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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정치”를 하기 위해 나선 사람들

총선을 앞두고 읽는 책 <숨통이 트인다>



※ 이 기사의 필자 박경미 교수(이화여대 기독교학부)는 자본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국 교회에 대한 비판을 담은 에세이집 <마몬의 시대 생명의 논리> 저자입니다. -편집자 주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


어딘가 가는 길에 손에 잡히는 대로 가방에 넣은 책이 <숨통이 트인다>(황윤, 이계삼 외. 포도밭출판사)였다. 지하철에 자리를 잡고 앉아 몇 장을 넘기다 금세 목이 메었다. 무엇엔가 몹시 시달리던 중에 누군가 나를 알아주는 사람의 눈빛과 마주쳤을 때처럼 울컥했다. 이 책은 20대 총선에 녹색당 비례대표 후보로 나선 다섯 사람의 출마의 변과 정책 대안들을 담은 지극히 정치적인 책이다. 그런데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목이 멨다.


▶ <숨통이 트인다>(황윤 등저. 포도밭출판사) 표지


어떤 사람이든 착하게, 바르게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일면 가지고 있다. 좋은 삶, 가치 있는 삶을 향한 소망은 누구나 품고 있을 것이다. 지금의 시기가 이렇게 힘든 것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이 소망이 짓밟히고 조롱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명박, 박근혜 정권 들어 해도 너무한 일들이 반복되면서, 상식과 도덕 감정과 공적 감수성이 심하게 상처받고 훼손당했다. 많은 사람들이 그냥 뭉뚱그려서 ‘정치’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이 책을 쓴 다섯 명의 저자들은 각자 좋은 삶에 대한 간절한 소망과 그것이 짓밟혀서는 안 된다는 절박한 마음 때문에 바로 그 ‘정치’에 나섰다고 한다. 통치의 측면에서만 이야기되는 권력으로서의 ‘정치’가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정치, 절박한 삶의 필요에 뿌리내린 정치, 이른바 “삶의 정치”를 하기 위해 ‘비정치적인’ 사람들이 정치에 나선 것이다. 아마도 이들이 풀어놓는 푸른 소망들에 눈이 부셔서 감정이 복받쳤는지 모르겠다.

 

<숨통이 트인다>는 “우리 사회에서 정치란 무엇이며, 누가 정치를 해야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다. 그것은 녹색당이 우리 정치를 향해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 책은 우리 사회의 가장 절박한 문제임에도 배제되어 왔던 이슈들을 붙잡고 씨름하는 것이 정치라고 답하고 있다. 정치전문가들이 아니라, 정치가 잘못되면 도망할 데 없이 고스란히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는 보통 사람들이 정치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책을 쓴 한 사람 한 사람이 바로 그런 이들이다.

 

밀양 할머니들 “우리는 점마들 안 믿는다”

 

이계삼은 한 가지 일화를 전한다. 그는 밀양 송전탑 건설에 반대하는 운동을 하다가 진압경찰과 몸으로 맞서고 있을 때, 진압에 동원된 경찰들이 목욕탕에서 나눈 대화 내용을 누군가로부터 전해 듣는다. “그 아(애)는 (경과지) 주민도 아니면서 와 그렇게 설쳐 쌓노. 글마도 나중에 정치할라고 그라겠제?” 이 예언대로 이계삼은 이번 총선에 출마한다. 그들에게 정치란, 개인의 사적 욕망에서 비롯된 것이고 권력을 확장하기 위한 행동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계삼은 밀양에서 할머니들과 함께 싸워온 4년 동안 단 하루도 정치를, 국회를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었다고 한다.

 

밀양 할머니들은 “시민으로서 정당하고 생산의 주체로서 성실했으며, 권력과 자본이 불의할 때 이를 바로잡고자 하는 열망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을 짓눌렀던 거짓말과 폭력은 현행 법령과 제도가 그 정당성을 보증해주고 있었다. 정치가 이 제도와 법령을 뜯어고치지 않는 한 그 거짓말과 폭력이 끝날 수 없는데, 바로 그 ‘정치’를 믿을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그들 자신을 믿어야 했다.

 

어느 날 국회의원들을 만나 직접 호소하기 위해 밀양에서 올라온 한옥순 할머니는 국회의사당 건물을 돌아 나오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점마들 안 믿는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는다!” 정당한 저항을 불법으로 만드는 세상은 바뀌어야 하며, 그 일은 정치가나 전문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해야 한다는 깨달음에 이른 것이다. 그러므로 밀양의 이계삼은 그 개인만이 아니라 한옥순 할머니이기도 하고, 그렇게 깨달은 밀양 주민들이기도 하다.

 

동물권, 가장 불공정한 관계를 사유하라

 

이 책을 집필한 후보들은 동물권, 탈핵 탈송전탑, 기본소득, 소수자 인권, 에너지전환, 기후변화 등 시대정신과 맞닿은 절박하고 중요한 문제들을 제기하고 있다. 녹색당 비례후보 1번 황윤은 어느 날 아무도 없는 어두운 실내 우리에서 하루 종일 목이 쉬도록 울고 또 우는 새끼호랑이 ‘크레인’을 만나 인생의 길이 정해진다.

 

인간의 전시 상품이 되어 고통 받는 생명들을 대변하기 위해 카메라를 매고 나선 그는 철창을 붙들고 몸부림치는 사육 곰들과도 만나게 된다. 열두 개의 도로를 넘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는 야생 삵 팔팔이, ‘고기’이기 이전에 인간처럼 희로애락을 느끼는 생명임을 알려준 엄마돼지 삼순이와 공장식 축산을 당하는 돼지들의 이야기를 카메라에 담는다.

