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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문제는 왜 정치가 아니란 말인가

탁현민을 옹호한 ‘진보’가 새 정치의 걸림돌이다 



탁현민 청와대 행정관의 거취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며칠 전에는 언론 보도를 통해 그가 사퇴할 거란 이야기가 들리자, ‘이제 됐다’거나 ‘이제 됐냐’는 반응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 사안은 개인 탁현민의 문제가 아니었다. ‘탁현민 아웃’은 이 사회 ‘탁현민들’을 향한 목소리였다. 탁현민이 재현한 남성성, 공직자 인사검증 시스템, 탁현민 아웃 전략, 탁현민을 옹호했던 일부 진보 등에 관한 토론이 계속되길 바란다. 이 과정은 여성혐오에 대한 좀 더 깊숙한 균열로 우리 사회를 안내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탁현민을 직간접적으로 옹호했던 일부 진보들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탁현민은 ‘진보적 문화기획자’로 불린다. 탁현민을 경질하라는 요구를 지속적으로 비난해온 그룹중 하나가 일부 진보들이다. 나는 그들이 한국 사회에서 꾸준히 형성해온 문화와 영향력이 지긋지긋하다. 참고로, 진보는 매우 논쟁적 개념이고 경계도 모호한데 이 글에서는 광의의 의미로 사용함을 밝힌다.

 

▶ 누가 그에게 그런 자유를 주었나  ⓒ이미지 제작: 조짱

 

진보적이고 노련한 문화기획자라는 탁현민의 『남자마음설명서』,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에는 ‘등과 가슴의 차이가 없는 여자가 탱크톱을 입는 것은 테러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과 여중생 한명을 섹스로 공유했다. 좋아하는 애가 아니었기에 어떤 짓을 해도 별 상관없었다’ 등등 여성에게 모욕적인 내용은 물론, 범죄였던 건 아닌지 의구심을 주는 내용도 등장한다. 최근 그는 일부 책 내용이 픽션이었다고 주장했지만, 그가 재현한 남성성 자체가 심각하다.

 

친구와의 술자리도 아닌, 수 없이 퇴고를 거치는 책에서 저 정도의 언사를 한 그는 일상에서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했다. 두 권의 책 출간 당시의 프로필을 보면 ‘참여연대, 공익문화기획센터, 오마이뉴스를 거쳐서, 다음기획 콘텐츠 본부장으로 있으며, 한양대학교 등에서 공연기획과 연출에 관한 강의를 하고 있다’고 되어있다.

 

만약 그가 일상에서, 책에 쓴 것처럼 말했다면 조직적으로 문제가 됐을 법도 하다. 그런데 별 일 없었다면, 책에서만 그랬을 뿐 평소에는 전혀 그런 언행을 하는 이는 아니었을까. 아니면 비판이 있었으나 ‘뭐 그 정도로, 남자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말들로 계속 덮어졌던 걸까. 혹은 당시는 그런 게 별 문제 되지 않는 그런 시절이었을까?

 

‘그런 시절’ 2007년

 

2007년은 『남자마음설명서』가 출간돼서 베스트셀러가 된 해이고, 곧 이어 『말할수록 자유로워지다』가 출간된 해다. 당시 시민사회 운동 진영에서는 <시민의 신문> 대표이자 여러 시민사회단체에서 중직을 맡고 있던 ‘이OO 성폭력 사건’이, 전해에 이어 뜨겁게 이슈화 된 시기였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탁현민이 과거 활동 했던 시민단체의 대표를 비롯한 일부 진보인사들이 성추행 가해자 이OO을 직간접으로 비호하는 행동을 했던 해이기도 하다. 그 비호 속에서 이OO은 자숙하겠다던 피해자들과의 약속을 깨고, 다양한 사회단체 활동을 이어갔다. 심지어 이OO는 성폭력 사건을 보도한 <시민의 신문> 기자들을 대상으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냈다.

 

나는 당시 ‘이OO 퇴진운동’에 연대하고 있었는데, 소위 진보인사로부터 이런 조언을 들었다. ‘이OO가 잘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곧 있을 대선이 정말 중요한데 시민운동 진영이 이런 모습을 보이면 좋을 게 없다. 이제 그만 이OO 성폭력 대응 행동을 접어야 하지 않겠나.’

 

헛웃음이 났지만, 시민사회 진보인사들이 상당수 포함된 <시민의 신문> 이사회 소식을 들은 직후라 딱히 분노스럽지는 않았다. 이사회에서는 ‘이OO의 성폭력이 문제인건 맞지만, 대표를 사직할 사안은 아니’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참고로 이OO는 2004년에도 사내 성폭력 사건으로 여러 명의 피해자가 문제를 제기하자 공개 사과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2006년에 또 다시 이OO에 의한 여성활동가 성폭력 사건이 발생하면서, 시민사회의 공동대응 움직임이 본격화 됐던 상황이었다.

