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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서 나가라!” 스물여섯 진아의 독립기

<생계형 알바를 하는 청년여성들>⑨ 급여 80에 고시원 생활


※ 이른바 ‘생계형 알바’를 하는 10대, 20대 여성들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빈곤-비(非)진학 청년들의 진로 탐색과 자립을 돕는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와 은평구청소년문화의집 <신나는애프터센터>와 함께하는 이 기획은,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아 연재됩니다.    Feminist Journal ILDA

 

인스턴트 먹고 TV보다 잠드는 고시원 생활

 

스물여섯 살 진아는 서울 동대문 근처에 있는 월세 30만 원짜리 고시원에 살고 있다. 낮에는 프랜차이즈 뷔페에서 하루 여섯 시간씩 일한다. 샐러드 코너에서 식재료를 다듬고 여러 종류의 샐러드를 만들어 음식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진아의 일이다. 1주일에 30시간 정도 일하고 월 80만원 남짓한 급여를 받아 생활한다. 그러나 진아는 이정도 돈으로도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많이 일해서 돈을 더 벌려는 생각도 없다.

 

“한 달에 평균 80만원 못 벌어요. 보험료 떼고 70정도 버는데, 고시원비 30만원 내고 핸드폰비 5만원, 차비 6만원… 나머지는 식비랑 생활비. 밥은 밖에서 사먹을 때도 있고 집에 가서 먹을 때도 있고. 고시원에 밥이랑 라면은 있는데… 편의점에서 3분 카레나 인스턴트 식품 사서 먹어요.”

 

▶ 진아의 고시원 생활을 즐겁게 해주는 TV. 예능프로그램을 보고 있으면 시간가는 줄 모른다.  

 

오전 10시나 11시, 느지막한 시간에 출근해서 저녁이 되기 전에 퇴근하면, 나머지 시간 대부분은 고시원 방에서 군것질을 하고 TV를 보며 지낸다. 진아는 누구의 간섭이나 방해를 받지 않는 그런 시간이 좋다고 한다.

 

“방에 조그만 냉장고랑 티비랑 침대, 책상 있어요. 층별로 남자여자 분리되어 있어서 편해요. 남자여자 분리 안 된 고시원에 한 달 정도 살아봤는데 너무 불편해서 못살겠더라구요. 방에 있을 때는 주로 TV를 봐요. 드라마랑 예능 프로그램. 재미있는 게 얼마나 많은데요. 출근이 늦으니까 새벽까지 TV보다가 잠들어요. 낮밤 바뀌어서 힘들 때도 있어요.”

 

스물둘, 강제 독립을 하다

 

진아가 부모님의 집을 나와서 고시원에서 생활한 지는 2년 정도가 되었다. 진아의 집이 고시원에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진아는 독립생활을 한다. 하지만 그건 진아의 선택은 아니었다.

 

“스물두 살에 처음 알바를 시작했어요. 아빠가 생활비로 집에 매달 20만원씩을 내라고 해서 20만원씩 드렸거든요. 그게 합쳐서 200만원쯤 됐는데, 어느 날 아빠가 그 돈을 다 모아놨다가 저한테 주면서 연말까지만 집에 있고 나가라는 거예요. 저는 나가기 싫었는데, 그 돈 받고 쫓겨났죠.”

 

그러니까 아버지가 진아를 “내쫓았기 때문에” 진아는 독립을 해야 했던 거다.

 

“그 돈으로 고시원 살았는데, 돈이 남아있는 동안에는 일을 안했어요. 그러다가 돈이 다 떨어질 때쯤에 고시원 나와서 아빠 몰래 또 집에 들어갔어요. 아빠 모르게 두 달을 집에 있었어요. 낮에는 나와 있다가 밤에 아빠 들어오면 동생 방 옷장 안에 들어가 있었어요.”

 

아빠 모르게 집에 들어갔다 나오는 생활을 언제까지나 계속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사는 게 너무 힘든 거예요. 눈치 보면서 아빠 없을 때만 왔다갔다 하는 게. 그래서 다시 알바를 시작하고 집을 나오게 됐어요. 그렇게 1년 정도 살고 나니까, 처음에는 걱정되고 힘들었는데, 이제는 집에서 들어오라고 해도 들어가기가 싫어졌어요. 이제는 제가 싫어요.”