 

동물애호가가 아니라 평화를 염원하는 사람으로서, 시대의 불의를 보고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로서 현대 사회에 존재하는 불공정한 관계인 ‘인간 동물’과 ‘비인간 동물’에 대해 사유하고 작품으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그는 우리 사회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들을 기업과 정부가 좌지우지 하도록 내버려두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카메라를 들었던 이유와 똑같은 이유로 국회에 가고자 나선다.

 

구자상은 환경운동 1세대로 온산 공해반대운동, 낙동강 살리기 운동, 반핵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인물이다. 그는 부산귀농학교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끝없이 대규모 공단을 건설하여 생태계를 파괴하는 난맥상 배후에는 경제성장만 최종 해결책으로 여기는 관점이 자리하고 있다는 걸 깨닫는다. 석유에 기반한 과대한 생산력주의를 넘어서, 에너지 전환을 통한 ‘생태경제’를 구축하기 위해 녹색당과 함께 하게 된다.

 

‘지역재생’ 새로운 사회로 전환을 꿈꾸는 청년들

 

대학생인 김주온은 자기를 속이지 않는 건강한 개인으로 자립하고 상호 호혜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기본소득이라는 마중물이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나섰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청년 세대는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없다. 지금 성남에서 부분적으로 청년에게 시행되는 기본소득이 전 국민에게 확대된다면, 그것은 돈의 많고 적음을 떠나 미래에 대해 불안해하는 모든 이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켜주는 사회안전망이 될 것이라고 그는 믿는다.

 

신지예는 서울 망원동에서 청년들이 살아가기 좋은 마을 만드는 일을 한다. 낡은 주택을 부수고 새 아파트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동네를 돌보며 가꾸어 나간다. 40년 전 넝마주의 주거복지 지원정책으로 보급된 4,4평짜리 집, 화장실이 없어 공동화장실을 쓰는 이 집합주택 두 채를 빌려 청년들이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함께 따뜻하고 실용적이고 사람냄새 나는 공간으로 만들어 더불어 산다. 그리고 그 곳의 굳센 할머니들이 어떻게 자신의 공간을 아기자기하게 돌보며 사는지, 어떻게 서로 배려하며 사는지 배운다.

 

오늘공작소라는 단체를 만들어, 내일을 위해 오늘을 희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행복을 만들어가자는 마음으로 적게 일하고 친구들과 놀거나 새로운 걸 배울 수 있는 일을 한다. 이누이트들이 추운 얼음벌판에 자신들이 만든 이글루를 독점해서 사용하지 않는다는 데 착안해서 ‘이글루 망원’을 만들어,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부엌과 서재, 회의실, 작업공구를 마련해놓는다. 다른 누군가도 자신을 위해 그렇게 할 것이라는 믿음 위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이 믿음을 기반으로 공동체가 형성된다.

 

신지예는 공동체를 기반으로 한 ‘지역재생’이 우리 사회를 지속가능하게 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역 내의 공동체 안에서 공유를 통해 삶의 규모를 조절하고 가족과 이웃을 돌볼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삶을 누리고 싶어 한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시스템을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 새로운 사회로의 전환은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간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는 틀, 즉 자기통치의 기술로서 정치를 실현해나갈 때 가능하다는 인식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그를 녹색당 후보로 나서게 만들었다.

 

‘급진적 민주주의’ 비전이 절실한 이때

 

<숨통이 트인다>의 저자들은 단순히 환경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우리 삶의 포괄적이면서도 심층적인 문제임에도 방기되어 왔던 문제를 정치의 본령에 끌어들이려 한다. 탈핵, 탈토건 농업, 먹거리, 에너지 전환, 동물권, 소수자 인권 등 녹색당이 제시하는 것은 특정한 정책을 넘어선다. 김주온의 말대로 ‘생각하는 틀 자체를 바꾸자’고 제안한다.

 

정치는 인간다운 세상에 대한 꿈을 함께 꾸는 것이다. 여기서 말의 힘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존 랠스턴 솔(John Ralston Saul)은 “죽어가는 문명의 징후들 중 하나는, 그 문명의 언어가 소통을 가로막는 배타적 방언들로 분열하는 것”이라고 했다. 건강한 사회에서는 실제와 일치하는 언어가 사회제도를 계속 돌아가게 만드는 일상 도구로 사용된다. 지식인은 물론이고 책임 있는 정치가의 역할은 이 소통을 보조하고 촉진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말이 통하는, 말이 되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쉘던 월린은 <정치와 비전>에서 “민주주의는 안정적인 체계라기보다는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했다. 이처럼 민주주의가 불가피하게 간헐적으로만 나타난다는 성격을 강조하기 위해, 그는 그것을 “탈주적 민주주의”(fugitive democracy)라고 칭했다. 민주주의는 하나의 형식이나 정부 형태가 아니라 “현실에 이의를 제기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드러내는 행위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과 자본의 힘에 포획되어 있는 오늘날, 거대 기업국가의 속박으로부터 벗어난 급진적 민주주의의 비전은 실로 절실하게 요청된다.

 

월린은 다중의 정치 참여를 격려하는 ‘탈주적 민주주의’를 국가의 밖과 옆에 활성화시켜서 국가 권력의 전체주의 경향에 저항할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녹색당 후보자들이 ‘국민의 대표’라는 대의정치의 기본 룰마저 잊어버린 지 오래인 한국 정치의 장 한가운데 뛰어들어, 정치언어의 실상을 보여주길 바란다. 녹색당의 국회 진입은 진실의 조명탄을 기존 정치판에 끌어들여 ‘계시’처럼 기존 정치언어의 실제 의미를 드러내는 일이 될 것이다. 나아가 기업국가에 포획된 정당 정치의 전체주의적 경향에 제동을 걸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박경미(이화여대 기독교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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