 

나는 이OO를 비호했던 일부 진보인사들의 변할 줄 모르는 행태에 한숨조차 쉬기 싫었다.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지겨울 뿐이었다. 1990년대 말 내가 대학생이던 시절, 학내 운동사회성폭력 사안을 제기했을 때도 그랬다. ‘반대 정파에게 유리한 행위다, 학우대중이 우리를 어떻게 보겠냐, 그의 성폭력은 문제지만 조직에 그가 필요하다.’ 이후, 1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 그런 말들에 더욱 익숙해져갔다.

 

▶ 10년 전 성명서를 쓰며 느꼈던 감정을 여전히 동일하게 느낀다.  ⓒ반다

 

진보적이지만, 젠더 문제는 사소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 진보적이지만, 젠더 문제에는 무지한 이들. 그래서 진보적이지만, 젠더 문제는 ‘나중에 천천히’ 라고 말하는 이들. 주위에 그런 동료들이 적지 않았던 탓에 진보라는 이OO도, 탁현민도 자신들에게 그럴 ‘자유’가 있다는 믿음을 더욱 의심해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페미니즘의 열기, 2017년

 

과거엔, 진보라는 이들 중에 젠더 문제에 있어서는 적폐세력인 모순적인 존재들이 정말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젠더 문제에 무지한 자신의 모습을, 부족하고 보완할 부분이 아니라 ‘개성’쯤으로 여기는 이들이 활개치던 시절 말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좀 달라진 것처럼 보였다. 개인적으로 나는 건강 문제로 오랫동안 현장을 떠나 있다가 최근에야 조금씩 활동을 하고 있는데, 그래서 인지 과거와의 온도차가 확연히 느껴졌다.

 

페미니즘에 대한 무지를 당연시하지 않고 진지하게 젠더 이슈를 탐구하며 자신을 성찰해 보려는 이들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페미니스트 선언에 동참하고, 젠더 이슈에 목소리를 보태는 이들의 양적 변화는 괄목할 만했다. 아마도 최근의 페미니즘 열기가 많은 이들에게 좋은 계기로 작동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았던 노동, 그러니까 진보 사회 내부의 성찰을 촉구해온 페미니스트들의 외침(운동)이 긴 세월 쌓인 것도 간과할 수 없는 요소였을 것이다. 어쨌거나 이제 ‘그런 시절’은 상당히 지나온 듯 보였다.

 

그런데 최근 탁현민 사태를 둘러싸고 보이는 ‘속내’들을 보니, 그 시절은 아직 지나지 않은 것 같다. 탁현민의 오만하고 차별적인 젠더의식과 청와대 행정관 자질을 묻는 행위를 놓고, 의외로 많은 비난이 쏟아졌다. 일각에서 진보라는 이들조차 ‘야당을 이롭게 하는 거냐’며 본질을 호도하고, ‘청와대에 탁현민이 너무나 필요한데 도대체 무슨 얘기가 더 필요하냐’며 따졌다. ‘너무나 중요한 시기이니, 이제 그만 하라’며 목소리를 높였다.(도대체 젠더 문제를 고민할 만큼 중요하지 않은 시기는 언제인가.) 그리고 ‘이니팬덤’(문 대통령의 팬덤)이 아닌 진보들조차 ‘새 정부 흔들기’로 간단히 수렴해 버리기도 했다.

 

무엇보다 ‘탁현민이 잘했다는 뜻은 아니지만 남자가 좀 그럴 수도 있다’는 전제가 깔린 침묵이 여전히 감지됐다. ‘물 만난 페미니스트들 때문에 탁현민이 된 서리를 맞는다’고 볼멘소리를 해댔다.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게 아니라, 애초 틀렸던 건데도 말이다. 

젠더의식이 정치의식이다

 

젠더 문제가 정치 이슈이고, 젠더의식이 정치의식이다. 그런데 그들은 다시, 젠더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만들거나 아예 젠더 문제 자체를 휘발시키고 배제시켜 버렸다. 그렇게 그들은 현재의 젠더 구조가 만드는 고통으로 얼룩진 사회 체제를 유지시키는 세력으로, 다시 자리를 굳혀가고 있다.

 

나는 지난해 강남역 살인사건에 놀라기보다 사회적 분노와 추모행렬에 놀랐듯, 이번에도 탁현민의 책 내용보다 그에 대한 분노의 목소리와 항의행동에 놀랐다. 『남자마음설명서』가 베스트셀러가 됐던 2007년, 그리고 그 책을 비판하며 저항의 물결을 형성하고 있는 2017년, 이 찬란한 변화! 전진하는 역사의 물결 속에서, 여전히 정체되고 적폐로 남아 걸림돌이 되고 있는 이들은 누구인가? [반다]   페미니스트 저널 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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