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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밖 청소년의 ‘인턴십’ 이야기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⑧ 지영이 꿈꾸는 일 그리고 삶


※ 이른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빈곤-비(非)진학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자립을 돕는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와 함께하는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어느덧 다섯 번째인 인터뷰 기획 회의. 이번엔 과거나 현재의 아르바이트 경험은 적더라도, 지금 꿈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청소년을 인터뷰하기로 했다. 지영은 2년 전 내가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만났었는데, 열여섯 말수가 적은 청소년이었다. 엄마와 함께 여성노숙인 쉼터에서 살고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엄마를 믿고 의지하며 자신의 ‘꿈’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지영은 대안학교에 들어가 또래친구들과 공부하고 싶어 했고, 지금은 그렇게 살고 있다.

 

이번 인터뷰는 지영의 ‘인턴십’에 대한 것이다. 지영을 곁에서 지원하고 있는 대안교육센터 선생님도 함께, 왠지 이름도 지영과 잘 어울리는 은평구의 멋진 카페 ‘꿈꾸는 고래’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나는 지영과의 대화에서 또 많은 힘을 얻었다. 사람이 훌쩍 자라는 순간에 대해서 생각했고, 또 그 곁에서 지원하는 사람의 역할에 대해서도 더 생각하게 되었다.

 

▶ “학교 안에서 꽃길을 찾아갔지만, 그것은 그림일 뿐이었다.”  ⓒ지영

 

여성노숙인 쉼터에서 만났던 열여섯 살 지영이

 

지영은 초등학교 때 부모님이 이혼한 후로 오빠, 엄마와 생활하고 있다. 오빠가 군대에 가있던 중학교 3학년 마지막 축제 전 날, 지영은 엄마를 따라 중국으로 갔다. 경기도에서 큰 식당을 운영하던 엄마가 중국에 가자고 이야기한 지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처음 들었을 때는 완전 뜬금없었어요. 저는 축제를 하고 싶고 (중국) 가기 싫었는데, 엄마가 가자고 해서 혼자 한국에 남아있을 수도 없어서 따라갔어요. 그 때 오빠는 군대에 있었고. 잘은 모르지만 엄마가 중국에서 식당을 차리려고 했는데 잘 안된 것 같아요. 11월 말에 갔기 때문에 중학교는 졸업한 걸로 됐고, 3월에 중국 고등학교에 입학할 계획이었어요. 중국에서 대학교까지 졸업하려고 했었어요. 그 때도 미용으로 대학을 가고 싶었어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엄마와 함께 중국으로 떠났던 지영이는 그러나 3~4개월 만에 한국으로 돌아왔다.

 

“중국에 가서 총 서너 달 있었는데, 한 달은 집에만 있고, 두 달째부터 밖에 나가서 구경도 했어요. 두 달 정도는 집에서 공부하고, 그 후로는 밖에 나가서 사람들 말을 귀 기울여 들어보면서 복습하는 식으로 지냈어요. 그게 되니까 밖에 나가서 심부름도 하고 물건도 사고요. 그런데 결국 (엄마가) 같이 식당하자고 했던 것도 안됐고, 마지막 달에는 저희에게 방세가 많이 나왔다고 빨리 내라고 하는 거예요. 백만 원인가 이백만 원인가 했는데, 우린 돈이 하나도 없어서 거의 도망치듯이 나왔어요.”

 

지영은 엄마 손을 잡고 감시자들의 눈을 피해 근처 시장에 장 보러 가는 것처럼 작은 가방만 들고 핸드폰 통역 앱에 의지하며 도망치듯 한국으로 돌아왔다고 한다. 한국에 돌아와서 지영이의 삶은 중국으로 떠나기 전과는 많이 다른 모습이었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잘 곳이 없어서 여차저차하면 길바닥에서 자야했어요. 첫 날은 삼촌이 돈을 안 보내줬으면 길에서 잤을 텐데, 돈을 보내줘서 찜질방에서 잤어요. 처음 쉼터에 들어갈 때는 창피하기도 하고, 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나 생각도 하고, 엄마도 원망되고 의욕도 없었어요. 그 후에는 갈 데도 없고 그래서 여성노숙인 쉼터에서 엄마랑 반 년 정도 지냈어요. 거기서 지내는 동안에 선생님(필자)도 만나고, 대안학교에도 다니게 되고. 같이 살던 분들이랑도 친해져서 따로 집을 구해서 나왔어요. 지금은 두 번 이사해서 망원동에서 엄마랑 오빠랑 살고 있어요.”