 

“처음 쫓겨난 건 열네 살 때에요”

 

사실 집을 나와 산다는 것이 진아에게는 낯선 일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오랜 기간 부모님의 집을 나와 살았다. 진아가 처음 집을 나온 것은 열네 살 때. 정확히 말하자면 집에서 쫓겨났다.

 

“중학교 막 입학하고 나서 처음 집을 나갔어요. 나갔다기보다는… 아빠가 쫓아냈어요. 제가 학교를 안 나갔거든요… 학교를 안 간다고 아빠가 저를 무조건 쫓아냈어요. 학생이 공부 안한다고. 가출이 아니죠. 강제로 쫓겨난 거니까.”

 

이후로 진아는 집을 나왔다가 다시 들어가 살다가를 반복했다.

 

열네 살에 집에서 내쫓긴 진아는 이후의 10대 시절 대부분을 청소년쉼터와 대안학교에서 공부하고 생활했다. 서울에서도 살았고, 대전에서도 살았고, 성남에서도 살았다.

 

“(처음 집을 나와서) 당장 잘 곳도 없었는데… 담임선생님이 청소년상담센터 연결해줘서 상담을 받았죠. 그리고나서 청소년보호소인가, 쉼터 같은 데로 갔어요. 중학교 졸업할 때까지 거기 살았어요.”

 

▶ 작은 체구에 수줍음 많은 진아.  


누구나 학교를 그만둘 수 있다. 그리고 어떤 부모들은 자녀의 학업 중단을 막으려는 일종의 위협으로 집에서 ‘일시적으로’ 자녀를 내쫓기도 한다. 하지만 진아의 아버지는 학교에 다니지 않는 진아를 다시 집으로 불러들이지 않았다.

 

“쉼터 들어가고 나서, 엄마는 걱정되니까 가끔씩 찾아왔는데 아빠는 딱 한번만 왔어요. 제가 그 쉼터에서 또 가출했을 때 딱 한번. 쉼터에서 가출을 했는데, 갈 데가 없으니까 아빠 모르게 집에 들어가 있었거든요.(웃음) 첫날에는 안 걸렸는데, 제가 쉼터 가출한 걸 알고 아빠가 집안을 뒤져서 둘째 날에 걸렸어요. 그래서 다시 쫓겨났어요.”

 

아빠는 진아를 쫓아내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어릴 때부터 진아는 아빠의 폭력과 폭언에 시달렸다. 진아 스스로는 ‘내가 공부를 안 하고 아빠 말을 안 들어서’ 맞았다고 생각하지만 말이다.

 

“아빠가 쌓아놨다가 한 번에 폭발하는 스타일이에요. 물건 집어던지고, 잡히는 대로 들고 온 몸을 때려요. 엄마도 때리고 동생들도 때리고. 그래도 신기하게 얼굴은 안 때렸어요. 한번은 제가 집에서 쫓겨나 있었는데, (집에) 들여보내려고 대안학교 선생님이 저랑 같이 집에 간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빠가 선생님 앞에서 저를 때렸어요. 솔직히 그날 옥상에서 뛰어내리고 싶었어요. 너무 무섭고… 다시 집에 돌아온다는 게 너무 무섭고 앞날이 캄캄해서 살기가 싫었어요. 거기서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한편으론 “아빠 인생도 약간 불쌍한 것 같다”고 말하는 진아다.

 

“아빠가 올해 환갑인데, 그렇게 열심히 살았는데 남는 게 별로 없으니까. 일을 그만두고 나서도 걱정 없이 살아야 하는데, 그렇게 열심히 살았으면…. 그런데 지금도 일을 그만두면 (가난해서) 문제잖아요. 불쌍해요. 아빠가 70살 될 때까지는 일한다고 했어요.”

 

아빠도 진아를 영 버려두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학교를 다니기만 하면’ 받아준다고 했다. 하지만 진아에게 ‘일반학교’는 견뎌내기 힘든 곳이었다. 참고 학교를 다니기만 하면 집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진아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학교만 얌전히 다닐 수 있었다면, 진아는 지금까지보다는 좀 더 편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진아는 왜 학교에 다니기 힘들었을까?

 

“공부하는 게 초등학교 때부터 어렵긴 했는데, 공부하기 싫어서 학교를 안간 건 아니에요. 친구들 관계가 너무 힘들었어요. 친구 사귀기도 힘들고 같이 어울리는 것도 힘들고. 그래도 초등학교 때까지는 단짝친구가 한두 명은 있었는데, 그 친했던 친구랑 싸우고 완전히 안 보게 된 이후로 힘들었던 거 같아요. 그러고 중학교 들어가니까 더 힘들었어요. 제가 내성적이고 조용조용한 성격이니까 애들이랑 어울리니까 힘드니까, 그것 때문에 너무 스트레스 받았어요.”

