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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가구가 아플 때 필요한 것

<반다의 질병 관통기> 비혼(非婚)과 질병


※ 질병을 어떻게 만나고 해석할 지 다각도로 상상하고 이야기함으로써 질병을 관통하는 지혜와 힘을 찾아가는 <반다의 질병 관통기> 연재입니다.

 

“자기 몸만 돌보면 되니까 얼마나 좋아, 부럽다 부러워.”

 

병원에 입원해 있으면 이름, 나이, 병명이 침대에 붙어 있다. 같은 병실 다른 침대 환자들은 내가 ‘이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이가 있기는커녕 결혼도 하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되는 순간, 이구동성 부러움을 먼저 표했다.

 

난 그 여성들의 표정과 반복되는 경험 속에서 그 말이 빈말이 아님을 알게 됐다. 본인 몸이 아픈 와중에도 챙겨야 할 남편이나 아이가 내게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게 진심으로 부러웠던 거다.

 

혼자 사는 싱글여성이 아플 때

 

하지만 그녀들이 말하듯, 비혼(非婚) 여성은 아플 때 자기 몸만 돌보면 되니까 정말 좋은 걸까? 부럽다는 표정을 보며, 예전에 혼자 사는 지인이 해줬던 얘기가 떠올랐다. 지인이 샤워 후 욕실을 나오다가, 욕실 문이 선풍기 바람에 세차게 닫혔다고 했다. 그 욕실 문 틈 사이에 손가락이 끼었단다. 손톱은 덜렁거리고 피가 주르륵 흐르고 통증으로 온몸이 다 쭈뼛거리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잠시 멍하게 있다가 택시를 타고 응급실에 갔다고 했다.

 

그녀는 맨몸이었고, 병원에 가기위해 옷을 입어야겠는데 손이 부들부들 떨려서 속옷을 입기도 힘들었단다. 결국 폭염주의보 날씨에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물이 뚝뚝 떨어지는 긴 머리에 삼선슬리퍼를 신고 나갔다고 했다. 동네 사람들이 정신 반쯤 나간 여자라고 생각했을 거라며, 웃었다.

 

그리고 그날, 옆에서 괜찮냐고 말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혼자 겨우 옷을 입고 나왔다는 게, 응급실에서 직접 수납을 해야 한다는 게, 그러니까 그 모든 게 너무나 쓸쓸했다며 다시 웃었다.

 

나는 왜 응급실로 친구를 부르지 않았는지, 하다못해 119라도 불러서 응급실에 실려 가지 그랬냐고 물었다. 그녀는 혼자 해결할 수 있는데 일요일 저녁 쉬고 있는 친구들을 불러낼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고 했다. 그리고 119를 안 부른 건, 집도 너무 지저분하고 생사가 오가는 것도 아니어서 갈등이 됐다고 했다.

 

나는 친구를 부르지 않은 건 쓸데없는 독립심인 거 아니겠냐고, 그리고 위급 상황이라는 것은 상대적인 거고, 우리 같은 1인가구는 임대 아파트 우선 순위에서 밀리고 여러 모로 혜택을 못 받는 게 많으니 그럴 땐 119를 이용해도 되지 않겠냐고 말했다.

 

결혼은 질병과 노후를 대비한 보험?

 

하지만 나는 이 이야기를 병실의 그녀들에게 하지 않았다. ‘간병은 못해도 아프면 물이라도 떠다주고, 119라도 불러줄 수 있는 남편이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식의 얘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더 정확히는 ‘그래도 결혼은 하는 게 늙어서도 그렇고…’로 이어지는 이야기를 듣고 싶지 않았다.

 

혼자 살다 아프면 어쩔래?

 

이 말은 결혼하라는 권유 혹은 협박으로 가는 교각 같은 문장이다. 이 말을 이따금씩 들었는데, 정말 혼자 살다가 몸이 아프게 됐다. 그랬더니 이제는 결혼을 안 해서, 애를 안 낳아서 아픈 거라는 이야기를 한 번씩 듣는다.