 

엄마는 예전에 전주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했었다. 지영이 초등 3학년 때 서울로 이사 와서는 경기도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그러다 중국에 가서 사기를 당했고, 다시 돌아와 지금은 서울에서 공인중개사로 일한다. 큰 굴곡을 겪으면서도 척척 살아내는 엄마는 지영이가 하고 싶어 하는 일들도 반대하지 않고 해보라고 한다.

 

남들은 날 걱정하지만, 내가 가는 길은 꽃길이다!

 

중국에 갔다가 이듬해 3월에 돌아온 지영이는 고등학교 입학 시기를 놓쳤다. 그래서 대안학교에 가게 됐는데, 처음 간 곳은 지영이와 영 맞지 않았다.

 

“열 명인가 열두 명이 있었는데, 다 무서운 애들이었어요. 처음 간 날, 지갑을 도둑맞아서 집에 올 차비가 없어서 선생님께 돈을 빌려서 왔어요. 선생님이 잘 맞지 않을 수도 있으니 일주일 다녀보고 등록 서류를 쓰자고 했는데, 6일 동안 (아이들에게) 말붙이기도 그렇고 혼자 구석 자리에 앉아서 공부만 하다가 왔어요.”

 

대안학교를 그만 둔 지영이는 이번에는 대안교육을 하는 청소년센터에 찾아갔다. 그곳에서 고졸 검정고시도 합격하고 지금까지 열심히 다니고 있다. 엄마도 지영이가 청소년센터에 다니는 걸 열심히 지지한다. 학교 밖 청소년에 대해서 지영이도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젠 달라졌다.

 

“예전에는 대안학교 다니는 애들은 다 문제 일으키는 애들인 줄 알았는데, 다들 사정이 있더라고요. 왕따를 당했거나, 저처럼 유학을 갔다가 잘 안돼서 그랬거나, 여러 가지 이유가 있어요. 센터에 다녀보고 그러니까 내 생각이 전부가 아니었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센터에 다니면서 다양한 걸 해요. 11시쯤 가서 점심도 먹고 프로그램도 해요. 8월까지는 기타도 배우고, 드럼도 배우고, 보컬도 배우고. 영어도 배우고, 한국사도 배우고 해요. 검정고시는 원하는 친구들만 봐요. 저는 처음에는 미용고등학교에 갈 생각이 있었는데, 센터가 너무 재미있다 보니까 안 가고 싶어져서 검정고시를 봤어요.”

 

조용하고 소심했던 지영이가 완전 다른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 서던 날, 사진전 오픈 행사는 참가자들에게도 감동을 주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왕따를 당해서 안 좋은 기억이 있어요. 사람이 무섭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 지나가는 사람에게 시간도 못 물어보는 아이였어요. 그런데 센터를 다니고 나서 좀 많이 변한 것 같아요. 센터에서 감성사진을 배웠는데, 어떻게 학교 밖으로 나오게 되었는지 자기 스토리를 담는 거였는데, 제가 찍은 건 꽃길. ‘남들은 날 걱정하지만, 내가 찾아가고 있는 길은 꽃길이다‘ 그런 내용이에요. 청소년센터 10주년이 되는 날, 손님들이 백 명 정도는 왔을 때 사진전도 시작했거든요. 제 작품 앞에서 제가 일일이 다 해설, 도슨트(docent, 안내인) 역할을 했는데, 다른 사람 앞에서 서본 적이 별로 없어서 엄청 긴장했어요. 근데 예상외로 말발이 잘 나와서 설명을 잘 했어요. 엄마가 오셨다가 ‘우리 딸이 이렇게 변하다니’ 하면서 감동해서 우시고…”

