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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성욕만 인정되는 사회에서 섹스하기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⑬ 성관계에서의 불평등



※ 2016년 <일다>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청년여성들의 기록을 연재합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 지원을 받습니다. -  여성주의 저널 일다

 

남녀에게 다른 규범이 적용되는 ‘성적 행동’

 

나는 자위를 하는 사람이다. 굉장히 어릴 때부터 자위를 통해 성적 쾌락을 느낄 수 있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절대, 아무한테도 할 수 없었다. 영원히 나의 비밀로 간직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왜? 도대체 왜 여성은 자위를 숨겨야 할까? 남자들은 자위했다는 말을 ‘딸친다’라는 더 가볍고 장난스러운, 접근이 쉬운 용어로 바꿔놓고 잘만 쓰는데? 뭘 보고 어떻게 자위를 했는지 경험담처럼, 영웅담처럼 말하는데?

 

나는 내 몸을 탐구하고 몸을 즐기는 과정이 좋았지만 아무한테도 말하지 못했다. 심지어 자위를 하고 나면 내 자신이 성적 쾌락에 눈이 먼 사람처럼 느껴졌고 죄책감이 들었다. 어렸을 땐 하나님한테 제발 이런 욕구가 사라지게 해달라고 기도한 적도 있다. 여성의 자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남성들은 ‘여자가 자위를 해? 얼마나 성적 욕구가 강한 거야?’하면서 특이하다는 취급을 하곤 했다. 왜 남성들의 성적 욕구에 대해서는 ‘남자들은 원래 그래~ 다 그래~’하면서, 여성들의 성적 욕구에 대해서는 신기하다는 듯 반응하는 걸까.

 

우리 사회는, 사회의 시선은 나를 성적 욕망으로부터 당당하지 못한 존재로, 성적 주체가 될 수 없는 사람으로 만들었다. 사회는 여성들을 ‘성적 욕구가 없는 존재’라고 끊임없이 사회화한다.

 

▶ 6월 11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17회 퀴어문화축제 퍼레이드에서. 불꽃페미액션의 ‘천하제일 겨털대회’ ⓒ아랑

 

나는 섹스가 좋다. 페미니즘을 접하기 전에는 이런 나를 인정하지 않았다. 내가 도덕적으로 타락한 여성인 것 같아서 죄책감이 들었다. 여자가 자위를 한다? ‘어린 여자’가 결혼할 사람도 아니고, 사귀는 사람도 아닌 남자와 섹스를 한다? 사회는 이런 나를 문란한 여자로 규정했다. 나도 나 자신을 그렇게 바라봤다. 항상 “이래도 될까? 그래도 너무 하고 싶은데… 난 진짜 걸레인가 봐” 이런 생각을 했다. 그리고 섹스를 한 남성이 나를 그렇게 생각할까봐 매번 겁이 났다. 나를 ‘쉬운 여자’로 볼까봐, 섹스를 하면서도 나는 내 욕구나 만족감에 중점을 두지 못했다.

 

나는 그렇게 다양한 감정들을 숨긴 채 남자들이 원하는 모습만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그리고 ‘남자에게 있어서 연애의 목표는 섹스’가 당연시되는 문화에서, 섹스를 하고나면 그들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섹스를 하면서도 나는 ‘가벼운 여자’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그들을 만족시켜서 날 떠나지 않게 만들기 위해, 남자들의 눈치를 본 것이다.

 

돌이켜보니 나는 섹스에 있어서 철저히 남성들의 욕구 충족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나의 욕구는 던져두고 남자들이 원하는 이미지만 보여주려 했으니까. 그런 방식으로만 하다 보니, 나는 섹스를 즐길 수 없게 되었다. 섹스는 나에게 하나의 노동으로 변해버렸다. ‘나’를 철저히 배제시킨 채 하는 연기와 감정노동 말이다. 아마도 나뿐 아니라 많은 한국 여성들에게 있어서 섹스는 ‘즐기는 일’이 되기 어려울 것이다.

 

남자들의 질문 “내가 처음이야?”

 

나는 남성과 잘 때 항상 그 사람과 하는 섹스가 내 인생의 처음인 것처럼 행동했다. 아니, 그 사람과 몇 번을 잤든 항상 경험이 없는 척 할 수밖에 없었다. 많은 이성애자 여성들이 공감할 것이다. 나는 섹스를 좋아하고, 많이 하고, 술 마시고 남자랑 자고, 술 안 마셔도 자는 사람인데, 애인과 할 때는 그 사람이 처음인 척 해야 했다. 가끔 어떤 남자들은 자신이 첫 남자인지 직접적으로 물어보기도 했다.

 

대학교 익명게시판에 자주 올라오는 글 중 하나는 자신의 여자친구의 ‘과거’를 알았을 때에 관한 것이다. 여자친구와 섹스를 하다가 자신이 몇 번째 남자인지 물어봤는데 처음이 아니라고 하거나 혹은 말을 흐렸다는 이유로, 자신이 여자친구의 첫남자가 아니라는 데에 실망했다, 정 떨어진다, 어떻게 해야 하냐 등의 이야기가 꾸준히 올라온다. 이러니 남자와 한창 키스하고 애무하고 있는 중에 갑자기 “내가 처음이야?” 물으면 어떻게 “아니”라고 하겠는가? 대답을 안 하고 말을 흐려도 자기 혼자 추측하고 상상할게 뻔하고, 계속 물고 늘어지고 갈등을 만들게 될까봐 그냥 ‘음’과 ‘응’ 사이의 애매한 발음을 했다.

