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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동권 내 자기성찰, 페미니즘이 필요해!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⑳ ‘꿘페미’ 그 힘겨운 위치


※ 2016년 <일다>는 새로운 페미니즘 담론을 구성하기 위하여, “한국에서 젊은 여자로 산다는 것”을 주제로 스무 편의 기록을 연재하였습니다. 이 기획은 한국여성재단 성평등사회조성사업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Feminist Journal ILDA

 

나이 권력과 젠더 권력을 동시에 쥔 ‘남자선배’들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남에게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까지는 입시에 치여 하고 싶었던 활동들을 제대로 못했던 나는 대학에 들어와 의미 있는 활동을 찾아다녔다. 그러다가 학교의 청소노동자들과 연대하는 동아리에 가입했다. 그리고 바로 그 해에 열렸던 청소노동자들의 식대 인상 투쟁에 동참하게 되면서 사회운동과 만났다. 그렇게 나는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회운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얼마 되지 않는 기간이지만 운동을 하는 사람들과 만나고 함께하면서 나는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운동조직에서는 보통 운동의 경력과 나이에 따라 선배와 후배로 위계를 나눈다. 나이 권력과 젠더 권력을 동시에 쥔 ‘남자선배’들은 조직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켰다.

 

자신의 성욕을 해소할 방법이 없다며 여자후배에게 고민 상담을 요청하는 남자선배. 선배에게 ‘오빠’라고 불렀더니 옆에서 ‘둘이 사귀어요?’라고 묻던 남자선배. 화가 난다고 문을 쾅 열고 들어와 공포감을 조성한 남자선배. 회의 때 논쟁을 하다가 의자를 쾅 밀어 넣은 남자선배. 술에 취해서 여자후배의 손을 잡는 남자선배. 자연스럽게 여자후배의 어깨를 주무르거나 머리를 쓰다듬거나, 이야기하면서 팔을 만지는 남자선배. 학생회장은 일단 외모가 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남자선배….

 

이처럼 조직에서 성차별과 성희롱 문제를 일으키는 이들 대부분 남성임에도 불구하고, 운동조직의 대표들은 대부분 남자선배였다. 이에 대하여, 내가 활동하고 있는 한 조직의 남성 대표자는 ‘남성이 리더에 적합하도록 사회화되었다. 그래서 여성이 리더를 하기에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평등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우리는 여성이 리더가 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고 바꾸어 나가야 할 것인데, 이런 노력들은 항상 뒷전이었다. 다른 상황이 급박하다는 이유로, 여성주의 세미나와 여성주의 운동은 취소되거나 축소되기 일쑤였다.

 

시위에 참가할 때도 일부 남성시위자들이 ‘여자들은 다치지 않게 뒤로 빠지라’고 하거나 반대로 ‘앞에 나서라’고 하는 경우를 보게 되었다. 앞에 나서라고 하는 이유는, 남자경찰들이 여성시위자와 신체접촉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지령을 받기 때문에 시위대 측에서는 인질 식으로 여성활동가들을 앞으로 내보내는 것이다. 이런 모습을 두고 어떤 여성커뮤니티에서는 ‘꿘충들은 여자들을 고기방패로 세운다’는 표현을 쓴다고 한다. 보편적인 경우는 분명 아니지만 틀린 말도 아니라서, 그런 표현을 듣고도 할 말이 없었다.

 

보호받거나, 인질로 사용되면서도 이곳에서 여성들은 강인해질 것을 요구받았다. 소위 ‘멘탈이 약하다’고 평가 받거나 ‘징징댄다’, ‘감정적이다’라는 말을 듣는 운동가들은 모두 여성이었다. 나 또한 그렇게 평가받았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나는 점점 나의 여성성을 숨기기 시작했고,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문화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내가 호소하는 불편함과 성폭력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감정적’이고 ‘사적’인 것이라서 ‘이해되지 않는다’거나 ‘더 구체적으로 설명해봐라. 사례를 들어봐라’ 라고 요구받을 때가 많았다.

 

▶ 사회 개혁을 요구하는 운동조직 내에서도, 남성과 여성은 대등한 위치에 있지 않았다.

 

내가 생각했던 운동권은 평등을 지향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였다. 그렇기에 처음 운동조직 안에서 겪었던 권위주의 문화와 여성주의를 꺼려하는 문화가 이해되지 않았고 울기도 많이 울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옳다고 믿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모든 사람이 행복해질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이 공간에 스스로 발을 들여놓았고, 그런 만큼 함께 있는 사람들에 인정을 받고 싶었다. 그리고 그건 스스로를 희생하면 되는 문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멘탈이 강한(주변에 무관심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했다. 나를 지나가는 잔인한 말들에도 상처받지 않으려고 애썼다.

 

농활에 가서는 주민들이 무거운 짐을 옮길 사람으로 남학생만 찾을 때 ‘나도 할 수 있다’며 적극적으로 나서기도 했다. 남성들과 똑같이 대우받는 방법은 남성처럼 무거운 짐을 나를 줄도 알아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주변 여성들에게 우리가 이런저런 투쟁 공간에서 남성과 같은 대우를 받으려면 그만한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다닌 적도 있었다. 밥도 잘 먹고 운동 좀 하라고 다른 여성활동가에게 훈수를 두기도 했다.

