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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알바’ 청년들 “20대는 그냥 버린다”

10대 때부터 장시간 일하는 학교 밖 청년들의 실태



3포, 5포를 넘어 7포 세대(연애, 결혼, 출산, 인간 관계, 주택 구입, 희망, 꿈을 포기한 세대)라고 불리는 한국 사회 청년들. 요즘은 청년이라고 하면 등록금 대출을 받고 알바를 하며 대학에 다니는 학생이나, 계속되는 취직난에 공무원 시험 준비에 매달리는 대학 졸업생을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서 ‘청년’이라고 하면 생각나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살아가고 있는 20대들이 있다.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자신의 생계 혹은 가족의 생계까지 책임지며 장시간 알바를 하는 청년들이 그들이다.

 

“저는 엄마와 언니 저 이렇게 셋이 모녀가정을 이뤄서 살고 있어요. 13살에 처음으로 알바를 시작했고 ‘생계형 알바’는 17살 끝나갈 때쯤 시작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지금까지 남들 다하는 여행 한 번 못 가고 한 달 벌어 한 달 사는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스무 살에 엄마가 쓰러지고 나서는 낮에는 엄마 간병, 저녁에는 알바를 하고 있어요. 한 달 일하면 단돈 5만원이라도 모으고 꿈을 꾸면서 살고 싶은데, 정작 현실에서는 5만원도 모으지 못합니다.

 

저는 입버릇처럼 ‘그냥 내 20대는 버린다’고 말하고 다녀요. 제 20대에는 상황이 조금도 나아질 것 같지 않아서 20대는 버린다고 생각하고 ‘30대는 좀 나아지겠지’ 하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습니다. 작은 취미를 갖거나 친구 만나서 여가 시간을 보내려고 해도 돈만 들어가고, 이직을 하려고 해도 그 기간 동안 들어오는 수입이 없으니까 이직도 할 수 없어요.” (26세 여성, 성남시 거주)

 

직업과 알바 사이, ‘생계형 알바’하는 청년들 많다

 

지난 13일, 사회적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성남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생계형 청년알바의 일과 생활>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성남시청에서 열린 발표회에는 20대 ‘생계형 알바’ 청년들도 함께해 자기 삶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조사팀은 ‘생계형 알바’에 대해 이렇게 정의한다. “알바는 보통 대학생이나 고등학생들이 용돈을 벌거나 가계의 생활비 부담을 덜기 위해 하는 일시적인 노동을 뜻한다. 하지만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들은 ‘직업’이라고 하기엔 열악하고 불안정한 노동을 하고, ‘알바’라고 하기엔 주5일 이상, 하루 8시간 이상 일하고 그 월급으로 생계를 유지해야 하는 사실상의 직업노동자들이다.”

 

이번 조사는 성남 지역 구인광고 1천849건을 분석하고, 성남 지역에 거주하는 19세 이상 29세 이하 청년 206명을 대상으로 설문했다. 그리고 그중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들과 심층 면접을 실시했다. 설문에 응한 206명의 평균 연령은 22.2세로, 여기서 ‘생계형 알바’ 청년들은 35.9%를 차지했다. 나머지 64.1%는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려고, 용돈을 벌기 위해, 혹은 사회 경험을 쌓기 위해 등의 이유로 일하는 ‘비생계형 알바’ 청년이었다.

 

‘생계형 알바’의 대표적인 특징은 장시간 노동이다.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알바를 하는 청년들은 거의 대부분 주 5일 이상(87.8%), 하루 평균 9.37시간 일했다. 연장 근로를 자주 하고, 휴일이나 휴식을 제대로 갖지 못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들에게 ‘일터 이외의 삶’은 거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섯 살 때부터 엄마와 둘이 살았습니다. 보호자가 필요한 나이에 몸이 편찮으신 엄마의 보호자가 되어 살아왔습니다. 열여섯 살 때부터 일을 해오면서 마음 편히 쉰 적이 없어요. 지금 하는 일을 더 잘 하고 싶고, 더 배우고 싶고, 많은 걸 경험하고 싶지만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 힘듭니다. 제 돈을 주고 다른 사람 고용해서라도 휴가를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도 저는 1년에 6~7일 휴가가 있지만 주변에 알바하는 친구들 보면 명절도 없고 휴가, 휴일도 없이 일하는 경우가 많아요.” (22세 여성, 어린이집 교사)

 

