지 말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검사를 위해 젤 같은 걸 바를 텐데 차갑게 느껴질 수 있으니 놀라지 말라는 말도 덧붙였다.

 

갑상선에 주사 바늘을 넣는 세침 검사를 위해 새로운 검사실을 방문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의사는 검사할 때 따끔하긴 하겠지만 통증은 크지 않으며, 부작용이나 위험성도 거의 없는 검사라고 설명해줬다. 외국이고, 일본어를 할 줄 몰라서 긴장감이 컸는데 병원 시스템과 의사들의 친절함에 어설픈 일본 말로 고맙다는 말을 진심으로 연발하게 됐다.

 

검사를 마치고 며칠 뒤 결과를 들으러 갔을 때, 담당 의사는 갑상선 모형을 들고 나의 상태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어느 부위에 어떤 형태로 암이 자리하고 있는지, 초음파 사진과 함께 대조하며 그림을 그리면서 설명을 이어갔다. 그리고 수술이 필요할 것 같다며, 수술 과정에 대해 간략히 서술해주었다. 수술 이후 갑상선 호르몬제만 매일 복용하면 아무 문제없이 생활할 수 있다고 했다. 또 문진표(환자의 생활환경과 습관 등을 조사하는 여러 장에 걸친 문진표를 기입했었다)를 검토해보니, 생활 습관도 좋아서 지금처럼 수술 후에도 잘 관리하며 살면 아무 문제가 없을 거라며 웃어주었다.

 

나는 수술 이외의 방법이 없는지 물었다. 의사는 수술의 안전성과 임상 사례를 설명한 뒤 문진표에서 내가 채식주의자라는 걸 봤다고 말했다. 이어서 수술 후 복용해야 하는 호르몬제가 혹시 동물실험으로 계발된 걸까 걱정하는 거라면 그렇지 않으니 안심해도 된다고 말했다. 그 순간 느꼈다. ‘여기선 내가 사람이구나.’ 이상한 말이지만 그랬다. 그러니까 질병을 가진 대상이 아니라 인격체로서 존중 받는 느낌말이다.

 

부위별 질병이 아닌 총체적 사람으로!

 

종합병원에서 내과나 산부인과 등을 돌며 의사들을 만날 때마다 떠오르는 이미지가 있다. 정육점에 걸려 있는 ‘소 부위별 그림’이다. 처음엔 내 몸이 여러 과에 따라 유기성 없이 조각난 부위로 관찰되는 느낌 때문에 그 이미지가 떠올랐던 것 같다. 그런데 병원을 오래 다니면서 의미가 확대됐다.

 

▲ 부위별 소.  의사 앞에서 나는 부위별 질병을 가진 환자로만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 반다 
 

그 이미지를 보면 인간에게 소라는 동물이 하늘의 햇살과 따뜻한 바람에 반응하는 생명체가 아니라, 오로지 등심이나 안심 같은 ‘고기’로만 존재하는 것 같다. 나는 때로 의사 앞에서 부위별 질병을 가진 환자로만 존재하는 것 같았다. 더 정확히는 내 몸에서 총체적 인격이라든가 감정 따위는 다 사라지고, ‘부위별 질병’으로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곤 했다.

 

그래서 병원에서 의사와 책상을 사이에 두고 앉을 땐, 나도 모르게 나의 감정이나 인격을 지우려고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쿠마 병원 의사로부터 호르몬제가 동물학대 실험으로 계발된 건 아니니 안심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가 부위별 질병이 아니라 총체적 사람으로 복원되는 것 같았다.

 

의사가 환자인 나의 가치관이나 철학까지 염두에 두고 설명한다는 게 반가우면서 낯설고 동시에 너무나 고마웠다. 그 순간이 얼마나 감동적이었던지 아직도 그 의사의 다정한 표정이 생생하다. 사실 내가 수술을 꺼려했던 건 오로지 나의 건강이었지 동물실험으로 계발된 약에 대한 고민과는 전혀 상관없던 터라, 의사의 배려와 상상력에 더욱 놀랍고 고마웠는지도 모르겠다.

 

그날 의사와 진료실에서 50분 정도 대화를 했다. 나의 경우 통역 시간이 포함된 거지만, 그 병원에서 일반적으로 진료를 20분, 30분하는 건 특이한 일이 아니라고 했다. 쿠마 병원에서의 내 경험이 일본의 보편적인 병원 시스템인지는 잘 모르겠다. 그리고 내가 외국인이어서 조금 더 친절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쨌거나 나는 이 경험을 통해 환자로서 내가 누려야 할 권리가 무엇인지 거의 처음으로 몸소 느꼈다. 통조림이 아니라 총체적 사람으로 대우 받을 권리 말이다.

 

앞으로 내가 이용하게 될 여러 종합병원에서 쿠마 병원만큼은 아니더라도 좀더 존중 받기를 원한다. 병원이 자주 가고 싶은 안락한 곳은 아니더라도 불쾌감이나 불편함은 없는 곳이길 바라는데, 그것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앞으로도 병원에서 불쾌한 경험을 할 확률이 낮지 않을 것 같은데, 그때도 나는 여전히 침묵을 지키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면 무력감이 밀려든다.

 

영어로 환자는 고통을 받는 사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질병을 경험한다는 건 자기 삶의 통제권을 상실하는 경험이다. 그런데 고통 받는 사람이 질병으로부터 주체적 삶을 회복하기 위해 찾는 병원에서, 이번엔 통증이나 질병 때문이 아니라 의사 앞에서 또 다른 형태의 무력감과 통제권을 상실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단순히 의사가 환자에게 보다 친절한 말투로 설명을 해야 한다는 문제가 아니라, 보다 근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다. 환자의 건강은 수술대와 약, 세포의 수치에만 있지 않다. 나는 내 삶이 질병에 점유되지 않은 삶, 내 삶을 스스로 계획하고 선택하는 삶을 살기 위해 치료를 받고자 병원에 간다.

 

의사의 역할이 전문 지식으로 환자의 치료를 주도하는 동시에 궁극적으로 치유를 향해 가도록 돕는 것이라고 했을 때, 한국의 여러 종합병원 시스템 그리고 상당수 의사들의 태도는 그 역할에 위배되는 것 같다. 의사가 통제할 것은 환자의 질병이지 환자 그 자체는 아니다. 반다(조한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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