 

여성들이 주도하는 투쟁, 해방구를 만나다

 

이렇게 소위 ‘명예남성’이 되어있었던 나에게 인터넷 상에서 일어난 여성들의 미러링(거울처럼 남성네티즌들의 여성혐오 언행을 따라하여 비추어 보여주는 것) 흐름은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메르스갤러리와 메갈리아, 지금의 워마드까지 그간 안 보이는 것 같았던 여성들의 존재가 드러나고 그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미러링의 방식으로 공기와 같았던 여성혐오를 지적하고 해방구를 찾아 나섰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마음속으로는 나의 삶을 너무나 정확하게 설명하는 메갈리아의 언어가 통쾌했지만, 나 스스로 그런 언어를 사용하지는 못했다. 그들의 사용하는 언어와 내뿜는 감정이 정당방위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대놓고 메갈을 지지한다는 말은 해본 적이 없었다. 뭔가 두려웠던 것 같다. 다시 여성의 관점으로 사고한다는 것이. ‘여성’으로서의 나의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그동안 내가 운동권 내에서 어렵게 쌓아온 것들을 무너뜨릴까봐 겁났던 것 같다.

 

하지만 메갈리아가 뜬 이후 여성활동가들이 모이면 메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동안 불편했던 속내를 서로 이야기하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고민 지점을 나누고 문제의식을 갖게 되면서 점점 변화가 시작되었다.

 

올해 4월, 나는 노동당의 페미니스트들과 함께 서울시 마포구에서 하윤정 후보와 ‘여성주의 선본’으로 국회의원 총선거를 치렀다. 치열하게 고민하여 무상생리대, 몰카 방지법 등을 전면에 걸었다. 무엇보다 결혼하지 않은 후보에게 선거운동의 제한을 두고 있는 현행 선거법(후보자 명함을 돌릴 수 있는 선거운동원에 배우자와 직계 존비속, 후보자의 배우자가 지정한 사람 1명을 포함)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는 최근 일부 위헌(배우자가 지정한 사람 1명을 포함한 것에 대해 위헌 인정) 결정이 났다. 글을 읽는 분들도 궁금하면 ‘하윤정’을 검색해보시라! 우리는 정말 대단한 일을 했다.

 

▶ 메갈리아와 강남역 10번출구 추모공간의 흐름 속에서 탄생한 불꽃페미액션.  ⓒ고래

 

그러다 지난 5월, 강남역 여성살해 사건이 벌어졌다. 대한민국 최대 번화가에서 ‘여성’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목숨을 잃다니… 평소에 밤늦게 돌아다니기 좋아하던 나는 그 대상이 정말 나였을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고, 난 운이 좋아 살아남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온라인에서 여성들이 주도하여 강남역 10번출구에 추모의 포스트잇을 붙이기 시작했다. 강남역 10번출구 앞에 모인 여성들에게서 슬픔과 공포 그리고 분노의 물결이 느껴졌다. 이 사건을 계기로, 거리에 나온 여성들은 자신의 언어로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 때 여성들이 자신의 문제에 주도적으로 나서서 행동하는 모습을 처음 목격했다. 함께 활동하던 여성운동가들도 이런 모습을 보고 동요하기 시작했다. 조직 내에서 여성주의를 이야기해왔지만, 늘 덜 중요한 것으로 취급받아왔던 우리들은 드디어 우리가 기다려왔던 여성주의 투쟁의 순간이 열리는가 하고 기대했다. 살면서 수많은 여성살해 사건이 벌어졌지만 이번 같은 반응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꿘페미’들은 합심해서 뭔가를 해보기로 했다. 그동안 남성들이 지시하고 주도해왔던 운동만 해봤으니, 여성들이 모든 것을 준비해서 해보자고 하면서 뭉쳤다. 강남역 10번출구 앞에서 열리는 자유발언대에 나가서 발언하고, 우리들이 잘하는 기자회견 형식으로 강남역 살해사건이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살인’임을 지적하기도 했다.

 

곧 우리는 <불꽃페미액션>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이 불꽃같은 여자들은 우리가 잘하는 시위도 여성주의 운동에서 해온 ‘밤길걷기’라는 이름으로 준비해서 행동했다. ‘천하제일 겨털대회’를 열어서 몸의 해방을 이야기했고, 낙태죄 폐지 운동을 시작하면서 성과 섹스에 대해 처음으로 말해보았다. 나는 여성운동을 시작하면서 그 어느 때보다 정말 큰 해방감과 자기효능감(self-efficacy)을 느꼈다. 진짜 내 문제라고 생각했고, 이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하나의 운동으로 할 수 있다는 것이 행복했다.

 

‘페미’라고 무시당하고 ‘꿘충’이라고 조롱받으며

 

하지만, 우리들이 느낀 것과는 달리 인터넷에서는 미러링을 주도하던 여성 커뮤니티 사람들에게 우리는 ‘꿘충’으로 분류되었다. ‘꿘충’은 비난의 대상이었다. ‘여성주의가 잘 되는 것 같으니 운동권이 숟가락 얹으려한다’, ‘먹버(먹고 버린다)하려 한다’, ‘사실은 남자들이 뒤에서 조종하고 있는 거다’, ‘쟤들 명예자지다’라는 말을 들었다.