‘생계형 알바’ 청년들은 알바 현장에서 부당해고를 당하거나, 사업주나 손님에게 폭언이나 욕설을 듣고, 일하다 다쳐도 자기 돈으로 치료해야 하고, 일을 그만두기 위해선 직접 후임자를 구해야 하는 등 불안정한 고용 상태에 놓여있다. 이렇게 일해서 버는 수입은 한 달에 100만원이 조금 넘는다. 10대 때부터 오랜 기간 일해 왔음에도 불구하고, 월 150만 원 이상 버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럼에도 ‘일터’는 성장의 공간…애착과 책임감 느껴

 

하지만 이렇게 열악한 일터에서도 청년들은 자신의 일터를 ‘배움과 성장’ 혹은 ‘성취 경험의 공간’으로 여기고 애착과 책임감을 느끼고 있는 것으로 이번 조사에서 확인됐다. 중.고등학교를 중퇴했거나 대학을 가지 않은 청년들에게 일터는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곳이고, 나의 잠재력과 장점을 발견하는 곳이기도 하다.

 

“서빙이 가장 잘할 수 있고 즐거운 일이죠. 그런데 서빙이 사실 힘들어요. 컴플레인(고객들의 불만) 막는 것도 힘들고 손님들 화를 받아내야 하는 것도 그렇고 매장의 매출을 높이려면 서버가 중요하거든요. (…) 힘든 날도 있지만 가장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가장 많이 해 왔고 익숙하기도 하고.” (23세 여성, 패밀리레스토랑 근무)

 

“(매일 야근을 하는데 왜 계속 일하셨어요, 거기서?) 그게 일은 정말 힘든데, 저는 개인적으로 재미있었어요. 일하는 게 재미있다기보다는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랑 같이 얘기하고 이러는 거. 또래가 많으니까.” (25세 남성, 패밀리레스토랑 근무)

 

조사팀은 “사업주는 청년의 알바 노동을 불성실하다고 생각하고 신뢰하지 않지만, ‘생계형 알바’ 청년들은 책임감을 갖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직업노동자’들이었다”라고 분석했다.


▲ 2016년 1월 13일, ‘일하는 학교’와 성남시청소년상담복지센터가 주최한 <생계형 청년알바의 일과 생활>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에서 자신의 이야기와 사회적 요구 사항을 제안하고 있는 청년들.    © 일다

 

가정형편 어려워 평균 17.5세에 노동시장 투입

 

‘생계형 알바’ 청년들의 생활환경을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특징은 어린 시적부터 누적된 ‘빈곤’ 문제라고 조사팀은 말한다. 이들의 대다수는 부모의 사망이나 지병, 이혼 등으로 어린 나이부터 가족을 부양해야 하거나 부모의 경제적 지원을 기대할 수 없어 10대 때부터 노동시장에 투입된다.

 

이번 조사 결과, ‘생계형 알바’ 청년들이 일을 시작한 평균 나이는 17.5세였다.

 

“전단지 알바나 이런 거는 한 초등학교 4,5학년 때도 한 거 같아요. 전단지 100장에 그때 1천500원 받았나 그랬을 거예요. 그 다음에 6학년 때 떡볶이가게 이런 데서 시급 1천500원 받고 했었고. 그때가 엄마가 아빠하고 따로 살기 시작했을 때였어요. 엄마가 혼자 식당에서 일을 하셨는데 집안 사정상 제가 엄마한테 용돈을 달라고 말하기 그래가지고.” (25세 여성, 일반사무직)

 

“학교 그만둘 때가 고1때인데 그만둔 이유가 솔직히… 우선 돈이 없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런데 알바를 하면 돈을 벌잖아요. (…) 맨날 5백 원이 필요해서 ‘할아버지, 준비물 사야 하는데 5백 원이 필요해요. 5백 원만 주시면 안 될까요?’ 항상 이렇게 받아왔는데 내가 벌어 내가 쓰니까 좋은 거죠.” (23세 여성, 패밀리레스토랑 근무)

 

일하느라 미래를 꿈꾸고 준비할 시간이 없다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 중에는 알바를 시작한 17세 즈음 대학 진학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미 십대 때 중.고등학교를 중퇴한 경우도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다면 이들은 자신의 진로나 미래에 대해 어떤 욕구를 갖고 있을까?

 

‘생계형 알바’ 청년들은 ‘기술 및 자격 취득’에 대한 욕구가 컸고(30.1%) 대학 진학에 대한 욕구는 낮았다.(11.0%) ‘목표가 없다’고 답한 경우도 17.8%나 되어, 비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그룹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높은 수치를 보였다.

 

진로에 장애물로 꼽은 것은 ‘경제적 어려움’(50.0%)이었다. 반면 ‘비생계형 알바’ 청년들은 ‘경제적 어려움’과 ‘정보 부족’(각각 26.4%)을 동시에 꼽았다.