 

▶ “내가 찾는 길이 존재하는지 모르지만 용기 내서 끝까지 가보렵니다.”  ⓒ지영

 

꿈을 향해 내디딘 미용실 인턴십, 그러나…

 

청소년센터에서 인턴십을 하는 친구를 보고, 지영이는 미용실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신청했다. 신청한 지 1년 만에 한 고급살롱에서 주 6일 하루에 5~6시간 정도를 일하게 됐다. 계획된 인턴십 기간은 3개월. 그런데 그 기간을 다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원장 선생님이랑 딸, 저. 이렇게 셋이 일했어요. 점심은 줬고, 돈은 한 달에 20~30만 원 정도 받았어요. 학원을 먼저 다니고 갔어야 하는데, 아무것도 모르니까 청소부터 배우고, 하루 종일 서있어요. 뭘 해야 할지, 뭘 하면 안 되는지 모르겠고…. 아, 머리 감겨주는 것이랑 빗질하는 거는 배웠어요. 혈자리가 적힌 종이를 주면 공부하고. 혈자리를 자극해서 탈모도 예방하고 머리도 맑아지게 하는 게 그 미용실의 특징 같은 거였거든요. 저는 딱 한 번 손님 머리를 감겨준 적이 있어요.”

 

미용실에서 인턴십으로 일하는 청소년의 위치와 역할은 참으로 애매했다.

 

“점심 먹고 오후에 나오는 시간 되면 눈치 보여요. 내가 먼저 말하지 않으면 안 보내줬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30분 더 하다 가고, 1시간 더 하다가 가고. (간다고) 말할 때는 ‘안 된다고 하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이 있었어요. 원장님의 마지막 인사? 그 분 기분에 따라 달랐던 것 같아요.”

 

지영이는 미용실에 열심히 다녔지만, 결국 중간에 인턴십을 그만뒀다. 원장님은 크게 화를 냈다고 한다.

 

“원장 선생님은 좋으신 분이지만 면박주고. 가는 데만 두 시간 정도 걸려서 9시 출근이니까 6시에 일어나야 되는 것도 힘들고, 두 시간 걸려서 가는데 (미용실에서) 계속 서 있는 것도 뻘쭘하고, 센터 선생님이 먼저 전화해서 (그만둔다고) 말씀하시고 제가 전화기를 받아서 말했어요. 원장님이 엄청 화냈어요. 그렇게 하면 뭘 해도 안 된다고, 성공할 수 없다고.”

 

꿈을 위해 시작한 인턴십인데 약속된 3개월을 채우지 못했다니, 낙담하고 실망했을 것 같기도 한데 지영은 오히려 꿈이 더 명확해졌다고 말한다.

 

“머리하고 난 손님이 거울을 보고 머리를 맘에 들어 하면서 즐거워하고 좋아하고, 고맙다고 하면서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더 하고 싶어졌어요. 학원을 먼저 다니고 갔어야 하는데… 아무 것도 안하고 청소만 하며 서있어야 하는데. 자격증이라도 따면 할 수 있는 게 있으니까 학원에서 자격증을 따고 다시 하고 싶어요.”

 

이제 열여덟 살인 지영이는 지난 8월, 검정고시에 합격해 또래 친구들보다 1년 빠르게 고등학교 졸업장을 얻었다. 지금은 미용학원에 다니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할 준비를 하고 있다.

 

“미용학원은 초기 비용이 100~200만 원 정도 돼요. 동네학원은 월 50~60만 원 정도 하고, 뷰티스쿨이면 더 나가요. 자격증을 딸 때까지 빠르면 3~4개월 정도 걸려요. 엄마가 해줄 형편도 아니고. 알바로 돈을 모아서 학원 가려고요. 한 달에 100만 원은 벌어야 수강신청을 할 수 있는데, 어떤 알바든 해야겠죠. 한 달은 종일 하고, 그 후엔 학원 다니면서 나머지 시간에 하고요.”