 

결혼과 혈연가족을 열렬히 옹호하는 입장을 얼마든 가질 수 있지만, 저런 식의 말로 사람을 결혼제도 속으로 밀어 넣으려는 태도를 보면 이 사회가 가진 결혼에 대한 강박을 보고 있는 것 같다.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가는 게 질병과 늙음에 대해 그다지 신통한 보험이 되어주지 못한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이제 많지 않을 것 같은데 말이다.

 

여성들은 아파도 가족 안에서 질 좋은 돌봄을 받기 쉽지 않다. 또한 배우자와 도란도란 늙어가면서 자식들에게 돌봄을 받는다는 건, 높은 이혼율과 늘어나는 노인요양원을 고려해봤을 때 드문 일에 가깝게 된 것 같다. 결혼을 보험 기능으로 본다면 사실은 보장성도 별로 없고, 보험회사만 좋은 일 시키는 허술한 보험이라는 것을 이미 많은 여성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 서울시의 1인가구 여성정책이라 할 수 있는 여성안심택배 서비스 홍보물.   ⓒ 서울시

 

‘생존을 위한 꾀병’을 호소한 친구

 

나는 질병과 노화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결혼제도 안으로 들어가고 싶진 않다. 그렇다고 두려움이 없다는 뜻은 아니다.

 

얼마 전 1인가구인 지인이 대학병원에서 수술을 했다. 수술 후 4일 만에 병원에서는 퇴원을 하라고 했다. 담당의사는 수술이 잘됐다며, 3주 정도 집에서 공주처럼 절대 안정을 취한 뒤 출근하라고 했다. 수술 부위를 약으로 잘 관리하고, 염증이 염려되면 동네 병원에서 한 번씩 관리를 받으라고 했다. 혹시라도 고열이 나면 즉시 병원에 오라는 말도 덧붙였다. 의사는 괜찮다는데 지인은 퇴원을 무척 불안해했다.

 

피부가 쉽게 탈이 나서 액세서리와 옷을 살 때도 신중해 하고, 감기에 걸리면 한번 씩 고열에 시달려 병원 입원하는 게 연례행사이니 그 불안함이 터무니없는 건 아니었다. 혼자 동네 병원을 오가며 염증 관리를 하기엔 아직 거동이 편치 않고, 자다가 고열에 시달리고 119를 부를 기력도 없을까 봐 무척 걱정된다고 했다.

 

실제 별 일 없다고 해도 아픈 몸으로 혼자 끼니를 챙기는 것도 간단한 일은 아니었다. 간병인을 부를까 생각했지만, 원룸에서 간병인과 같이 생활하는 것도 불편한 일일뿐더러 계약직으로 근근이 살고 있는 처지에 비용 부담이 너무 컸다.

 

우리가 고심 끝에 찾아낸 방법은 동네 병원에 입원하는 것이었다. 열이 오르거나 응급 상황이 됐을 때 바로 조치 받을 수 있고, 수술 부위 염증 관리, 끼니를 챙기는 것까지 모조리 해결할 수 있었다. 어림잡아 계산해도 간병인을 고용하는 것보다 입원비가 훨씬 저렴했다.

 

결국 친구는 동네 병원에 가서 ‘생존을 위해 꾀병’을 호소했고, 입원에 성공했다. 누군가는 나이롱환자라고 비난할지 모르지만, 그 친구로선 안전하게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의 선택지였다.

 

우리나라 가구 유형 중 1위는 ‘1인가구’

 

1인가구가 질병 앞에서 취약해지는 건 1인가구라는 삶의 형태 때문이 아니다. 1인가구에 맞는 사회적 제도가 갖춰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 1인가구 증가로 고독사 같은 사회 문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라, 1인가구에 맞는 사회적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에 1인가구의 사회적 문제를 만드는 것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비혼이나 1인가구에게 결혼을 하라거나 ‘정상가족’ 속으로 들어가라는 압력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삶의 형태를 반영한 사회적 안전망과 제도다.