 

“지금도 부모님은 몰라요. 제가 왜 학교를 안 갔는지…. 그냥 공부하기 싫어서인 줄 알지, 친구관계가 힘들어서 그런 줄은 전혀 몰라요. 친구가 없는 건 알고 있는데, 친구관계가 힘들어서 학교 그만둔 줄은 모르죠. 그런데 엄마아빠한테는 이런 말 한 번도 안했어요. 말한 적 없어요.”

 

또래들과 친해지는 게 너무 힘들어…

 

▶ 진아의 단벌 유니폼. 자비로 구입하고 스스로 세탁해 입어야 한다. 


스물두 살에 다시 집에서 쫓겨난 진아의 최대 과제는 ‘알바 구하기’였다. 그런데 십대 때부터 알바를 해온 또래들과 달리 진아는 스물두 살이 되어서야 첫 알바를 시작했다. 그 이유는 금수저 은수저라 경제적 여유가 있어서도 아니고, 대학에 진학했기 때문도 아니었다. 낯선 공간에서 낯선 사람들과 어울린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어 두 번이나 학교를 그만뒀던 진아에게, 낯선 일까지 새로 배워서 해야 하는 알바는 엄두를 내기 힘든 일이었다.

 

‘일’에는 금방 적응할 수 있었다. 몇 해 전까지 일하기를 두려워했던 진아는 몇 년째 비슷한 일을 계속하면서, 이제는 자신이 하는 일에 어느 정도 자신감을 얻었다. 꼼꼼하고 성실한 성격 덕분에 지각을 하는 일도 없고, 배우는 게 늦더라도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기 때문에 일터에서 칭찬도 곧잘 받는다.

 

하지만 진아는 끊임없이 ‘빨리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지금 직장을 떠나서 다른 곳에서 일해보고 싶다고도 했다. 예전에 학교를 그만둘 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른 직원들하고 거의 말을 안 해요. 인사만 겨우 해요. ‘안녕하세요’ 하고. 일 때문에 필요한 말만 딱 하고 개인적인 말은 전혀 안 해요. 대부분 저보다 어린 동생들인데… 걔들하고 할 말이 없어요. 하기 싫은 건 아닌데 말을 못하겠어요. 제가 어른들한테는 말 편하게 하거든요? 그런데 이상하게 또래한테는 안 돼요. 같이 일하는 이모한테는 말을 많이 하거든요. 이모는 우리 엄마랑 나이가 비슷하니까. 그런데 저랑 나이가 비슷하거나 저보다 어린 애들한테는 말을 못하겠어요.”

 

그래서 진아는 식사 시간이 가장 고통스럽다. 다른 직장동료들이 서로 즐겁게 대화하며 밥을 먹는 동안 혼자 말없이 밥을 먹어야 하기 때문이다. 밥을 먹지 않을 수도 없고, 다른 사람보다 자리에서 먼저 일어나기도 어렵다. 밥 먹는 시간이 너무 불편해서 일을 그만두고 싶어진 걸지도 모른다.

 

“밥 먹을 때가 제일 힘들어요. 밥 먹을 때마다 체할 거 같아요. 지금 일하는 데서 1년 이상 사람들을 만났는데, 같이 밥 먹을 때 지금도 체할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이야기하는데, 저는 조용하고 아무 말도 안하고 있으니까… 제가 부담스러워서 못 앉아있겠더라구요. 일이 힘든 거보다 인간관계가 힘든 게 훨씬 더 힘들어요. 몸이 힘든 거는 어느 정도 참을 수 있겠는데…”

 

진아는 자신이 왜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고 친해지지 못하는지 알지 못한다. 특별히 까탈스럽거나 거칠거나 냉정한 성격도 아닌데. 나이 많은 어른들과는 잘 친해지고 이야기도 잘하는데 유독 또래들과는 친해지지 못한다.

 

“처음에 일 시작할 때는 사람들이 저한테 와서 말도 걸고 그래요. 그런데 제가 별로 반응을 크게 안했어요. 그때 제가 처음부터 말 편하게 하고 그랬으면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았을까… 차라리 동생 대하듯이 편하게 할 걸.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를 모르겠더라구요. 내가 무슨 말을 해야 이 사람이 좋아할지. 제가 이야기할 때 상대방이 반응이 없으면 말을 못하겠어요. 그리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여기서는 인간관계가 완전히 망한 거 같아요. 모르는 사람들 있는 데로 가서 새로 시작하고 싶어요. 차라리 그게 나을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 일하는 사람들이 너무 좋은 사람들이라… 다른 데로 가는 것도, 아쉬워요.”