 

사실 그동안 운동권이 저질러왔던 행태들을 지적하는 부분이라 할 말이 없었다. 나는 명예남성이었고, 내가 본 운동권들은 사회에서 어떤 이슈들이 떠오르는지 항상 주시하며 시류에 따라 행동해왔고, 여성주의는 뒷전이었던 것이 사실이었다. 대부분의 조직에서 남성이 대표자고 최고의 책임과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나는 우리와 같은 편이라고 생각하는 여성들로부터 ‘꿘충’이라고 비판받으며, 운동권 내 가부장제를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인정받고자 했던 나의 과거 모습을 반성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운동권 가부장제의 피해자이기도 하면서 운동권 내부에서 이런 저런 문제 제기를 하며 여성주의 활동을 해왔던 여성활동가들의 서사는 어디에도 없는 것이 서운했다.

 

운동조직 내에서는 ‘페미니스트들은 조직이 안 된다’는 말이나 ‘페미니즘은 실천 투쟁이 없다’는 말로 폄하되고, 온라인 페미니스트들에게서는 ‘꿘페미들은 운동권 남자들한테 지배받으며 운동한다’거나 ‘페미들을 이용해먹으려고 한다’는 비난을 들으며, 나의 마음은 참으로 착잡해 지는 것이었다.

 

▶ 강남역 살해사건이 ‘묻지마 살인’이 아니라 ‘여성혐오 살인’임을 지적하는 <불꽃페미액션>의 액션.  ⓒ고래

 

운동권 페미니스트, 목소리를 내다

 

그동안 운동조직 내에서 참아왔던 것에 대한 분노, 그리고 한 편의 억울함을 가지고도 나는 운동조직을 떠나지 않는다. 그 이유는 이곳에 나와 함께하고 서로를 위로하며 지지하는 ‘꿘페미’들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이곳에서 나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을 때, 옆에서 네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해주던 언니들과 친구들이 없었다면 금방 활동을 그만뒀을지도 모르겠다. 옆에서 든든하게 자리를 지켜주는 여성활동가들이 고마울 따름이고,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여성들이 스스로의 인권을 요구하는 사회 분위기와, 운동권 내부에서 여성주의 투쟁을 하는 꿘페미들이 있기에, 운동권도 자기 성찰과 반성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운동조직 내에서도 여성주의 운동의 필요성을 공감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여성들이 뭉쳐서 더디지만 한걸음씩 여성주의 운동을 해나갈 때, 한없는 지지를 보냈던 일부 남성활동가들 또한 큰 힘이 되었다.

 

페미니즘을 공부하면서 나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는 좌파운동이 가부장제 또한 타파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과연 모든 노동이 가치 있게 여겨진다고 해서 성차별이 그냥 사라질까? 우리 사회가 좀 더 평등해져서 가사노동과 돌봄노동이 이전보다 많은 보상을 얻게 된다고 해서, 남성들이 자동적으로 돌봄의 주체가 될까…

 

이전에는 이런 질문을 하려고 마음먹어본 적도 없었고, 설명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지금 여성주의 책을 읽으면서 조금씩 언어를 얻어가고 있다. 세상과 공동체에 질문할 것과 싸워야 할 것들을 늘려가는 중이다. 나 같은 꿘페미들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언어를 찾아갈 때, 그동안 부정해왔던 자신을 긍정하고 사랑할 수 있는 기회를 찾게 되고, 그 힘으로 운동사회의 가부장제를 조금씩 무너뜨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내 활동공간에서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으로, 지난 9월엔 내가 몸담고 있는 운동조직의 후원행사에서 좀 더 평등하게 행사를 즐길 수 있는 팁을 만들어 메뉴판과 함께 나누어 주었다. 활동을 하면서 ‘어린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았던 편견과 무시에 대해서 SNS에 글을 게시하기도 했다. 요즘은 운동권 내부의 여성주의적 자기 성찰을 위해 여성활동가들, 나이가 어린 활동가들, 소수자 활동가들을 존중하는 방법에 대해서 쓴 소식지와 유인물을 만들고 있다. 집회에 나가 배포할 건데, 유인물을 받은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다.

 

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는 우리가 지향하는 사회와 닮아있어야 한다. 다른 곳보다 더 성평등해야 한다. 때문에 더더욱 이곳 사람들이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함께 운동하고 있는 남성들이 여성주의 책을 많이 읽고, 강연을 듣고, 여성들의 말을 듣고, 여성들이 주도하는 여성주의 운동에 참여했으면 한다. 그렇게 한다면 우리가 함께 성평등한 공동체 문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고, 성평등한 사회까지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도 나를 비롯한 꿘페미들은 운동권 안팎으로 성차별을 타파할 수 있도록 갖은 노력들을 다 해볼 것이다. 우리는 연결될수록 강하다. (고래)  Feminist Journal 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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