 

▶ davidtherobot의 재미있는 일러스트.   ⓒdavidtherobot.com

 

남성들은 당연히 자신과 섹스하는 여성의 첫 상대가 자신일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어 하고,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들이 원하는 여성은 부끄러운 듯 키스를 하고, 속옷 안으로 들어오는 손에는 깜짝 놀라고, 작은 터치나 애무에도 경험이 적어서 민감해하지만, 그러면서도 자신이 하는 행동을 거부하지 않아야 한다. 그들은 정말 자신이 포르노에서 보았던 배우와 똑같은 행동을 취하는, 수동적인 섹스인형을 원하는 것이다! 많은 경우 여성들은 그런 이미지를 보여주지 않으면 남성들이 만족하지 못할 것을 알기에, 스스로 그러한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밖에 없다.

 

나는 계속 그들의 기분을 살피며, 내가 지금 연기를 잘 하고 있는지 살폈다. 내가 노력하는 것에 비해 내가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은 너무 적었다. 그런데 섹스를 하면서, 또는 끝나고 나서 상대방은 항상 “좋아?”, “좋았어?”라고 물어본다. 안 좋다. 불편하다. 재미없다. 흥분이 안 된다. 하지만 이런 말은 하지 못한다. 심지어 나는 “좋았어”라고도 말을 못했다. 바로 “응! 좋아” 대답하면 섹스를 주체적으로 즐기는(즐기지도 못하지만) 여자로 보일까봐, 경험이 많은 여자로 보일까봐, 부끄러운 듯 “응…” 또는 “몰라~”라고 했었다. 지금에서야 말하지만 “너랑 한 섹스 너무 별로야! 어떻게 와랄라 찍이니?! 크기도 테크닉도 흥분이 안돼!”

 

‘가짜’ 신음소리를 내는 감정노동

 

한국에서 섹스 중에 일부러 신음소리를 내지 않는 여성이 얼마나 될까? 정말 소수일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별로 느껴지지도 않는데 상대방을 위해, 내가 그와의 섹스에 만족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그들의 자존심을 위해 신음소리를 내주는 것이다. 남성들이 원하는 일본 포르노 배우처럼 연기를 하는 것이다.

 

내가 아는 한 남성은 그 신음소리를 믿고 자신의 섹스 능력을 과시했다. 자기 성기가 크고 섹스를 잘해서 여자친구가 섹스를 할 때 신음소리를 엄청 낸다고 말했을 때, 나는 그가 섹스를 잘한다거나 성기가 정말 크구나~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여성분이 너무 안쓰러웠다. 나처럼 얼마나 노력을 했을까? 섹스를 하는 와중에도 감정노동을 하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왜 여성들은 끊임없이 배려해야 하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한 번은 상대가 내 가슴과 성기에 몇 번의 키스를 한 다음, 흥분되지 않은 성기를 손으로 막 헤집는 게 끝이었던 애무 후에, 그의 (작은) 성기를 쑤셔 넣어서 나는 ‘아프고 힘들다’고 말했다. 그는 “왜~?”라고 물었다. 그 질문에는 자신의 성기가 크다는 대답을 바라는 것이 느껴졌다. 용기를 내어 “네가 충분히 안 해줘서 그렇다”고 말했다.(이때도 나는 그를 배려하기 위해 엄청나게 돌려 말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사람은 “뭐?! 내가 그렇게 해줬는데도 그게 충분하지 못한 거라고?”라는 반응을 보였다. 무슨 30분 만에 모든 애무를 속사포로 끝내는 야동만 본걸까? 사랑이나 애정은 없고, 노력도 없고, 애무를 오로지 삽입을 위한 순서로만 여기는 남성들이 정말 답답하다.

 

어떤 남자들은 심지어 섹스하면서 아파하는 여자를 좋아한다. 왜일까? 자신의 성기가 크다는 것을 증명 받는 기분인걸까? 아니면 강제성을 띤 관계를 좋아하는 것인가? 자신이 누군가를 점령했다는 기분? 그래서 그렇게 강간이 많이 발생하는 것인가? 그들의 이상한 취향(?) 때문에 여성들은 섹스에서 철저히 객체로 머무르며 남성들의 성적 욕망을 채워주는 수단이 되어버리곤 한다. 성기가 아픈 척 신음소리를 내주기도 한다.

 

물론, 섹스를 할 때 내가 통증을 느끼는 이유는 나의 질이 충분히 이완되지 못한 채로 남성이 자기 성기를 쑤셔 넣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네가 흥분을 못시킨 채 삽입해서 아프잖아! 너도 애정을 좀 가지고 노력을 해봐!”라고 말할 수 있는 여성은 드물 것이다. 심지어 통증의 이유를 모르는 여성들도 많은 것 같다. 솔직히 아프면 악! 소리가 나지 하아~ 흑~ 이런 소리가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고통을 참으면서, 진짜 아플 때 나는 소리를 참으면서, 남성들을 위해 흥분과 아픔이 결합된 신음소리를 내야하는 경우가 생긴다.