 

지영이는 아직 한 번도 아르바이트를 해본 적이 없다. 주변 친구들이 알바하는 이야기를 들으면, 일을 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어른스러워 보인다. 아직 실질적으로 와 닿지는 않지만 말이다. 힘들 때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기에, 지영도 이제 도전해보려고 한다.

 

‘사람들 각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주고 싶어요’

 

▶ 내 방 한귀퉁이. 아침마다 거울 앞에서 화장을 한다. 메이크업은 컨셉이 매일 바뀌고 즐겁다.  ⓒ지영


지영의 꿈은 단순히 미용사가 되는 게 아니라고 한다. 메이크업 아티스트라고 해야 할까. 스타일을 책임지는 사람 같은 거다.

 

“중3 때부터 미용에 대해서 관심이 가게 됐어요. 친구 머리 만져주고 화장도 해주니까. 솔직히 처음에는 연예인 보고 싶어서 하려고 한 것도 있죠. 근데 자세히 알아보니 힘들고 돈을 잘 못 벌기도 하겠더라고요. 그걸 아니까 더 하고 싶어졌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랑 미용도 하고 싶고, 셀럽들 메이크업 아티스트 같은 것 하고 싶어요.”

 

오빠는 지영을 대할 때마다 외모를 지적한다고 했다. 물 마시러 가다가 “어휴 못생겼어 쯧쯧…” “살 언제 빼냐”고 말한다. 세상엔 날씬하고 예쁜 여자만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남자의 유형이다. 지영은 그런 오빠에게 아직 “그런 말 하지 마!” 라고 말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런 생각은 잘못된 것이고, 세상에서 없어졌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는 지영에게 메이크업이라는 분야가 너무 외모주의 아닌지, 여자들이 그것 때문에 스트레스 받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지영은 사람들 각자의 아름다움을 표현해주고 싶다고 답했다.

 

“세상 사람들은 길 가다가도 ‘저 여자 못 생겼다’고 욕을 하잖아요. 그런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게 메이크업이라고 생각해요. 손님이 오면, 그 사람 특징을 알면서 각자 특징을 더 부각시켜주는 그런 느낌으로 또 잘 어울리게 메이크업하고 싶어요. 자기 자신이 당당한 게 제일 아름다운 거예요. 내면의 아름다움이 값지다고 생각해요. 전문적으로 배우면 개성을 살리는 메이크업이 가능할 것 같아요.”

 

무엇보다 메이크업을 지영이 수 년 동안 꿈으로 간직하고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재미’다.

 

“내 꿈을 지켜오는데 가장 큰 힘이 된 거요? 아침마다 일어나서 화장을 하는데, 그게 젤 즐거워요. 매일 매일 그 날의 제 컨셉이 있어요. 그런 걸 생각하고 해보면서 즐거워하는 나를 보며 그게 제일 힘이 돼요. 지금도 이렇게 즐거운데, 이걸 일로 하면 얼마나 또 즐거울까 하고 생각해요.”

 

‘잘 곳만 있으면 괜찮아…’ 그래서 꿈은 자유롭다

 

그렇다면 꿈을 다 이룬 후 모습은 어떨까. 미용 전문가를 꿈꾸는 지영답게, 상상하는 미래 모습은 낙천적이고 멋지기만 하다.

 

“나보다 많은 일을 겪고 가난한 사람에게 기부하고 싶어요, 해외봉사도 미용 쪽으로 해 보고 싶어요. 노후에는 해안가에 2층 건물을 짓고, 1층은 카페를 하고 2층은 펜션처럼 하고 싶어요! 까만색에 세로 줄무늬가 있는 수트를 입고, 걸크러쉬 느낌에 소매를 살짝 걷고, 팔짱을 끼고 있을 것 같아요. 신발은 굽이 5cm 정도 되는 검정색 구두를 신고, 머리는 길고요. 60세, 꽃다운 나이에 생을 마감하고 싶어요.”