 

조사팀은 “빈곤은 ‘생계형 알바’ 청년들에게 쉼 없는 노동을 강요하고, 생계형 노동에 대부분의 시간을 내준 이들은 무언가를 배우고 새로운 것을 꿈꿀 여력이 없다”고 말한다.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느라 더 나은 직장을 갖기 위한 배움이나 자격증 취득, 직업 훈련의 기회를 가질 수 없다는 것. 이러한 구조 속에서는 빈곤이 대물림되기 쉽다.

 

청년들이 장시간 일을 하면서 대학 진학을 할 수 있는 방법은 방송통신대학교나 사이버대학교에 다니는 것이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조사팀은 “온라인으로 공부할 수 있는 시간을 낼 수 없어서 엄두를 내지 못하거나, 어렵게 진학을 했다가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간헐적으로 한 번 있는 오프라인 강의도 일주일에 하루나 겨우 쉴 수 있는 생계형 알바 청년들에게는 큰 부담”이라고 전했다.

 

“친구들 만나기 힘들죠” 정보도, 인맥도 협소해져

 

또한 ‘생계형 알바’ 청년의 20.3%는 ‘친구를 사귈 기회가 없다’고 말한다. 일터와 집만을 오가는 폐쇄적인 환경에 놓여있다 보니 ‘사람’이라는 인적 자원을 획득할 기회가 제한되는 것이다.

 

“저랑 맞는 친구들을 만나기 힘들죠. 만나던 친구들은 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인데 다들 대학 간 뒤로는 얘기가 안 통했어요. 사람을 만나고 싶은데 의지될 수 있는 사람, 의지할 수 있는 가족, 언니 같이. 마음으로 편한 곳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일 끝나고서도 거기 가면 ‘아 마음 편하다’ 그런.” (22세 여성, 일반사무직)

 

“그렇게 놀러 가면 솔직히 한 사람당 10만원씩 모아가지고. 전주 같은 데 가서 맛있는 거 먹고 재밌게 놀고 하루 자고 오면. 많이 다녀본 사람은 ‘많이 나가는 거 아니네’ 말할 수 있는데 전 한번에 10만원, 15만원 이렇게 나가는 게 엄청 크게 느껴지는 거예요. (…) 딱 가기로 해놓고 가려니까 엄청 고민되는 거예요. ‘니네 먼저 갈래? 난 다음날 아침에 갈게’ 이랬어요. 숙박비라도 줄여볼까 해서.” (25세 여성, 일반사무직)

 

조사팀은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 다수가 5인 이하의 소사업장에서 일하기 때문에, 일터를 통한 인간관계 형성도 어려울 가능성이 크다. 협소한 인간관계는 이후의 진로 탐색이나 경력개발 과정에서도 정보와 인맥의 한계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일하는 청년들에게 ‘비빌 언덕’ 필요하다

 

‘일하는 학교’ 이정현 사무국장은 “청년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고 있지만 대부분 ‘대학생’ 중심의 의제들”이라고 지적하며 “대학에 가지 않는 30%의 청년을 위한 의제는 없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이정현 국장은 “‘생계형 알바’ 청년들이 힘겨운 삶을 살아오는 동안 ‘청년 문제’에 대한 논의는 반값등록금이나 대기업의 신규 채용 증가 등 주류 청년의 문제에만 맞춰져 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보거나 댓글을 달 여유조차 없는, 일하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전해질 통로는 없었다”라고 그 심각성을 이야기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보고회에서는 청년들이 자기 삶을 개선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요청한 아이디어들이 제시되었는데, 다음과 같다.

 

“사람을 만나고 어울릴 수 있는 청년센터같은 공간이 있으면 좋겠어요”, “청년의 빈곤 탈출을 위해 정부가 지자체가 청년의 목돈 만들기를 지원해 주세요”, “정부가 대체인력 비용을 사업주에게 지원하면 청년들이 휴가를 갈 수 있어요”, “모든 사업체에 노무사를 파견해서 3자 대면해서 근로계약서를 쓰고 노동인권에 대해 교육하면 좋겠습니다”, “집주인과 계약하거나 협상할 때 필요한 주거 정보를 제공해주세요.”

 

이정현 사무국장은 “또래와 접촉할 기회가 제한되어 있는 ‘생계형 알바’ 청년들에겐 다른 청년들과 같은 어려움을 공유할 수 있는 공간, ‘비빌 언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또한 이들이 ‘사회적 정보’로부터 소외되어 있기 때문에 “청년들이 노동, 주거, 재무, 교육 기회 등에 대해 지속적으로 ‘정보’를 제공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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