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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지금 아니면 언제?

[잇을의 젠더 프리즘] 문제 있는 ‘문재인의 페미니즘’


※ 세상을 바라보는 20~30대 페미니스트들의 관점과 목소리를 싣는 ‘젠더 프리즘’ 칼럼입니다. 필자 잇을님은 언니네트워크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feminist journal 일다 바로가기

 

성소수자 인권 유보하는 페미니스트 대통령?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지난 13일 보수 기독교계(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교회연합,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관계자들과 만나, ‘현행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다른 성적지향을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배제되거나 차별되어선 안 된다고 규정되어 있으므로, 추가입법으로 인한 불필요한 논란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 민주당의 공식 입장’이라며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에 반대하는 입장을 드러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2012년 대선에선 차별금지법을 제정하겠다고 공약했고, 동성커플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겠다고 한 바 있다.

 

이에 16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싱크탱크 국민성장 주최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주제 ‘새로운 대한민국, 성평등으로 열겠습니다’)에 가서 기조연설을 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고 항의했다. 그러자 문 전 대표는 ‘나중에’ 발언할 기회를 주겠다고 했고, 포럼 참석자 상당수는 ‘나중에!’를 거듭 외치며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의 항의 소리를 막았다. 그리고 현재까지 적잖은 문재인 지지자들이 인권활동가들의 ‘태도’를 비난하고 있다.

 

▶ 16일 성소수자 인권활동가들은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제7차 포럼>에서 성평등 주제로 기조연설을 하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차별금지법에 대한 입장을 묻고 항의했다. ⓒ성소수자차별반대무지개행동

 

그러나 ‘나중에’까지 문 전 대표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반대 입장을 바꾸지 않았다. 동성혼에 대해서도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나중으로’ 유보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날 문재인 민주당 전 대표는 ‘페미니스트 대통령이 되겠다’고 공언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젠더폭력을 더 이상 눈 감고 쉬쉬해서는 안 된다. 젠더폭력 가해자에 대한 단호한 처벌로 사회적 약자를 국가가 보호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그러나 본인 말대로 ‘젠더폭력으로부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법제도인 포괄적 차별금지법에 대해서는 반대 입장을 굳힌 모습이었다.

 

지난 2015년 8월 대전시 성평등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부분을 모두 삭제토록 지시한 여성가족부가 떠오르는 퇴행이다. (※ 2015년 8월, 여성가족부는 대전시에 공문을 보내 ‘대전시 성평등 기본조례’에서 ‘성소수자 보호 및 지원 조항은 상위법인 양성평등기본법의 입법취지에 어긋난다’며 성소수자 관련 조항을 삭제하도록 요청했다. 결국 대전시의회는 성소수자 조항을 모두 뺀 채 ‘양성평등 기본조례’로 이름을 바꿔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성소수자가 처한 현실과 다양한 가족형태를 외면하면서 ‘사람이 먼저인 세상’과 ‘성평등한 세상’을 실현할 수 있는가? 교육부 학교성교육 표준안의 ‘성은 남녀의 관계’, ‘성은 남성(아빠)와 여성(엄마)의 혼인과 관련한 일’ 서술 수준의 젠더 인식으로는 성평등은 가능하지 않다.

 

남성과 여성을 단순화하여 젠더폭력을 시스젠더(Cisgender. 신체적 성과 사회적 성이 일치하는 사람. 트랜스젠더의 대응 용어) 남녀의 이성애적 관계에서만 접근하고, 시스젠더-이성애자-여성만을 보호대상으로 삼으며, 이미 존재하는 다양한 젠더 정체성과 삶의 무수한 관계적 가능성을 고려하지 않는 성평등 정책으로는 성평등을 실현할 수가 없다.

 

아니, 적어도 성소수자를 존재로, 한 사람의 삶을 관통하는 정체성과 인권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인권감수성이 있다면, 여성동성애자를 반 잘라 일부(여성)는 공약하고 일부(동성애자)는 ‘나중’으로 미뤄놓는 것과 같은 행동을 보일 순 없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는 자신의 기조연설 중에 여성동성애자가 항의한 것을 혹여 불쾌하게 생각할 게 아니라, 먼저 “내가 아니면 누가? 지금 아니면 언제?”를 질문한 엠마 왓슨의 연설(2014년 9월, UN 성평등 캠페인)을 들어보면 어떨까?

 

▶"차기 대선주자로 개신교 표를 의식하여 머리 조아리는 행위가 부끄럽지 않습니까?" 대한민국 바로세우기 7차 포럼에서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에게 차별금지법 제정을 요청한 성소수자 부모모임 하늘님.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

 

‘문재인의 페미니즘’은 젠더폭력 이해 못해

 

나는 비일비재하게 성차별과 성폭력, 길거리괴롭힘을 겪은 성소수자다. 소위 ‘바바리맨’을 만났을 때, 난 내가 여성으로 비춰질지 아닐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없다고 느껴 불쾌했다. 그러나 다시 생각하면 내 젠더 정체성과, 다른 사람에게 비춰지는 젠더 정체성은 얼마간 불일치할 수밖에 없다. 오히려 그것은 실제 젠더 정체성이 아닌, ‘가해자가 상상한 젠더 정체성’과 관련한 사건이었다. 즉, 내가 경험한 피해는 가해자가 내 젠더 정체성을 알거나 이해했다기보다 무지했기 때문이며, 피해자에 대해 아무것도 알거나 이해하지 않아도 되는 그 특권적 지위로써 나를 ‘여성으로 강제’하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내가 겪은 것들을 남성의 가해에 의한 ‘여성의 피해’로 정리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 피해를 인정받기 위해 나의 어느 부분도 깎아내고 싶지 않다. 스스로 여성으로 여기지 않았던 시간과, 여성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던 경험을 지우지 않고도 내가 겪은 것들을 문제 삼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의 젠더폭력 피해가 과연 여성가족부의 양성평등 인식이나 문재인의 페미니즘으로 이해될 수 있을까?

 

16일 포럼에서 한 이주여성인권단체 활동가는 ‘기습발언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자매들에게 연대의 마음을 전한다’며 질의의 말문을 열었다고 한다. 그 말을 곱씹으며, 내가 이전에 여성단체에서 활동할 때 경험한 자매애를 다시 생각했다. 그때 그곳에서 자매애는, 여성으로 규정되고 서로 같은 것으로 간주되어야만 진입할 수 있는 좁은 문처럼 느껴졌었다. 흡사 서로를 ‘안전’한 이성애자 여성으로 믿는, ‘서로 섹스하거나 결혼할 일 없을’ 언니-동생의 친밀함 같은 것. 그런데 ‘자매’라는 단어를 다시 들으면서, 나는 성소수자를 적대시하지 않는 어떤 형태의 자매가 있을 수 있겠다고, 그리고 그것이 필요할지도 모른다고 상상해보았다.

 

페미니스트라면 지금 함께 질문해야 한다. “인권을 반으로 자를 수 있습니까? 왜 성평등 정책 안에 성소수자에 대한 성평등을 포함하지 않습니까?” 그리고 외치자. “나중은 없다. 지금 당장!” feminist journal 일다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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