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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 
 
송신도, 그녀는 아름답다

 
그녀는 입이 걸다.
그녀는 거침이 없다.
그녀는 웃음이 많다.
그녀는 눈물이 많다.
그녀는 노래를 잘한다.
그녀는 씩씩하다.
그녀는 당당하다.
송신도, 그녀는 아름답다.
 
부모가 정해준 혼사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아 신혼 첫날밤에 가출을 감행한 당돌하기 짝이 없는 열여섯 소녀 송신도. ‘정신대’가 무슨 소린지도 모르고 그저 일본군을 따라가면 원치 않는 결혼을 안 해도 되고 돈도 벌 수 있다니, 그래서 따라 나섰다가 일본군 ‘위안부’가 되어버린 송신도.
 
초경을 시작하기도 전에, 성행위가 뭔지 알기도 전에 낯 모르는 군인 앞에서 다리를 벌려야 했던 송신도. 초경이 시작된 후 수도 없이 임신과 유산을 반복하고, 결국은 자궁 속에서 7개월 만에 죽은 아이를 자기 손으로 끄집어내야 했던 송신도. 모진 ‘위안부’ 생활에도 끝끝내 살아남아 태어난 아기를 둘씩이나 전쟁터에 버려두고 떠나야 했던 어머니 송신도.
 
전쟁이 끝나고 일본군에게 속아 일본까지 따라왔다가 내팽개쳐져, 평생을 고향 없는 이방인으로 살아야 했던 송신도. 일본에서 만난 조선인 남자와 한집살림을 하면서도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는 ‘육체관계’를 할 수 없어, 남편을 아버지라 부르며 섹스 없는 부부로 살아야 했던 아내 송신도.
 
그렇게 자신을 짓밟은 일본을, 전쟁을 용서할 수가 없어 세상과 일본사회를 향해 자신을 발언한 송신도.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시효가 지난 사건에 대해 국가가 배상하거나 사죄할 의무가 없다”는 똑같은 대답만을 들어야 했던 송신도.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 이후에 “재판엔 졌지만 그래도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며 일본 군가를 개사해 자신의 삶을 노래하는 송신도.
 
송신도, 그녀의 삶은 파란만장하다. 그 파란만장한 삶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가는 그녀의 거침없는 행보는 아름답다.
 
지원모임, 그 여성들의 모습에서 나를 발견하다

 
1991년 故 김학순 할머니의 증언으로 세상에 그 존재를 처음으로 알린 후, 일본군 ‘위안부’는 나에게 죄책감과 안쓰러움과 연민의 대상이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생존자를 직접 대면할 때면, 너무나 오랫동안 그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그분들이 겪었을 고통에 대한 연민이 겹쳐 도대체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분들이 겪었을 비극을 감히 상상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지금까지 ‘견디며’ 살아온 세월의 고랑마다 고여 있는 고통의 무게를 가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의 친절한 행동이나 연민의 눈빛, 위로의 말 한마디가 오히려 그분들에게 또 다른 상처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앞섰다. 함부로 말을 붙이기조차 어려웠다. 지금껏 일본군 ‘위안부’는 나에게 그런 ‘대상’이었다.
 
<나의 마음은 지지 않았다>라는 다큐멘터리의 주인공 송신도 할머니는 그렇게 나와 분리된, 그래서 죄스러워하든 안쓰러워하든 결국은 나와 별개의 ‘대상’이었던 일본군 ‘위안부’라는 존재를 나의 할머니로, 그래서 가끔은 짜증도 나고 가끔은 감동도 주고 가끔은 나의 치부를 드러내기도 하고 가끔은 존재 여부를 인식하지 못할 만큼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관계’의 그물망 안으로 불러들였다.
 
다큐멘터리 하나로 ‘관계’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과장된 표현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이 영화를 통해 송신도 할머니와 관계를 맺었다. 더 이상 송신도 할머니는 내게 ‘위안부’ 하면 떠올리게 되는, 죄스럽고 안쓰러운 화석화된 이미지가 아니다. 그녀의 삶은 이미 내 삶을 파고들었다.
 
그것은 1992년 송신도 할머니의 존재를 알게 된 후 일본인들과 재일동포들이 결성한 ‘재일 위안부 재판을 지원하는 모임’(이하 지원모임)의 여성들 때문이다. 아니, 송신도 할머니와 지원모임 여성들이 맺는 관계 때문이다.
 
