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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울한 시대를 밝히는 희망의 증거들

용산참사 사건이 일어나고 열흘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처음에 이 소식을 들었을 때는, 숭례문 방화사건이 기억나면서, 마치 현실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누군가가 내게 거짓말로 일어났다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암담하고 슬픈 마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폭력언론’(보수라는 이름도 아까운)으로부터 나오는 이야기들은 예상을 뛰어넘는 발언이었다. 화염병을 왜 던지는가에 대한 이야기부터, 이번에 살해당한 분들을 돈을 더 받기 위해 욕심을 내는 사람들로 몰아가는 이야기까지, 여전히 이 시대의 한국 권력의 수준이란 이런 참사를 충분히 저지를 수 있음을 확인하는 증거였다.
 
하지만 이런 암담하고 슬픈 현실에서도 희망을 품을 수 있는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많은 사람들의 분노와 이러한 분노를 표현하는 행동하는 시민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용산참사가 일어난 직후부터 시민들의 촛불시위가 진행되었고, 정의구현사제단에서는 시국미사를 진행할 의사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넘나들며 많은 사람들은 분노와 슬픔을 표시했다.
 
우리에게 희망의 증거는 많다.
 
첫째, 촛불시위를 통해서 평범한 시민들이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시위에 참여하거나 정치적 입장을 표현하는 것은 일부 소수에 국한된 일이었을 뿐, 적극적으로 어떤 정치적 사안에 찬성 또는 반대하는 사람들을 생활 속에서 마주치는 일은 드물었다.
 
작년에 진행되었던 촛불시위에 참여하면서 마주치게 되는 사람들은 늘 곁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것은 나 역시도 마찬가지이다. 회사를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인 나도 몇 년 전까지는 집회나 시위에 참여한 적이 손에 꼽을 정도였지만, 촛불시위에는 두려움 없이 참여했다. 그것은 더 이상 폭력이 시민을 함부로 다루지는 않을 것이며, 설혹 폭력이 시민에게 가해진다고 하여도, 사람들이 모른체하지는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물론 촛불시위에서도 극우단체의 사람이 횟칼로 공격하거나 자동차로 돌진하는 등의 테러 행위가 발생했지만, 폭력이 드러나는 모습과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폭력을 쉽게 용인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느낄 수 있었다.
 
둘째, 거리에서 촛불시위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이야기나 표정에서도 희망을 찾을 수 있었다. 촛불시위를 바라보던 시민들이 격려를 하거나, 정권과 폭력에 대해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 촛불을 들고 있는 내게 고생한다고 웃음짓는 할머니, 초코파이를 시위시민들에게 나눠주시던 할아버지의 표정에서도 희망을 느꼈다. 더 이상 시위를 불편하거나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오히려 함께 무언가를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셋째, 사람들이 일상에서 정치 이슈들을 이야기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회사에서 전혀 정치에 관심이 없을 거라 생각했던 동료들로부터, 정치에 대한 관심과 올바름에 대한 의견을 듣게 될 때 나는 박수를 치고 싶어진다. 동료들과는 정치에 대해 가능한 이야기를 하지 말자고 다짐을 했건만, 의외로 회사 동료들은 나의 정치에 대한 의견을 드러내지 않을 수 없을 만큼, 훌륭한 이야기를 내게 해줬고 그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책을 통해서도 변화를 느꼈다. 나는 지하철에서 다른 사람들이 무슨 책을 읽는지 관심이 많은 편인데, 몇 년 전까지는 지하철의 승객들이 보는 책의 대부분이 처세술과 어학교재, 소설이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만나게 되는 지하철 승객의 도서목록에서 시장만능주의에 대해 경고하거나 기아, 환경에 대해 제시하는 책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점점 사람들이 가치와 타인의 삶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다 더 자주 마주치게 되는 것은 분명 희망이다.
 
넷째, 무엇보다 시간이 우리 편이다. 우리는 지금 2009년을 살고 있다. 아무리 그들이 시간을 1970, 1980년대로 돌려놓으려 해도 우리는 2009년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이미 한국뿐만 아니라 전세계의 사람들도 폭력에 대항하며 평화를 만들어가는 삶에 관심을 가지고 행동을 하며, 그로 인해 얻은 평화와 환경의 변화를 통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해방 이후 권력에 의해 시민이 학살당한 슬픈 과거를 가지고 있다. 그런 사건들은 늘 묻혀지거나 시간이 훨씬 지난 뒤에 알려진다. 그러나, 이번 용산 참사사건과 같이, 더 이상 권력이 시민을 죽이는 일을 숨기는 것이 불가능함을 우리도 알고 그들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비록 현재는 힘들고 답답하지만, 이대로 우리가 계속 행동하고 서로 이야기를 나누어간다면, 사람들과 시간이 우리편인 이상, 분명 우리의 미래는 그들의 현재보다 아름다울 것이다. 
일다▣ 정안나/운영위원

[용산참사]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실뿐입니다” 박수정 2009/01/24/
[용산참사] [타인의 죽음] 오정민 2009/0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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