 

“살만해요,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잖아요”

 

▶ 고시원은 이제 고시생이 아니라 진아와 같은 1인가구의 생활공간이 되었다. 


빈곤한 가정. 아빠의 폭력과 방임. 학교 중퇴 경험. 심각한 인간관계의 어려움. 힘들게 알바를 해야 살아갈 수 있는 고시원에서의 독립생활.

 

이런 조건들을 보면 진아의 삶이 무척이나 힘들게 느껴진다. 빈곤과 고립을 겪어보지 않은 나로서는 진아가 겪는 삶의 어려움을 마음 깊이 공감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진아는 지금의 삶이 ‘나아졌다’, ‘살만하다’고 말했다.

 

“어차피 저는 예전보다 내 생활이 나아졌다고 생각해요. 어렸을 때는 집에서 쫓겨나면 갈 데도 없고 그랬는데, 지금은 알바해서 내 힘으로 고시원비도 내고, 내 밥은 알아서 챙겨먹으니까. 집에서 돌아오라고 해도 이제는 갈 생각이 없어요. 월급을 더 많이 받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 한 150만 원 정도? 그런데 당장 그렇게 해야겠다는 생각은 없어요. 지금도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으니까.”

 

스물여섯 진아의 삶은 언론이나 미디어에 나오는 또래 청년들의 삶과는 많이 달라보였다. 대학생도 아니고, 많은 연봉을 받는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 하는 것도 아니고, 자격증을 따거나 경력을 쌓아서 안정적인 미래를 준비하는 것도 아니었다. 진아의 바람은 소박해보였다.

 

“여러 가지 일을 잘하고 싶어요. 같이 일하는 애들 보면, 여러 가지 파트 일을 다 할 줄 알거든요. 멋있어 보여요. 저는 한 가지 일만 계속 하니까…. 저는 두 가지 일을 못하거든요. 그런 모습을 보면 ‘나도 저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알바로 말고 직원처럼 직급이 올라가고 싶어요. 매니저님들처럼 파트 하나 맡아서 하고 직원 관리도 하고.”

 

“저보다 훨씬 늦게 들어왔는데, 들어오자마자 이 사람 저 사람이랑 금방 친해진 애가 있어요. 들어온 지 며칠 만에 같이 술도 먹고 친해져서 얘기도 많이 하더라구요. 저는 한 번도 그런 적 없거든요.”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고, 일을 더 잘하게 돼서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진아가 바라는 전부였다. 아 참, 그보다 더 중요해 보이는 한 가지 바람이 더 있었다.

 

“결혼은 안 해도… 남자친구는 사귀어보고 싶어요. 같이 일하는 이모한테 남자친구 좀 소개시켜 달라고 했어요.(웃음) 왜 난 안 생기지… 같이 일하는 애들은 나이도 어린데 남자친구 여자친구 다 있어요. 남자친구랑 해보고 싶은 게 많아요. 남자친구가 생긴다면… 일단 나랑 잘 놀아줬으면 좋겠어요.(웃음) 놀이동산도 가고, 영화도 보고, 산책도 하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고. 이것저것 남들이 하는 거 한 번씩은 다 해보고 싶어요.”

 

진아는 오늘도 이직을 꿈꾼다. 새로운 일터에서 새로운 동료들을 만나면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친하게 지낼 수 있지 않을까. 활발하고,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사귀고, 여러 가지 일을 다 잘해서 동료들을 도와주고 가르쳐줄 수도 있게 되지 않을까. 편하게 밥 먹을 수 있는 동료도, 얘기 나눌 수 있는 친구도 생기고, 놀이공원에 함께 갈 남자친구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몇 달째 미뤄오고 있는 이직의 꿈이지만, 진아의 소박한 꿈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다. 지금까지 진아의 삶이 ‘조금씩 나아졌던 것처럼’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 믿는다. ‘조금씩 나아진다’는 말은 자신이 처한 어떤 힘겨운 현실도 그렇게 바꾸어버릴 수 있는, 진아만이 가진 ‘힘’일 테니까.  (이정현/ 협동조합 일하는 학교)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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