▶ 전국 가구 유형 중 1인가구가 34%로 1위를 차지한다.   ⓒ 이미지 제작: 조짱

 

그 동안 1인가구가 일부 취약계층인 것처럼 얘기되어 왔지만, 우리나라 1인가구는 전체의 34%로 가구 유형 중 1위가 되었다. 나 같은 비혼주의자뿐 아니라 학업, 직장, 이혼, 사별 등 다양한 이유로 1인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결혼한 여성도 남성의 평균 수명이 더 짧기 때문에 사별 후 평균 6-8년 정도를 1인가구로 살게 된다고 한다.

 

장기적이든 임시적이든, 자발적이든 아니든 우리는 삶의 어떤 시기를 1인가구로 살게 될 가능성이 많은 사회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정책은 변화하는 삶의 형태를 아직 제대로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1인가구의 절대적 수치에도 불구하고, 1인가구 정책이라는 게 이제 겨우 걸음마 단계다.

 

1인가구가 아플 때 어떤 게 필요할까? 만약 보건소 같은 공공의료 기관이 동네 깊숙이 들어와 있다면 어떨까? 병원은 아니지만 간단한 간병을 지속적으로 요하는 사람들이 쉽게 며칠씩 머물며 단기 요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말이다.

 

수술 후 치료는 끝났지만 일상의 소소한 간병이 필요할 때, 몸살이 심해서 병원을 다니고 있는데 혹시 밤에 더 아프게 될까 봐 걱정이 될 때, 허리를 삐끗해서 치료를 받는 중인데 일상 생활은 문제가 없지만 아침저녁 침대에 눕고 일어날 때는 적극적인 도움이 필요할 때, 바로 그럴 때 머물 수 있는 단기 요양원이 집 근처에 있다면 어떨까?

 

아니면 보건소에서 파견한 간병인이 동네 아픈 사람 집을 돌며 건강 상태를 점검하는 서비스를 시행한다면 어떨까? 치료를 하는 건 아니지만, 간단한 간병과 건강 정도를 점검해 보는 서비스가 시행된다면 ‘1인가구라서 아플 때 걱정된다’는 말이 줄어들지 않을까.

 

‘돌봄의 사회화’는 좋은 신호다

 

▶ 포괄간호서비스 병원 시범사업 안내 포스터  ⓒ건강보험공단


최근 우리 사회에도 ‘보호자 없는 병원’, 즉 포괄간호서비스 제도가 시범 사업 기간을 거쳐 드디어 시행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포괄간호서비스란 가족이나 간병인 대신, 간호사가 간호와 간병을 일괄 제공하는 서비스다.

 

돌봄 노동인 ‘간병’을 가족에게 묶어두던 가족간병 문화가 드디어 제도적으로 해체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해석된다. 즉 가족의 책임으로 전제 되던 환자 돌봄이 병원에서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의 일환으로 사회화되는 것이다. 사실 가족간병을 전제하는 나라는 한국, 중국, 대만뿐이라는 자료도 있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것이긴 하다.

 

누군가는 ‘돌봄이 혈연가족 밖으로 사회화되는 게 반드시 좋은 것인가’ 라고 묻기도 한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공동체를 이루어 돌봄을 나누며 산다. 그런데 현재까지는 돌봄을 가족의 역할이자 의무로 묶어 놓고, 사회적 책임을 방기해왔다. 심지어 가족 안에서 돌봄 노동은 성별화되어, 수행도 수혜도 공평하지 않았다. 게다가 늘어나는 1인가구는 가족들과 주거로 묶여 있지 않다보니 돌봄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런 현실에서 돌봄을 사회화시키는 건 좋은 시도라고 생각한다. 오히려 가족을 떠나 곳곳에서 돌봄이 일상화되는 사회를 만드는 게 더 바람직한 게 아닐까 싶다. 어떤 의미에서 돌봄의 사회화는 ‘돌봄 공동체의 재구성’과도 연결이 깊다.

 

비혼, 그리고 1인가구의 증가는 기존 가족 안에 묶어 두었던 돌봄 노동을 사회화시키는 좋은 촉진제가 되고 있다. 특히 질병과 관련한 제도는 1인가구를 전제로 한 정책이 만들어지고 시행될 때, 혈연가족이나 다인가구 안에서 살아가는 여성들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을 수 있는 사회가 올 것이다. ▣ 반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www.ilda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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