  

▶ 여성들이 주체가 되어 즐기는 클럽. 7월 8일 페미당당이 주최한 페미파티   ⓒ아랑

 

씻지도 않고, 콘돔도 없이 섹스하려는 남성들

 

주위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눠보면, 많은 이들이 섹스할 때 대화를 하지 않는 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 또한 섹스를 할 때 말을 하면 흐름이나 분위기가 깨질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섹스를 할 때 어떤 자세가 좋고, 어떻게 해줄 때 제일 좋을지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서로가 즐거운 섹스를 할 수 있을까? 텔레파시가 통하는 것도 아니면서, 물어보지도 않고, 자신이 원하는 대로 섹스를 해놓고 “좋았냐?”고 물어보는 것은 너무 양심이 없는 것 아닌가.

 

여성들은 성에 대해 관심이 없고, 관심을 가져서도 안 되고, 성적 주체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인식 때문에 나는 섹스할 때의 자세나 취향에 대해 말하고 싶어도 하지 못했다.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는 여성이 당당하게 자신의 욕망과 원하는 섹스에 대해 말하는 것이 금기시되어있기 때문이다. 나도 직접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고, 부끄러운 척 가리키거나 몸을 이끌었다. 예를 들어 후배위 체위를 하고 싶은데 ‘뒤로 하고 싶다’고 말하면 너무 섹스를 좋아하는 것처럼, 많이 해본 것처럼 보일까봐 일부러 힘든 척 몸을 돌리고 있었던 적이 많다. 성기에 키스를 더 받고 싶을 때 살짝 위로 올라간다든지 그 사람의 머리를 살짝 누른다든지 했다.

 

심지어 섹스를 하고 싶다고도 말하지 못했다. ‘가벼운’ 여자 ‘싼’ 여자로 생각할까봐, 이제 나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섹스의 대상으로만 생각할까봐, 섹스가 데이트의 필수 일과가 될까봐. “섹스를 하고 싶다! 너하고!”라고 말하지 못하고 “우리 집에 오늘 아무도 없는데…” 또는 “집에 가기 싫어. 같이 있고 싶어”라고 말해야 했다. 키스를 하고 숨쉬기 힘든 척 고개를 뒤로 젖혀서, 상대가 목에 키스를 하고 애무를 시작하도록 한 적도 있다.

 

소통이 되지 않는, 일방적인 섹스의 가장 큰 문제는 많은 여성들이 피임이나 청결을 요구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전애인은 영화관에서나 바깥에서 씻지 않은 손으로 나의 성기를 만진다든지 안으로 손을 넣곤 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날 사랑하지 않는 거야? 난 너 좋아서 하는 거야”라고 했다. 원하지 않는 성적 행동, 즉 성폭력을 사랑으로 포장해버렸다. 씻고 하자고 해도, 콘돔을 끼자고 했을 때도, 지금 너무 흥분되는데 씻고/콘돔을 끼고 나면 분위기가 깨질 것 같다며 거부했다.

 

내 주위의 많은 여성들이 콘돔을 끼자고 말을 못해서(심지어 남자친구가 화낼까봐 무섭다는 여성도 있었다!) 피임약을 먹고, 생리예정일이 다가올 때마다 불안해하고, 생리를 조금이라도 늦게 하면 임신테스트를 고민하고, 울었다. 친구 중 하나는 남자친구가 콘돔을 하지 않고 씻지 않는 손과 성기를 삽입해서 질염과 방광염으로 심하게 고생했다. 그 후로는 콘돔을 했지만, 남자친구는 자주 콘돔 없이 섹스하길 요구했다. 친구가 절대 안 된다고, 나도 피임약을 먹으니까 너도 콘돔을 하라고 말했더니 “너 왜 이렇게 계산적으로 변했니? 날 사랑하지 않는구나. 남자 생겼냐?” 하더란다. 여자친구가 콘돔이 있는지 확인해보자고 하면 ‘질린다’는 남성들. 동등해야하는 연애와 섹스의 관계에서 이처럼 권력의 차이는 엄청나다.

 

▶ 5월 24일,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이후 불꽃페미액션의 밤길걷기 시위 “그래도 우리는 어디든 간다”에서  ⓒ아랑

 

여성도 성적 주체가 될 수 있고, 아니 모두가 성적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 사회가 받아들이길 바라지만, 아직 한국에서는 너무 힘든 것 같다. 언제까지 여성은 남성의 섹스 도구로 취급되어야 하는가? 페미니즘을 접한 후, 이제 나는 나를 사랑한다. 나의 성적 욕망과 나의 몸에 대해 당당해졌다. 나는 더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섹스를 하고, 자위를 하고, 건강하고 당당하게 성적 욕망을 충족시키길 바란다.   (아랑 여성주의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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