송신도 할머니는 입도 걸고 성격이 거친 사람이다. 자신을 도우려는 지원모임 사람들에게 “끝까지 가지 않을 거면 시작도 하지 말라”고 호통을 치고, 호의적인 기사를 쓰려는 기자에게도 “네가 제대로 쓸 수 있겠냐?”며 의심한다. 사람을 믿지 않는 것이 나름의 생존방식이 된 송신도 할머니는 그 어떤 도움의 손길도, 호의도 온전하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과연 저들이 내 말을 믿을까? 혹여 뒤통수를 치지는 않을까? 늘 의심한다.

 
그러나 그런 할머니 덕에 지원모임 회원들은 자신을 발견한다. 1심에서 패소한 뒤 지원모임의 한 회원이 할머니에게 조심스레 묻는다. “끝까지 하실 수 있겠냐?” “계속 싸우실 거냐?” 송신도 할머니는 대답 대신 “너희들이 끝까지 할거냐, 말 거냐?”고 되묻는다.
 
‘송신도 할머니가 원하는 대로’를 모임의 강령처럼 세워놓고 할머니를 배려한다고 철썩 같이 믿었던 그녀들은, 할머니에 대한 자신들의 배려가 사실은 자신들이 끝까지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비겁함에서 비롯한 것임을 뼈저리게 깨닫는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조력자쯤으로 자신들의 위치를 규정했던 속내가 할머니의 거친 질문 하나에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처음 송신도 할머니를 만났을 때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독한 할머니와 어떻게 법정투쟁을 벌여나갈까 걱정이 태산이었던 지원모임 사람들은, 어느새 그녀들을 위로하고 그녀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이 다름 아닌 송신도 할머니임을 깨닫는다.
 
재판에서 졌을 때 고개를 푹 숙이고 울먹이는 그녀들을 깨우는 건 송신도 할머니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일본정부에 대한 거침없는 호통이다. “정치가들이 이 모양이니 나라 꼴이 이 모양이지!” “절대 전쟁은 안 된다고! 그걸 알아야 해!” 할머니의 천둥 같은 호통소리에, 이어지는 노랫소리에, 지원모임 회원들은 그제야 웃음을 지으며 눈물을 거둔다. 그리고 다음 싸움을 준비할 힘을 얻는다. 할머니야말로 이 시대 최고의 해피-고-럭키 우먼이다.
 
죄책감이든, 동정이든, 불쌍하고 억울한 누군가를 도우려고 했던 얄팍한 마음은 송신도 할머니의 거침없는 질문과 호된 호통과 구성진 노래 앞에서 설 자리가 없다. 더 이상 조력자일 수도 없다. 일본군 ‘위안부’의 진정한 친구, 투쟁의 주체가 되지 않을 수 없다. 이로써 일본군 ‘위안부’는 추상적인 ‘대상’에서 나의 삶에 침투하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로 변화한다.
 
더 이상 구경꾼이 될 수 없게 만드는 할머니의 힘

 
영화를 보는 내내 울었다. 그것이 송신도 할머니가 겪은 고통의 깊이 때문인지, 그런 비극이 엄연히 존재했음에도 아무런 청산도 이뤄지지 않은 역사에 대한 분노 때문인지, 이런 현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나에 대한 수치심 때문인지 그것은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눈물이 이전까지 일본 대사관 앞 수요집회에 갈 때마다 찔끔 흘리곤 했던 눈물, 할머니들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마다 눈시울을 붉히게 했던 그 눈물과는 다르다는 것만큼은 잘 알겠다.
 
이렇게 찔끔거리고 있다가는 어디선가 송신도 할머니가 불쑥 나타나 호통을 치실 것만 같다. “너네 이렇게 찔끔거리다 그만두려고 하는 거지?” “끝까지 갈 수 있어?” “마음이 중요한 거야, 마음이!” 이렇게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나는 영화의 관객도, 싸움의 구경꾼도 아니다. 이영주인터넷 매체 일다는 어떤 곳?

[ ] 역사교과서 논란과 한 ‘위안부’여성의 죽음 박희정  2008/02/26/
[ ] ‘역사의 상처’ 건드리지 않는 게 예의? 박희정  2008/0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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