 

“한국보다는 외국이 사람 손으로 하는 일에 값을 더 준다고 들었어요. 친구가 호주를 간다고 했는데 그 말에 혹해서, 저도 10년 안에는 호주에 가게를 차리고 싶어요! 엄마랑 나랑 살지만, 센터 선생님들도 오게 하고 싶고… 전국에서 아는 사람들이 다 온다고 하겠죠? 좋아요. 언제든지 오세요!”

 

이거 너무 이상적인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지영은 이미 다양한 삶의 경험을 온몸으로 해왔다. 현실적인 것과 이상적인 것에 대해 사람들이 흔히 하는 구분이나 냉소를 모르지 않을 것이다.

 

“전에는 아무 걱정 없는 거, 사고 싶은 거 다 사는 게 잘사는 거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뭐 사달라고 했는데 엄마가 못 사주면 우리 집은 가난하다고 생각했죠. (그때는) 식당도 하고 편의점도 하고 더 큰집에서 살았는 데도요. 그런데 지금은? 잘 곳이 있으면 잘 사는 거라고 생각해요. 잘 곳만 있으면 괜찮아요, 정말! 엄마는 ‘그건 좀 돈을 못 벌지 않을까?’ 하면서도 하고 싶은 건 다 해보래요. 저도 하나에 꽂히면 아무것도 안보고 그것만 하는 성격이에요. 꼭 해보고 아니면 아닌 거고, 맞으면 맞는 거고. 돈보다 그 일을 하면서 행복하고 재밌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메이크업 아티스트도 예전엔 유명해지는 게 꿈이었다면, 지금은 샵을 차려서 사람들에게 메이크업을 해줄 수만 있으면 좋겠어요.”

 

▶ 인터뷰 마치고 지영과 친구들, 청소년센터 선생님, 인터뷰하러 온 동네 언니들이 와글와글하다. ⓒ촬영: 비버

 

도움을 받고 위로도 받으며 홀로서는 힘을 키운다

 

지영은 이 인터뷰 시리즈에 등장하는 사람들과는 알바 경력 상으로 보면 조금 다르다. 그러나 생계를 위해 애쓴다고 했을 때, 누군가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또 스스로 도와야 한다는 면에서 같은 선상에서 살아간다.

 

“저는 청소년이니까 일을 구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됐고, 노숙인도 그럴 수 없잖아요. 그런 경우에는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제일 도움 받은 거요?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 거요. 오늘 손님이 이랬다, 진상 부렸다, 그런 걸 털어놓을 수 있는 것 자체요. 그러면 힘들었겠다 하고 그냥 토닥토닥 위로해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제일 좋아요.”

 

그러나 계속 도움을 받을 수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지영이다.

 

“혼자 사는 힘을 가져야죠. 인턴십 자리도 도움 받고 그랬는데, 이제 내가 구인구직을 보고 면접 보러 혼자 가고 그래야겠죠. 근데 또 마음의 준비가 필요해요. 지금은 제가 혼자 나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요.”

 

지영이는 “나와 비슷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묻는 우리의 마지막 질문에, 오늘의 인터뷰 내용이 다 정리된 말을 남겼다. 혼자 있는 시간. 그 시간은 불안하고 외롭게 애쓰는 시간이라기보다, 내가 추구하는 본연의 재미를 찾아가는 시간이라고.

 

“자신의 시간을 가지라고 말 하고 싶어요. 일을 하다보면, 혼자만의 시간을 자기에게 주기 어렵잖아요. 근데 자기만의 시간을 꼭 가져서 하고 싶었던 것을 하라고 말하고 싶어요. 저는 예를 들어 화장하는 걸 재밌어 해요. 집에 있을 때는 분장 같은 것도 해 보고 그래요. 각자 하고 싶은 게 있을 거 아니에요. 아니면 혼자 쉬고 싶어 하면 하루 종일 집에서 뒹굴거리는 그런 걸 수도 있고요.” 

 

[청소년 인턴십에 대해 듣다] “25만원은 인건비가 아냐”

 

K님은 지영을 지원하는 청소년센터 실무자이다. 우리의 인터뷰에 동행해주고, 학교 밖 청소년들을 교육하고 지원하는 담당자로서 우리가 궁금해하는 청소년 인턴십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영이 한 인터십의 경우,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서 연 3회 모집한다. 청소년이 직접 신청서와 자기소개서를 내면 그곳에서 선정하여 월 25만원을 지급한다. 인턴십 기간은 3개월이고, 매월 일해야 하는 시간이 정해져있다. 활동처(지영의 경우엔 미용실)는 청소년의 멘토가 되어주고, 인턴십이 끝난 후 평가서를 써주는 역할을 한다.

 

그런데 인턴십을 할 수 있는 활동처가 정해져있는 건 아니라고 한다. 인턴을 선정한 지원센터에서 연결해주는 것도 아니다. K님처럼, 해당 청소년을 지원하고 있는 개별 대안학교나 청소년센터 측에서 직접 활동처를 구해야 한다. K님은 활동처를 구하느라 많은 애를 썼다. 회계사무소에 인턴십을 신청한 청소년을 위해 청소년센터 법인의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사무실에 요청했고, 도슨트와 큐레이터를 신청한 청소년이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서 역시 법인에서 운영하는 종교 관련 박물관에 인턴 자리를 마련했다. 지영의 경우엔 서울시 학교밖청소년지원센터에 아는 팀장님 소개로 연결되었다.

 

청소년들은 인턴십을 마치면 그해 말에 발표회를 한다. 친구들이 와서 축하해주면서 ‘나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다음해 인턴십을 신청하기도 한다. 지영은 발표회에서 인턴십 경험이 “좋았다”는 말보다 “나와 안 맞았다”고 말하며 왜 그랬는지 발표했다. 다른 유관 기관 실무자들이 ‘어떻게 그렇게 자기 생각을 잘 말할 수 있는지 놀랐다’며 칭찬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K님은 인턴십을 어떻게 평가할까.

 

“페이는 교통비와 활동비 정도로 25만원 정도 나와요. 저에게 25만원이면 교통비네 했는데, 청소년들은 25만원이요? 하고 놀라면서 엄청 필요로 하더라고요. 그 액수 때문에 신청하는 경우도 많았어요. 그런데, 25만원이면 너무 싼 가격이죠. 노동에 대한 평가 절하를 배우는 것 같아서, 이건 인건비가 아니라 교통비와 밥값이라고 강조해요.”

 

청소년센터에서 만난 십대들은 알바를 많이 한다. 그러나 ‘건강한’ 일자리보다 ‘위험한’ 일자리가 더 많다.

 

“센터의 어느 청소년은 가정 상황이 어려워서 연신내에 있는 한 식당에서 오랫동안 알바를 했어요. 그런데 남자 주방장이 엉덩이를 만지고 그런다는 거예요. 너무 화가 나서 우리가 찾아가서 머리끄뎅이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당장 그만두라고 말하면서도 대안을 찾아줄 수가 없었어요. 또, 이 동네에서는 오토바이가 차랑 부딪히는 경우를 많이 봐요. 그럼 알바하는 청소년이 벌떡 일어나서 ‘괜찮다’고 하면서 자기는 ‘가야 한다’고 해요. 돈이 필요한 청소년은 많은데, 안전한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K님은 조금은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해주려고 주변 아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것 말고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없었다고 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부탁해요. 예전에 왔던 자원봉사자가 패스트 푸드점 부점장이 돼서 ‘자리 있으면 우리 학생들 좀 써 달라’고도 했었어요. 내가 사장이 되어야 하나도 생각했어요. 일한 만큼 대우 받고, 부당한 처우 안 받고, 안전한 일자리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K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지역 사회에서 청소년의 노동인권에 대해서 더 많이 이야기하고, 마을에서 청소년이 해볼 수 있는 일자리를 더 많이 찾아보는 것, 그런 것부터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지영과 지금까지 만난 일하는 청소년들, 그리고 노동자로서 우리 모두의 삶을 응원한다.   여성주의 저널 일다

 

-인터뷰: 미리, 오매, 비버

-기사정리: 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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